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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치킨

한국문인협회 로고 조훈희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7월 6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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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오늘도 치킨을 사 오셨다. 역시나 오늘도 술을 거나하게 드신 날이었다. 아버지께서 누르신 늦은 밤 초인종 소리보다 더 강력하게 잠을 깨우는 것은 치킨 냄새였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셔서는 신발장에서 술기운에 비틀거리시며 뒷굽이 약간 주름진 구두를 겨우 벗으셨다. 그리고 치킨이 들어있는 비닐봉투를 높이 들어 올리시고는 소리치셨다.
“애들아! 치킨 사 왔다.”
아버지의 힘찬 목소리가 끝나시기도 전에 형과 나는 이미 잠에서 깨어 아버지에게로 뛰어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구두를 벗지 못하고, 늦은 시간까지 땀으로 범벅된 아버지의 발냄새는 무척 고약했지만,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는 치킨의 기름 냄새는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릴 만큼 강력하게 고소했다.
“밤 열두 시가 다 되어서 치킨을 사 오면 어떡해요? 애들을 아주 다 돼지로 만들 작정이에요?”
어머니는 인상을 잔뜩 쓰고 팔짱을 낀 채 아버지를 나무라셨고, 아버지는 그 자리에 앉아서 고개를 푹 떨어뜨린 채 숨을 고르시며 어머니의 잔소리를 묵묵히 듣고 계셨다. 아니 듣는다는 표현보다 어쩌면 앉은 채로 씻지도 못한 채 잠이 들어버리신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배경으로 형과 나는 치킨 박스를 열어서 경쟁하듯 허겁지겁 집어 먹기 시작했다. 약속이나 한 듯 서로 닭다리를 먼저 하나씩 챙겼고, 누가 많이 먹는지 시합이라도 하듯이 열심히 먹었다. 아버지께서 회식을 하시고 늦게 들어오시는 날이면 똑같은 풍경이 반복되었다.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근심 뒤에서 형과 나는 은근히 아버지께 회식을 하고 늦게 들어오셔서 어머니께 혼나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형과 나는 그렇게 치킨에 목말라 했던 반면 아버지께서는 치킨을 드시지 않으셨다.
“아빠는 밖에서 맛있는 것 많이 먹고 다녀서 괜찮아.”
하면서 아버지는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 닭을 잡는 것을 보신 이후로는 닭을 못 먹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그 시절 아버지께서는 왜 꼭 늦은 시간에 드시지도 못하는 치킨을 사 오셔서 어머니께 매번 똑같은 구박을 받고 계신 것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퇴근할 때 술도 드시지 않고 치킨을 사서 일찍 집에 오시면 구박을 받지도 않으실 것이고, 우리도 마음 편하게 앉아서 치킨을 먹을 수 있을 텐데 그 부분이 조금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밤늦게 시끄러웠던 우리 집의 풍경이 기억 속에서 희미해질 무렵, 나도 내 아버지처럼 회사를 다니게 되었고, 나 역시 아버지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이가 들고 회사에서 직급이 올라가면서 내 삶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졌지만 그와 반대로 내 삶의 시계는 더욱 빨라지고 바빠지고 있었다. 야근과 회식은 점차 많아졌으며,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은 자꾸만 늦어져만 갔다.
난 오늘도 밤 12시가 되어서야 대문 앞에 서서 아이들이 잠에서 깰까 봐 조심스럽게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방문을 열어보면 이미 아빠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여러 가지 모습을 하고 잠들어버린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비좁은 사이에서 힘들게 잠이 든 아내의 얼굴도 보인다. 샤워를 하고는 조용히 내 자리를 찾아서 눕는다. 이렇게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질수록 이미 잠들어버린 가족들이 나에 대한 기억을 잊을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런 날이 하루하루 조금씩 쌓이고 또 쌓일수록 늦은 퇴근길에서 마주한 내 기억 속 아버지의 모습을 꺼내어 본다. 그리고서는 잊고 있었던 정답지를 찾은 것처럼 집 앞에 있는 치킨 가게에 들러서 치킨을 튀겨 간다. 배달이 편리한 시대라지만 이상하게 치킨집 앞에 도착해서야 그 생각이 난다. 아무래도 치킨의 고소한 기름 냄새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늦은 시간에 먹는 치킨은 아이들의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내 어머니께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날만큼은 나의 존재에 대해서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다. 대문을 활짝 열고 신발장에서 당당하게 치킨을 사 왔다고, 그렇게 집에 도착했노라고 호기롭게 소리도 치고 싶다. 나의 그 모습을 보고 늦은 시간이라도 웃으면서 달려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도 무척 보고 싶다. 아버지께서 늦은 시간에 사 오셨던 것은 치킨이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사 오신 것은 어느 순간 잊혀져 버릴까 두려웠던 ‘아버지’라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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