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9월 679호
23
0
볕이 반사되는 날은 햇빛 차단 마스크를 쓰고 공원에 나간다. 바닥이 양탄자처럼 푹신한 재질로 발끝에 닿는 느낌이 마치 소복하게 쌓인 눈길을 걷는 듯하다. 어김없이 눈에 들어오는 내 또래 여인과 세 마리 느린 ‘시추’의 모습이 다물어 있던 입을 벌어지게 했다. 손을 흔들며 이름을 부르자 날 향해 달려오는 노견의 모습에서 마치 ‘라미’인 듯 착시 현상이 일었다. 같은 종(種)이었기에 체격이나 걸음걸이가 비슷해 살아 돌아온 듯했다.
머리를 쓰다듬자 행복한 숨소리를 들려주는 녀석은 그중 가장 건강하여 지나는 길목에 궁금한 것이 많아 지체되기 일쑤다. 또 다른 강아지를 보곤 처음엔 깜짝 놀랐었다. 눈동자 전체가 연둣빛이다. 라미처럼 실명된 상태라고 했다. 냄새로 뒤뚱거리며 따라가고 있는 어설픈 걸음을 안쓰럽게 지켜보다 목걸이에 적혀 있는 이름을 보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꽃중기’, 녀석은 자기 이름이 톱 배우라는 걸 알고 있을까. 견주가 가장 애정한다는 뜻으로 읽혔다.
각자 긴 줄에 안전하게 매어 있고 커다란 유모차 안에는 그들이 먹을 물과 간식, 배변 비닐, 휴지 등이 한편에 놓여 있었다. 견주는 아이들이 산책을 좋아하고 집 안에선 변을 보질 않아 하루에 몇 번을 나와야 한다고 했다. 강아지를 키우면 여행을 편히 갈 수도, 외출도 불안하여 서둘러 귀가해야 한다. 내가 며칠 여행을 가면 사료도 먹질 않고 제 집에서 웅크리고 나오질 않아 스피커폰으로 음성을 들려주곤 했다.
라미가 실명되던 날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 걸 예상 못했다. 으레 날이 밝으면 녀석의 경쾌한 발자국 소리가 알람이 되어 깨곤 했는데 그날은 늦잠을 자고 있었다. 다가가 보니 숨을 고르게 쉬고 있어 나이 탓이려니 측은했다. 오전이 지나는데도 그대로 있어 안아 올렸더니 한 번도 실수 안 한 제 집에 쿠션이 푹 젖을 정도로 오줌을 누고 몸은 축축하였다. 순한 라미는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밤인가 싶어 다시 엎드려 잤을 것이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바닥에 내려놓자 중심을 못 잡고 빙글빙글 돌며 탁자 모서리에 이리저리 부딪히고 있었다. 나쁜 예감으로 심장이 쿵하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유기되고 떠돌이 생활할 때 봉변을 당한 걸 라미는 기억하고 있었다. 산책 중 남성이 지나치면 와락 내 무릎에 올라 갈급하게 보호를 요청했다. 처음엔 왜 이러는지 몰라 사회성을 키워주려 했지만 아픈 기억이 깊게 자리 잡고 있어 우리 곁을 떠날 때까지 인식을 바꿔주지 못했다. 그저 내 품만 파고들어 살려 달라는 몸짓을 취하는 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직접 들을 수 없지만 임시 보호소에 있던 여직원이 울 듯한 표정으로 따라 나와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고 제발 빨리 데려가시라는 말에 그날로 데려왔는데, 후에 담당자의 구타가 빈번했다고 들었다.
그 외에 보호소로 오기 전 털이 누더기처럼 덮여 있을 정도의 긴 시간을 떠돌이로 지낸 걸로 알고 있다. 갖은 고초가 많았으리라는 생각에 보상이라도 해 줄 요량으로 사료나 간식은 물론이고, 피부병으로 흉한 몸을 가릴 수 있게 애견 의상을 예쁜 것으로 꾸며 주어 생명으로 태어남을 누리고 묵은 기억을 지워주려 공주 모시듯 했다. 그러나 자고 나면 치아가 하나씩 빠지면서 결국 실명까지 되었다. 라미란 이름도 뻐드렁니와 치아의 상태가 좋지 않아 ‘라미네이트’의 준말로 불린 건데 맘껏 먹질 못하니 급속하게 나빠진 것 같다. 평이 좋은 동물 종합병원에 예약하여 상담했지만 안락사를 시키라는 말만 듣고 돌아왔다.
보이지 않을 뿐 사료도 잘 먹고 가구 모서리에 부딪히면 내 머리도 한 대 맞은 듯 어질했지만 점차 잘 걸었기에 그때부터 재활을 시켰다. 우선 배변 연습이 시급했다. 두 시간 간격으로 뒤에서 몸을 붙잡고 패드에 데려가면 어김없이 쉬를 한다. 칭찬을 해주고 안아 주면 행복에 겨운 소리로 응답한다. 그렇게 열흘이나 지났을까. 스스로 냄새로 익혀 쉬를 하고 돌아서 나오는 모습에 휘둥그레 놀라 소리 높여 환호했다. 얼마나 칭찬을 해주었는지 모른다. 녀석도 기쁜 숨소리를 들려주어 안고 있는 손끝에서 심장이 마구 뜀박질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명된 지 1년 만에 이가 모두 빠지며 8년의 함께한 추억만을 남겨두고 떠났다.
오랜만에 견주를 만났다. 강아지가 두 마리냐 물었더니 ‘꽃중기’가 별이 되었다고 한다. 가슴 한 줄기가 서늘했다. 곁에 있던 강아지 목덜미를 한참 만져 주고 돌아왔다. 요즘 공원이나 어딜 가도 마주치는 강아지들, 등록된 애완견이 천만이 넘는다고 하니 동물 사랑의 인식이 바뀌긴 했다. 애완은 말 그대로 사랑하고 어여삐 보는 것이다. 그들은 계산하지 않고 정직하게 주인에게 한 마음을 베푼다. 말만 못할 뿐 모든 감정 표현이 가능하다. 강아지를 키우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전혀 아깝지 않은 건 정서적으로 치유받고 채워지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소망이라면 주변인에게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을 것이다. 개보다 우위 대접을 못 받는다면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나 너무 억울한 일 아닌가. 예측 못할 비가 자분자분 내린다. 내 품만을 파고들던 라미를 꼭 안아 토닥여 주고 싶은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