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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진머리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종윤(전북)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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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고향 부모님이 사시는 집에서 잤다. 요즘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행사를 치르려면 관광버스를 빌리고 음식을 마련하여 친지와 하객들을 모시는 것이 보통이다. 서울까지 가야 되니 일찍 출발해야 한다. 아랫쪽에서 빨간색 버스가 양쪽 방향지시등을 깜박거리면서 올라오는 것을 보니 타고 갈 하객을 부르는 게 틀림없었다. 차에 오르니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차 중간 창 쪽에 자리 잡았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아주머니 한 분이 떡과 닭튀김, 바나나, 귤, 땅콩 등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하나 주었다. 이것이 요즘 시골의 결혼 풍속도가 되어 버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버스가 쉬고 몇 사람이 타는데 뒤에서 “저 사람이 누구야?” 하고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모자를 쓰고 옅은 색안경에 하얀 수염이 수북하게 올라오니 못 알아본 모양이었다. 한 마을에 살다가 소재지로 나가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젊어서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잘 부르며, 수염도 깨끗이 깎고 다녔었다. 그런데 모습이 달라진 것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는 수염과 머리가 많은 영향을 준다. 그래서 남자나 여자의 머리 모습이 변하면 그 사람의 마음의 변화가 있는지 의심해 보는 게 보통이다. 이유인즉 머리는 자꾸 빠지고, 턱수염은 잘 자라다 보니 귀찮아서 기르고 모자로 가려 보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의 머리는 지금도 쪽진 머리다. 새마을운동을 하던 무렵 파마머리를 권유해도 시집올 때부터 있던 그대로 쪽진 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뽀글뽀글 볶아 주려고 애를 써 본 때도 있었지만 쪽진 머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쪽진 머리는 깔끔하게 빗어 넘기고 한복을 입어야 하는 격식을 갖춘 모습이다.
모임이나 비지니스 미팅, 파티 등에 어울리는 단아한 머리 모습이다. 그 모습을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바쁜 아침이나 머리를 감지 못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유용한 경우도 있다. 가운데로 가르마를 타게 되면 깔끔하고 우아한 여성미를 느낄 수가 있다. 동생들이 어머니께 파마머리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여쭈어 보았지만 이제는 늦었다며 거절하셨다.
우리나라 미혼 여성의 머리는 미혼 남자와 마찬가지로 묶은 머리나 땋은 머리를 하고, 기혼일 때는 쪽진 머리나 얹은 머리를 주로 하였다. 쪽진 머리는 머리를 뒤통수에 낮게 트는 머리 모양이다. 이것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볼 수 있는 기혼녀의 머리 모양이다. 얹은 머리와 함께 우리나라 기혼녀의 기본형이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얹은 머리, 쪽진 머리, 기명 머리, 땋은 머리, 묶은 중발머리, 쌍쌍투를 하였다. 조선시대 결혼한 여자는 얹은 머리나 쪽진 머리를 하였고, 미혼녀는 땋은 머리, 묶은 중발머리 등을 하였다.
쪽진 머리로 남과 다른 머리 모습을 하신 우리 어머니에겐 이런 일화가 있다. 명절이 돌아올 때 살구나무 밑 확독 옆에서 적을 부치고 있었단다. 전형적인 한국 여인의 모습이라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진사는 가면서 5천 원짜리 한 장을 주고 갔었다. 그 뒤 그 사진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또 이끼 낀 돌담 옆 지붕 위로 저녁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데 가을걷이를 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JTV 전주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다. 그것을 본 누나가 전화를 해서 알았다고 한다.
아버지 팔순잔치 때의 일이다. 우리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자며 남매들과 조카들을 전주로 초청했다. 모이기 어려우니 가족사진을 찍자고 하여 전북대학교 사대부고 네거리 사진관에서 흰색 옷을 입고 촬영하여 사진을 한 장씩 전해 주었다. 이색적인 사진이어서 그랬는지 사진관에 전시해 놓았다. 요즘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일 때 우리 가족사진을 보면 쪽진 머리의 어머니를 볼 수가 있다.
파마머리 한 번 못 하고 열아홉 살에 부안 김가 외아들인 아버지에게 시집을 오셨고 쪽진 머리 아줌마인 남동댁이란 택호로 팔순을 바라보며 살고 계신다. 방아실 거리 논에 무농약으로 농사를 지어 방에 쌓아 두고 쌀이 없는지 전화를 한 뒤 방아를 찧어 보내 주신다. 무와 배추, 고추, 쑥갓, 고수 등을 봉지봉지 넣어 손자손녀 보고픈 마음을 담아 택배로 보내 주신다. 고된 농사일로 허리가 펴지지 않아 한숨이 나올 테지만 이제 증손자가 나오면 4대 가족사진을 찍자며 고향 마을 언덕도 가볍게 넘으신다.
어머니는 새댁 때부터 새벽마다 정갈하게 빗은 쪽진 머리에 은비녀를 꽂고 물을 길어다 부뚜막에 정화수를 떠 놓고 가족들의 무병장수를 비셨다. 아주머니 때는 군대 간 아들이 무고하도록 빌고, 할머니 때는 군대 간 손자의 무탈을 비셨다. 쪽진 머리의 우리 어머니가 무척이나 존경스럽다.
거칠고 주름진 어머니의 손을 잡아 본다. 삶의 목표를 자식들의 건강과 성공에 두고 사셨다. 평생 근면과 성실로 사신 어머니 덕에 지금의 내가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쪽진 머리에 은비녀를 꽂은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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