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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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이런 문화유산이 있었던가요?”
숨은 보석을 찾아 재평가해야 한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일천하고도 오백 년간 민간의 젖줄이었던 청제, 그 축조 연대와 과정을 기록으로 보존한 보석 같은 존재가 청제비다. 역사적 가치가 탁월한 동아시아 유일의 보물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마음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영천시 금호읍과 도남동 사이에 아주 오랫동안 터 잡은 물의 명당이 있다. 채약산 일대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불러모아 숨을 가다듬는 터, 드넓은 들판으로 흘러들어 곡식을 키우는 생명의 저장고, 영천 사람들은 이곳을 ‘청못’이라 부른다. 문화니, 예술이니, 종교니 해도 식이위천(食以爲天) 아니던가. 먹는 것이 곧 하늘이요 사흘을 굶으면 포도청의 담도 넘는다고 했으니 굶주림을 해결해 주는 것보다 더 소중한 명품이 어디 있겠는가.
비각 안에 보존된 청제비야말로 명품에 날개를 달아주는 화룡점정이다. 양면의 기록은 오래전의 사정을 소상하게 전하고 오롯이 증명한다. 앞면 병진명에는 536년에 연인원 7,000명을 28방으로 나누어 공사한 기록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졌고, 뒷면 정원명에는 798년 신라 원성왕 때 왕실 기관 내소사가 주도하여 14,000명이 청제를 수리한 내용을 담았다. 신라인의 방식으로 삐뚤빼뚤하게 새긴 정감 어린 비문은 『삼국유사』에도 없는 기록이니 소중하고 고마운 자료가 아닐 수 없다.
나라를 튼튼히 하는 근간은 곳간을 든든히 채우는 일이다. 농업이 주업이던 시기 신라 법흥왕은 강우량이 적은 영천의 천수답을 수리답으로 만들 거대한 국책사업을 펼쳤다. 저수량 59만 톤, 저수 면적 11만 m², 그 아래 몽리지 30만 평에서 거둬들인 소출은 백성을 살리고 나라의 힘을 불리는 곡창이 되었다.
김제 벽골제, 상주 공검지, 밀양 수산제, 제천 의림지에 비하면 축조 연대가 기록으로 남아 있고 그 원형도 유지되고 있다. 중국, 일본에도 고대 저수지는 많으나 정확한 축조 시기를 기록으로 남긴 것은 없다고 한다. 원형이 유지되고 기록까지 오롯이 보존된 고대 저수지로는 청제, 청제비가 유일하건만 여태 보물에 머물고 있으니 그 예우가 야박하지 않은가. 이제야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에 의해 청제비를 국보로 승격시키는 일이 진행 중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더 미룰 수 없다. 국보 승격을 이룬 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겠다는 추진위원회의 포부가 간곡하게 들리는 건 그의 가치가 그만큼 높은 연유이다.
울진 봉평리 신라비는 청제비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이건만 이미 국보로 승격했다. 게다가 한국 최대의 비석박물관 ‘울진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을 만들어 보관 중이다. 전시관을 돌아보던 중 실물 모형으로 제작 전시된 청제비를 만났을 때 반가움보다 민망함이 앞선 건 높은 가치를 저평가한 우리의 눈어두움 때문이다. 그 앞에 한참을 서서 청제비가 기어이 국보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보았다.
비를 기다리는 고대인들의 마음이 얼마나 곡진했을까? 적재적소에 비를 내리는 하늘이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홍수로 전답을 파묻어 버리고, 가뭄으로 곡식이 타들게 하는 건 하늘의 뜻이고, 땅을 치며 통곡하는 건 사람 몫이었다. 신라인은 하늘을 우러러 비손하거나 기우제를 올리는 걸 넘어서 스스로 댐을 만들었다. 댐 원형이 오늘까지 보존될 수 있었음은 입구에 목통 배굴리를 설치하여 필요한 시기에 물을 내보도록 설계하고, 구릉을 깎아 수로를 정연하게 배열한 기술 덕분이다. 청제는 신라인의 진취적 기상과 혁신적 기술이 뭉쳐진 걸작품이다.
비가 내린다. 하늘이 내리는 비를 청제가 받아안는다. 넓은 들판이 가뭄을 겪으면 되겠느냐는 일념으로 몸을 낮추어 주변의 물까지 불러모아 비축한다. 한 톨의 물도 헛되이 내보내지 않으려고 물목을 단속하는 청제는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아버지의 모습 아닌가. 어떤 가장이 제 자식 굶은 꼴을 보고 싶으랴. 가족에게 배고픔을 겪게 하지 않으려면 알뜰하게 모으고 허투루 내보내지 않을 수밖에. 남모르게 주머니끈을 조였을 아버지들 덕분에 힘든 시절을 견뎌냈으리라.
청제의 물목으로 물이 세차게 흘러넘친다. 이제 주머니끈을 풀고 있음이다. 어느 흉년 굶어가는 이웃을 위해 구휼미를 내려고 열어젖힌 대가댁 인심처럼 넘쳐흐른다. 내 가족을 넘어서서 다 함께 나누며 살겠다는 훈훈한 마음이고 덕스러움이다. 절제하고 요량 있게 생활한 덕분에 쌓였던 창고 아닌가. 재물이야 많을수록 좋고 끝이 없는 것이 물욕이지만 모아야 할 때와 풀어야 할 시기를 가늠하는 지혜를 보는 듯하여 마음이 푼푼하다.
물은 이제 아래로 흘러내려 들판을 춤추게 할 테다. 곡식들은 물을 만나 목을 축이고 어깨를 걸고 서로를 바라보면서 결실을 이루어내리라. 벼를 심어두고 물꼬를 보려고 이른 새벽이면 괭이를 짚고 집을 나서던 아버지 옛 모습이 떠오른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며 벼농사에 공을 들이던 아버지 덕분에 사르르 녹으며 목을 넘던 쌀밥 맛을 누릴 수 있었다.
새벽안개에 가린 청제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는 한때 나라가 산업화에 정신이 쏠린 사이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들녘에 농공단지가 들어서고, 공장 굴뚝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농업이 뒷전으로 밀리던 때다. 하지만 쌀이 얼마나 소중한 식량이던가. 오로지 푸른 들판을 꿈꾸던 그는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었다.
청제비가 드디어 비상을 꿈꾸며 용틀임한다. 신라로부터 천오백 년을 한반도 남녘에 웅크리고 있던 그들이 국보급으로 몸집을 키우고 세계의 무대에 서보려는 야무진 뜻을 품고 꿈틀거린다. 이제 우리가 그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줄 차례이다. 낭중지추, 참된 가치는 언젠가는 알려지기 마련이다. 멀지 않아 그의 비상을 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오늘도 청제는 밝은 햇살 아래에서 잔잔한 물결을 만들며 윤슬로 반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