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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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쓰는 말 가운데 차(茶)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항다반(恒茶飯), 다반(茶飯), 다반사(茶飯事) 등인데 단어는 다르지만 뜻은 ‘늘 있는 예사로운 일, 늘 있어 이상할 것이 없는 예사로운 일’로 같다.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 식생활이고 그중에서도 밥을 먹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일진대 위에 열거한 단어들이 차가 밥보다 앞에 들어가 있는 걸 보면 옛날에는 차를 마시는 일이 밥을 먹는 일만큼이나 중요했으며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통해 차를 마시는 일이 많은데 엄격히 따져서 차란 차나무의 어린 잎을 따서 만든 세계적으로 애용되는 기호 음료를 말한다. 그런데 지금은 커피나 율무차, 옥수수차, 두충차, 감잎차, 유자차, 모과차, 국화차, 인삼차, 쌍화차 등 명칭과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음료들이 몽땅 차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
차의 주원료인 차나무는 차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소교목으로 키가 10m까지 자라기도 하지만 재배하기에 쉽도록 가지를 치기 때문에 보통 1m 정도 자라는데 많은 가지가 나온다. 타원형의 잎은 어긋나는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으며 끝과 기부는 모두 뾰족하다. 꽃은 10∼11월경 잎겨드랑이 또는 가지 끝에 1∼3송이씩 흰색이나 연한 분홍색으로 피며 길이가 1∼2㎝인 꽃받침은 5장이고 꽃이 뒤로 젖혀진 꽃잎은 6∼8장이다.
수술은 많고 아래쪽에 붙어 있는데 씨방은 3개의 방으로 되어 있으며 열매는 둥글고 모가진 삭과(果)로 익는데 다음 해 꽃이 피기 바로 전에 익기 때문에 꽃과 열매를 동시에 볼 수 있고 열매가 익으면 터져서 갈색의 씨가 빠져나온다. 차나무의 어린 잎은 따서 찌거나 열을 가해 효소의 작용을 억제시켜 말린 것이 녹차(綠茶), 또는 엽차(葉茶)이며 기호 음료로 애용된다. 차나무의 잎을 적당히 발효시켜 만든 것은 홍차(紅茶)이며 녹차와 홍차의 중간 방식으로 만든 것이 우롱차(烏龍茶)다.
차의 기원지는 미얀마의 이라와디강 원류 지대로 추정되며 그 지역으로부터 중국의 남동부, 인도차이나, 아삼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차는 중국 남동부에서 기원한 잎이 작은 중국계와 아삼 또는 북미얀마에서 기원한 잎이 크고 넓은 아삼계로 나뉘는데 중국계는 온대, 아삼계는 열대를 대표하며 동남아시아의 주요 생산지에서 열대나 아열대 나라에 보급되어 19세기 중요 산업이 되었다.
가락국(駕洛國)을 세운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왕비인 허황옥(許黃玉)이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가락국으로 건너오면서 차씨를 가져와 심은 시기는 서기 50년대 초로 알려지고 있다. 김해 지역이 우리나라 차 문화의 시원지(始原地)임을 밝히는 문헌은 조선조 말 이능화(李能和; 1869-1943)가 쓴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로 ‘김해의 백월산(白月山)에 죽로차(竹露茶)가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수로왕비 허씨가 인도에서 가져온 차씨라고 한다’는 대목이 있다.
또한 지금도 김해 지역을 비롯한 주변의 지명(地名), 이를테면 김해시 상동면의 차골〔茶谷〕, 창원시 동면의 다인리(茶仁里), 창원시 구산면 차등(茶登) 등에서 이 지역이 차의 산지였음을 살펴볼 수 있다. 지리산 화개골에서 생산되고 있는 차를 운상차(雲上茶)라고 하는데 현재의 차밭은 김수로왕비 허씨가 당시 입산 수도하고 있는 일곱 왕자를 만나기 위해 머물렀다는 대비암(大妃庵) 터여서 그 사료적 가치를 더해 주고 있으니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차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27년부터이며 녹차용으로 중국의 소엽종을 개량한 일본산 아부키타〔藪北〕종을 이식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재배지는 대체로 기후가 온화하여 비가 많고 배수가 잘되는 대지나 구릉지가 적합하며 토양은 부식이 잘되는 식토(息土)나 모래 섞인 땅이 좋고 표토가 깊고 양분이 풍부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전남 보성 지방이 위의 조건들을 고루 갖춘 차 재배의 최적지인 까닭에 많은 차가 재배되는 중요 생산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다도(茶道)란 차를 마시는 일과 관련된 다사(茶事)를 통하여 심신을 닦는 행위를 말한다. 인간이 차를 마신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BC 2700년쯤 고대 중국의 염제 신농씨(炎帝神農氏)부터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를 염제, 곧 불꽃 임금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불로 물을 끓여 먹는 방법을 처음으로 가르쳤기 때문이라는데 그는 이와 함께 찻잎에 해독의 효능이 있음을 알고 이를 세상에 널리 알렸던 인류 역사상 첫 차인으로 알려졌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차를 마셔 왔고 지금도 마시고 있는데 이것은 실제로 차가 우리에게 이로움을 주기 때문이다.
다도의 한 분야인 다사(茶事), 즉 차 끓이는 일에도 정해진 순서와 방법이 있는데 잎차를 우리는 팽다법(烹茶法), 말차에 숙수를 부어 휘젓는 점다법(點茶法), 차를 물에 넣어 끓이는 자다법(煮茶法)이 있다. 우리 선조들은 팽다·점다·자다를 모두 뜻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전다(煎茶)라는 말을 흔히 썼으며 보다 넓은 의미로 차를 끓여서 대접하고 마시는 일에는 행다(行茶)라는 말을 썼다.
예로부터 차는 ‘덕이 있는 사람이 마시기에 가장 적당한 것’으로 여길 만큼 소중하게 생각했다. 흰 구름과 밝은 달을 벗삼아 마시는 차인의 멋은 바로 푸른 산을 마주하고 앉아 삼매에 든 선사(禪師)의 법열(法悅)로 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차를 마시는 풍습이 성행하는 곳은 주로 선가(禪家)였다. 이것은 졸음을 쫓아주는 차의 약리적 효과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또한 다도의 정신과 선의 정신이 서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옛 승려들은 ‘차의 깨끗한 정기를 마실 때 어찌 대도(大道)를 이룰 날이 멀다고만 하랴’고 자부하였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다성(茶聖) 초의선사(草衣禪師)에게 써 보낸 명선(茗禪)이라는 작품에서 차와 선이 한 맛으로 통합을 강조하였던 것도 차를 통하여 선을 이루었던 예이다. 다도는 정성스레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며, 잘 끓인 물과 좋은 차를 합일시키는 평범한 일상생활이라고 했다.
옛 어른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생활이었다지만 다도를 행하는 데는 열여덟 차례의 절차와 격식이 있을 만큼 까다롭고 복잡하다고 한다. 차 한 잔을 마시는데도 절차와 격식을 따지던 선현들의 넉넉함과 지혜를 본받아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차인들이 많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