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빗나간 예언

한국문인협회 로고 최연실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7월 677호

조회수4

좋아요0

운명이 궁금했다
보슬보슬 봄비가 내리던 어느 날, 시이모님들이 집에 오셨다. 그날 어머님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하얀 반죽을 치댔다. 끓는 육수에 떼어낸 반죽은 목련 꽃잎처럼 포르르 떠올랐다. 이내 거실의 둥근 상은 희끗희끗한 시이모님들의 머리로 뒤덮였다. 시이모님들의 화제는 시간이 갈수록 발효된 빵 반죽처럼 며느리에 관한 이야기로 부풀어 올랐다. 이를테면 손이 귀한 집에 시집온 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아기를 안 갖는다거나, 친정 나들이가 잦으며, 손끝이 야무지지 못하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속내를 털어놓으며 며느리들을 기선 제압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이에 질세라 며느리들도 연통을 주고받았다. 어느 날 한곳에 모여 의기투합한 며느리의 지질한 사연은 이러했다. 몇 관씩 도라지를 까다 오금이 저렸다거나, 간밤에 시어머니가 아들 내외 방문 앞에 서 있었던 적도 있다고 했다. 며느리들은 칼자루만 쥔 채로 휘두르지도 못할 대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녀들은 곧 곳간 열쇠를 자치하게 될 거라는 희망사항만 남긴 채 집으로 돌아갔다.
첫딸을 낳고 아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집안의 사촌형님은 삶이 궁금하다며 무꾸리하러 가자고 했다. 운명은 불확실성을 전제한다.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힘들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시집살이의 끝은 언제쯤일까. 내게도 삼신할미가 아들을 점지해 줄까. 과연 백년해로 할 수 있을까.

 

바람이 불었다
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여름의 끝자락, 투병 중이던 어머님이 떠났다. 한쪽 팔이 잘려 나간 것처럼 허전했다. 집안 어른들은 마음의 짐을 덜었으니 한결 편안할 거라고 말씀했다. 하지만 눈을 감으신 어머님으로 인해 남편 형제들의 속내가 요란했다. 편치 못한 집안 분위기에 잘 다진 남편과 내 관계도 조금씩 소원해졌다. 그때마다 은둔할 곳이 필요했다.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한 터라 종종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는 ‘풍월당’으로 잠적하곤 했다.
말복이 지난 그 즈음에 ‘풍월당’을 찾았다. 그날은 유난히도 꽃무늬가 화려한 원피스를 골라 입었지만, 스커트가 뒤집힐 정도로 바람은 잦지 않았다. 공연장에서 브람스의 인터메조 Op.118 No.2 곡을 듣는 내내 이성과 감성 사이를 오르내리는 내가 보였다. 클라라처럼 플라토닉 사랑을 할 수 있는 브람스를 닮은 상대가 내게도 있었으면 했다. 아니, 그런 삶을 딱 한 번 살고 싶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길모퉁이를 돌아설 때였다. 조난한 배가 부표를 찾기라도 한 듯, 반짝거리는 형형색색의 꼬마 알전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영혼은 외출이라도 한 듯, 나도 모르게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지난날의 무꾸리가 떠올랐다.
환갑이 훌쩍 넘은 주인 여자가 한 손으로 생머리를 늘어뜨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현란한 손놀림으로 카드를 내 앞에 펼치더니 몇 장을 뽑으라 했다. 주인장은 카드의 앞면을 뒤집으며 조만간 내게, 남자가 생길 운명이라 했다. 새로운 남자를 만날 처지도 아니기에 단돈 만 원으로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싶었다.
타로 집 주인의 예언이 적중한 것일까? 가을볕이 따가운 날, 나는 안식년을 맞아 제주도로 긴 여행을 떠나게 됐다.

 

남자를 만났다
무꾸리의 기억을 복기하면서 해안가를 거닐고 있었다. 남방 고래가 출몰한다는 바다는 잠잠했다. 내려올 때에 부풀었던 마음도 염분 탓에 쪼그라들었다. 내가 머문 애월의 중산간은 적적했지만, 요람이 흔들릴 정도로 바람은 불지 않았다. 불었다 한들 바짝 선 내 이성의 더듬이가 내 감성을 잠재울 게 뻔했다. 내 마음의 절반은 육지에 있었다. 어쩌면 무꾸리대로 살고 싶지 않았기에 온 힘을 다해 버텼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파도가 일면 그것을 타야만 한다. 내가 감당해야 할 현실이 파도라면 주저하지 말고 거기에 몸을 실어 보리라. 섬에서 올라와 전철을 탔다. 사방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예언대로 살지 않으려고 바쁘게 살아간다.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기차처럼 강변역 주변엔 한 평 남짓한 컨테이너들이 꼬리를 물었다. 컨테이너의 문짝을 빨강과 파랑으로 선팅한 문구가 또 내 발목을 잡는다. 습관처럼 머뭇거린다.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올해 운세는 만 원, 평생 운세는 삼만 원’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진다.
봄날의 꽃비하고도 조잘거리는 내가, 남편은 말이 없고 사계가 겨울이라서 좋아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뭘 더 기웃대고 있는 건지…. 싱싱한 제주산 갈치 한 마리가 삼만 원이라는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남편이 좋아하는 갈치와 바꾸려 마트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무꾸리: 무당이나 판수에게 가서 길흉을 알아보거나 무당이나 판수가 길 흉을 점침.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