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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대장간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영

시인·한국문인협회이사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9월 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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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이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대장간은 불에 달군 시우쇠를 다루는 곳이다. 시우쇠를 두드려 호미며 괭이, 삽 등 생활에 유용한 온갖 연장을 만들어내던 대장간이 점점 삶의 뒤편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다. 연장을 만들던 대장간이 없어지듯 문단의 대장간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문단에 유명한(?) 격언이 있다. ‘작년에 등단한 사람이 제일 무섭다’라는 말이다. 이는 문단의 특징이나 시스템을 잘 모르고 행동하는 문인을 두고 하는 말 같지만, 곰곰 생각하면 문단의 대장간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과도 같은 뜻이다. 이제 막 등단한 사람이나 등단한 지 오래되었어도 문단 조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대장간의 시우쇠와 같다. 문단의 시스템이나 특징 등을 안내하고 가르치는 일은 보통 선배 문인들이 한다. 문단의 후배들이 그 선배들의 조언을 순순하게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선배들은 이끌어주고 가르쳐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굳이 남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지 않겠다는 선배와 ‘너나 잘하라’라는 후배가 모이면 문단이 걱정스러운 정도의 집단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문학은 결코 과거형이 아니며 독존(獨存)형 또한 아니다. 현재진행형이며 대중형이다. 작가들이 모여 현재진행형이며 대중형으로 만든 단체가 말 그대로 문단이다. 문단이라는 단체를 이루면 이젠 단체의 질을 걱정해야 한다. 단체의 이름값을 따지면 대중을 이루기 어렵고, 대중을 이루다 보면 단체의 이름값이 떨어진다. 문단은 문학을 공통분모로 하여 구성된 집단이기 때문에 문학이라는 예술성과 단체라는 대중성의 아슬한 균형을 항상 찾아내야 한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문단의 대장간이 그립다.
균형 감각을 잃어버리면, 문단은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사람이나 단체의 모순은 살아있는 한 함께 가야 하는 그림자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모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날이 평생 거의 없다. 그렇다고 모순을 당연시하는 일은 문학인의 자세가 아니다. 모순에 대한 자기 검열과 자기 비판은 문인의 사명이다. 자기모순의 교정 장치는 어디에 있는가? 물론 자기, 또는 단체 안에 있다. 궁극적인 선택은 모순의 주체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문단의 대장간이 그립다.
요즈음은 지식의 주기가 아주 짧다. 학창 시절에 배운 지식은 이미 죽은 지식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또 배워야 한다. 문단도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문학이라는 장치를 통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그러므로 문단 사회의 질서도 배우지 않으면 도태된다. 학창 시절에 배운 지식도, 평생 교육으로 배운 지식도, 사회 단체에서 배운 질서와 의식도 문인은 할 수 있는 한 온전하게 소화해서 세상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이것은 문인이 가진 책무이기도 하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은 어떻게 구분할까? 답은 간단하다. 사람 몸에 들어가 똥이 되어 나오면 먹을 수 있고, 똥이 되지 못하면 먹을 수 없다. 사람을 위해 몸에 들어간 음식이 소화되어 똥으로 나오지 못하면 그 음식은 되려 먹은 사람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다. 지식도 그렇다. 먹고 소화해서 똥으로 버린 사람만이 지혜롭게 된다. 자기가 먹은 것을 온전하게 소화해서 배출하지 못하는 사람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지식을 많이 먹은 사람도 온전하게 소화하기 전에는 인품 없는 잔소리와 자랑만 늘어난다. 먹은 음식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몸이 상하듯, 습득한 지식이 오히려 그의 인품을 깎아내릴 수도 있다. 그래서 박학다식한 사람이 모두 인품이 좋은 사람은 아니다.
요즘 어리석은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어쩌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한 달음에 달려가서 한 수 배워 오고 싶다. ‘어리석다’라는 말뜻은 진짜 사전 그대로의 뜻이 아니다. 종종 정치권에서 사용하던 ‘바보’라는 접두어처럼 역설적인 뜻이다. 지혜를 가진 사람은 얼핏 어리석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의 삶은 세속의 잣대로 평가되거나 계량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모두 똑똑하고 야무지고, 넘쳐나는 정보를 많이 접한 사람 중에서는 어리석은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더군다나 어느 정도 지위가 있고 나이가 들었고, 학식이 풍부한 사람 중에서 어리석은 사람 만나기가 더 어렵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을 만나면 한 수 배우고 싶어지는 것이다.
문인은 혼자서 제 길을 가는 수행자다. 좋은 문장을 위해 수행하고 향기로운 인품을 위해 수행하는 사람이 문인이다. 문장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고민하고 망설일 때, 나는 문단의 대장간이 그립다. ‘슬기로운 문단 생활’의 해법이 궁금해질 때도 문단의 대장간이 그립다.
참 사사롭지만,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리고 보니 모든 행동거지가 조심스럽고 어렵기만 하다. 초대한 자리에 덜컥 가자니 극성맞게 보일까 조심스럽고, 가지 않고 얌전을 빼자니 또 결례될까 조심스럽다. 심지어 대선배 문인과 한자리에 함께 있자니 선배 문인의 이름에 누가 될까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다 보니 적절한 조언을 해 주는 선배 문인이 고맙고, 따끔하게 격려해 주는 동료 문인이 고맙다. 재야에 숨은 고수가 넘쳐나는 문단 생활에서 허둥거리는 순간마다 문단의 대장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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