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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꼬리를 올리면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미라(성동)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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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얘들아! 진짜 빅뉴스!”
새벽이가 몹시도 흥분한 목소리로 목청 높여 말했어요.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
유기동물 보호소 앞마당에서 놀고 있던 동물 친구들이 하나둘씩 새벽이 옆으로 모여들었어요.
새벽이는 유일하게 동물 보호소 밖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새까만 털을 가진 길거리 출신 대장 고양이예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등 여러 동물 친구들의 근황을 알려주는 소식통이었어요.
“우리 보호소 출신 강아지 구름이가 유명한 유튜브 펫 스타가 되었대. ‘바나나 미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데, 구름이가 환하게 미소 짓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행복해하며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는 거야. 매일같이 소고기, 북어, 연어,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행복을 만끽하며 살고 있대.”
“와, 진짜야? 정말 직접 봤어?”
새벽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몇몇 친구들은 가짜 뉴스가 아니냐며 의심을 하기 시작했어요.
“보호소 선생님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안 믿었지만, 내가 우연히 만나게 돼서 확인도 했어.”
“구름이는 어딜 가서도 사랑받을 아이야.”
구름이를 친자식처럼 사랑으로 돌봐준 늙은 개 골든 리트리버 하늘이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어요.
못생겼다는 이유로 검은색 비닐봉지 안에 버려졌던 강아지 구름이가 안락사의 고비를 넘기고 입양되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인생 역전 이야기는, 동물 친구들에게 희망이었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재미있고 질리지 않는 기쁜 소식이었어요.

 

새벽이는 엊그제 일을 떠올렸어요.
그날도 예쁜 꽃나무가 많은 담벼락 위를 사뿐사뿐 유유히 걸으며 산책을 즐기고 있었지요. 노란 튤립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에서 볼일을 보는 구름이와, 서로를 한 번에 알아보고는 온몸으로 뒤엉켜 뒹굴며 몹시도 반가움을 표현했어요.
“구름아, 너 진짜 동물 스타가 되었구나. 정말 궁금한 게 있어. 너는 원래 못생긴 울상이었잖아. 그런데 귀엽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어떻게 짓게 된 거니?”
“매일 웃는 연습을 하다 보니, 얼굴도 웃는 상으로 바뀌었어요. 이제는 우수한 혈통이 아닌 잡종이어도, 나만의 매력을 뽐낼 수 있는 개인기가 있으면 입양되어 사랑받을 수 있어요.”
구름이는 새벽이에게, 고단한 길거리 생활을 정리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웃는 걸 연습하라고 조언해 주었어요. 새벽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오래도록 떠돌아다니며 노숙생활을 해왔던 탓에 표정이 굳어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어요.
“노란 바나나처럼 입꼬리 올려봐요. 다른 동네 고양이들과 싸우지 말고, 생선도 훔치지 말고, 좋은 생각 많이 하고, 입꼬리 더 올려서 바나나 미소 지어 봐요.”

 

보호소로 돌아온 새벽이는 구름이에게 배운 미소 짓는 방법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어요. 인기 있는 고양이가 되어 좋아하는 고기를 맘껏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친구들 몰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웃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어요.
옥상에 앉아 중얼거리고 있는 새벽이를 보고 동물 친구들은 의아해하며 여기저기서 수군수군거렸어요.
“새벽이 녀석, 요즘 왜 저러니.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요 며칠 구석에서 혼잣말하며 웃고만 있더라.”
갈색 푸들 별이도 당황해하며 한마디 거들었어요.
“얼굴도 까만데, 송곳니를 드러내며 실실거려서 무서워 죽겠어요. 계속 바나나를 찾아요. 예전 버릇 나온 거 아닐까요? 도둑고양이.”
새벽이는 그 어떤 소리도 신경 쓰지 않았어요. 최고의 웃는 고양이가 될 꿈을 꾸며 일부러라도 미소를 지으니 노란 풀꽃만 봐도 절로 웃음이 나왔어요.

 

며칠 뒤, 새벽이는 입꼬리를 올리며 열심히 연습한 미소를 보여주려고 구름이를 다시 찾아갔어요.
“구름아,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픈 거니?”
“요 며칠 설사를 해서 몸도 아픈데 마음이 더 아파요.”
구름이는 마음이 힘들고 우울해지는 이유를 말했어요.
‘바나나 미소’의 영상이 인기를 끌어 돈을 많이 벌게 되자, 아빠는 최고급 수입 자동차를, 엄마는 명품 가방, 옷을 사기 시작했어요. 민아도 늘어난 여러 학원에 다니느라 구름이와 산책하고 놀 시간조차 없어지고, 가족이 함께 모여 웃으며 식사하던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거였어요.
“문제는 아빠가 점점 더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어요. 저에게 일부러 설사하는 음식을 먹여 아픈 모습을 영상으로 찍었어요. 심지어 다음 편에는 제 왼쪽 뒷다리를 깁스하게 만들어 영상 조회 수를 최고로 높여 보자는 아빠의 말에, 엄마와 싸우는 소리도 들었어요.”
“이건 말도 안 돼! 도대체 사람들은 왜 그래? 반려동물들을 버리질 않나 이건 범죄야! 그리고 사랑으로 대하지 않을 거면 입양은 왜 한 거야. 넌 여기서 탈출해야 돼!”
하지만 구름이는 머뭇머뭇거리다가 말했어요.
“아빠, 엄마를 설득할 거예요.”
“사실 제가 AI에게 배워서 사람의 말을 할 줄 알게 됐어요. AI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할 수 있게 컴퓨터를 똑똑하게 만든 기술이 들어간 시스템이고, 그리고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 컴퓨터 프로그램이에요.”
아빠, 엄마가 AI에게 질문하고 대화하는 것을 보고 구름이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마다 AI에게 언어를 배우며 친구가 되어 있었어요. 구름이의 언어를 배우는 속도는 스펀지처럼 흡수력이 빨랐어요.
“그 해답을 똑똑한 AI가 찾아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구름이는 어떻게 해야 다시 미소를 찾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AI에게 물었어요.
“구름님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주인님들의 더 큰 욕심으로 인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거예요. 말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그리고 구름이의 행복을 위해 이곳을 떠나라고 예측하고 조언해 주었어요. 구름이와 AI의 대화를 듣던 새벽이는 이 모든 사실이 당황스럽고 믿기지가 않았어요.
그때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민아가 소리쳤어요.
“안 돼, 가지 마, 구름아!”
갑자기 나타나 소리치는 민아를 보고, 새벽이는 화들짝 놀라 재빨리 열린 창문으로 달아나 버렸어요.
민아는, AI와 구름이의 대화라는 사실에 두근두근 콩닥콩닥,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소리쳤어요.
“AI가 똑똑하다고 해서 생각이 다 옳은 건 아니야!”
“구름아, 내가 너의 미소를 찾아줄게!”
“도대체 왜 이리 시끄러운 거야?”
소란스런 소리에 잠이 깨어 부모님이 거실로 나왔어요.
“아빠, 엄마, 제발 구름이 다치게 하지 말아요.”
하지만 부모님은 한숨을 쉬며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어요.
“너, 최신 컴퓨터, 게임기, 멋진 옷, 신발 갖고 싶지 않니?”
“구름이하고 같이 산책하고 여행 갈 때가 훨씬 좋았는데 지금은 구름이와 놀 시간도 없어요. 아빠, 엄마 하루 종일 대화도 없이 컴퓨터, 핸드폰만 보는 건 더 싫어요! 구름이의 미소를 다시 찾아야 돼요!”
민아는 큰 소리로 집이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어요. 옆에 있던 구름이도 컹컹거리며 거칠게 짖은 후 또박또박, 말을 했어요.
“제발 다시 환하게 미소 지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아빠,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서 있었어요.
“구름아, 말하면 안 돼!”
민아가 재빨리 구름이의 입을 막으며 소리 질렀어요.

 

그때 마침 귀가 찢어질 듯한 큰 알람 소리가 AI 오디오에서 들려왔어요.
“빰, 빠빠빰, 빠빠빠빠! 지금은 논술 학원 갈 시간이에요. 오늘도 힘내요!”
책상에 엎드린 채 잠깐 낮잠을 잔 민아는 몽롱한 상태의 얼굴로 천천히 실눈을 뜨며 책에 흘린 침을 손으로 닦았어요. 바로 옆에는 민아가 먹다 남긴 피자를 침을 질질 흘려가며 쳐다보고 있는 구름이가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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