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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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 은실은 모두가 퇴근한 교무실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 업무 경감 차원으로 교육청에서 불필요한 문서를 사양하겠다고 발표한 지가 오래되었다. 하지만 공문은 아직 줄어들 기미가 없다. 답답하다고 투덜거리며 필요한 서류들을 찾고 있다. 장시간 모니터를 주시한 탓인지 근래 들어 시리고 아픈 눈으로 서류들을 뒤져서 겨우 ‘의원면직’ 서류를 작성하고 제출했다. 이미 학교 주변은 사위가 짙은 어둠에 싸였다.
퇴근하려는데 메시지가 떴다.
‘은실아! 나 명퇴 신청하려고 해. 사사건건 학교 문제가 날 옥죄이고 있어. 이제 학교장의 책무에 한계가 왔어. 이번에는 통과할 수 있게 기도해 줘.’
학교 동창인 강 교장이 또 명퇴 신청을 한 모양이다. 남보다 이른 승진을 한 그였다. 은실은 명퇴 신청을 할 수 있는 친구가 부럽다. 이제 겨우 승진의 문턱에 오른 그녀로서는 답답하다. 어둑한 학교 정문을 차로 빠져나간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2학기가 시작되는 첫날, 오전까지만 해도 학교가 상당히 희망적이었다. 교정에는 갖가지 수목들 사이로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고 학교 공원화 사업으로 울타리가 사라지면서 멀리 들판까지도 한눈에 들어왔다. 벼들이 황금 물결로 출렁이고 고추잠자리가 떼지어 비행하고 있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인 만큼 참새들의 수다도 매우 경쾌했다. 처음에는 ‘왜? 집 근처 하고많은 시내 초등학교를 두고 먼 이곳으로 발령이 났을까?’ 속상했다. 하지만 정든다는 게 이런 것인가 싶다. 오히려 조용한 시골 학교 아이들의 고운 심성과 주변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코스모스 꽃길 지나 노란 유치원 차량이 교문으로 들어서고 있다. 차가 정차하자 운동장에 노란 모자를 눌러 쓴 유치원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은실의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절로 번졌다. 반가움에 교무실 열린 창을 통해 ‘잘 지냈니?’ 소리치며 손을 높이 흔들자 줄줄이 반갑게 손을 흔드는 귀여운 원생들이었다. 뒤이어 형, 누나들도 덩달아 손을 흔든다. 그들은 키가 한 뼘이나 자랐고 늠름해졌다. 쑥쑥 자라는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는 자체가 신바람 나는 일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 신바람이 돌연 회오리바람으로 변신술을 일으키기도 한다.
“교감 선생님, 일찍 출근하셨습니다.”
교사 민수가 교무실에 들어서면서 큰 소리로 인사하는 통에 그만 화들짝 놀라며 화답한다.
“연수를 받으시느라고 고생이 많았죠?”
“오랜만에 동기들을 만나 재밌게 지냈습니다. 이 모두가 교감 선생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그는 방학 중 1급 정교사 자격 연수를 받았다. 이쁜 말로 분위기를 띄울 줄 아는 노총각 선생님이다. 선생님들은 여름방학에 각종 연수를 받는다. 은실은 교무 행정사와 더불어 공문을 처리하면서 학교를 지켰다. 주차장에 차들이 속속 들어오면서 선생님들이 거의 다 출근한 걸 확인한다. 그때 헐레벌떡거리며 남매를 키우는 엄마 선생님 선희가 들어선다. 선잠이 든 아이들을 깨우며 학교에 보내고 본인이 출근하자니 마치 전쟁 같을 것이다. 은실이도 저 나이에 큰 애 도시락을 챙겨 학교로 보내고 막내를 유치원까지 데려다주느라 정신없이 출근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시내 차들이 밀리는 통에 읍내로 진입하기가 여간 쉽지 않네요. 공군부대 쪽에 설치된 제한 속도를 잊어버린 채 급하게 달려왔으니… 분명 과태료 고지서가 날아오겠죠?”
후, 한숨을 쉰다. 아직 출근하지 않은 새내기 교사 명화가 왠지 신경이 쓰인다. 반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자꾸 교문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때마침 교무실에 들어서고 있다. 순간 반가움이 고개 들었다가 화장기 없는 얼굴과 마주치면서 저런? 서울이 집인데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오자니 여간 고생이 아니었을 것이다. 측은지심이 발동한다. 그녀가 교실로 입실하는 것을 보고서야 2학기 첫날이 별탈 없이 시작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나이스에 누군가 조퇴 신청하였다. 클릭하고 보니 명화다. 개학 첫날부터 구두 결재도 득하지 않고 5교시 수업이 끝나자 교무실에 그녀가 나타났다. 손에 뭔가 들고는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은실에게 쑥 내민다. 이게 뭐예요? 묻다가 받고 보니 사직서다. 이런 날벼락이 또 있나? 설득해 보았으나 통하지 않았다. 학교장과 의논 끝에 의원면직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옛말에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임용된 지 6개월 만에 명화가 사표를 제출하고 열흘째 무단결근을 하고 있다. 아직 사직 처리가 되지 않은 상태라 자칫 잘못하면 파면을 당할 수도 있다. 담임이 없는 교실은 수라장이 되었고 은실이가 가끔 보결 수업을 담당하며 3층 교실을 오르내리고 있다. 교육자로서 직분을 망각하고 책무성을 저버리는 행위를 어디까지 지켜보아야 할지? 그 여파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가고 학생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올 3월이 그랬다. 학교가 매우 어수선했다. 소위 교원 노조 출신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면서부터 고경력 선생님들의 명퇴 신청자가 줄을 이었고 학교 물이 갑자기 흙탕물 급류에 휘말렸다. 교원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로 변하는가 하면 학생 인권 조례까지 법제화되었다. 학교가 어디로 어떻게 가려고 하는지? 하지만 우리는 새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선생님들과 의기차게 신학기를 출발했다. 도 교육청 장학사를 지낸 학교장의 취임이라 더욱 환호했다. 신규 선생님 취임식도 강당에서 뜻깊게 가졌다. 공무원 선서에 이어 꽃다발 증정과 선생님으로 첫걸음을 내딛는 느낌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소감으로 이야기했다. 새내기 명화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도와주신 분들에 대한 고마움도 빼놓지 않았다. 일부 선배들은 그 옛날 햇병아리 적 교사 시절이 생각나서 눈시울을 붉혔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무척이나 의미심장했다. 항상 밝고 즐겁게 생활하고 학생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케이크 커팅 등으로 힘찬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그 뜻깊은 날, 축하상을 준비하고도 은실은 무안을 당했다. 축하식 답례품으로 첫 봉급을 타서 동료 선생님들께 자그마한 떡을 돌리던 미담을 귀띔했다. 그런데 “저는 받아들이지 못해요” 하며 조금 전 임명 선서를 한 명화가 못마땅하다는 생각에서인지 와락 화를 냈다. 본의 아니게 어처구니없는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스승의 날이 사라진 요즈음 독한 그 무엇이 학교에 도사리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부모들의 민원도 만만치가 않다. 자기 아이 중심으로 담임선생님에게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했다. 학교로 걸려오는 민원을 은실이가 무마시키기에도 늘 바빴다. 한 번은 학교 병설 유치원생이 색종이 접기 놀이 시간에 앞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의 앞머리를 싹뚝 가위로 잘라버리는 사건이 있었다. 두 원생의 문제가 학부모의 문제로 옮겨갔다. 농촌 학교라 서로 잘 해결하리라 믿었다. 뜻밖에 피해자 원생의 할머니가 학교로 찾아와서는 선생님의 머리채를 끌고 책임을 추궁하는 바람에 큰 혼란을 일으키고 말았다. 교실에서 미성숙한 아이들이 끊임없이 좌충우돌하며 크고 작은 일이 일어나는 곳이 초등학교 현장이다. 예전 같으면 ‘아이들은 서로 싸우면서 자라잖아요. 머리카락은 곧 자랄 테니까, 선생님, 너무 심려하지 마세요’ 라며 오히려 넓으신 아량으로 선생님을 품어주시던 옛 어르신들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학교 안팎이 까칠해지고 있다.
그날은 월중 행사에 교실 환경 정비가 잡혀 있었다. 전체 선생님들과 함께 교실을 순회했었다. 교사용 컴퓨터 책상이 칠판을 가리고 정면을 향하고 있는 교실을 목격하게 되었다. 각계 업무별 부장들이 모여 학생들에게 불편을 초래한다는 의견이 모여졌고 모두 교사용 책상을 유리창 쪽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런데 명화가 유독 고집을 부린다는 교무부장의 언질이 있었다. 창 쪽으로 교사용 책상을 옮기면 햇빛이 비친다는 이유였다. 은실이가 올라가 햇빛이 비치면 커튼을 치면 되지 않겠냐고 학생들을 위하는 일이 먼저라고 설득해 보았으나 막무가내다. 명화가 학교의 규율과 질서를 잘 이해하고 인내심을 서서히 갖추어 가기를 바랐다. 수행 능력이 뛰어나며 체제 적응을 잘하는 선생님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바로 학교다. 좀 더 학생들에게 관심 가져주면 좋겠다. 번번이 조퇴와 병가를 신청하는 바람에 은실이가 보충수업을 메꾸어야 하는 날이 늘어났다.
“지금 서울 병원에 왔는데 병가를 처리해 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드립니다. 병원 진료받고 곧 내려가겠습니다.”
“어디가 불편한가요?”
“감기와 몸살이 겹쳐 온몸이 불덩이예요.”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내려오세요.”
가끔 전화를 끊고 나면 마음이 언짢았고 무거웠다. 도대체 몇 번이야 하면서도 싫은 티를 낼 수가 없었다. 반에 들어가서는 선생님께서 몸이 아프니 나와 수업하자면서 다독거렸다. 따로 교과 진도를 나갈 수도 없고 해서 복습하는 차원이었다.
명화는 은실의 둘째 딸과 동갑이다. 첫째 언니와 막내 남동생 사이에 낀 둘째 딸을 각별하게 신경을 쓰지 못했기에 항상 마음에 걸렸다. 교무실에서 서로 태어난 해의 띠 이야기가 나왔을 때였다.
“백말띠에 태어난 여자는 기가 세고 팔자가 드세다는데….”
단도직입적인 그녀의 솔직 담백함이 장점일 수도 있겠다 싶어 은실은 오지랖 넓게 거들었다.
“누가 그런 말을 해요. 그건 다 일본에서 유래된 속설이고 미신일 뿐이에요. 조금도 염려 말아요. 씩씩한 여자로 멋지게 살 테니까.”
명화가 자신을 두둔하자 기분이 좋은지 배시시 웃었다. 그렇게 미운 정 고운 정이 묻어가나 했다. 하지만 사람은 고쳐 쓸 수가 없다는 것을 잊었다. 사람의 마음가짐은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을, 그날 예기치 않은 곳에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여름 방학하기 전 명화가 담당한 화상 영어 운영 목적 사업비가 나왔다. 기쁜 마음을 담아 기다리던 강사료가 나왔으니 빨리 서류를 작성하라고 통보했다. 은실은 제대로 되었거니 하고 학교장에게 결재 버튼을 눌러 상신했다. 그때 내선이 울렸다.
“교사 간 시간 수당은 동료 교사와 같은 수준으로 책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교감 선생님께서도 잘 알고 계셔야겠습니다.”
학교장의 쓴소리를 들었다. 그런 소리는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단위 시간 수당을 자세히 따져보지 않은 실수가 화근이었다. 다시 명화에게 시간당 수당을 수정해서 상신할 것을 알렸다. 쉽게 처리될 줄 알았다. 전액을 강사료로 받을 수 없는지를 두고 따졌다. 다른 학교 선생님들은 전액을 수령 받았다면서 고집을 부렸다. 쉽게 넘어갈 일도 따지는 통에 머리가 아팠다. 끝내는 타 기관 여기저기 전화를 거는 등 혼란을 제기시켰다. 속으로 학교 일이나 좀 더 잘 배울 것이지 시간 외 수당에 목을 매는지 딱했다. 본인이 작성한 공문도 아직은 엉성하기 짝이 없다. 하나하나 수정하면서 보류에 보류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원칙 중심의 학교장과 직접 대립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조용하던 교무실에서 학교장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선생님들은 학교에 아이들이 있기에 있는 것이니 시간 외 수당에 대해서는 신경을 꺼야 합니다.”
부끄러운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학기 초 의기차게 출발한 학교다. 명화의 시간당 수당으로 균열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 틈에 교내에서는 선생님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방과 후에는 교재 연구실에 모여 잡담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학교장으로서도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 중심에 교감 자격증을 받고 발령을 기다리는 교원 노조 출신의 교사 인규가 있었다. 내심 학교장의 입장을 백번 이해하여 소요하는 선생님들을 다독여 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허사였다.
은실은 승진하면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성장하는 좋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지금은 모두가 미지수다. 교육청에 명화의 ‘의원 면직 신청서’를 보내고 수일이 지나도 답장이 없다. 대기자 발령은 언제쯤 날까? 기다리다 보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담임 없는 교실을 오랫동안 비워둔다는 자체가 난처하기 짝이 없다. 누군가는 보결 수업을 해야 하고 2학기 교과 진도를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교육에 무책임한 그녀로 인해 탄식이 절로 나왔다. 교육의 현실을 원망할 무렵, 교육청에서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했다. 난데없이 사직서를 보류하라는 내용이었다. 뜻밖에 퇴근 시간에 맞춰 은실의 핸드폰까지 울리는 통에 그녀는 상황 파악되지 않아 어리둥절했다.
‘누굴까?’
“도 교육청 감사과입니다.”
감사과라면 도 교육청 행정과 소속 직원이 아닌가? 시군 교육청 감사도 아니고 저 위 높은 곳에서 걸려온 전화다. 학무과와는 달리 그들에게 걸려들었다가는 에누리 없다는 소리가 자자하다. 누구는 정년을 앞두고 연금까지 끊겼다는 비명까지도 접하고 있다. 학교 안팎이 무섭게 돌아가고 있다. 언젠가 선생님 정년이 65세에서 63세로 단축되면서 크고 작은 변화가 학교에 있었다. 심지어 고경력자 한 사람 명퇴하면 젊은 선생님 두 사람에게 봉급을 줄 수 있다는 경제 논리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은실의 활시위는 이미 당겨졌다. 자칫 잘못하다간 올가미에 걸려들 판국이다. 첫 교감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 교장 승진으로 가기 위한 길은 멀고도 험난할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낼 아침 10시경에 학교로 들어가겠습니다.”
“네? 내일은 1박 2일로 전교생이 야영지로 떠납니다. 제가 인솔 책임자로 따라가야 하는데….”
“그래도 안 됩니다.”
“대체 무슨 일이시죠?”
“도착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순간 없는 죄, 올가미로 묶어 놓고 멍에까지 씌우려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면서 몹시도 불쾌했다. 혼돈의 칼날이 그녀의 가슴 한복판으로 쑥 지나갔다. 정체 모를 무언의 압력이다. 사직서 보류와 도 감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마치 누군가 짜 놓은 거미줄에 갇힌 느낌이다. 꼼짝달싹할 수가 없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하는 판국에 법적 논쟁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탓에 간담이 서늘하기 짝이 없다.
다음 날부터 은실의 출근길을 막고 있다.
도 교육청 감사라는 신호탄이 환하게 매일매일 밤늦게까지 학교를 비추고 있다. 무표정의 세 명 감사단이 교문으로 들어서고. 그들의 날카로운 눈매는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나오는 주인공의 얼굴과도 흡사하다. 도 교육청 감사단은 행정과 소속이다. 그들은 학교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선생님들을 관리 감독하는 학무과와는 완전 다른 체제다. 학교 행정에 권위를 갖춘 이들과 학교장이 인사를 나눈다. 그 옛날 학교장에게는 권위가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어렸을 때는 부모가 있었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있었으며 대학에 가서는 은사님이 있고 직장에서는 상사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권위에 익숙하게 살아온 이들이다.
학교 2층 도서실이 아주 위험한 법정 카페가 된다. 컴퓨터 두 대가 설치되고 마치 공금이나 횡령한 것처럼 칼날을 번득인다. 나이스와 업무 포털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각종 예산 자료와 증빙 자료를 요구한다. 그때 감사장이라고 불리는 교만이라는 자가 등장한다.
“본인이 불이익을 당할까 봐 겁이 나서 임용고시 시험을 보기 위해 사직서를 낸 것으로 위장하는 말을 퍼트린 사실이 있습니까?”
앞뒤가 바뀐 경우다. 퇴임하는 고경력자 선생님이 늘면서 학교마다 선생님이 부족한 현상이다. 타 시도에 발령받고도 서울특별시나 경기도 임용고시를 위한 재도전이 시작되었다. 신규 선생님들이 타 시도 내신의 적기를 놓칠 리가 없다. 그들은 누구인가? 반에서 일, 이 등급 수재들이다. 도 감사장이 가랑잎으로 눈을 가리고 학교장 앞에서 아웅한다. 얕은 수로 누굴 잡기 위한 묘략인지를 하지만 처음이니까, 처음이라는 날카로운 단어가 은실을 궁색하게 만든다. 무엇이든 처음의 기억은 신새벽의 처녀성을 지니고 있다. 첫눈, 첫사랑처럼, 첫 감사의 잔인함의 기억으로도 날카로운 섬광 같은 것이 되고 있다.
교무실에 있는 은실을 전화로 호출한다.
도서실 법정 카페에서 첫 번째, 두 번째 불량카드를 제시받고 답하고 녹취 당한다. 부연 설명 따위는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예, 아니요’라고 답할 것을 경고받는다. 긍정과 부정으로, 0, 문항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결과보다는 과정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열심히 노력했으면 되었어.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마’라고. 행정과 감사원은 학교장을 조롱하는 자들이다. 명화는 영악하게도 ‘시간 외 수당 문제’를 들고 교원노조와 손을 맞잡았다. 도 교육청 감사원을 학교로 출두시켰고 담임 반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다. 25일간의 여름방학 중, 누군가를 소개받았고 면담이 이루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라고 쾌재를 부르며 위선에서 시키는 대로 개학 날 사직서를 교감인 은실에게 제출했다. 그 사실을 학교만 몰랐을 뿐이다. 몇 명의 교원노조 선생님들과는 입을 맞추었고 이삿짐까지도 정리했다. 지금도 누군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도대체 명화 뒤에 팔로워를 자처하는 자는 누구인가? 마치 길 잃은 어린 양을 돌보듯 가면을 쓴 자가 그녀를 보호하고 있다. 팔로워는 세상을 바꾸고 리더를 움직이게 하는 강력한 존재들이다. 지금의 팔로워는 가면을 쓴 자다. 그 속내를 감춘 명화에게는 보일 리가 없다.
도서실 법정 카페에서 교만이라는 자가 또다시 등장한다.
“학교가 큰일 날 뻔했습니다. 사직이 아니고 학교 난간에서 자살이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특종 뱀의 유혹은 날이면 날마다 수위가 높아지고 점점 더 사악해진다. 강 교장의 메시지가 떴다.
‘은실아! 충북 전교조의 강압적인 서면 사과 요구에 시달리다가 초등학교장이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어. 기간제 교사가 임용된 지 20일 만에 사표를 제출하면서 학교장 갑질로 몰아간 사건이라는데. 너 몸조심해. 내가 간절히 기도할게.’
9월은 학교에 지진 해일 쓰나미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보인다. 바다 깊은 곳에서 진실이 아닌 진실과 비슷한 허위, 분노, 불신, 조롱 등의 지각 변동이 거세게 일고 있었다. 달콤한 햇살을 먹고 자란 산비탈에서는 과일이 익어가고 들판에서는 벼 이삭이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달이다. 하지만 고이 잠든 초등학교에는 지진 해일 쓰나미를 몰고 와서는 사람들을 모두 삼켜버리는 잔인한 달이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학교 안 소문은 바깥으로 뛰쳐나가 저잣거리를 휘젓고는 돌아다녔다.
‘은실아 무슨 일이야? 지금 들려오는 소문이 사실이냐? 학교장이 갑질했다며?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너무 철저한 성격이라 그래. 퇴직을 앞두고 못 볼 걸 또 보게 되겠군. 설마 그렇다고 누구처럼 목매지는 말아.’
동기들의 농담 섞인 전화도 빗발쳤다. 감사는 2주일을 더 끌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서 죽은 자가 되어 몸져누웠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당하는 수모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학교 난간에 올라가 자살이라도 해야 할 형편이다. 하지만 인내하며 참기를 잘했다. 원칙 중심의 학교장 덕분에 업무 관련 서류에 전혀 하자가 없다는 걸 사무 감사원들이 밝혀냈다. 그렇담 그들은 이제 뒤로 물러서야 할 때다. 멈춰야 함에도 35년 이상의 근속 학교장을 무시하고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게 대체 뭘까?
다음 날 오후 특종 뱀이 다른 사건을 찾기 위해 낚싯줄을 학교라는 어장에 드리우고 있다. 급식소로 전 교직원을 소집시켰다.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유치원을 포함하여 7개 학년이다, 게다가 특수반도 운영한다. 거대한 조직체다. 직원들도 교육 공무원(정교사, 기간제 교사, 전문 상담 교사, 사서 교사, 보건 교사, 영양 교사 등)과 교육행정실 공무원, 임시직 직원, 급식소 직원 등 다양한 직업군과 함께 생활한다.
그들은 급식소에 모인 교직원들에게 백지를 한 장씩 나누어 주면서 일장 연설한다. 마치 학교장을 범법자로 취급하고는 신성한 교육 현장 전체를 매도하고 있다. 소위 선생님 전체 집단을 한 손에 쥔 승자로 행동했다. 우리의 상급 기관이 아닌 별천지가 있는 모양새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일고 있을 때다.
“이번 일은 모두 비밀리에 붙여질 테니까. 교감이나 학교장에게 불평 불만 상황이 있으시면 모두 숨김없이 적어 주세요. 신규 선생님이 사직서를 쓰게 된 동기도 아주 중요해 보입니다. 여러분은 전혀 걱정할 것 없습니다.”
지난해 학교장이 취임하던 회식 장소에서는 너도나도 술 한 잔씩을 권하며 환영을 하던 이들이다. 무슨 불순분자라도 색출하듯 어리석게도 낱낱이 고해 바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호산나’를 외쳤던 사람들이 마지막에는 예수를 못 박으라고 외치듯 인간의 이중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학교장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곤혹당하고 있는데, 무분별에도 한계가 있다. 도 감사장의 명암이 무슨 신분 상승의 신문고나 되는 듯 나누어 가진다. 마치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서 옷을 제비뽑아 차지하려는 꼬락서니와도 흡사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저에게 연락해 주십시오.”
특종 뱀은 간사한 자들에게 명암을 나누어 주면서 호의까지 베푼다. 다시 우르르 교무실로 자리를 옮기고 학교장에게 경고까지를 날린다.
“이들을 추궁하다가는 더 큰 화를 당할 수 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으스대면서 쾌재를 부른다. 도대체 조종하는 이 그 누구인가? 감사장이 무슨 큰 벼슬이라도 되는지, 함부로 다루어지고 있다. 학교장의 권위가 최대치로 추락하고 있는 시점이다. 어른이 없는 시대의 쓸쓸함을 지켜보아야 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 새로운 자료가 현장에서 수집된 만큼 분류 작업을 하고 우선순위를 두고 감사원들은 고민 중이다.
다음 날 오후에 우선순위별로 대질신문이 시작되었다.
도서실 정중앙 공간에 의자 세 개가 놓여 있다. 감사장이 정중앙에 교장, 교감이 서로 마주 보게 앉게 한다. 감사장이 학교장을 향해 말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교감은 신규 선생님에게 뇌물(떡)을 요구하고, 시간당 수당은 학교장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불이익을 당할까 봐 겁이 나서 임용고시 시험을 보기 위해 사직서를 낸 것으로 위장하는 말을 선생님들에게 퍼트린 장본인입니다.”
“맞습니까? ‘예, 아니요’ 둘 중 하나로 답하세요.”
내용이랄 게 없는 걸 두고 겁을 주고 이간질하는 자 누구인가. 항상 말미에는 거짓일 때는 선생님과 대질신문을 하겠다고 협박까지 한다. 은실은 흙탕물이 흐르는 학교 현장의 지각변동으로 인해 끝없이 끌려다닌다. 결국 불량카드 모두 엄지손가락에다 빨간 인지를 묻히고 인장을 찍는다. 천직이라 믿었던 신성한 학교에서 죽음의 협곡을 지나가고 있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그날 은실의 전화벨이 울린다.
“당신의 죄는 실로 무겁다. 그러나 알고 보니 학교장이 시켜서 한 일이다. 교직원이 쓴 내용을 보면 당신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오히려 선생님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이제는 추락한 당신을 위해 소명을 쓸 기회다. 그렇다고 책임이 없는 게 아니다.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신규 선생님 명희는 대인관계에 문제가 없는데 있다고 답변했다.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본인의 불이익을 염려해서 진술했다는 확인서를 써라.”
악마의 얼굴이 천사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친절하게도 소명 내용까지 불러준다. 감사 소명 제도는 감사 결과가 최종 확정되기 전, 감사원의 지적 사항에 대한 반박 의견 또는 소명의 자료를 제출하면 감사원에서 이를 검토해 처리하는 제도를 말한다. 특종 뱀은 은실을 협박하고 어루만지고 잘 달래어 시키는 말을 듣도록 회유하여 학교장을 고발하는 수단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은실은 자살 직전까지를 경험한 이상 이제 더 호락호락 당할 수는 없었다. 소명을 쓰기 위해 펜을 든다.
당신들은 그 누굴 위한 종인가? 묻고 싶습니다.
-.교육공무원인 명화가 어느 날 갑자기 사표 냈습니다. 사표가 처리 안 된 사항에서 10일간 무단결근을 했습니다. 이는 교육공무원법 파면이나 징계에 해당합니다.
-.선생님은 제자 사랑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감사 중에 두 달 더 병가를 신청하겠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금 반 아이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담임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으니 통근 치료가 가능하면 한 달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감사원이 두 달 병가를 신청하라고’ 은연중에 상대방의 직함을 말했습니다.
-.명화로부터 떡 한 조각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서로 주고받는 정으로 말한 떡 한 조각의 값이 도대체 얼마입니까? 그것을 계속 뇌물로 몰고 가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무조건 본인의 불이익을 당할까? 라고 시작합니다. 그렇담 낱낱이 밝힐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용 컴퓨터 책상이 칠판을 가리고 정면을 향하고 있기에 창 쪽으로 옮길 것을 권유했습니다. 창 쪽으로 교사용 책상을 옮기면 햇빛이 비친다는 이유였습니다. 햇빛이 비치면 커튼을 치면 되지 않겠냐고 학생들을 위하는 일이 먼저라고 설득해 보았으나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을 했습니까? 요약 정리하여 ‘예, 아니요’라고 답하라고 강요하면서 붉은 인장을 찍게 하는 수법은 어느 나라 교육청 감사법입니까? 한쪽으로 편향된 감사라는 잣대가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막판에 와서는 당신의 죄는 실로 무겁다. 그러나 알고 보니 학교장이 시켜서 한 일이다. 추락한 당신을 위해 소명을 쓸 기회라고 꼬드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명확히 말씀드리면 이 사건은 학교 컨설팅 장학으로 문제를 풀었어야 했습니다.
새내기 명화가 2학기 내내 강한 자의 방패 뒤에 꼭꼭 숨어 무엇을 하고 있었을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은실이가 작업한 서류가 책 한 권이 되고도 남는다. 병 조퇴, 의원면직 처리 및 취소, 병가, 질병 휴직, 기간제 교사 채용 관련 서류, 관외 내신 등으로 실로 두껍다.
어느 사이 학교 밖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겨울방학이다. 은실은 학교를 지키며 교무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그때 학교 전화벨이 울린다. 기쁨을 참지 못하는 명화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교감 선생님, 서울 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사직 처리 부탁합니다.”
진실 아닌 진실과 비슷한 허위가, 분노가 조롱이 담긴 특종 항아리 속에 꼭꼭 숨어 있던 명화가 갑자기 기운차게 고개를 쳐든다. 5개월간 병가 휴직을 내고 꼬박꼬박 월급을 챙긴 기생충보다 더한 명화에게 해당하는 처벌은 없는지 묻고 싶다. 그때 나랏돈이 웃고 있었다.
은실은 ‘하얀 거짓말’을 치우고, 청렴이 살아 숨 쉬는 교육 사회를 지키고자 오늘도 학교로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