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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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 후의 커피 맛은 내겐 삶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은은한 커피 향에 매료된 나의 반쯤 감겨진 눈동자가 어항 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의 정겨운 모습들을 뜯고 있노라면 난 어느새 깊고 푸른 바닷물 속으로 잠겨 들곤 할 때가 있다. 끝없이 넓고 깊은 그 바닷속엔 이름 모를 수많은 물고기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런 물고기들의 생태계는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이 지닌 각양각색의 생활 습성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현상계를 낳고 있다는 것에, 그중 한 인간인 나로서도 물고기들의 신비함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때론 인간보다도 더 지혜롭게 살아가는 물고기도 끼어 있다는 거다. 웬만한 사람들은 망상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망상어의 암컷은 다른 물고기와 달리 뱃속에다 알을 낳아서 5개월 동안 품고 다니다가 알들을 부화시킨 후 지친 몸을 가누며 물속을 돌아다니다가 결국엔 바다 밑바닥에 나뒹굴며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몸은 비록 물고기일망정 자신의 몸이 부서져 나가는 줄도 모르고 처절하게 새끼들의 안전을 위하여 목숨을 내던지는 망상어의 끈질긴 투혼에서 우리 인간들도 엿보지 못한 이면에 서려진 망상어의 숨겨진 세계는 모성애의 끈질긴 애착이었다.
또한 망상어 못지않게 새끼들에 대한 애착이 강한 물고기로는 가시고기가 있다. 가시고기의 수컷은 알을 품은 암컷을 맞이하기 위해 둥지를 튼다. 수초들을 열심히 물어다가 줄기 쪽 굵은 부분을 물어 둥지 속으로 밀어 넣고 돌을 물어다가 그 위에 얹어 놓는다. 그럴싸한 둥지로 만든 다음 차례로 암컷들을 맞아 준다. 자신이 만든 둥지 속으로 암컷을 밀어 넣고는 알을 낳는 암컷의 등을 주둥이로 살짝 물어 주며 자극시켜 준다. 암컷은 더 깊이 둥지 속으로 떠밀리며 뱃속의 많은 알들을 둥지 속에 가득히 뿌려 간다. 그런 식으로 몇 마리의 가시고기 암컷들을 수정케 한 다음 맨 나중에 가시고기의 수컷은 자신의 정액을 알 위에 뿌려 물에 뜨지 않도록 보호를 해 준다.
5주 된 알들이 눈과 꼬리가 생기면서 가시고기의 형태가 모습을 드러내며 둥지 밖으로 나올라치면 수컷은 곁에서 지켜보다가 날렵하게 새끼들을 다시 둥지 속으로 밀며 알 속에 반은 묻힌 새끼들의 몸을 무겁게 눌러 준다. 그때 수컷의 몸무게에 눌린 알들이 깨지면서 새끼들의 몸이 자유롭게 분출된다. 이렇듯 바닷속의 자연 생태계에는 각양각색의 신비함들이 조용히 꿈틀거리며 끈질기게 생존하고 있다.
위의 암컷 망상어와 수컷의 가시고기는 우리 인간에게도 뒤지지 않는 지혜로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끈질긴 모성애의 망상어와 부성애가 깊은 가시고기의 눈물 나는 얘기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그렇지 않은가. 여기저기 버려진 사생아들! 자신들이 좋아서 생긴 자식들! 남인 양 외면해 가는 아니, 아예 생면부지의 남처럼 그 곁을 쉽게 떠나는 그네들이 내심 무섭게만 느껴진다. 아무 죄 없이 그들을 부모로 잘못 태어난 생명들은 어떻게 하라고! 망상어의 모성애도, 가시고기의 부성애만한 사랑도 없는 그들의 행각에서 소중한 생명들이 이슬로 사라져 가야 되는 처절한 운명들이 아직도 이 세상엔 머리를 쳐들고 있다. 악행의 세계에서 머물고 있는 그들 육체는 불에 타다 만 나무토막일 뿐, 그 무엇도 그네들에겐 존재할 수가 없다.
빈 허공은 선행도 없고 빈 허공은 악행도 없다. 말 그대로 빈 허공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본 성품을 알지 못하면 빈 허공을 걷는 눈뜬장미나 다를 바가 없다. 덕을 많이 행하는 사람은 중국의 무 황제처럼 좋은 일만 생기고 좋은 일만 얻어지는 즐거운 인생 행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팔만대장경을 앞으로 뒤로 달달 외운다 해도 먼저 자신의 성품을 읽어야 된다는 것이라 하겠다. 그럼으로써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본 성품을 알고 자신의 행각이 전에 없이 변모해 간다면 그 또한 즐거운 평행선을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는 것에 삶의 여유를 찾은 셈이니, 빈 허공 속을 걷는 속절없는 텅 빈 대죽의 생(生)은 아닐 것이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맛은 늘 내 마음에 어떤 활력소를 안겨다 준다. 이 생각 저 생각에 뜨거운 커피가 식어 냉커피로 되어 갈 때가 있다. 피식- 쓴 미소가 커피잔 속으로 떨어져 들어가 하루의 일과는 시작된다. 오늘 커피잔 속엔 망상어와 가시고기가 나의 커피 손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