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내친구 ‘쬐맹이’

한국문인협회 로고 최아영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7월 677호

조회수5

좋아요0

또르르 똑 또르르 똑…. 빗물 소리에 잠이 달아나 버렸다. 물소리 장단에 가만가만 몰입을 하다 보니 일간 소란했던 마음자리에 사부자기 평화가 깃드는가 싶다. 하마터면 이 여명의 새벽을 살아서는 경험하지 못할 뻔도 하였다.
새벽 단잠에서 깨어난 나는 지금 내 친구 ‘쬐맹이’를 다시 떠올리고 있는 중이다. 별명이 ‘쬐맹이’였던 이 친구는 여중학교 시절 고만고만한 키에 같은 성씨를 가진 우리들 3총사 중의 한 명이었다. 그녀는 학교 성적이 꽤 우수한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업고등학교를 택하였고 졸업 후에는 직장 생활과 입시 공부를 병행하며 어렵게 대학을 들어갔다. 그 사이 우리 사회는 1987년 ‘6월 항쟁’을 거쳐 나왔고 민주화 운동의 한 꼭지였던 전교조가 결성되기도 했다. 그러니 부산대학 사범대를 졸업하고 발령 대기 중에 있었던 그녀와 전교조와의 상관관계는 전혀 무관할 수도 없었다.
그 무렵 내 친구 ‘쬐맹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만다. 아르바이트를 끝낸 늦은 귀갓길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채 발견된 것이다. 그녀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친구를 알아보긴 했으나 언어와 사고 능력이 원활하지 않았고 두 다리는 기역자로 꺾인 채 펴지지 않는 상태였다. 그 모습을 처음으로 대하는 순간 나는 언젠가 그녀가 나에게 하소연처럼 했던 말들을 되뇌고 있었다.
“아영아, 난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선후배들과 함께 시위대에 참석했는데 하필이면 내 얼굴이 커다랗게 뉴스에 나오지 않았겠니. 그때 우리 모두는 닭장같이 생긴 차에 실려 연행되어 갔었지. 경찰 조서를 받는 데 얼마나 무섭고 떨리던지….”
양 무릎으로 천장을 치받들고 누워 있는 그녀에게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결국 이 불행한 사고는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괴한에게 몹쓸 짓을 당한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당시 전교조 교사들과 그 조직원들에 대한 인권 침해가 암암리에 행사되고 있었다. 이처럼 국가 권력의 부당한 행태가 만천하에 드러난 마당에 친구의 사고 또한 나로서는 일말의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이젠 생사조차 모르고 산 지도 오래되었다. 이런 와중에 작년 12월 3일 밤 난데없는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고 그로 인해 잊고 살았던 친구 ‘쬐맹이’가 소환된 것이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3050클럽에도 진입하게 된 K-Culture 문화 대강국으로 국민적 자긍심은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인으로부터 각광을 받는 나라였다. 이런 내 나라 대한민국에서 정녕 있어서는 아니 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포고령을 확인하는 그 순간 몸도 마음도 바짝 긴장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아니 그랬을까. 나는 좁은 시골 바닥에 살면서 대놓고 사회 대개혁을 주장하며 오지랖을 떨었다. 또한 각종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사회 기본질서와 헌법 질서를 파괴하는 권력 집단을 규탄해 오던 처지였다. 그러니 우리 구성원들 모두는 영락없는 공산전체주의자이며 반국가세력으로 치부되었을 터, 단지 수순이 문제일 뿐 처단 대상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물고문 사건과 최루탄을 직격으로 맞고 죽음에 이른 이한열 열사까지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백골단이 휘두른 쇠몽둥이에 살과 뼈가 으스러졌던 과거의 일들이 21세기 선진 대한민국 사회에서 재현될 것을 상상하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내 친구 ‘쬐맹이’처럼 의문의 사고를 당하게 되거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해도 전혀 이상스럽지 않을 공포감 때문에 그날 밤 나는 잠자리에 들 수가 없어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총칼로 무장된 군인들의 국회 봉쇄는 나의 애간장을 다 태워 놓았고 시민들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유리창을 깨고 국회 내부로 진입하는 군인들을 실시간 영상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계엄 해제 표결을 위해 담을 넘고 사생결단으로 뛰어가는 국회의원들,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서던 이름 없는 우리 시민들, 굉음을 내며 국회 마당에 속속 내려앉은 헬기에 거세게 저항하는 잔디의 시퍼런 신음 소리까지도 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쉽게 무너질 리가 없었다. 아무려면 선열들이 흘려온 피의 무게와 질량이 어디 그리 만만했을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대자연의 숨소리처럼 지금은 모든 악의 인자들이 선에 수렴되는 자연의 섭리를 기대해도 좋을 그런 새벽인 것이다. 그러니 저 영롱한 빗소리의 화음도 멀리서 동터오는 저 빛의 소리에도 어찌 무심할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