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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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별에게 젖을 물리는 순이의 꼬리가 바짝 섰다.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젖을 잘 빨 수 있도록 앞발도 벌렸다. 어미 옆에 찰싹 붙어 헉헉거리며 젖을 빠는 푸른별을 보며 눈을 뗄 수 없다. 골짜기에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어둠을 가르며 하늘에 번지는 붉은 기운을 받아 순이와 푸른별의 하얀 털이 핑크빛으로 반짝인다. 우리 너머 밭고랑 끝자락에 있는 주인집도 태양을 머금고 화려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집 앞 매화나무 위로 제비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붉은 기운이 남아 있는 쪽문을 열고 우리 안으로 주인집 아들 귀동이가 들어왔다.
“우리 염소들! 잘 잤니?”
귀동이의 눈이 아기 염소 푸른별에게로 향한다. 귀동이는 오늘도 요구르트를 담은 젖병을 들고 있다. 푸른별이 젖 빨기를 멈추고 꼬리를 올리며 귀동이를 바라본다. 귀동이는 푸른별을 번쩍 안아 올린다. 푸른별은 귀동이 품에서 눈을 맞추어 가며 젖병을 맛나게 쭉쭉 빤다.
내 털은 검은색 바탕에 흰 털로 얼룩져 있어 초라하다. 나는 하얀 털을 반짝거리며 서 있는 순이에게 윙크를 보냈다. 순이는 굵고 뾰족한 내 뿔과 숯이 많은 수염을 좋아했다. 수염으로 눈가를 쓸어 주면 눈을 감고 내게 얼굴을 비벼댄다.
“자, 이제 세수도 해야지.”
귀동이는 빈 젖병을 내려놓고, 물에 적셔 온 휴지를 꺼내 푸른별의 눈을 닦아 준다. 물이 닿는 것이 싫은지 푸른별은 이리저리 고개를 흔든다.
“이쪽 푸른 눈도 예쁘고, 요쪽 갈색 눈도 예쁘다. 너는 왜 눈이 짝짝이니?”
귀동이는 푸른별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고 눈을 빤히 들여다본다. 미소 짓던 귀동이의 얼굴에 슬픔이 살짝 지나간다. 귀동이의 손등을 핥고 있는 푸른별을 보며 순이도 혀를 빼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큰소리로 귀동이를 부르며 주인아주머니가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
“눈 뜨자마자 이리 달려오고, 너는 푸른별이 그렇게 좋아? 이제 푸른별은 내려놓고 어서 가자. 밥 먹고 교회 갈 준비해야지.”
주일날은 교회에 가서 꼭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며 주인아주머니는 조금 더 있다 가겠다는 귀동이의 손을 억지로 끌고 나갔다.
귀동이가 나간 후 나는 순이와 푸른별을 데리고 뒷산 언덕으로 향했다. 주인 부부는 주로 밭농사를 짓는다. 가축은 처음으로 나와 순이를 데려다 키우기 시작했다. 낮 동안에는 뒷산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우리를 풀어 주었다.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우리를 환영하는 듯 길옆 나무들은 연두색 잎을 내밀고, 개나리와 진달래도 활짝 피었다. 미리 보아 두었던 칡넝쿨이 있는 곳으로 순이와 푸른별을 데리고 갔다. 칡넝쿨에 돋아난 새싹들을 보며 순이는 좋아라 엉덩이로 나를 툭툭 쳤다. 코를 실룩거리며 정신없이 칡넝쿨 새순을 따먹기 시작한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고 다리를 들썩이며 춤을 춘다. 입을 오물거리며 순이도 내 앞에서 다리춤을 춘다. 푸른별도 덩달아 고갯짓을 한다. 풀들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랑거린다.
그때 교회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춤을 멈추고 아랫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바위 위로 뛰어올라갔다. 산골짜기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십자가가 높이 올라가 있는 교회 첨탑이 보인다. 집과 집 사이에 펼쳐진 넓은 매화밭에는 꽃들이 활짝 피었다. 교회로 가던 마을 사람들이 꽃만큼 화사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인다. 녹색 나무에 둘러싸인 교회 흰 벽이 오늘따라 더욱 하얗다.
주인집 식구들은 저곳에서 어떤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나는 갑자기 몸이 떨려왔다.
장마가 끝나고 오래간만에 선 시골 장터는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과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장터 끝자락에 나는 여러 마리의 염소들과 묶여 있었다. 옆자리에는 누런 개들도 여러 마리 철창에 갇혀 있다. 개들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떨었고, 덩치 큰 남자가 다가가면 모두 철창 뒤로 뒷걸음질 쳤다. 잡혀서 허술한 뒷건물로 끌려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던 작고 털이 하얀 암컷 염소가 바들바들 떨며 오줌을 쌌다. 내 옆에 묶여 있던 염소도 누군가의 손가락질에 뒷건물로 끌려가더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숨이 막혀 헉헉거렸다. 물이라도 한 모금 마시고 싶었다. 물그릇은 갈팡질팡하는 염소들의 뒷발에 차였는지 엎어져 있었다. 공포에 질려 음메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어느 부부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한참 이야기하더니 나와 오줌을 싼 흰 염소를 가리켰다. 나의 모든 세포는 세균이 다 갉아 먹은 것처럼 허물어져 내렸다.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고 나는 눈을 감았다.
나와 흰 염소를 끌고 가는 낯선 부부는 우리를 뒷건물로 끌고 가지 않고, 복잡한 시장길을 벗어나고 있었다. 흰 염소도 남자가 잡아 끄는 목줄에 이끌려 리듬을 잃은 채 나와 부딪히며 걸었다. 시장통 뒷골목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않은 염소 모습이 떠올라 나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부부는 우리를 트럭에 싣고 간다. 어디로 가는 걸까…?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우리는 한동안 부들부들 떨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지금의 이 집으로 왔다.
나는 교회를 바라보며 두 발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순이와 푸른별과 봄기운이 흐드러진 이 언덕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더운 기운이 확 올라왔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온다. 교회에서 돌아온 귀동이가 우리를 찾는 신호다. 나는 푸른별에게 바위에 올라가는 연습을 시키다 소리 나는 쪽을 내려다봤다. 귀동이가 호루라기를 불어 대며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온다.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다시 밭일하러 나갔나 보다. 귀동이는 우리와 노는 걸 좋아한다. 나는 귀동이에게 뛰어갔다. 순이와 푸른별도 음메거리며 뒤를 따랐다. 귀동이는 우리를 보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과자 봉지를 흔들었다.
“푸른별하고 지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기도하고 왔어….”
많이 먹고 얼른 커서 나하고 뛰어놀자며 귀동이는 과자 봉지를 급하게 뜯어 우리들 앞에 쏟아 놓았다.
“갑자기 부모가 돌아가셔서 혼자 남은 아이가 있는데, 마을 어른들이 교회에 모여서 회의했어. 어찌 되나 궁금해서 나도 그곳에 있었어. 거기서 먹던 과자야.”
귀동이는 푸른별을 번쩍 안아 과자를 입에 물려준다. 그런 모습을 순이는 움직이지 않고 바라보고 있다.
나뭇잎들이 어느새 푸르게 우거져 그늘을 만들어 준다. 더워서 쉬고 싶으면 우리는 나무 그늘을 찾았다. 푸른별도 많이 자라 우리를 곧잘 따라다니고, 바위도 제법 잘 탄다. 귀동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푸른별은 언덕 위로 올라가 기다렸다. 저 길 끝에 귀동이가 나타나면 한달음에 내려가 반겼다. 귀동이는 책가방을 집 마루에 던져 놓고 공을 들고 공터로 갔다. 푸른별은 귀동이가 던져 주는 공을 앞발로 굴리며 귀동이에게 가져다 주기도 하고, 여느 때는 엉뚱한 곳으로 몰고 가 귀동이가 달려가기도 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순이가 졸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졸렸다.
초승달이 떠 있는 캄캄한 밤에, 자고 있는 우리 곁으로 귀동이가 찾아왔다. 우리는 무슨 일인가 놀라서 잠을 떨치고 일어났다. 귀동이는 푸른별을 안고 우리 밖으로 나갔다. 우리도 따라갔다. 밤하늘에는 별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방에서 풀벌레 소리가 요란했다. 반딧불도 별빛과 어울려 반짝거렸다. 귀동이는 웃지도 않고 상냥하지도 않았다. 울적해 보였다.
“푸른별… 저 별을 봐. 저기 보이는 저 별.”
귀동이는 푸른별의 눈을 들여다보다 깜깜한 밤하늘에 빛나는 별자리를 팔을 뻗어 가리켰다.
“저 네모 속 안에 또 별이 들어 있지. 저 별은 오리온 별자리야. 잘 봐. 밤하늘을 쳐다보면 언제나 볼 수 있어. 내가 보고 싶을 때 저 별을 봐. 나도 네가 보고 싶으면 저 별을 볼게.”
푸른별의 뿔을 쓰다듬으며 귀동이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별들에게도 집이 있어. 그 가운데 빛나는 별이 바로 너야. 공놀이를 하고 싶으면 그 별에서 나와 다른 별들을 나에게 마구 차 봐.”
푸른별 얼굴에 귀동이의 눈물이 흘러 떨어졌다.
“귀동아, 학교 늦겠다.”
귀동이는 엄마가 독촉하는 소리를 못 들은 척 마루에 멍하니 걸터앉아 땅만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귀동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나 학교 안 갈래. 어젯밤에 엄마하고 아빠가 이야기하는 소리 다 들었어, 엄마 아빠는 나빠.”
“농사짓으려면 돈이 필요해.”
울며 떼쓰는 귀동이를 달래며 주인아주머니가 말했다.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사료를 먹고 있는 순이와 푸른별에게 급히 갔다. 더덕 냄새가 나는 곳을 안다며 나가자고 다급하게 재촉했다. 그때 주인아저씨가 우리로 들어와 푸른별을 안았다. 푸른별을 내려놓으라고 나는 주인아저씨의 팔에 매달렸다. 아랑곳하지 않고 푸른별을 안고 나가는 주인아저씨를 뿔로 마구 공격했다. 주인아저씨는 나를 밀어내며 흰 칠이 벗겨지고 지저분한 트럭에 푸른별을 실었다.
“안 돼. 푸른별은 절대 안 돼. 내 동생이야, 내 동생이라구. 푸른별을 팔지 마. 제발… 엄마…, 엄마는 보육원에서도 나와 동생을 떼어 놓았잖아.”
귀동이는 엄마의 팔을 잡고 늘어지며 소리쳤다.
새끼는 또 낳으면 된다며 주인아주머니는 팔에 매달린 귀동이를 야멸차게 떼어 놓았다.
푸른별은 공포에 젖어 음메에 음메에 울며 차에서 뛰어내리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순이는 얼어붙은 듯 꼼짝도 못 하고 떠나가는 차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순간 나는 트럭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트럭은 곧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몸을 논두렁에 처박았다. 뿔이 부러져라 땅을 들이박고 또 박았다. 하늘이 노래졌다. 풀 속에 쓰러져 눈을 감았다. 순이가 푸른별 낳던 그날 밤이 떠올랐다.
어두워질 무렵 순이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진통이 올 때마다 순이는 앞발에 힘을 주고 깔아 놓은 짚을 긁어댔다. 음메 소리를 연달아 내며 안절부절못했다. 순이가 짚을 긁을 때마다 우리 밖에서 나는 두 발로 땅을 팠다.
이곳에 오기 전 커다란 축사에 갇혀 살 때의 일이 떠올랐다. 옆 축사에서 새끼를 낳느라고 밤새 음메거리며 진통하던 어미 염소는 새끼가 몸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해 피범벅이 된 채로 새끼와 함께 죽었다.
어둑어둑하던 밖은 이미 깜깜해지고 하늘에는 하나둘 별이 뜨기 시작했다. 순이의 음메 소리는 점점 빨라졌다. 우리 밖에서 주인아주머니는 순산하기만 바라며 초조한 표정으로 두 손을 깍지 끼고 서성거렸다. 하늘에 별들이 반짝일 무렵 순이의 엉덩이에서 새끼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순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소리를 높였다.
한참을 지켜보던 주인아주머니는 난산이라며 우리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끈으로 순이의 머리를 기둥에 묶었다. 너무 고통스러워하기에 나는 차라리 미치고 싶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양수를 뚫고 나오는 새끼의 발을 잡고 한 손을 자궁 속으로 집어넣어 새끼를 돌려 가며 발을 힘껏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새끼가 후르룩 쏟아져 나왔다. 나는 기뻐 빙글빙글 돌고 또 돌았다. 주인아주머니는 준비해 놓은 담요로 새끼를 감싸 주며 어미가 핥아 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주인아주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희열로 내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석양빛이 산기슭을 붉게 비춘다. 푸른별이 떠나간 후 눈같이 하얗게 빛나고 윤기 흐르던 순이의 털은 거칠고 앙상한 모습으로 변했다. 말을 걸어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앞만 보고 있다.
옆에 있는 작은 연못에는 어미 청둥오리가 엄마만큼 자란 새끼 오리들의 자맥질하는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다.
푸른별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청둥오리는 올망졸망한 새끼 오리들을 데리고 계곡을 흐르는 물가에 나타났다. 나와 순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끼들은 어미 곁에서 수영도 하고 모이를 쪼기도 하며 바쁘다. 물가 바위에 왜가리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어미 오리는 경계를 하며 새끼들을 품어 안고 꼼짝하지 않았다.
청둥오리 어미가 새끼들을 모두 안전하게 키운 것을 보며, 우리는 푸른별을 생각했다. 지켜 주지 못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푸른별을 데리고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도토리나무 잎 부딪히는 소리에 섞여 종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는 눈을 감고 푸른별이 살아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푸른별을 보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한 번만이라도 안아 보았으면, 온기를 느껴 보았으면.”
순이의 절규에 나는 눈도 깜짝거리지 못하고 도토리나무만 쳐다보았다. 시장에서 보았던 토막 내어져 팔리던 염소를 생각하니 온몸의 피가 땅속으로 빨려 내려가는 듯하였다.
푸른별은 어미를 닮아 하얀색 털에, 푸른 눈과 갈색 눈을 가지고 별이 가득한 밤에 태어났다. 어찌나 예쁘던지 푸른별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우리는 갓 태어난 아기 염소의 이름을 푸른별이라 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별이 나에게 쏟아지는 것 같았다.
성격이 조용하고 차분한 순이는 높고 좁은 바위 사이의 길을 오가며 자랑스럽게 나를 돌아보았다. 아래에서 쳐다보는 나에게 작은 돌부스러기들을 뒷발로 차서 뿌렸다. 순이의 발자국만 따라 오르던 푸른별도 순이처럼 뒷발로 모래를 뿌렸다. 나는 모래를 맞으면서도 그냥 좋았다.
푸른별이 떠난 후 순이는 발걸음도 느려지고 즐겨 오르던 바위 타기도 하지 않았다. 푸른별과 함께 비도 피하고 같이 살을 비비며 앉아 쉬던 넝쿨 속으로만 자꾸 들어가려 했다.
어느 날 우리는 푸른별과 함께 산꼭대기까지 가 보기로 했다. 여름이라 조금 더웠지만 푸른별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 주고 싶었다. 맛있는 산딸기도 따 먹고, 향기 나는 곳에 가서 더덕 잎도 따 먹고, 장난도 치면서 더없이 즐거운 나들이였다. 오후가 되자 먹구름이 시커멓게 끼더니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급히 내려왔지만 비가 점점 더 거세게 쏟아져 하는 수 없이 도중에서 비 피할 곳을 찾아야 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중 우리는 넝쿨이 얽혀 있는 굴속으로 뛰어가 비를 피했다. 나와 순이는 푸른별에 묻어 있는 빗물을 골고루 핥아 주며 소나기가 어서 지나가기를 바랐다.
푸른별이 떠나고 이곳은 순이의 또 다른 집이 되었다. 아침에 눈뜨면 이곳으로 와, 풀을 헤쳐 가며 한참 동안 냄새를 맡느라 킁킁거렸다. 푸른별 체취 한 가닥을 잡았을까, 그곳에 앉으면 나오려 하지 않았다. 나는 고구마밭에 가서 넝쿨 위에 뒹굴다 고구마 줄기 몇 잎을 물어다 순이 코앞에 놓아 주었다. 좋아하는 막 떨어진 낙엽을 몸에 묻혀다 떨구어 주어도 순이는 큰 변화가 없었다.
어느 날 귀동이가 호루라기를 불며 우리를 찾아 언덕으로 올라왔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호루라기 소리였다. 귀동이에게 뛰어갔다. 나를 보자 귀동이는 무릎을 꿇고 앉아 내 등을 꼭 껴안아 주었다.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푸른별이 차에 실려 간 후 귀동이는 우리를 찾지 않았다. 수풀 속에 앉아 있던 순이는 귀동이를 보자 푸른별이 온 듯이 뛰어나왔다. 귀동이에게 뿔을 계속 비벼댔다. 귀동이는 순이의 뿔을 한없이 쓰다듬으며 손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손에 들고 있는 지장풀을 순이 입에 물려 주었다. 학교에서 집에 올 때 뜯어 온 모양이다. 순이는 귀동이와 눈을 맞추며 눈물을 흘린다. 눈물로 범벅된 지장풀을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순이는 눈을 뜨면 넝쿨집에 가지 않고 칡넝쿨을 찾아다녔다. 칡넝쿨이 있는 곳을 찾으면 뿔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뿔로 파고 앞발로 헤치고 굵은 칡뿌리가 나오면 뿔로 수없이 박으며 칡뿌리를 잘랐다. 큰 칡뿌리가 나오자 순이의 얼굴에 오래간만에 기쁨이 가득했다. 기쁨과 흥분에 들떠 순이는 칡뿌리를 굴리며 귀동이 집으로 끌고 갔다. 귀동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순이는 기뻐 음메거리며 귀동이 앞에 칡뿌리를 가져다 놓았다.
“네가 캤어? 내가 좋아하는 것 알고? 어떻게 이걸 캤어. 여기 뿔이 부셔졌네. 아이구! 이제 그만해. 손톱도 닳았네.”
순이는 앞발을 쓰다듬고 있는 귀동이를 눈물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칡넝쿨 새순을 오물오물 잘도 따 먹던 푸른별을 보듯이.
귀동이는 책가방 속에서 과자를 꺼냈다.
“순이야, 이 과자 좋아하지, 내가 너 주려고 사 왔어. 맛나게 먹고 힘차려. 털이 이게 뭐야. 털갈이하는 것처럼.”
순이는 귀동이 손을 핥으며 눈물을 흘렸다. 한동안 귀동이에게 몸을 비빈 후 순이는 과자를 물고 산으로 올라갔다. 나도 순이에게 발을 맞추며 따라 올라갔다. 넝쿨집으로 가서 풀을 마구 헤집더니 그 속에 과자를 묻었다. 순이는 좋아하는 과자를 먹지 않았다.
순이의 뿔도 내 뿔도 닳고 닳아 초라해졌고 과자는 쌓여 갔다.
단풍나무 잎들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날, 나는 순이를 데리고 떡갈나무 잎이 쌓여 있는 산길로 갔다. 낙엽을 좋아하는 순이의 입맛을 찾아주고 싶었다. 맛있게 생긴 낙엽을 골라 발로 긁어모았다. 푸른별 생각이 났다. 살아 있을까? 차에 실려 가던 모습이 떠올라 죽을 것만 같다. 생각을 떨치려 고개를 흔들었다.
“이리 와 봐. 맛있는 간식 좀 먹어 봐.”
낙엽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다 애써 순이 입가에 밀어 주었다. 조금 먹다 말고 순이는 멍하니 숲길을 바라본다. 새 한 쌍이 종종거리며 놀고 있다.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 옆으로 가 엉덩이를 들어 올리며 꼬리털을 쫙 펴고, 또 앞으로 톡 뛰어가서 꼬리털을 쫙 벌리며 열심히 구애하고 있다. 나는 순이를 바라보았다. 시장에서 목이 묶여 서 있는 순이를 처음 보았을 때, 죽음을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천사같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줄에 끌려 시장을 걸어나올 때 순이와 부딪히면 몸이 찌릿찌릿했다. 주인아저씨가 같은 우리에 풀어 주었을 때 나는 꿈인가 생각했다.
거칠어진 하얀 털은 매일 흙에 비벼 대어 누렇게 변하고 날렵하던 뿔은 반이 잘려 나가 뭉툭하다. 주인아저씨가 귀에 인두로 새겨 놓은 마크가 더욱 선명해 보인다. 주인아저씨는 우리를 시장에서 데려온 후 어느 날 빨갛게 달아오른 인두로 묶여 있는 우리 귀에 대고 지졌다. 너무 고통스러워 펄쩍펄쩍 뛰었다. 이렇게 표시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도망가지 않을 텐데.
나는 순이에게 다가갔다. 뭉툭해진 뿔을 쓰다듬었다. 여기저기 부서져 울퉁불퉁하다. 나는 뿔을 핥기 시작했다. 귀도 핥았다. 촉촉한 눈도 핥았다. 조그마한 입도 핥았다. 순이도 나를 핥기 시작했다. 순이의 외음부가 부풀어 있었다. 나의 몸도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폭발할 것 같은 힘을 누르며 순이의 암내 나는 곳을 핥아 주었다. 점액이 분비되었다. 순이는 큰 소리로 음메 하며 나에게서 떨어지려 했다. 나는 숨이 막혀 오고 온몸에 경련이 일었다. 나는 순이를 두 발로 꽉 껴안고 언덕 아래로 데굴데굴 굴렀다. 순이도 나를 꽉 껴안고 구르고 또 굴렀다. 푸른별도 같이 굴렀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저녁 때 가방을 들고 주인아주머니와 함께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겁이 났다. 의사는 누워 있는 순이 곁으로 다가가 청진기를 배에 대고 이리저리 검사를 했다. 손으로 배를 눌러 보기도 했다.
“임신은 아닙니다.”
“그래요? 왜 임신이 안 되는지요?”
수놈도 검사해 달라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의사는 내 몸도 여기저기 진찰을 했다.
“모두 이상 없고 건강합니다.”
의사는 순이가 지금 발정기라며, 교미하면 곧 임신할 거라 했다. 주인아주머니는 발정기가 몇 번 지났는데도 새끼가 안 들어선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새끼가 들어서야 또 봄에 팔 수 있는데, 쌍둥이를 낳으면 좋으련만.”
주인아주머니는 근심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순이와 언덕을 구를 때 생긴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등골이 오싹했다.
다음 날 주인아저씨는 트럭에 험상궂게 생긴 시커먼 염소 한 마리를 싣고 왔다.
“이 염소는 남자 구실을 잘하게 생겼네.”
주인아주머니는 웃으며 염소를 맞이했다. 주인아저씨는 그 염소를 끌고 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넣었다. 놀란 순이는 모퉁이에 쪼그려 앉아 나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순이 옆으로 가 수놈을 지켜보았다. 새로운 수놈은 암내 나는 순이에게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다. 나는 앞발을 들고 수놈을 내쳤다. 나와 수놈은 뿔을 치고 박으며 서로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웠다. 우리 한쪽 벽이 부서졌다. 주인아저씨도 격하게 싸우는 우리를 말리지 못했다.
주인아저씨는 널브러진 그 수놈을 끌어내어 다른 곳에 가두었다. 그 녀석의 뾰쪽한 뿔에 찢긴 상처를 순이는 음메거리며 핥아 주었다. 순이의 두 눈에는 슬픔과 공포가 가득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저놈을 끝까지 막아줄 거야. 순이가 다시는 임신하지 않도록. 너의 눈에 슬픔이 고이지 않게 할게. 걱정하지 마.”
나는 순이를 품어 안으며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수많은 별 중에 오리온 별자리가 유독 반짝거린다. 푸른별이 울고 있는 듯했다.
어제 흑염소에게 치받힌 상처가 쓰리고 욱신거린다. 순이가 옆에서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수염으로 순이의 눈을 쓸어 주었다. 순이는 어제 귀동이가 뜯어다 준 고구마 줄기를 내 앞에 가져다주었다. 나는 눈을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잠자리들이 땅에 닿을 듯 말 듯 빙빙 날고 있다. 새들에게 잡아먹힐까 봐 낮게 나는 걸까? 높이 날지도 못하고 애처롭다. 상처가 더 쑤신다. 하늘 높이 비행하던 제비가 쏜살같이 내려오며 잠자리 한 마리를 낚아챈다. 나는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을 바라보았다. 새끼 입에 먹이를 넣어준 제비는 맞은편 나뭇가지에 앉아 한동안 새끼들을 지켜보고 있다. 새끼들에게 다가가는 듯하더니 다시 돌아 나뭇가지에 앉는다. 어미 제비는 또 제비집을 한 바퀴 돌아 나뭇가지에 앉아 새끼들을 바라보고 있다.
“날 수 있도록 연습을 시키는 것 같아.”
그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며 순이가 입을 떼었다.
“나도 높이 날고 싶어.”
순이는 고개를 숙였다.
“푸른별은 누구에게 나는 법을 배울까? 한 번 안아 보고 싶어. 푸른별에게 가고 싶어. 찾아보고 싶어.”
제비가 멋지게 날개를 펴고 쏜살같이 지나간다. 어설픈 날갯짓이 그 뒤를 따르다 나뭇가지에 휘청거리며 앉는다.
“그래, 가자, 푸른별 찾으러 가자.”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동네 어귀를 지나가며, 우리는 푸른별과 뛰어놀던 언덕을 올려다보았다. 푸른별이 우리를 내려다보는 것 같다. 나는 성큼성큼 앞서가는 순이의 뒤를 따랐다. 다친 상처가 걸을 때마다 쓰리다.
한참을 걸어가니 큰길이 나왔다. 차들도 많이 지나다닌다. 앞서 걷던 순이가 뛰어가기 시작한다. 흰 칠이 벗겨진 꾀죄죄한 트럭이 앞에 가고 있다. 순이는 그 볼품없는 트럭을 놓칠세라 뛰고 또 뛴다. 나도 따라 뛰었다. 뒤에서 차들이 빵빵거린다. 흰 트럭은 어느새 멀리 사라졌다.
찻길 옆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잡으러 달려들었다. 논둑에서 일하던 노인은 삽을 휘두르며 쫓아왔다. 순이는 어쩔 줄 몰라 허둥댄다. 나는 뿔로 사람들을 공격하며 순이를 데리고 길 옆 숲으로 뛰었다. 숲 깊숙이 들어와서 우리는 숨을 골랐다. 푸른별이 낡은 트럭 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마지막 모습에 나는 눈을 감았다.
우리는 사람들을 피해 다니며 다른 마을로 또 다른 마을로 다녔다. 가축 사육장을 기웃거리며 푸른별을 찾을 때는 기대감과 두려움으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줄에 묶여 있는 개들은 우리를 보고 사정없이 짖어댔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순이는 사육장에 고개를 디밀고 눈을 열심히 돌렸다. 사람들이 나타나기 전에 우리는 그곳을 떠나야 했다.
날이 갈수록 순이의 눈은 점점 더 슬픈 눈으로 변했다. 잘 먹지도 않아 집을 떠나올 때보다 많이 야위었다. 순이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푸른별은 어디에 있을까? 살아는 있을까?”
순이를 바라보면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 고개를 돌린다.
낮에는 숲길을 걸으며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한참을 걸어 목이 말랐다. 마침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물을 마시러 소리 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다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커다란 짐승이 땅에 엎드려 버둥거리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새끼 노루였다. 뒷다리가 사람들이 놓은 덫에 걸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입에서는 거품이 삐져나오고 기진맥진해 있다.
마주친 노루의 눈빛은 처절하다. 어떻게 구해 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솔방울이 눈에 띄었다. 솔방울을 물에 적셔 노루 입가에 놓아 주었다. 노루는 지친 고개를 들어 솔방울 사이에 고여 있는 물을 핥았다.
어느덧 어둠이 찾아왔다. 우리는 노루 옆에 머물렀다. 바람이 불고 밤기운이 차다. 순이를 감싸 안았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쏟아질 듯하다.
“저 별들 좀 봐.”
순이는 내 품을 파고들며 밤하늘을 가리킨다.
“저기 오리온 별자리 좀 봐. 푸른별이 저 속에 있어.”
“푸른별도 저 별을 보고 있을까?”
푸른별이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듯 유난히 반짝거린다. 귀동이도 저 별을 보고 있을까?”
오리온 별자리를 가르쳐 주던 귀동이는 어떻게 지내는지, 우리는 작별 인사도 못 하고 떠나왔다.
“귀동이가 보고 싶어.”
순이의 목소리에 슬픔이 가득했다. 별들이 반짝일수록 내 마음은 헛헛하다.
가끔씩 노루가 앓는 소리를 낸다. 앓는 소리를 낼 때마다 내 팔도 조여지는 것 같다. 귀동이가 알면 달려와 구해 줄 텐데 하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춥지, 우리 이제 집에 가자.”
나는 순이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귀동이도 보고… 귀동이는 노루도 구해 줄 거야.”
노루를 구해 줄 수 있다는 말에 순이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새끼 노루도 구해 줄 수 있다고?”
집에 돌아가기를 완강히 거절하던 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멀리 집이 보인다. 두렵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우리는 교회 앞을 지나 그림자를 길게 늘이며 언덕을 올라간다. 귀동이가 집에 있을까. 우리의 오랜 가출을 주인 부부는 어떻게 생각할지 가슴이 무겁다. 집안 마당은 조용하다.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순이는 제비집을 바라본다. 새끼들을 다 데리고 떠나간 빈 집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야호, 너희들 왔구나.”
뒤에서 귀동이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온다. 책가방이 덜거덕거린다. 우리도 귀동이에게 달려갔다. 귀동이 품에 안겨 떨어질 줄 몰랐다. 순이는 귀동이만 졸졸 따라다니며 여기저기 마구 핥아 댄다.
귀동이는 고구마 줄기와 칡넝쿨 말린 것들을 펼쳐 주었다.
“내가 너희들 기다리며 말려 놓았어. 어서들 먹어. 많이 야위었네….”
귀동이는 안쓰러운 듯 우리의 등을 하염없이 쓸어 주었다. 보금자리에 건초도 깔아 주고 물도 부어 주었다.
내일 날이 밝으면 귀동이와 함께 노루 있는 곳으로 가야지. 귀동이는 노루를 꼭 구해 줄 거야. 건초더미에 앉자 긴장이 풀리며 잠이 스르르 왔다.
저녁 늦게 밭에서 돌아온 주인 부부는 우리를 보자 몹시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말라 어찌 새끼를 낳을 수 있냐며 주인아주머니는 혀를 끌끌 찼다.
잔뜩 가라앉은 검은 구름이 아침 해를 가려 을씨년스럽다. 비라도 쏟아질 것 같다. 순이는 푹 잤는지 일찍 일어나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수염으로 순이의 눈을 쓸어 주었다. 털이 거칠다. 윤기 흐르는 하얀 털로 곧 돌아오겠지… 순이는 우리 너머 주인집을 바라본다. 귀동이를 기다리고 있나 보다. 귀동이 대신 주인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다. 주인아저씨 표정이 굳어 있다. 싸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싼다.
우리로 들어온 주인아저씨는 다짜고짜 나를 잡아끌고 나갔다.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내 얼굴을 때린다. 순이는 화들짝 놀라 끌려가는 내 다리를 꽉 잡았다.
주인아저씨가 나를 트럭에 태우려 했다. 나는 타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다. 순이를 지켜 주어야 한다. 나는 주인아저씨에게 뿔을 세워 공격했다. 주인아저씨는 엉덩방아를 찧더니 더 사납게 내 뒷다리를 잡아끌었다.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주인아저씨는 나를 상자에 가두고 트럭에 실었다.
시장에서 주인아저씨를 처음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다. 시장 한 귀퉁이에 처절하게 묶여 있었을 때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언덕을 바라보았다. 언제 뛰쳐나왔는지 순이가 언덕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다. 우리가 엉켜 굴렀던 언덕에서 순이는 나무를 부둥켜안고 트럭에 실려 가는 나를 보며 가랑이를 서서히 부비기 시작한다. 더 격해지고 빨라지는 음메 소리가 새벽 종소리에 묻혀 희미하게 사라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