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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래김과 햇반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문근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9월 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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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가져온 파래김

 

비닐봉투를 뜯으면
손바닥 절반만 한 김 다섯 장이 투명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다

 

같이 가져온 햇반도 마찬가지

 

비닐봉투를 뜯으면
반 공기 정도 되는 하얀 쌀밥이 하이얀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다

 

들기름에 바싹하게 구워진
파아란 바다 햇빛과 향기를 내는 파래김으로
전자레인지로 데워져, 김이 모락모락 나는
누어런 평야 햇살과 열기를 품은 하얀 쌀밥을 싸 먹으려는 순간

 

눈앞에 꿈틀거리는
김과 밥을 담고 있는 플라스틱 용기와 
이 용기들을 포장하고 있던 비닐봉투

 

순간, 문득 드는 두려움

 

우리는, 왜
수억 년 동안 지각에 갇혀
지열과 지압에 억눌려진 고생대 식물의 잔재를
원유라는 이름으로 부활시켰을까

 

또한,
에너지라는 필요악으로
대기를 오염시키는 것도 부족해서
원유의 잔해물인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로
대지와 바다를 뒤엎는 것일까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류가
수억 년 동안 지구가 지각에 가두어 둔
‘멸종’이라는 악마를
인간의 진화 또는 문명의 이기라는 이름으로
다시 부활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밥알이, 모래알처럼, 입 안에서 씹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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