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9월 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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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동산을 중심으로 그림같이 펼쳐진
수천 평이 넘는 나주의 비탈진 과수원 배밭
밤새도록 풀어 놓은 달빛을 머금고
배꽃이 피어 하얗게 순하다
벌들이 동분서주 정신없이 분주하다
내가 잠든 사이 밤을 가르고
허공에서 태어난 화심을 꽉 물고 있는 열매
배밭 너머 멀리 개 짖는 소리 아슴하다
내 詩에도 저 벌들이 날아왔으면 좋겠다
수십 년 내내 나의 발밑도 산비탈인데
햇살 따라 달빛 따라 별빛 따라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바로 서려는 몸짓인데
결실이 없는 구절 화려하기만 하다
시지프스 돌인 양 굴러 내리기만 하는 문장
시간은 내 편인 듯 내 편이 아닌 듯
무겁고 차갑고 무너지려는 자세
혼자서 크는 나무는 없다는데
구절마다 옹골찬 문맥이 숨 쉬어야 하는데
내 봄날은 한참 전에 지난 것 같아
배나무에 매달린 아주 작은 열매
우주 속 하나의 행성처럼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