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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원석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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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내가 병원 가는 날이다. 지난달 석 달에 한 번 하는 폐암 정기 검사에서 위장에 검은 점이 발견되었다고 하여 받은 위장 내시경 검사 결과를 보러 가는 날이다. 나는 또 나쁜 결과가 나올까 봐 긴장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2년 전 코로나 유행이 끝날 무렵, 아내는 몇 달간 기침을 계속하였다. 그냥 코로나 휴유증이라고 생각하고 동네 병원에서 기침, 감기약을 처방받아 복용하였으나 기침이 멈추질 않았다.
너무 장기간 기침이 멈추지 않은 것이 이상하여 “폐 사진이라도 한번 찍어 봐” 하곤 걱정은 되었으나 ‘별일 아니겠지’ 하고 홍천 농장으로 내려왔다.
며칠 후 일산 병원에 가서 폐 사진을 찍고 왔다는 말과 함께 폐암이 의심되어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는 검사 결과를 듣게 되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머릿속이 온통 하해졌다. 도저히 의사의 말이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의사 진단이 폐암이라면 지방 종합병원이 아닌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아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S병원과 H병원에 폐암 검사 신청을 하였으나 두 병원 모두 환자가 많아 두 달 후에야 검사가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아내의 상태가 누워서 잘 수 없을 만큼 좋지 못하게 되자 두 달이라는 검사 날짜는 온 가족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때 딸이 근무하는 학교 동료 선생님이 Y대학 병원 호흡기내과에 신청하지 말고 종양내과에 신청하면 검사를 빨리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주었다. 급하게 다시 종양내과로 검진을 신청하자 정말로 보름 후에 검사 일정이 잡혀 아내는 보름 만에 입원하여 폐암 관련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아내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져 가족 모두가 정신적으로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아내는 누워 잘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기침이 멈추지 않아 이제는 폐암을 부인할 수 없는 지경이었지만 모두들 제발 지역 종합병원의 진단이 오진이었으면 하는 바람과 치료를 빨리 받을 수 있기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얼마 후 나온 검사 결과는 폐암 4기였다. 우리 가족의 간절한 바람은 허망하게 무너졌고 이러한 황망한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차마 수척해진 아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며칠 후 담당 의사가 결정되고 첫 진료일이 결정되었다. 딸과 아들이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나도 따라가려 했으나 딸이 “아빠는 집에서 기다리는 게 좋겠어”라고 했다. ‘내가 충격을 받을까 봐 그런가 보다’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병원 의사 선생님이 암세포가 양 폐와 림프절에 전이되어 있으며 유전자 검사 결과 ARK 변이가 나와 ALK 변이 표적 치료제를 먹으면 나아질 거라고 하였다고 했다. ARK 변이는 치료약이 잘 듣는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치료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따르고 각자 아내를 위해 할 일을 찾기로 하였다. 맨 먼저 서점에서 폐암 완치 환자들의 수기 등 폐암 치료 관련 서적을 여러 권 구입하여 가족 모두가 읽었다. 환자 자신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반드시 이겨내야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쓰여 있었다. 절망 속에 빠져 있는 아내에게 딸과 아들이 책을 읽어 보라고 적극적으로 설득하였다. 다행히 아내가 책을 읽기 시작하였고 아내도 차츰 마음이 안정되었다. 더하여 표적 치료제도 잘 들어 아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누워서 잘 수 있게 되었다.
우리 가족들은 아내의 병 호전을 위해 집안 가스레인지 등 요리 환경부터 바꿨다. 더불어 암 치료는 약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으로 치료한다는 말에 따라 식사는 현미밥과 계란, 생선(고등어, 갈치) 등으로 하고 매일 오전에는 케일과 샐러리, 블루베리, 비트, 당근, 사과, 토마토 중에서 5종을 선택하여 갈아서 만든 걸쭉한 주스 한 잔, 검은콩을 불려서 갈아 만든 두유는 오후에 한 잔, 입이 심심할 때는 뇌전이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 호두 한 알을 무조건 섭취하기로 했다. 또한 나는 그해 여름부터 케일과 비트, 당근, 블루베리, 사과, 콩 등을 홍천에서 직접 재배하여 아내에게 제공하였다. 처음에는 식단대로 준비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이제는 큰 어려움 없이 잘해 나가고 있다.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표적 치료제를 복용하고 나서 통증이 없어지고 기침도 줄어드는 등 아내가 다시 누워서 잘 수 있게 될 정도로 효과가 있었다.
강원도 홍천에 마련한 세컨하우스 부근에 미약골 등산로가 있어 날씨가 따뜻한 봄, 여름, 가을은 그곳에서 보내기로 하고 추운 겨울에는 일산 집에서 지내기로 하였다.
그 때문인지 여름, 가을에 받은 석 달에 한 번씩 하는 정기 검진에서 더 이상 암세포가 커지지 않고 정지되었다는 결과를 듣게 되었다. 아내의 몸 상태가 호전되어 11월 초부터는 매주 금요일에 집에 와서 월요일에 시골로 내려가는 주말부부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겨울 검진에서 폐는 그대로인데 위장에 검은 점이 보인다고 한다. 2년 전 확진받던 그날이 떠올랐다. 힘들게 병마와 싸우면서 내색하지 않고 잘 참고 견디고 있는 아내가 불쌍했다.
병원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아내. 염색을 하지 못해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앉은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너무 안쓰러워 무슨 말이라도 꺼내고 싶지만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아내가 결과를 들으러 아들과 병원으로 떠나고 소파에 앉아 지난 2년을 생각해 본다. 아내는 치료가 시작되고 부작용이 심하게 나올 때 나에게 짜증을 내고 가끔 화도 내었다. 그때마다 환자라는 것을 깜빡 잊고 버럭 화를 내곤 한 나를 자책하며 후회한다.
20살 어린 나이에 7남매의 장남인 내게 시집와서 시할머니, 시부모님, 시동생들 틈바구니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왜 그때 같은 편이 되어 주지 못했던 걸까? 나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까? 그래서 암에 걸린 건지도 몰라…. 내가 가스레인지보다 더 큰 원인이 된 것이라고 생각되어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다.
하루속히 아내가 완치되어 남은 생을 행복하게 함께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오늘 검진 결과가 좋은 소식이기를 소파에 앉아 기다린다. 오늘 아내가 좋은 소식을 가져오면 이제야 같은 편을 해 주지 못한 내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려 한다. 여든이 다 되어 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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