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여름호 2025년 6월 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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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순식간이었다, 선바위가 그렇게 사라진 것은. 2000여 년 묵묵히 병지방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던 선바위는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다.
구융소 단풍이 선홍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하던 가을날. 포클레인이라 불리는 굴삭기 삽날 아래 선바위는 맥없이 무너져 내리고, 선바위는 아무런 실체 없이 전설이 되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할 말을 잃고 그냥 멍하니 무너져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선바위 파편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속수무책. 나도 마찬가지였고.
야속하게도 선바위를 철거하는 날은 마냥 청명하기만 했다. 차라리 적당히 날도 흐리고 구름이라도 차일을 쳐 주었더라면 좋았으련만.
‘제기랄!’
병지방 1리와 2리 주민들이 거의 다 몰려들었다. 군청 재난안전과 직원들, 공사를 담당할 건설회사 임직원들도 길가 공터에 마련된 고사상 모롱가지에서 진설(陳設)을 거들었다.
돼지머리를 중심으로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고사상은 정갈하게 준비돼 있었다. 그리 보여서 그런지 고사상에 오른 돼지 표정이 자못 근엄하기만 하다. 아니 수심이 가득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먼저 아랫마을 ‘먹해’에 살고 있는 경장이 박 노인이 경을 읊어 나갔다. 팔십이 넘은 노인이었지만 그는 꼬장꼬장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의 경 읊는 소리는 겨울바람에 떠는 문풍지처럼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박 노인은 가볍게 징을 두드리며 초경인 ‘정심경’을 필두로 부정을 씻어 내는 ‘부정경’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어 나갔다.
사바세계 남섬부주 해동은 동양 대한민국
강원도 횡성군 병지방 사는 박가, 감히 천지신명님께 고합니다
당재 산머리 선바위 아래 찾아들어 일심봉청 하여 산신님께 고합니다.
랑송신물 경만교담 접어 무재 단숙 염염 무위라도
각위천존 각위칠성 각위제석 각위불사 각위산신 각위용왕
각위신장 각위장군 각위도사 각위대감 각위선녀 각위동자
일체 신령님들은 원사 강림을 하옵소서
이천 년 동고동락하던 선바위, 지역주민 안위 위해 오늘 감히 철거를 하렵니다.
천지신명님 산신님 부디 노염 푸시고
세세손손 마을 주민 안전과 만복 지켜 주십사 지극정성으로 발원을 하옵니다
이어서 마을회관 아래 위치한 병지방 마을 유일의 교회, 젊은 목사가 기도를 했다. 그 역시 하나님께 오늘 철거하는 선바위에 대한 아쉬움과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두 마을 노인회장이 먼저 잔을 올리고, 이어서 마을 이장, 군청 직원, 건설사 대표가 잔을 올리고 고사상 돼지 입에다 지폐를 꽂았다.
그렇게 그 자리에 참석한 마을 사람들은 너나없이 고사상에 나가 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하나같이 굳게 다문 입과 얼굴에서는 안타까움과 처연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폭포수처럼 가을 햇살은 무심히 쏟아져 내리고 부릉부르릉 육중한 엔진 소리를 길가에 뿌려대며 ‘공팔 8W’ 굴삭기가 비탈진 산을 올랐다.
멀리서 보면 흡사 총각이 각시를 업고 있는 듯이 보이는 총각각시바위. 오늘따라 그 두 바위는 더더욱 가까이 붙어 있는 듯 애처롭게 보였다. 이윽고 굴삭기 삽날이 번쩍 들려 올려지고 앞쪽 총각바위를 힘껏 밀어냈다. 총각바위는 힘 한번 못 써 보고 맥없이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이어서 각시바위도 굴삭기 삽날 아래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참으로 허망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 부나 무려 2천 년 동안 끄떡없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던 바위였건만 굴삭기 삽날 아래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산 아래에서 숨죽이며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은 선바위가 맥없이 나가떨어지는 걸 차마 바라볼 수 없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모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제기랄 거.’
누가 먼저랄 거 없이 마을 사람들은 고사상 옆에 있던 막걸리 잔을 집어 들었다. 벌컥벌컥.
“2리 이장님, 마음이 많이 짠하시죠?”
넋 놓고 굴러떨어진 선바위만을 바라보고 있는 병지방 2리 이장에게 내가 막걸리 잔을 건넸다.
“예총 회장님도 그동안 애 많이 쓰셨어요. 1리 2리 오가며 마을 사람들 이야기 들어주시느라.”
“군 당국이나 1리 사람들 설득에 어쩔 수 없이 철거를 합의해 주기는 했지만 막상 저렇게 바위가 사라지고 나니 만감이 교차하네요. 아주 어릴 적 저 위 명신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선바위 바라보며 요 앞 구융소에서 멱도 감고 참 좋은 시절 보냈었거든요. 그뿐인가요. 늦은 봄이면 선바위 골타데이에 갈 꺾으러 올라가 갈 짐 받쳐 놓고 선바위 아래서 꼭 다리쉼을 하곤 했죠. 으등그런 겨울에는 짧은 해 아쉬워하며 낭구 한 짐 해지고는 저 바위 아래서 땀 들이곤 했었고요.”
“그러시겠네요 이장님. 어디 이장님뿐인가요. 아랫말 웃말 사람들 모두 다 삶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그런 장소였을 테죠.”
“네 회장님. 웃말 1리 사람들은 횡성장에 가려면 꼭 여기를 지나가야 했고, 아랫말 2리 사람들은 국민학교 가려면 항상 여기를 지나가야 했으니까요. 거기다 여기 구융소 옆 마당바위는 웃말 아랫말 천렵터였죠. 얼라들은 낮에 멱을 감고 으른들은 저녁 어스름이면 이곳 구융소에서 멱을 감으며 하루 농사일 피로를 풀곤 했었고요. 떠꺼머리 총각, 동네 말만 한 처녀들한테는 최상의 연애터였었죠 이곳이. 저 위 선바위에 대고 지가 좋아하는 동네 처녀 이름 세 번 복창하면 틀림없이 그 사랑 이루어진다 해서 저녁이면 동네 사랑앓이 총각들로 바위 아래가 버버했었죠. ㅎㅎ.”
지난해 가을 뜬금없이 군청에서 선바위 아래 모롱가지에 석축을 쌓고 붕괴 위험이 있는 선바위를 철거한다는 소식을 듣고 1리 사람들과 2리 사람들 의견은 극명하게 나뉘었다.
선바위는 행정상으로 아랫마을 2리 구역. 소유권이 있는 2리 주민들은 2천 년 동안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선바위 철거를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반면에 이 길을 매일 지나다니는 1리 주민들은 언제 선바위가 무너져 불상사 날지 모른다고 하니 아쉽지만 차제에 주민 안전을 위해 바위를 철거하자고 하고. 심지어는 2리 사람들, 이 길 별로 다니지 않으니 그런 소리를 한다고까지 했다.
마을 위에 사는 1리 주민들은, 나 원 참, 우애 좋고 도탑기만 했던 두 마을 사람들이 선바위 때문에 그렇게 극명하게 갈라지고 말았다.
실은 1리나 2리 사람들은 선바위 전설에 대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알지 못했었다. 그냥 예전부터 총각이 각시를 업고 있는 형상이라고만 옛날 어른들께 전해 들었지 정작 그 바위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는 몰랐었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횡성예총에서 횡성 최초로 연극을 만들어 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올렸었는데 바로 선바위 이야기가 연극의 모티브였다. 연극을 보고 온 마을 사람들이 비로소 선바위 전설을 알게 됐고, 그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병지방 사람들 마음자리에 뚜렷이 자리매김됐다. 애틋한 총각과 각시 사랑 이야기에 촉촉이 젖어 들면서.
선바위 소유권이 있는 2리 사람들은 그런 전설이 깃든 문화유산을 철거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결사반대했다.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공사를 해야 하는 군청이나 붕괴 위험이 있는 길을 다녀야 하는 1리 사람들은.
이천 년 전. 그때도 이곳 병지방 골타데이에는 봄이면 선홍빛 참꽃(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곤했다. 참꽃이 질 즈음 외딴 산지당골에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두 부부 결혼하고 십 년 만에 얻은 그야말로 축복 같은 아이였다. 태기산 아래 봉복사에 가 백일 기도를 드리고 나서 얻은 귀한 아들. 부부는 세상을 다 얻은 거 같았다.
그 아이는 첫 울음부터 달랐다. 울음소리 어찌나 컸던지 제법 떨어진 아랫마을까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하니. 그런데 아기 울음소리 들리던 날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들릴 정도의 말 울음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필시 용마 울음소리일 거라 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갸웃거렸고. 용마 울음소리는 장수가 났다는 이야기고 아기 장수는 나중에 왕이 아니면 역적이 된다고 했기에. 왕이 멀쩡히 있으니 왕 되기는 틀렸고 그럼 답은 하나. 그렇게 되면 마을은 역적 마을이 되어 씨몰살을 당하는 건 받아 놓은 밥상.
울음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삼칠일이 안 되었는데도 아기가 돌덩어리처럼 어찌나 무거운지 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우’라 이름 지었다. 아기 장수 이름을.
어느 날 부부가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와 방문을 여니 아기가 보이지 않았다.
“깔깔깔!”
아기는 천장에 붙어 그렇게 웃고 있었다.
‘이런 변고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뒤집기를 하는 아이를 씻기며 보니 글쎄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 같은 게 도틀도틀 돋아 있었다.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깜깜 오밤중, 아이 어머니는 인두를 벌겋게 달궈 고이 잠든 아기 겨드랑이 날개를 지졌다. 찌지직, 살 타는 냄새, 그리고 아기 울음소리. 어디선가 아기가 태어날 때 들었던 용마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흉흉한 소문이 마을을 돌고 돌았다. 발 없는 소문은 관가에까지. 백 일이 채 못 된 어느 날 밤, 아이 아버지는 팥 서 말을 자루에 담았다. 마침 아이 어머니는 아랫마을에 마실을 간 터였다. 곤히 잠든 아이 배 위에 천근처럼 무거운 팥 자루를 올려놨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어떻게 얻은 아들인데. 그리고는 아이 아버지는 관가로 달려갔다. 아기 장수 배 위에 팥 자루를 올려놓았다는 고변을 하러.
그러나 아기가 살 팔자였나 보다. 마실 가려던 엄마가 집을 나서서 길모롱가지를 도는 순간 용마 울음소리가 길을 막아섰다. 그래서 마실 걸음을 돌려 한걸음에 집으로 향했고 팥 자루에 눌린 아기는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엄마는 그 길로 아기를 들쳐 업고 화전민들이 사는 깊은 산골로 들어섰다. 관군을 앞세워 자기 집에 도착한 아버지는 아기가 없어진 것에 아연실색했고 거짓 고변에 속은 관군은 그 자리에서 아버지를 죽였다.
엄마는 홀몸으로 화전밭을 일구며 아기를 키웠다. 워낙 힘이 장사인 아들은 어머니를 도와 열심히 농사일을 했다. 아기 장수 바람은 단 하나, 부지런히 농사 지어 내 땅 사고 어머니께 효도하는 것.
그 마을 양지말에 바우 또래의 나래라는 어여쁜 여식 아이가 살고 있었다. 이름처럼 그야말로 꽃같이 아름다운 아가씨. 천생연분이었나 보다. 둘은 같이 크면서 어느새 장래 신랑감 각시감으로 서로 점을 찍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지만 나래네는 마을 최고의 부호였고 바우네는 내 땅 한 평 없는 가난한 집. 당연히 나래 부모는 바우와 만나는 걸 꺼려했고 관가에 벼슬을 하는 집 아들 가래에게 은근히 마음을 뒀다.
언제부턴가 바우 친구인 가래도 이쁜 나래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졸졸 나래 뒤를 따라다녔다. 나래는 저녁이면 부모 눈을 피해 몰래 사립문을 나서서 구융소에서 바우를 기다렸다. 날이면 날마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꽃을 피워갔다. 그럴수록 짝사랑에 가슴앓이하던 가래는 왼새끼를 꼬며 이글이글 질투심에 불탔고.
멀리 삼랑진에서 신라 박혁거세에게 대패한 진한의 태기왕이 패잔병과 백성을 이끌고 횡성에 나타났다. 날벼락처럼. 왕은 태기산에 성을 쌓고 군인들을 훈련시키며 재기의 꿈을 키웠다.
그런 소식을 들은 박혁거세가 태기왕을 쫓아 이곳까지 쳐들어온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다급해진 태기왕은 마을의 젊은이들을 군인으로 징발했다.
바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관가에 근무하는 아버지 덕에 가래 녀석은 징집에서 쏙 빠졌고. 그때도 빽은 통했었다. 군인으로 떠나기 전날, 바우는 구융소 개울가 마당바위에서 사랑하는 나래에게 하얀 조약돌을 쥐여 주며 반드시 살아 돌아와 나래와 혼인해 어머니 모시고 알콩달콩 살겠노라는 굳은 언약을 남겼다.
태기왕 밑에서 바우는 열심히 훈련을 받았다. 오직 이 전쟁이 끝나면 사랑하는 어머니와 나래 곁으로 돌아간다는 일념 하나 마음자리에 굳게 새기면서.
어느 날 뜬금없이 히이힝 소리를 내지르며 용마 한 마리가 군영에 나타나 난리를 쳤다. 한다 하는 장수들이 나서서 용마를 제압하려 했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다. 순식간에 태기왕 진영은 아수라장이 됐다. 급기야 태기왕이 소리쳤다.
“저 용마를 잡아 제압하는 자를 상장군으로 삼겠다.”
힘깨나 쓰는 군인들이 용마를 제압하기 위해 나섰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다. 마침내 졸병이었던 바우가 나섰다. 바우가 날쌔게 달려들어 말 갈기를 잡아채자 용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바우 앞에서 순한 양이 되었다. 바우는 용마 등에 올라타 보란 듯이 연병장을 멋지게 돌았다. 바라보던 군사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고, 태기왕은 약속대로 바우를 상장군으로 앉혔다.
바우 장군은 용마에 올라타 전쟁터로 뛰어들어 그야말로 연전연승. 아무리 적군의 화살이나 창날이 날아와도 바우는 끄떡없었다. 그야말로 불사신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바우를 전쟁터로 떠나보낸 나래는 날마다 정한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바우를 위해 빌고 또 빌었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우리 바우 내 낭군 무사귀환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동방청제장군 내조아 남방적제장군 내조아
서방백제장군 내조아 북방흑제장군 내조아
중앙황제장군 내조아
일체 신령님들 남도당 여도당 남부근 여부근
산신군웅 살륭군웅 백마군웅 도당군웅 부근군웅
도당신장 부근신장 오방신장 도당대감 부근대감
부근용왕 부근선왕 안토지신 후토신령 산신권속일체 제위 신령님네들 세세 찰지를 하옵소사.
한웅 천황님이 태백 신단수, 아래로 강림하실 적에
사천왕문 열으시고 사선왕문 열으시어 나라로는 국사선왕 마련하고
도에는 도선왕 마련하고 면면촌촌 골골에 골맥이 선왕 마련하여
인간구제 하시던 선왕님
세세 찰지를 하옵소사.
그러던 어느 날, 연적이랄 수 있는 고향 마을 친구 가래 녀석이 바우 어머니가 싸 준 옷 한 벌을 들고 바우 장군을 찾아왔다. 진달래술 한 병까지 들고.
미우나 고우나 고향 친구인 둘은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눴고, 술김에 바우는 불사신의 비결이 자기 옆구리에 난 날개란 비밀을 털어놓고 말았다. 날개 돋은 옆구리만 빼곤 화살이고 창날이고 몸 어디를 찔러도 괜찮다는 극비를.
‘이런….’
교활한 가래는 그 길로 박혁거세를 찾아가 이 모든 사실을 까발렸다. 금 열 냥과 맞바꾸며. 거기다 바우를 무너뜨리는 데에는 전설로 내려오는 아기 장수 이야기까지 얹어서. 아기 장수인 바우가 필시 왕을 무너뜨린다는 이간질까지.
박혁거세는 급히 태기왕 진영에 이간책을 퍼뜨렸다. 바우가 항차 역적이 되어 태기왕을 없애 버릴 것이라는 괴소문을. 괴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덩이처럼 부풀려져 태기왕 군영에 휘돌아다녔다.
‘용마를 얻은 장수가 왕이 된다. 용마를 얻은 장수는 결국엔 역적이 되어 왕을 없애 버릴 거라는 그 전설.’
마침내 최후의 전쟁이 다가왔다. 범이 마지막 급소를 노리듯 신라군을 끝장낼 마지막 단 한 번의 전투.
“바우 장군.”
“예.”
“이제 마지막 싸움만 남았다. 결사항전으로 이제 전쟁을 끝내 주게.”
“분부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단! 바우 장군, 이번에는 용마와 함께할 수 없다.”
“폐하, 용마와 저는 한 몸처럼 싸웠습니다. 어찌 용마 없이 싸우라 하십니까.”
“내 장군의 의중을 모르는 바 아니나 불길한 소문이 산중으로 가득해 어쩔 수 없다. 그대는 불사신이다. 세상 그 어느 것도 장군의 몸을 뚫을 수 없을 거야. 이미 바우 장군으로 인해 기세가 꺾인 신라군이니 용마 없이도 가능할 걸세.”
‘아! 태기왕이 나를 의심하는구나. 어쩔 수 없구나.’
바우 장군은 용마를 나무에 매어 놓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싸움터로 향했다.
“용맹한 태기 군사들이여 나를 따르라. 나는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이 전투를 끝으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해 전쟁을 끝내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열 명이 죽어도, 천 명이 죽어도 바우 장군만 공격하라. 저자의 겨드랑이 인두로 지진 화상 자리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라.”
무수한 적을 베고 또 베어도 신라군은 집요하게 바우 장군에게만 달려들었다.
‘저자들이 내 옆구리 약점을 어찌 알았을까?’
인해전술에는 바우 장군도 어쩔 수가 없었다. 신라군은 개미 떼처럼 달려들어 집중적으로 바우 장군의 겨드랑이만을 찔러왔다. 불사신 바우 장군도 더 이상은 도리가 없었다. 무수히 찔린 겨드랑이에서는 분수처럼 피가 흘렀다.
마침내 바우 장군이 쓰러졌다. 때맞추어 나무에 매어 놓았던 용마도 고삐를 끊고 처절한 울음을 터뜨리며 태기산 깊은 골짜기로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태기왕의 회한의 역사는 마침표를 찍고 말았다.
바우의 소식을 들은 나래는 혼비백산해 바우의 흔적을 찾으러 나섰지만, 전쟁터 어디에도 바우의 흔적은 없었다. 반쯤은 넋이 나간 나래는 집으로 돌아와 바우와 마지막 헤어지던 날 입었던 옥색 치마와 연분홍 저고리로 갈아입고 구융소로 향했다. 나래는 바우가 언약으로 주고 간 하얀 조약돌을 꼭 움켜쥐고 끝간데모를 구융소에 몸을 던졌다.
먼저 간 바우를 따라 하늘나라에서 못다 나눈 사랑을 이루기 위해.
그때 구융소에서는 나래의 넋이 환생한 애틋한 꽃 한 송이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나래는 한 송이 꽃이 되었다.
어느 날 바우와 나래가 떠난 당재 모설카리에는 갑자기 바위 두 개가 솟아올랐다. 멀리서 보면 마치 바우가 나래를 업은 모양처럼 보이는 선바위 두 개가.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 두 바위를 총각 바위, 각시 바위라 불렀다. 마을을 내려다보며 서 있다고 해 선바위라 부르기도 했고.
당재 모설카리 선바위 철거 소식으로 병지방 마을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마치 대운동 날 청군 백군 갈려지듯. 선바위 아랫마을은 철거 결사반대를 외치고, 윗마을에서는 마을 안전을 위해 선바위를 철거하고 그 아래 튼실한 석축을 구축해야 한다고 하고.
가장 몸이 단 건 군청 담당자와 그 일을 맡은 건설사였다. 겨울 어느 날 군청 담당자가 내게 전화를 했다.
‘갑천면지 面誌’에다 맨 처음 선바위 전설을 쓴 것도 나였고, 또 작년 선바위 전설을 연극 무대에 올린 것도 나였기에 어떻게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데 뭔가 역할을 좀 해 주셨으면 좋겠다면서.
솔직히 나로서도 쉽게 답이 나오질 않았다. 2천 년이나 된 소중한 문화유산을 철거한다는 것도 그렇고, 또 워낙 바위가 위치한 곳이 경사진 곳이라 만약 바위가 붕괴라도 되는 날이면 아주 위험할 것 같으니.
우선 현장을 가 보고 마을 주민들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군청 담당자 말대로 선바위는 길가 가파른 곳에 위태로이 서 있었다. 거기다 오랜 세월 서 있었던 바위는 조금만 충격이 가해져도 쉽게 무너질 것만 같았다. 우선 마을 노인회장님과 연세 드신 분들 그리고 이장님을 만나 그분들의 의견을 먼저 들어봤다.
역시 매일 선바위 아래 도로를 지나는 1리 주민들은 아쉽지만 석축 공사를 하는 이참에 선바위를 철거해 걱정 없이 통행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별로 이 도로를 이용하지 않는 2리 주민들은 2천 년 동안 마을과 동거동락한 선바위 철거는 절대 안 된다며 완강하게 반대를 했다.
당장은 방법이 없는 듯했다. 군에서는 몇 번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전문가들이 진단한 안전 검사 결과를 가지고 선바위 철거 당위를 이야기하며 공청회를 열었지만 두 마을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군 담당자에게 그러지 말고 두 마을 사람들을 한데 모아 놓고 의견들을 모아보라 조언을 했다. 한 번이 안 되면 두 번, 세 번.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갔다. 공사는 시작도 못하고.
한 번, 두 번, 세 번, 두 마을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지 않느냐며, 특히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 안전 국가 아니라는 말까지 덧붙여 가며 진심을 다해 설득에 설득을 이어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지진 이야기까지 나오자 2리 마을 사람들도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화유산도 소중하지만 당장 살아 있는 마을 사람들 안전이 더 소중하다는 인식을.
그리고 가을이 시작되자마자 마을 사람들 모두 모여 산신님께 지극정성으로 고사를 드리고 선바위를 철거하고 본격적으로 비좁은 굽은 도로를 확장하고 튼튼하게 콘크리트 석축을 쌓았다.
선바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던 날. 철거를 반대했던 아랫마을 사람들도, 또 매일 이 길을 오고 가는 윗마을 사람들도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선바위를 바라보며 모두 다 가슴 한켠이 같이 무너져 내렸다. 그날 고사상을 물리고 마을 사람들은 너나없이 사라져 버린 선바위를 위해 막걸리를 마시고 또 마셨다. 나도 그들과 함께 제법 많이 마셨다. 꼭지가 돌도록.
군에서는 선바위가 사라진 곳에 벽을 만들고는 ‘선바위’라는 커다란 글씨를 새겨 후세에 이 자리에 선바위가 있었다는 걸 알리도록 하겠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약속을 했다.
“정 회장님, 부탁이 있어요. 이곳에 선바위가 있었다는 표지판을 세워 놓을까 해요. 비록 바위는 사라졌지만 그 바위에 깃든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꼭 남겨두고 싶어요. 수고스럽지만 총각과 각시의 사랑 이야기 한 편 멋지게 써 주세요.”
“알았어요. 꼭 그렇게 할게요.”
허정허정 당재를 걸어 내려오는 내 귓전으로 히히힝, 용마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해 난 연실 선바위가 사라진 텅 빈 산을 휘둘러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