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여름호 2025년 6월 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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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네 번째다. 저장되지 않은 낯선 번호가 연이어 뜬다. 통화 거절 버튼을 눌렀다. 마지막엔 그마저도 귀찮아 벨소리가 끝날 때까지 그냥 내버려 두었다. 지치지도 않고 울어 대던 벨소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메시지 알림음이 울린다. ‘제발 전화 좀 받아요’ 슬슬 짜증이 올라온다. 메시지 읽음 표시를 확인했는지 또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나도 모르게 통화 버튼을 누르는 오른쪽 검지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전화기 너머 중저음의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낯선 전화번호만큼이나 여자의 목소리가 낯설다.
“오기태 씨 딸 여미주 씨 맞죠? 전화 끊지 말아요. 잠깐이면 돼요. 아버지 일이에요.”
서툰 발음, 어디로 보나 보이스피싱이 틀림없다. 아버지라니 순간 헛웃음이 나온다.
“잘못 짚었어요. 사기를 치려면 제대로 치던가. 난 아버지가 없다고.”
“우리 만나서 얘기해요. 아버지 일인데 궁금하지도 않아요?”
“지금 궁금이라고 했나요? 그런 거 1도 없고, 내가 그쪽을 만날 일은 더더욱 없을 테니 그런 줄 알고 전화 끊어요.”
“부탁입니다. 만나 보면 알아요. 정리할 것도 있고.”
사기꾼이라는 말에 감정 조절이 안 되는지 여자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도 같다. 아버지라니? 내 아버지를 얘기하는 것인지 여자의 아버지를 얘기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태어나서 아버지 얼굴은커녕 목소리조차 들어 본 적이 없다. 생각할수록 자꾸만 헛웃음이 나온다. 날로 지능화되는 보이스피싱, 그 수법을 전해 들을 때마다 혀를 내두르곤 했는데 그 대상의 표적이 나에게까지 뻗어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늦은 밤 골목에서 만난 어두운 그림자만큼이나 신경 쓰이고 불쾌했다. 요즘 들어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꿈땜을 하는 것일까. 보이스피싱이라고 무시했지만, 아버지를 들먹이던 여자의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전시회를 앞두고 예민해진 탓도 있다. 사소한 일에도 자꾸만 날이 선다. 사진 편집을 하기 위해 펼쳤던 노트북을 덮고 휴대전화기를 챙겨 들었다.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다. 발길 닿는 대로 발걸음을 놓았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에 저절로 고개가 움츠러든다. 네거리에서 걸음을 멈춘 건 신호등의 붉은 불빛 때문만은 아니었다. 딱히 갈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세븐일레븐 편의점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매운 라면이 당긴다.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라면보다 먼저 캔맥주에 눈이 간다. 빈속에 맥주가 들어가자 불닭볶음면을 먹었을 때처럼 속이 핫핫하다. 수세미처럼 엉킨 머릿속이 조금 맑아지는 것도 같다.
여자에게서 또다시 전화가 걸려온 건 이틀 후였다. 만나서 얘기하는 게 좋겠다며 시간과 약속 장소를 내게 떠넘긴다. 거절했지만, 여자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여차하면 집에까지 쳐들어올 기세다. 주소는 물론 고모 이름까지 꿰고 있는 걸 보면 보이스피싱은 아닌 것 같다. 불안이 조금 가시긴 했지만, 여자와 실랑이를 하는 것 자체가 성가시고 불편했다. 뭔가 내 일 아닌 일에 코가 꿰인 게 분명했다. 생각할수록 어이없고 화가 치민다. 그렇다고 낯선 여자를 상대로 계속 입씨름을 할 수도 없는 노릇, 반 승낙한 상태에서 통화는 끝났다.
내가 생물학적 아버지와 성이 다르다는 걸 아는 여자, 아무리 경우의 수를 두며 머리를 굴려 봐도 퍼즐이 맞춰지지 않는다. 아버지 일이라면? 고모는 알고 있을 것도 같다.
“모르는 여자가 밑도 끝도 없이 아버지 얘기를 꺼내면서 만나자고 하네요.”
“뭔 일인지 만나 보면 알겠지. 만나자고 했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 아녀.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고…. 썩을 놈! 죽은 듯이 살다가 갈 것이지 이제 와 뭘 어쩌겠다는 건지. 무덤에 갈 때까지 비밀에 부치려고 했더니 왜 나타나서 분란을 일으키누.”
만나 보면 안다고? 전화를 받은 고모도 여자와 똑같은 말을 했다. 무덤에까지 가지고 갈 비밀은 또 뭐고. 고모는 뭔가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고모만큼은 내 편이 되어 줄 거라고 믿었는데, 답을 얻으려고 도움을 청했다가 문제만 더 복잡해진 꼴이 됐다. 나를 둘러싼 비밀 동산에 덩그마니 혼자 남겨진 것만 같다. 물속에 들어갔다가 발이 닿지 않아 허우적거리는 느낌이다. 고모 말대로 여자를 만나 보면 무슨 일인지 알 수 있겠지. 갑자기 마음이 바빠진다. 여자에게 보낼 메시지를 작성하는데 자꾸만 오타가 난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바깥 공기는 생각보다 매웠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여자였다. 장소와 시간을 확인하는 전화였다. 여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유 없이 불안이 밀려온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창가에 앉아 있던 여자가 손을 들어 보이며 알은체를 한다. 마치 오랜 지기라도 되는 것처럼.
“오지은이에요. 또 다른 이름 훠이는 베트남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여자가 명함을 내밀며 내 표정을 살핀다. 강렬한 눈빛, 가무잡잡한 피부에 짧은 커트머리, 금테안경을 걸친 모습에서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베트남 국적을 가진 여자가 더구나 아버지 일로 나를 만날 일이 무엇일까? 의문은 또 다른 의문을 부르며 꼬리를 문다. 어색한 침묵을 깨고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연락 받고 많이 혼란스러웠죠? 놀라기도 했을 테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암튼 내 결정에 후회는 없어요. 아버지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우리 두 사람이 자매라면 믿겠어요? 물론 우리 관계를 이렇게 복잡하게 만든 건 아버지 책임이 크지만.”
여자는 언어 소통에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가끔 된발음이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어휘 구사만큼은 정확했다. 상대방의 심중을 꿰뚫는 노련한 화술에 제스처까지, 어디로 보나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통화하면서 사기꾼이라고 몰아붙일 땐 언제고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있다. 밑도 끝도 없는 여자의 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여자와 내가 자매 사이라니? 불쑥 나타나서 확인되지 않은 자매 관계를 들먹이는 여자가 무섭기조차 했다. 아버지 얘기를 꺼냈을 때보다 더 가슴이 떨린다. 사실 여부를 떠나 여자가 쏟아내는 충격적인 말들이 정리가 안 된다. 차라리 돈을 요구하는 쪽이 훨씬 더 편할 것 같다. 불안감이 점점 목을 조여 온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내게 피붙이라곤 고모 한 분이 전부예요. 더 들을 얘기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고, 이만 일어나도 되겠죠?”
“내 얘기가 믿기지 않으면 확인해 보세요. 고모라면 내게도 고모가 되는 사람이에요. 사람들 시선 때문에 불편해서 그런 거라면 장소 옮길까요? 그리고 호칭 정리부터 할게요. 동생이니 앞으로 미주라고 불러도 되겠지? 날 언니로 인정하든 말든 그건 그쪽 마음이고.”
단호했다. 한 치의 빈틈이 없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꼴이 됐다.
“이렇게 서둘러 만나자고 한 건 아버지 때문이야. 건강이 안 좋으셔. 간암 말기래. 아버지를 모시고 한국에 오기까지, 사실 쉽지만은 않았어. 식구들 반대가 심했거든.”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비어져 나온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다. 기억에 없는 아버지, 고모 말대로 처자식 버리고 집 나갔을 땐 언제고, 병든 몸으로 이제 와 뭘 어쩌라는 것일까.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한테 간이라도 떼어 주라는 거예요. 그런 거라면 잘못 짚었어요. 아버지라는 사람이 내 존재를 알기는 해요?”
“그런 거 아니니까 내 얘기 끝까지 들어 봐. 처음 암을 발견했을 때 간 이식을 생각 안 한 건 아냐. 조직검사를 했는데 식구 중 맞는 사람이 없었어. 아버지도 이식을 원치 않았고. 안타깝게도 지금은 수술도 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태야.”
“세상 참 공평하네요. 천벌을 받은 거죠.”
“어떤 기분일지 알아. 내가 그 입장이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그렇더라고 시한부 환자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고향에 뼈를 묻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해서 모시고 온 거야. 보고 싶은 사람 만나 마음의 짐도 덜고, 편하게 가실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었어. 아버지 한 번 만나 보지 않을래? 쉽진 않겠지만 언니 자격으로써 부탁하는 거야.”
여자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요. 아버지의 끝날이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연락하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아 여자의 손을 뿌리치고 서둘러 카페 문을 밀고 나왔다. 누굴 향한 분노일까. 전철역을 향해 뛰다시피 걸었다. 고모네 집이 이렇게 멀게 느껴지긴 처음이다.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던 고모가 느닷없는 나의 출현에 놀랐는지 말을 더듬는다.
“여∼ 연락도 없이 이 시간에 무슨 일로?”
“그 여자 만나고 오는 길이에요.”
“뭐라든?”
고모는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짧게 말했다.
“그동안 왜 비밀에 부쳤어요. 아버지라는 그 사람이 부탁하던가요?”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시기를 놓치고 말았어. 굳이 니가 알아서 좋은 얘기도 아니고. 니 애비 얘기를 하자면 소설을 써도 몇 권을 쓰고도 남을 거야. 사실 너에게 얘기를 안 했을 뿐이지 비밀이랄 것도 없다.”
“어렸을 땐 어려서 그렇다 치고 언제까지 덮어두려고 했어요?”
시작과 끝이 어딘지,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모는 연신 한숨을 내쉰다. 고모가 말하는 소설 같은 내 아버지의 얘기를 고모의 입을 통해 들으며 머릿속에서는 또 다른 내가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다. 그렇게라도 저장해 놓고 하나둘 꺼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첫애 정우가 정상적으로만 태어났어도 기태가 그렇게 홀연히 고향을 등지는 일은 없었을 게다. 첫아들 낳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그렇게 좋아했는데. 담배도 끊고 술도 줄여 가며 소처럼 죽을동 살동 일만 했지. 뒤늦게 아들이 소아마비란 걸 알고 갑자기 망가지더구나. 무섭게 변해 갔지. 술에 절어 사는 것도 모자라서 툭하면 싸움질이고, 노름까지 손을 댔지. 누구 잘못도 아닌데 서로 탓을 하다 보니 부부 사이도 금이 갈 수밖에.
이제 와 무슨 말을 한들 소용이 있겠냐만, 느그 엄마 참 괜찮은 여자였단다. 심성도 곱고, 바지런하고, 무엇 하나 버릴 게 없었어. 복덩이가 굴러온 줄도 모르고 기태 그놈이 제 발로 복을 걷어찬 게지. 놀음판에서 돈을 잃었는지 한동안 집에 틀어박혀 폐인처럼 지내더니, 뭔 바람이 불었능가 하루는 날 찾아와서 그러더라고. 베트남에 가려고 하는데 나 없는 동안 누님이 집사람 좀 잘 챙겨 주세요. 결혼하기 전에 기태가 베트남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었거든. 차라리 잘됐다 싶더라고. 부부 사이는 그렇다 치고 성치 않은 애 뒷바라지하려면 여윳돈이 있어야 할 거 아녀.
기태가 베트남으로 떠나고 얼마 후 니가 뱃속에 든 걸 알았어. 그땐 지금처럼 집에 전화도 없고, 연락할 방법이 있어야지. 하루이틀 지나다 보니 그냥 그렇게 넘어갔단다. 그런데 일이 꼬일라고 그랬능가 너 태어나고 얼마 있다가 정우가 고삐 풀린 소에 받혀 죽는 사고를 당했지 뭐냐. 세상일은 한 치 앞을 모른다더니, 어린 정우가 그렇게 허망하게 갈 줄 누가 알았겠어.
아들 잃은 충격으로 한동안 반 정신 놓고 살던 니 엄마를 살린 게 바로 너란다. 아들 그렇게 보내고 너마저 잃을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 왜 아니겠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물이라도 되는 양 밤낮으로 너를 끼고 살았지. 밤이면 넓은 집에 혼자 있기 무섭다고 너를 업고 우리 집으로 건너왔는데, 동생댁이라 그랬능가 밉지가 않았어. 무슨 할 얘기가 그리도 많았는지,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하다 보면 첫닭이 울곤 했지.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지나다 보니 미운 정 고운 정 들을 수밖에. 미덥기도 하고 든든했지. 그럴수록 고민 아닌 고민도 생기고.
기태가 처음엔 편지도 자주 보내고 가끔 전화도 하더니, 언제부턴가 소식을 뚝 끊더라고. 그렇게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다시 편지를 받은 게 4년 후였지 싶다. 그쪽에서 가정을 꾸려 애도 낳고 잘 살고 있다고.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집사람에게는 새 출발하라고 전해 달라는데 억장이 무너지더구나. 내 입으로 전할 말은 아닌 것 같아 한동안 비밀에 부쳤지.
결혼 전 베트남에서 일할 때 만난 여자래. 니 엄마 만나기 전에 이미 그쪽에 딸도 하나 있었던 거고.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염치가 없어 그랬능가 그 뒤로는 매번 나를 통해 소식을 전해 오곤 했어. 결국, 니 엄마도 그 사실을 알게 됐고.
그때 일을 어찌 말로 다 할까. 울고불고 생난리를 치는데, 마치 내가 죄를 지은 것처럼 할 말이 없더구나. 하긴 옛정을 못 잊어 떠난 놈을 낸들 어쩌겠어. 천금을 줘도 억지로는 안 되는 게 부부 사이라고 안 하냐. 더구나 베트남이 지구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데. 주소 하나 들고 무작정 비행기를 탈 수도 없고.
니 엄마는 너 하나 키우며 평생 혼자 살겠다고 했지. 언젠가는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눈치였거든. 남편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서른넷에 시부모보다 먼저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낸 내가 그 심정 누구보다 잘 알지. 한동네 살면서 시누이인 나를 많이 의지했지만, 보듬어 주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 젊음이 마냥 기다려 주는 것도 아니고. 젊디젊은 여자를 생과부로 만들 순 없잖아. 떠밀다시피 친정으로 쫓아 보냈지. 기태 놈 잊고 좋은 사람 만나서 보란 듯이 잘 살라고 했어. 너 세 살 되던 해였지 싶다. 걸림돌이 될지 모르니 애는 두고 가라고 했더니 죽어도 같이 죽을 거라며 데리고 가더구나.
이듬해 재혼했다는 소식이 들리더구나. 내 손으로 등 떠밀어 보낸 사람이었지만 서운한 마음도 컸지. 재혼남 나이 많은 게 흠이긴 했지만, 밥술이나 먹고사는 땅부자라고 해서 잘됐다 싶은 게 마음이 놓이더라고. 너를 데려가는 조건이었대. 그런데 팔자 개비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더라. 젊은 여자이고, 의심병이 생긴 영감이 툭하면 매질이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고…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그 소문이 내 귀에까지 들어왔지. 니 엄니 그 인생이 불쌍하기도 하고, 내 설움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생각할수록 기태 놈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어느 날, 널 데리고 날 찾아왔더라고. 얼굴이 반쪽이 돼서. 임신 중이라 입덧이 심한 탓도 있었겠지만,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저리 망가졌을까 싶은 게 당장 데려오고 싶더라니까. 내가 친정엄마였다면 그렇게 하고도 남았을 게야. 자기 애가 생기자 영감 생각이 달라진 거지. 그렇지 않아도 니가 눈엣가시였을 텐데, 핏줄도 아닌 애를 거두려니 심사가 뒤틀린 게지. 뱃속에 든 애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그 집에서 뛰쳐나오고 싶다며 울더라고. 더 이상 눈칫밥 먹는 걸 두고 볼 수 없다며, 당분간 형님이 맡아 달라고 하면서….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감시가 심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연년생으로 낳은 새끼들 건사하느라 그랬는지, 그 뒤로 한 번도 우리 집에 발걸음을 안 했어.
니가 눈에 밟혀 어찌 살았을까 싶다. 재혼한 영감 성을 따라 오 씨에서 여 씨로 성까지 바뀐 조카를 그때부터 내 새끼처럼 품고 살았지. 너를 보면 기태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무너질 때가 많았어. 하는 짓도 그렇고, 애비를 많이 닮았거든. 부모 없이 고모 밑에서 자라 버릇없다는 소리 들을까 봐 회초리도 많이 들었고.
딸이 태어난 줄도 모르고 떠났다가 뒤늦게 소식 듣고 얼마나 가슴을 쳤겠어. 나이 들고 살 만하니 핏줄이 당기는지 편지마다 미주 니 얘기를 하더만. 기태가 그러더구나. 이쪽을 생각하면 그쪽이 걸리고, 그쪽을 챙기다 보면 또 이쪽이 걸린다고.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겠지. 널 볼 면목도 없을 테고. 왜 아니겠어. 땅을 치고 후회한들 되돌릴 수 없는 일, 팔자려니 하고 살라고 했다. 다행히 공장이 잘 돌아가 돈 걱정은 안 하고 산다고 하더만. 옷 만드는 공장이라고 했어. 눈썰미가 있어서 뭐든 손대면 잘해 낼 줄 알았다.
그런데 다 늙어 반겨 줄 사람 없는 고향은 왜 찾아왔는지. 그것도 병든 몸으로. 처자식 버리고 떠났으면 그쪽에 뼈를 묻을 일이지. 몹쓸 병에 걸려 돌아올 줄 낸들 알았겠니. 하긴 여우도 죽을 때 고향이 있는 언덕으로 머리를 돌린다고 안 하냐. 너도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기태 그놈이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잖어.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겠지만,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핏줄인데 어쩌겠어.
안타까운 마음에 생각이 많아지더구나. 나도 이런데 너는 오죽하겠어. 니 맘 모르는 건 아니지만, 연락 오면 이런저런 이유 달지 말고 한 번 만나 보거라. 오늘 갈지 내일 갈지 모르는데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리고 이건 너 주려고 만든 통장이다. 기태가 너를 위해 써 달라며 때마다 돈을 보냈거든. 허투루 쓰지 않고 니 몫으로 차곡차곡 모은 돈이니 그리 알고 단디 챙겨. 보태서 집을 늘려 가든, 여행을 가든 니 알아서 쓰라고. 내가 언제까지 살지 모르는데, 그나마 맑은 정신일 때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애비 만날 때 너 혼자 가기 뭣하면 나랑 같이 가도 좋고.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이면 닿는 곳이야. 한국에 도착해 우리 집에서 며칠 머물다 알음알음 얻은 집이란다. 3개월 후에 재계약하는 조건으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엔 너무 늦었다. 머릿속에 입력, 저장된 이야기들이 순서도 없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고모가 넋두리하듯 내뱉은 얘기 속에서 핏줄이란 단어가 나올 때마다 몇 번이고 되돌기를 해본다. 비밀은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오민주가 아닌 여민주로 살아온 것도 그렇고. 고모가 건네준 예금 통장과 아버지가 머물고 있는 집 주소가 적힌 메모지를 챙겨 들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핏줄! 왠지 낯설다. 국적과 언어가 다르고 엄마가 다르고 아버지가 다른 등장인물들, 시한부 아버지의 등장으로 서둘러 마무리한 소설 쓰기는 이제부터가 아닐까? 나를 떼어놓고 뒤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던 엄마의 모습을 다섯 살 철부지 어린아이가 되어 기억을 쥐어짜 본다. 슬픔에도 크기가 있다면 엄마와 아이, 누구 몫이 더 커 보일까. 베트남에서 왔다는 여자의 등장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여자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을 다음 이야기는 아버지 얘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온다. 비행기 탑승 모드였던 전화기의 설정을 원위치로 돌리자 수신된 메시지지가 주르르 달려나온다. 부재중 전화번호도 여러 개 찍혀 있다. 수신 메시지함에서 여자가 보낸 메시지를 찾아 읽는다.
‘아버지 일로 의논할 게 있어. 약도 보낼 테니 세 시에 거기서 보자.’ 선약이 있다는 메시지를 남길까 하다 삭제 버튼을 눌렀다. 생각이 많아진다. 답장이 없자 또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여자였다.
“메시지 확인했지. 너랑 의논할 것도 있고 같이 식사라도 할까 해서. 불편해서 그런 거라면 내가 그쪽으로 갈까. 지난번 만났던 그 카페로.”
“내가 움직일게요. 약도 다시 보내 주세요.”
약속 시간을 계산하며 서둘러 외출 준비를 했다. 여자에게 묻고 싶은 내용을 질문지 작성하듯 정리해 보았다. 여자가 보내준 약도를 자세히 보니 잔치국수집이다. 여자의 메뉴 선택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찾아오느라 힘들지 않았어.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내 맘대로 정했어. 사실 쌀국수가 먹고 싶었는데 근처에 쌀국수 파는 가게가 없더라고.”
여자가 구사하는 한국어는 외국인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수준급이다.
“면 종류는 다 좋아해요.”
“잘됐다. 둘이 통하는 게 있어 좋네.”
음식 얘기를 하다 보니 어색함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한국어를 잘하네요.”
“읽기, 쓰기, 말하기, 아버지가 가르쳐 줬어. 집에서는 식구들 모두 한국어를 사용했거든. 그러고 보니 베트남 식구들에 대해 아는 게 없겠구나. 엄마 그리고 내 밑으로도 남동생이 둘 있어.”
여자가 가족사진이라며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었다. 꿈에 그리던 아버지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서 보다니…. 환하게 웃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술 마실 줄 알아? 커피보다 그게 좋겠지?”
“난 아무래도 좋아요.”
국숫집을 나와 여자가 이끄는 대로 횟집으로 갔다. 동생이 따라주는 술 한 잔 마셔 보자며 여자가 빈 소주잔을 내민다. 술잔 가득 소주를 따랐다. 여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여자를 향해 빈 술잔을 내밀었다. 술잔을 주고받는 두 사람, 그림이 나쁘지 않다. 알코올이 들어가자 대화도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웠다.
“의논할 게 있어서 보자고 했는데 오늘은 그냥 기분 좋게 술이나 마시자.”
“무슨 일인데 그렇게 뜸을 들여요. 들을 준비 돼 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말기암 환자가 돼서 나타난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아니겠죠?”
알코올의 힘을 빌려서라도 속엣말을 모두 쏟아내고 싶었다.
“아버지 일이야. 의사가 길어야 육 개월이라고 했어. 아버지도 알고 있고. 사실 한국에 온 것도 그 때문이야. 아버지가 꼭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어렵게 결정한 거야. 내색은 안 했지만, 누구보다 미주 네가 보고 싶은 눈치였어.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뭔지 알아? 아버지가 보고 싶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하는 거야. 그런 걸 생전 장례식이라고 한대. 아버지를 위한 마지막 이벤트라고 해도 좋겠지?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이제 네 생각을 말해 봐.”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에 생각을 더해 보아도 답이 안 나온다. 집을 나서면서 질문지 작성하듯 준비한 속엣말은 꺼내 보지도 못하고 연거푸 소주잔만 비워댔다.
“너만 오케이 하면 비용 부담은 물론 모든 절차는 내가 알아서 준비할게. 너는 초대할 사람들 명단을 줄 테니 전화해서 참석 여부만 내게 알려 줘. 고모에게 부탁해서 아버지 친구들 전화번호를 알아냈어. 생각보다 많지 않아.”
여자가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내밀며 내 눈치를 살핀다. 생전 장례식! 생소하기만 하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맑은 정신일 때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해 작별인사를 나누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지난날을 회상해 보는 자리라고 했다. 여자의 말대로라면 정말 멋진 이별의 이벤트가 될 것 같다.
“뭐가 뭔지 난 잘 모르겠어요. 생전 장례식이라는 얘기도 처음 듣는 얘기고, 초대한들 몇 사람이나 참석할지도 의문이고.”
“몇 명이 오든 상관없이 일단 저지르고 보자. 고모한테는 반 승낙을 받았어. 너만 오케이 하면 돼.”
“글쎄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말로 얼버무렸다.
“우리 자리 옮겨 한잔 더할까?”
“이번엔 제가 쏠게요.”
알코올 기운 때문일까? 여자를 향해 날을 세우던 경계심도 자존심도 느슨해진다. 내가 쏘겠다는 말에 여자가 허리를 반으로 꺾으며 웃는다. 여자를 따라 나도 소리 내어 웃었다.
“이만하면 술은 된 것 같고, 우리 집에 가서 차나 마시자. 어때? 여기서 오 분 거리야. 이참에 아버지도 뵐 겸.”
깜빡이도 켜지 않고 훅 치고 들어오는 여자의 말에 술이 확 깨는 것 같다. 여자의 속셈을 알 수가 없다.
“미안한데 난 아직 아버지 만날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마음의 준비는 무슨, 아버지 만나는데 무슨 절차가 필요해.”
여자가 내 손을 잡아 깍지를 끼며 웃는다. 적당히 기분 좋게 취한 것 같다.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문까지 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호흡이 빨라진다. 만날 준비가 안 된 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갑작스런 나의 방문에 당황하는 것 같았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백발의 노인, 영락없는 환자의 모습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여자가 그 틈을 비집고 끼어들며 보고하듯 말했다.
“미주랑 같이 술 한잔 했어요.”
“미주라고 했나? 사진으로 본 것보다 실물이 훨씬 이쁘구나. 내가 누군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37년 만에 아버지가 딸에게 건넨 첫마디, 이쁘다는 칭찬의 한마디 말로 용서가 될까? 나를 볼 때마다 고모는 말했다. 기태를 쏙 빼닮았다고. 노인의 얼굴에서 나의 모습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나는 없다.
여자는 수시로 내 의견을 물어왔다. 날짜와 장소, 음식, 참석자 명단까지 꼼꼼히 체크하며 그날 입을 의상까지 챙기는 치밀함을 보였다.
“베트남 식구들도 올 거야.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베트남 식구들이 행사에 참석할 것이라곤 생각 못 했다. 그들이 참석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달라질 것도 없다. 아버지에겐 소중한 사람들일 테니까.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인데. 엄마, 그러니까 미주를 낳아준 친엄마 말야. 연락이 닿으면 초대할까 해서. 고모를 통하면 알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너만 좋으면 난 아무래도 괜찮아.”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난 아버지 일만으로도 벅차고 혼란스러워요.”
애써 도리질을 해본다. 다섯 살 이후, 내 기억 속에 엄마는 없다. 새엄마, 이복형제, 베트남 식구들을 만날 생각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무슨 선물을 준비할까 고민하다가 손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를 향한 원망을 뒤로하고 쓰는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다. 마음이 바빠진다.
생전 장례식은 아버지와 여자가 임시 머물고 있는 집 마당에서 진행됐다. 생전 장례식이라고 했지만, 손님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꽃무늬 원피스 차림이 신경 쓰인다. 검은색보다는 밝은색 옷차림이 좋겠다는 여자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고르고 고른 끝에 선택한 원피스였다. 초대장 보낼 때 미리 부탁해서 그런지 축하객 중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여자는 식순에 따라 차분하게 생전 장례식 분위기를 이끌어 나갔다. 아버지가 등장하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휠체어에 앉아 축하객들을 향해 손을 들어 화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슬프지 않아 다행이다. 감색 양복 차림에 중절모를 눌러쓴 모습이 잘 어울린다. 오늘 이 잔치가 생전 장례식이 아닌 회갑이나 칠순 잔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아버지는 몇 번이나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마침내 내 순서가 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손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의 울음소리가 제일 크게 들린다. 37년을 참아온 눈물이다. 절망과 후회, 아쉬움이 희석돼 하얗게 바랜 울음인지도 모르겠다. 편지 읽기가 끝나고 아버지에게 큰절을 올렸다. 아버지 눈에 또다시 굵은 눈물이 맺힌다.
‘타향살이 몇 해든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베트남 남동생의 하모니카 소리에 맞춰 여자가 노래를 부른다. 평소 아버지가 즐겨 부르던 노래라고 했다. 하객 누구랄 것도 없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한바탕 눈물바람이 끝나고 술잔을 들어 축배를 드는 것으로 아버지의 엔딩 파티는 끝이 났다.
“미주 누나!”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젊은 남자 둘이 웃으며 다가온다.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내가 누군지 알겠어?”
“그럼요. 한눈에 알아봤어요. 아버지가 누나 얘기 많이 했어요.” 고모가 그토록 강조했던 핏줄이란 게 이런 것인가 보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진다. 멀리서 세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가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속삭인다.
“미주야! 고마워.”
여자의 말에 눈물이 핑 돈다. 목에 걸려 끝내 내뱉지 못한 그 말, 훠이 언니! 꽃무늬 원피스 자락에 하얀 눈물방울 하나가 툭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