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터미널은 저마다 시간 속을 서성거리는 사람들로 소란스럽다. 어딘가로 떠나려는 사람,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 누군가는 크고 허름한 가방을 또 누구는 앙증스런 가방을 손에 든 채, 출발과 정착이 엇갈리는 생의 이면(裏面)을 가슴에 안고 왔다 갔다 서성대고 있었다.막 출발하려는 버스 앞으로 검버섯 덮인 추레한 노인이 휘청휘청 걸어온다. 굽은 허리를 지팡이
- 김희원
오늘도 터미널은 저마다 시간 속을 서성거리는 사람들로 소란스럽다. 어딘가로 떠나려는 사람,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 누군가는 크고 허름한 가방을 또 누구는 앙증스런 가방을 손에 든 채, 출발과 정착이 엇갈리는 생의 이면(裏面)을 가슴에 안고 왔다 갔다 서성대고 있었다.막 출발하려는 버스 앞으로 검버섯 덮인 추레한 노인이 휘청휘청 걸어온다. 굽은 허리를 지팡이
1도대체 어디서 나는 냄새일까? 퀘퀘한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잇몸에 염증이 들었나? 손바닥에 입김을 불어 코에 대보았다. 칠십이 넘으니 몸에서 냄새가 날까 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입 안에서 나는 냄새도 아니다.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다가 기어코 잠이 깨어버렸다. 새벽 세 시밖에 되지 않았다. 뻗어 나가는 상상력을 막기 위해 두리번거
돌연변이 재회나 만남을 더욱 기대했지만 그것은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고 민우는 점심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러한 기회가 있었는데도 민우 자신이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찾아왔었는지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가령 화장실에 잠깐 갔다 온 사이나 아니면 이렇게 점심 먹으러 나왔을 때에 그러한 기회가 있었을는지 모른다.‘이쿠노에서도 투표를 할 수 있었는데
감당하기 힘든 일 앞에서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을 하곤 했다. 내 어린 시절 제대로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때. 그래도 부모는 자식 하나만은 번듯하게 키워 보고 싶어 했다. 별 따기처럼 어려운 ‘사’자든 사람 만드는 것이 꿈이 되고, 시험 한방 통과하면 세상이 부러워하는 판검사가 되던 시절이었다. 전공 불문 너도나도 고시를 보고, 합격자의 이름을 쓴 현수막이
서늘한 공기 속에서 계절도 옷을 갈아입는다. 흰빛과 분홍빛이 어우러진 호접란 한 송이, 햇빛을 머금은 그 자태는 마치 한 마리 나비가 조용히 내려앉은 듯, 고요 속에 생명을 품고 있었다.호접란을 선물 받던 날이 떠오른다. ‘행복이 오래 머무는 꽃’이라는 꽃말과 함께 건네받았던 화분. 그때는 몰랐다. 마지막까지 그 자리를 지켜준 ‘의지의 꽃대’가 내 마음을
비가 오는 날 나팔꽃을 보았다. 올림픽공원 철제 울타리에 처연하게 축 늘어져 있었다, 붉은 자줏빛 꽃잎이 물먹은 휴지처럼 파란 잎에 매달려 있다니. 잎사귀 겨드랑이에 조롱조롱 매달린 반쯤 핀 봉오리가 기다리고 있지만, 오늘 꽃을 피우지 못하면 그대로 시들어 버리게 된다. 애타게 기다리던 하루가 빗물에 녹아 버린다.나팔꽃은 저녁에 오므려졌다가 다음 날 다시
워커를 잡고 집 밖으로 나갔다. 사고가 난 지 8개월 만이다.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사고가 난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작년 초여름 세상이 온통 연초록으로 물들고 있을 때였다. 시립도서관에서 열린 척수협회 행사에 참석했다. 행사가 끝나고 사진을 찍기 위해 걸음을 떼놓은 순간이었다. 행사 도중 노래를 부를 때 비눗방울을 날
방동리 여락서재(餘樂書齋)에도 가을빛이 완연하다. 깎고 돌아서면 곧 무성해져 서재 지기를 지치게 했던 잔디도 누렇게 변했다. 백일홍을 제외한 화단의 꽃들도 시들었다. 꽃 무게를 이기지 못해 바닥까지 늘어졌던 흰 수국은 제 색깔을 잃어 가고, 대신 울타리 철망을 덮은 장미가 새로 난 가지에 듬성듬성 작은 꽃송이를 매단 채 가는 계절이 아쉬운 듯 바람에 몸을
항공사 직원들에게 1년에 한 번씩 주어지는 왕복 무료 항공 탑승권, 이름하여 FREE SUBLO TICKET. 얼마나 멋진 선물인가! 주위에서도 모두 부러워한다. 이 멋쟁이 선물을 나대로 뜻깊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항공사 직원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결혼한 지 3년이 지나도록 효도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나에게 이 선물은 참으로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거둬주길 바란다. 나는 어디서건 살아남을 테니까. 학교 기숙사를 신축하느라 내가 파헤쳐진다는 소문이 있다더군. 그래서 날 걱정한다는 걸 안다.설혹 둥치가 잘리고 뿌리가 파헤쳐진들 어떤가. 열매와 잎은 약재로 쓰임이 있겠지. 가장이는 바둑판이 되어 어느 심심한 아비의 벗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널빤지로 잘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