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여름호 2025년 6월 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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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 아마 아파트 단지를 노란 개나리로 치장하던 봄날이지 싶다. 제대 후 복학한 아들은 강의와 알바가 없다며 오전 내내 방구석에서 폰을 들고 뒹굴고 있더니 잠시 나갔다 온다며 외출을 했다. 그런데 두세 시간 후 한 손에 묵직해 보이는 쇼핑백을 들고, 가슴에는 손바닥만 한 새까만 푸들을 안고 있었다.
“얘, 그게 뭐니?”
“아휴, 엄마는 보면 몰라요. 강아지지.”
“이 자식이야, 웬 강아지냐 이 말이지!”
“친구가 주는데 제가 키우려고 데리고 왔어요.”
“아니 어떻게 키우겠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갖다 주고 와. 아빠 아시면 혼나!”
“엄마, 제가 똥 치우고 다 할게요.”
“강아지가 너 있을 때만 똥오줌 싼다니?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어.”
“엄마, 제발∼ 저랑 수현이가 잘 키울게요. 한번 보세요, 얼마나 귀여운지.”
“수현이도 알고 있는 거야? 남매가 아주 작전 모의를 했구나. 그래도 안돼!”
강력하게 나오자 아들은 시무룩하니 자기 방으로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때 수험생이라며 예민이란 예민은 다 떨며 주말마다 도서관에서 살고 있는 딸은 오빠의 연락을 받았는지 헉헉거리며 샌들을 휘벗어 던지더니 오빠 방으로 향했다.
“오빠 오빠, 어디 있어? 엄마, 오빠 왔지?”
“몰라!”
“오빠, 강아지 어디 있어? 와 귀엽다. 넘 어린데? 미니래?”
“미니라고 하셨는데….”
“이발 좀 봐. 아무래도 토이푸들 같은데? 얼마에 분양받았어?”
“쉿, 비밀이야. 16만 원 줬는데, 엄마한테는 친구가 준 거라고 했어. 16만 원 주고 분양받은 거 알면 엄마는 갖다 판다고 하실걸.”
“히히히, 알았어. 예방접종 했대?”
“안 했다고 하셨어. 할아버지께서 나오셨는데 그냥 돈만 주고 데리고 왔어. 두 달 되었다고 하시는데 아닌 것 같아. 완전 애기잖아.”
“어휴, 우리 오빠 돈방석을 분양해 오셨구먼. 나는 모른다.”
“걱정 마. 오빠가 알바하잖아. 그런데 아빠가 허락하실까? 집 안에 동물은 절대 못 키운다고 하셨잖아. 어떻게 설득하지?”
“걱정 마, 방법은 있으니까. 오빠는 다음 학기에 장학금 받고, 나는 원하는 대학 합격을 약속하는 거야. 어때, 그럴듯하지 않아?”
“하하하, 역시 내 동생 똑똑하네. 좋아, 아빠는 공부 잘하는 게 제일 좋은 선물이니까. 오빠도 자신 있으니까 화이팅!”
다섯 살 아래 여동생이지만 둘은 아주 죽이 잘 맞았다. 지금도 속닥거리며 ‘화이팅’을 외치며 남매는 똘똘 뭉쳤다.
이런 감언이설로 부모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남매는 2006년 4월, 생후 50여 일 된 푸들을 분양받아 바람 앞에 등불마냥 정성을 다해 키웠다. 이름은 부르기 쉽게 ‘맹이’로 정했다. 아빠도 처음에 절대 안 된다고 반대를 하셨지만 어느 사이 스스로 ‘맹이 아빠’로 지칭하고 계셨다. 아마도 퇴근해 현관문을 열면 제일 먼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맞아 주니 인지상정이 아닐까?
맹이가 가족이 된 지 한 달쯤 지났을까? 수험생인 딸이 집에 있었다. 딸뿐 아니라 아들도 알바를 안 나가고 아빠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을 확인하던 딸은 두 달 전 명퇴하고 아파트 경비일을 하고 있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오늘 출근 안 해?”
“아, 정 씨 아저씨가 집안에 일이 있어 아빠하고 근무일을 조정해서 아빠가 내일 출근하기로 했어. 왜? 아빠가 집에 있음 안 되기라도 하니?”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런 너희들은 공부하러 안 가고, 넌 알바 안 나가?”
“히히히, 오빠랑 맹이 데리고 예방접종하러 병원 가려고.”
“어디 간다고? 병원? 너희들 강아지 데리고 병원 간다고 독서실도 쉬고 알바도 쉬는 거였니? 세상에, 개는 개일 뿐이야! 옛날에 아빠 어릴 적에는….”
“아빠! 그때와 지금은 달라. 요즘 예방접종을 해야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아니, 지난번에 맞고 왔잖아.”
“아빠, 생후 4개월 전까지는 종합 백신(DHPPL), 코로나·심장사상충·광견병 등 접종해야 할 백신이 얼마나 많다고. 아빠가 알기나 해? 이제 1차 접종한 건데, 오빠하고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잖아.”
“야 임마! 병원 가면 몇십만 원 깨지잖아. 대충 키워, 대충….”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아빠 차 좀 갖고 나갈게요. 수현아, 애기 데리고 나와. 차 시동 켜놓고 있을게. 참! 옷도 입히고.”
“오케이.”
아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키를 손가락에 끼워 돌리면서 현관을 나갔다. 딸은 조심조심 강아지에게 옷을 입혔다. 몇 시간 후, 병원에서 돌아온 맹이를 보자 아빠는 깜짝 놀라 남매를 쳐다보았다.
“아, 아빠한테 말을 안 했구나. 오늘 맹이 중성화 수술했어. 그래서 입 닿지 못하게 넥카라 한 거야. 좀 있음 괜찮아. 그렇지 맹아.”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 작은 애한테?”
“아빠, 얘들은 어릴 때 해야 돼. 지금도 늦은 거야.”
“네 맞아요. 아빠, 얘들은 어릴수록 아픔이 적대요.”
“야 임마, 너나 해라, 너나! 지는 무섭다고 안 하면서 밤톨만 한 강아지한테 시켜. 너희들이 제정신이야?”
“아빠, 저 입대해서 했다고요!”
“하하하, 덩치 값도 못하는 겁보 아들이 포경 수술을 했다고? 우하하하, 것 봐, 너는 스무 살 넘어서 한 놈이 저 꼬맹이는 불쌍하지도 않든?”
“아빠, 수캉아지는 중성화 안 해주면 키우기 힘들어요. 중성화를 해줘야 행동도 순해지고 질병 발생도 감소한다니까요.”
“그래, 돈을 얼마나 퍼주고 왔어? 나이가 들수록 하는 짓들이 한심하다, 한심해!”
“요즘 반려견 중성화는 필수야. 아빠는 모르면서.”
아빠는 맹이를 쓰다듬어 주며 물었다.
“너는 타인에 의해 내시가 되었구나. 약은 받아 왔어?”
“당근이지. 이 약 하루 두 번 먹여 줘야 하는데, 소독은 우리가 해줄게. 엄마 어디 갔어?”
그제야 엄마가 집 안에 없다는 걸 알았는지 남매는 엄마를 찾았다.
“그리고 보니 엄마가 안 보이네. 아빠, 엄마 어디 가셨어요?”
“요놈들아, 저 강아지 반의 반만큼만 엄마 아빠한테 신경 써라.”
“에이 아빠, 예약 시간이 늦어서 그랬지. 엄마 어디 가셨대?”
“아침에 이모네 간다는 소리 못 들었니? 지금쯤 올 때가 됐는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을 열자 가족이 거실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엄마가 물었다.
“다들 뭐 해?”
“엄마, 오늘 맹이 중성화했거든. 이 약 아침저녁 두 번 먹여야 해. 밥에 섞여 먹여도 되고 아기들 약 먹이듯이 요기 넣어 먹여도 된대.”
작은 병을 보여주면서 자세히 설명하는 딸이었다.
“이게 뭐냐? 세상에 얼마나 아플까? 잔인하다, 잔인해.”
“엄마, 이래야 건강하게 자란대요. 약만 잘 먹이면 상처는 빨리 아물 테니 엄마가 신경 좀 써주세요.”
“몰라! 너희들이 데리고 왔으니 너희들이 해!”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남매의 모습이 짜증스러웠다. 그러나 넥카라를 하고 있는 맹이에게는 신경이 쓰였다. 엄마는 약과 간식을 잘 챙겨 주었더니 맹이는 점점 회복되어 귀여운 짓으로 사랑을 받았다.
아들은 올해 서울에 있는 K대학 컴퓨터공학과 졸업반이 되었다. 약속대로 과 장학금을 받았다. 수현이도 오빠가 다니는 대학 디지털디자인학과에 합격해 맹이를 키우는 데 더욱 유세를 떠는 남매였다. 아침마다 소인국의 맹이를 챙기느라 거인국 남매의 분주한 움직임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남매는 열심히 공부도 하고 알바를 해 자기들 용돈과 강아지 용품을 마음대로 구매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남매는 강아지 샵에서 만나서 도띠아와 훈련용 간식을 사오는 등 아주 죽이 잘 맞았다. 대신 부모와는 점점 소통의 벽이 높아만 갔다. 베를린 장벽처럼 무너질 날이 있을지, 눈치만 보고 지냈다.
취업이 어렵다는 그쯤 졸업 전에 아들은 자기 전공을 살려 강남에 있는 중소기업 IT 개발팀에 입사를 했다. 그날 저녁 아들은 맹이가 좋아하는 노즈워크를 종류대로 양손 가득 사갖고 왔다. 그리고 맹이 앞에 엎드려 놀아주는 아들의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났다. 그런 아들을 보고 엄마가 물었다.
“아들! 취업된 것 축하해. 널 위해 수고한 엄마 아빠 간식은 없니?”
“다음에 월급 받으면 사 드릴게요.”
“월급 받음 당연한 거 아니니? 네 머릿속에는 온통 맹이밖에 없구나.”
“왜 그래요? 엄마는 마음대로 사 드시면 되잖아요. 맹이는 사다 주지 않음 못 먹잖아요.”
“그래 내가 무슨 말을 하겠니. 어서 씻고 밥이나 처드세요 아드님.”
맹이는 남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다. 자라면서 보니 미니 푸들의 형체는 사라지고 중형 강아지로 6∼7kg까지 성장해 미용 비용도 만만찮았다. 그러는 동안 아들은 회사 근처 오피스텔을 얻어 자취를 했다. 그런데 자기가 책임진다던 맹이는 간단한 이삿짐 속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혼자 두면 우울증 걸린다며 못 데려가는 이유였다. 결국 씻기고 먹이고 산책까지 모두 엄마의 몫이 되었다.
그런 사이 딸도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판교에 있는 광고 디자인 회사에 입사를 했다. 그때부터 남매는 ‘펫 팸족(pet fam族)’이 되었다. 강아지 샵을 방불케 하는 집엔 부딪치는 맹이 물건을 엄마 아빠는 신경질적으로 휙 걷어차며 다녔다.
2014년 10월, 잘못 먹은 것도 없는데 2∼3일 전부터 맹이가 구토와 설사를 하기 시작하더니 멈추지 않았다. 모레쯤 아들이 집에 올 텐데 그때 알게 되면 잔소리할 것 같아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반차를 내고 쏜살같이 달려와 카시트에 맹이를 앉혀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간 맹이는 피검사를 하고 링거를 맞았다며 아들은 울상이었다. 검사 결과는 장염이라며 약을 받아 집으로 왔다. 집에 오니 아빠는 언제 술을 마셨는지 취해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친놈, 돈이 썩어서 개새끼 설사한다고 병원 데리고 가! 저 개새끼 당장 갖다 버려!”
“아빠, 술 드셨으면 주무세요! 왜 맹이한테 주사예요.”
“이놈아! 아빠 마음을 알기나 해? 가라는 장가는 안 가고 뭐 하는 짓이야!”
“결혼은 천천히 할 거라고요.”
그런 아들을 향해 엄마가 물었다.
“대현아, 저건 뭐니? 못 보던 것 같은데. 목걸이 새로 샀니?”
“아, 이거요? 반려동물 키우려면 등록을 하는데 제가 그동안 시간이 없어 못 했는데 오늘 병원 간 김에 했어요.”
“세상에, 무슨 그런 법도 있다니? 돈 주고 하는 거니?”
“아니에요. 홍보기간이라 정부에서 무료로 해 줘요. 요 속에 우리 맹이 정보가 다 들어 있어요. 잃어버리면 바로 주인이 누구인지 알죠. 참! 엄마, 맹이가 장이 안 좋다고 해서 유산균 사 왔어요. 하루에 한 포씩 먹이면 돼요.”
“아들, 이제 맹이한테 돈 그만 쓰고 장가 갈 돈 모아라. 결혼을 해야 아빠가 술을 안 마시지. 손주 있는 친구들이 부럽단다.”
“천천히 제가 알아서 할게요.”
“지금 네 나이를 알고 그러니?”
‘천천히 제가 알아서’ 한다던 아들의 결혼은 물 건너간 지 오래라 결국 딸이 먼저 결혼을 했다. 사위는 대기업에 다니며 여유 있는 가정의 장남이었다. 딸이 결혼하자 김칫국부터 마시는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행 다녀온 딸 부부는 부모 앞에서 자신들은 딩크족으로 살 거라며 선언을 했다. 사돈께는 결혼 전에 승낙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위가 정관 수술까지 했다며 개선장군처럼 말하는 딸 부부를 패대기치고 싶었던 걸 참았다.
“여보, 우리가 살아서 손자 한번 안아볼까?”
“당신도 마음 비워요. 자기들 취미생활 하면서 저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 점점 살기 힘드니 저는 딩크족도 괜찮을 것 같은데?”
“당신이 그러니까 애들이 더 기가 살아 저런다고. 나는 김 씨가 손주 자랑할 때 제일 부러워. 내가 그 양반보다 못한 게 뭐가 있어?”
“그래도 대현이가 있잖아요.”
“허허허, 대현이 걔는 장가 갈 생각 없는 애야. 맹이한테 올인하고 살고 있는 거 안 보여? 우리야 다 살았지만 앞으로 세상이 큰일이지. 어느 통계에서 보니 우리나라가 제일 먼저 없어질 나라라고 하더라고. 반려동물도 돈이 적게 드는 게 아니던데. 모두들 자식 낳아 최고로 키우려 하다 보니 그게 문제인 게야.”
딸 수현이는 시츄종인 ‘두부’를 키우면서 취미활동과 여가생활을 즐기며 여유롭게 살았다. 부부는 해외여행 갈 때는 강아지 호텔에 두부를 맡기고, 캠핑을 갈 때는 데리고 다녔다. 그러면서 출근할 때 강아지를 ‘개린이집(강아지 어린이집)’에 맡겼다. 하원은 누구든지 일찍 퇴근하는 사람이 맡았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난 후 아빠는 더욱 술에 의존하며 살았다. 만취해 집에 오는 날은, “여보, 수현이 돈은 가짜 돈인가? 아무리 돈을 잘 번다고 해도 어떻게 강아지한테 한 달에 1∼2백만 원을 쓰냐 말이야. 개 팔자가 나보다 낫다, 나보다. 하하하.” 하며 실성한 듯 웃었다.
아빠는 고주망태로 집에 들어와 잤지만 아침 기상은 변함없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를 위해 엄마는 콩나물과 명태를 넣고 달걀 하나를 풀어 얼큰하게 해장국을 끓여 같이 먹었다. 그리고 맹이를 데리고 아빠와 동네 산책을 나갔다. 엊그제 추석이 지난 탓인지 날씨는 가을 느낌이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했다. 도로의 은행잎은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고 가로수들도 색동옷으로 단장하고 있는 9월 끝자락이다. 지나가던 아이들이 인사를 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니 아빠가 한마디 했다.
“당신, 이 동네 유지구먼.”
“맹이 덕이지. 저 봐요 다들 맹이가 귀엽다고 저러는 거잖아.”
“그러게. 우리도 저런 손자 하나 있음 원이 없겠다.”
“대현이가 손자 안겨 줄 거야. 걔는 딩크족은 아닌 것 같더라고.”
“당신은 아직도 기대를 해? 걔는 독신주의자라니까.”
“무슨 소리해? 대현이는 결혼할 거야.”
“모르겠다. 벌써 대현이 나이가 마흔인가?”
“요즘 다들 늦게 가잖아. 똑똑한 애니 기다려 봐요. 여보, 우리 저기 앉았다 갈까?”
부부는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엄마도 이제 일흔에 접어드니 조금씩 힘이 들었다. 아빠는 의자에 앉으려는 맹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하하, 요놈 자기가 사람인 줄 아나 봐. 여기는 사람들이 앉아 쉬는 곳이야. 이놈도 늙으니 털이 회색으로 변하는군. 어? 근데 이 눈 좀 봐. 또 결막염인가?”
“글쎄요? 나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잘못 봤나? 맹아, 아프지 마. 아빠는 절대 병원에 안 데리고 갈 거다.”
“호호호, 당신이 언제 데리고 가고 그런 말을 해야 맹이가 겁을 먹지. 당신은 아직도 맹이가 쓰는 돈이 아까워요?”
“애들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유모차에 포대기는 왜 사 와? 며칠 산책 안 시키면 죽어? 진짜 한심해.”
“맞아, 그건 너무 오버했어요. 침대 위에서 떨어져 골절상 입은 거 가지고 그 난리법석을 떠는데…. 그런데 강아지 계단은 잘 산 것 같아. 두 개나 사서 문제지.”
“하하하, 당신도 닮아가고 있으니 조심해.”
아들은 주말마다 맹이 먹거리를 사 갖고 집에 왔다. 그날도 주말이라 아침 일찍 집에 와서는 맹이를 데리고 동물카페에 간다며 나가더니 10여 분 만에 맹이를 안고 들어왔다.
“벌써 왔어? 그런데 왜 안고 들어와?”
“엄마, 맹이 오른쪽 눈 좀 봐요. 이상하지 않아요? 내일 제가 좀 바빠서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그런데요. 엄마가 얘 데리고 병원 좀 갔다 오세요. 제 카드 드릴게요.”
“별것 아닐 거야.”
“그래도 병원 갔다 오셔서 저한테 전화 주세요.”
“알았어. 요즘 너희 아빠는 어디서 뭘 하시는지 나가시면 함흥차사다. 술은 왜 그리 마시는지. 너는 절대 술 입에도 대지 마.”
“엄마가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씀하신 덕에 저는 제 몸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하하하.”
아들은 유쾌하게 웃더니 갑자기 약속이 있다며 카드를 엄마 손에 쥐어 주고 “엄마, 맹이 부탁드려요.” 하고는 재킷을 챙겨서 집을 나갔다.
요즘 아빠의 회로가 끊어졌는지 외출하면 캄캄 무소식이다. 그래도 오늘은 차를 지하 주차장에 두고 나갔으니 잠은 잘 수 있었다. 얼마나 잤을까? 막 잠이 든 것 같은데 전화벨이 울려 반사적으로 스프링에 튀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새벽 2시 25분, 전화기를 확인하는 순간 낯선 번호에 몸에서 솜털이 돋았다. ‘아, 뭔 일이 있구나’ 직감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이봉식 씨 아내분 되십니까?”
“예, 그런데….”
“예 저어, 남편분이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지금 평촌 S병원 응급실로 와 주셔야 하겠습니다.”
“예엣, 많이 다쳤나요?”
“일단 빨리 와 주세요.”
이 무슨 날벼락인가? 앞이 캄캄해 뭘 챙겨 가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눈앞에 보이는 차 키를 들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운전석에 앉아 키를 꽂으려는 손이 덜덜덜 떨렸다. 사시나무 같은 손으로 키를 꽂을 수 없어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오늘따라 영업용 택시들은 파업을 하는지 택시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제야 아들이 생각났다. 아들한테 전화를 하자 택시를 잡아 주겠다며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바들바들 떨며 기다리고 있는데 “아주머니! 택시 불렀어요?” 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딸한테 전화를 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없다.
“엄마, 엄마가 정신 차려야지. 엄마, 나 지금 가는 중이니 정신 차려. 곧 오빠 도착할 거야. 흑흑흑.”
병원에 도착해 내릴 생각도 않고 멍한 엄마를 같은 연배의 택시기사분이 도와주셨다. 기사분은 엄마를 부축해 응급실로 가시면서 엄마 발을 보시며 말했다.
“아주머니, 신발을 한쪽만 신고 오셨네요. 아이구 이걸 어쩌나. 양말도 안 신고 옷도 얕으신데….”
엄마는 그제야 자신의 차림을 봤다. 집에서 입던 극세사 잠옷 위에 가디건 하나 걸치고 바지는 잠옷바지 상태였다. 떨고 있는 엄마를 응급실 앞 의자에 앉혔다.
“아주머니, 아드님 오시면 같이 들어가세요. 여기 계시면 아드님이나 따님이 오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막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데 응급실에서 나오던 아들은 “엄마!” 하고 달려왔다. 아들은 엄마에게 가까이 오더니 엄마를 와락 끌어안고 오열했다.
“아빠 수술하셨니? 많이 다쳤어?”
“흑흑흑, 엄마∼.”
“비켜, 아빠 어디 계시니? 어디…?”
아들 품을 벗어나려고 발광하고 있을 때 딸과 사위가 뛰어 들어왔다.
“오빠, 아빠는?”
“수현아, 아빠가…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어. 흑흑흑.”
“아니야! 아니야 오빠, 거짓말이라고 해. 왜 우리 아빠가 죽어? 왜?”
그때 “이봉식 씨 유족분 어디 계세요?” 하는 말에 엄마와 남매는 흰 천을 덮고 나오는 침대로 달려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천을 걷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범벅이 된 아빠가 누워 있었다.
“여보! 대현이 아빠, 이게 무슨 일이야! 왜 이래? 눈 떠 봐, 흑흑흑.”
“아빠, 아빠!”
“유족분, 영안실로 모시겠습니다. 저 따라오세요.”
장례식은 3일장으로 했지만 장지 문제로 남매와 의견 충돌이 생겼다. 엄마는 평소에 아빠랑 생각해 놓은 곳이 있었다. 주인과도 아는 사이라 구두 계약하고 아빠의 유골을 안치하고 싶었다. 그러나 남매는 납골당에 모시자는 쪽이었다. 결국 남매의 뜻에 따라 주변에 있는 납골당에 아빠의 유골을 안치했다. 그렇게 아빠는 2021년 9월 27일, 뺑소니차에 치여 일흔셋에 한 줌의 재가 되어 작은 항아리 속에서 밝은 세상 볼 날을 기다리고 있다.
큰일을 치르고 집에 오니 맹이가 빙글빙글 돌면서 격하게 맞아주었다. 딸은 그런 맹이를 아기처럼 번쩍 안아 들고 뽀뽀 세례를 하더니 갑자기 심각해졌다.
“오빠, 맹이 눈이 이상한데? 이 봐, 병원 가야 할 것 같아.”
“어디 봐. 그러네. 빨리 병원 가야겠다. 매부, 차 좀 대기시켜 줄래?”
“야! 지금이 어느 땐데 개새끼 갖고 야단이니?”
“엄마, 왜 그래요? 갑자기 아빠가 돌아가셔서 얘가 치료 기회를 놓친 거잖아요. 이거 좀 보세요.”
하더니 맹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동안 옆집에서 맹이를 돌봐 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도 하기 전에 호들갑스럽게 병원으로 향하는 남매를 보니 한심했다. 그러나 나갈 때 슬쩍 보니 동공이 뿌옇게 튀어나온 게 어디 이상은 있어 보이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엄마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고, 하긴 엄마도 아직은 애들 아빠의 부재가 실감나지 않았다.
땅거미가 내리는데도 남매와 사위는 귀가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거실에 불을 켰다. 그때 남매와 사위는 기가 푹 죽어 들어왔다.
“맹이는 어따 두고 너희만 들어오니?”
“엄마, 맹이가 녹내장이래. 지금 안압이 높아 밤사이 어떻게 될지 몰라 입원시켰어. 낼 응급으로 안구 적출 수술을 해야 한대. 노견이고 상태가 안 좋아 수술 후 입원을 며칠 하면서 관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어.”
“지금 너희가 제정신이니? 입원비가 얼마나 나오는지 알긴 해? 입원 수술까지 하려면 적어도 4∼5백만 원은 깨져.”
“그래도 어떻게 해요. 그냥 두면 고통스럽게 죽는다는데. 저희 돈으로 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엄마, 오빠랑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순간 영혼이 도망간 엄마는 식탁 위에 있는 과일 바구니와 화장지를 마구잡이로 던졌다.
“이 자식들아! 너희 아빠 마지막 가는 길에는 어떻게 했니? 고급 하면 시간 오래 끈다며 싼 것으로 하자고 했지?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이니 보통으로는 해 드리자니 너희들 뭐랬어? 화장할 건데 낭비라고 대현이 너 그 뚫린 입으로 말했잖아!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너희는 누구 자식이야! 개자식이야? 이제 보니 개자식이 맞구나. 엄마는 사람 자식으로 키웠는데, 개자식을 키웠구나, 개자식을!”
“엄마, 왜 그래? 맹이는 생명이 붙어 있잖아, 살려야지.”
“엄마, 말 못하는 동물하고 같아요. 정말 왜 이러세요? 엄마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저희도 미치겠다고요!”
버럭 소리를 지르는 아들의 말은 비수가 되어 엄마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었다. 남매는 이런 엄마를 개의치 않았다.
“오빠, 오늘 우리 집에 가서 자고 내일 병원으로 갈게. 그래도 내일 수술할 수 있어 다행이야.”
“신중한 수술인데 걱정이다.”
“형님, 잘 될 겁니다. 노견이라 안전하게 하기 위한 입원이니 회복은 빠를 겁니다.”
“그럼, 오빠 우리 내일 병원에서 만나. 엄마, 저희들 가요. 엄마도 좀 쉬세요.”
2021년 9월 30일, 맹이는 열다섯 살 노견으로 오른쪽 안구를 적출하는 수술을 했다. 3일 입원하고 집에 온 맹이는 잘 놀고 회복은 빨랐으나 몸이 전 같진 않았다. 1년 후에는 맹이의 왼쪽 눈마저 백내장이 생겼다.
맹이는 타래 화장지를 좋아했다. 숨겨 놓고 외출을 하지만 타래 화장지를 용케 찾아 거실을 눈꽃 세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점점 백내장도 심해 실명까지 되니 낯익은 집안이지만 부딪치기를 반복했다. 똥을 누고 밟아서 집안 여기저기 흔적을 남겨 엄마는 매일 청소와 빨래에 허리가 남아나지 않았다. 그러더니 치매까지 찾아왔다. 제발 데리고 가라고 아들한테 사정을 해도 혼자 두면 치매가 더 빨리 진행된다며 무시했다. 안락사시키자고 말을 하면 “어떻게 안락사를 시켜요” 하는 남매가 원망스러웠다.
2024년이 되니 맹이는 점점 쇠약해졌다. 밥은 먹지 않고 간식만 아주 조금씩 먹었다. 그런 맹이가 영양제 주사 효과인지 이제 밥을 조금씩 먹기 시작하자 아들은 포대기 거리를 하거나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시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맹이 일이라면 벌벌 떠는 아들이 못마땅했으나 방심하니 속은 편안했다.
그런 어느 주말 맹이가 갑자기 발작을 하면서 쉼을 헐떡이더니 몸을 떨었다. 그런 맹이를 보자 엄마는 몸이 먼저 움직였다. 달려가서 가슴을 쓸어 주며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아들은 반차를 내고 맹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으로 갔다. 응급실로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겼으나 정확한 원인을 알기 위해서 MRI 검사를 권했다. 130만 원 하는 검사를 그 자리에서 결제하는 아들을 보자 엄마는 아연실색하기만 했다. 그때 헉헉거리며 뛰어 오는 딸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넌 왜 왔어?”
“엄마는…. 내 동생이 아픈데 누나가 와야지. 오빠, 맹이는 어때? 괜찮아?”
“모르겠어, 지금 MRI 검사하는 중이야.”
이런저런 꼴락서니 보기 싫은 엄마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목돈을 들여서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노화란다. 엄마는 속으로 ‘꼴 좋다’며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맹이는 자리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다. 가끔씩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나오며 엄마를 보고 누워서 꼬리를 흔들었다. 요 며칠 너무 추워 산책을 못 나갔다.
‘내일 나가자. 아니 지금 포대기 해서 나갔다 올까?’
엄마는 맹이 산책시키는 일에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내일 나가기로 하고 잤다.
잠결에 ‘우∼우∼!’ 하며 늑대처럼 이상한 울음소리에 놀라 거실로 나왔다. 희미한 조명 아래 엄마를 본 맹이는 눈만 깜박거리며 힘없이 누워 꼬리를 흔들었다.
“맹아, 왜 그래? 이럴 때 맹이가 말을 한다면 좋겠다. 어디 아프다고 말해 봐. 맹아.”
맹이를 조심스레 일으키자 근육이 풀린 몸은 물커덩 축 처졌다. ‘아, 이제 가겠구나’ 하는 생각에 맹이를 안고 쓸어 주었다.
“맹아, 이제 하늘나라 가서 행복하게 살아. 그동안 엄마가 집어진다고 화낸 거 미안해.”
끼이잉∼ 끼이잉. 대답하는 듯 엄마의 얼굴을 보는 맹이의 눈에는 반짝거리는 수정으로 촉촉했다. 숨이 빨라졌다. 예전하고 달랐다. 엄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남매에게 전화를 했다. 출근 준비를 하던 아들은 초스피드로 운전해 본가로 왔다. 언제부터 울었는지 아들은 눈이 충혈된 상태로 맹이를 안고 서럽게 울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아들의 모습에 엄마도 눈물을 훔쳤다.
“맹아, 그동안 고마웠어. 사랑해. 형이 우리 맹이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편안히 잘 가. 흑흑흑.”
“엄마, 맹이는? 오빠, 맹이, 맹이 이리 줘.”
딸 부부는 언제 들어왔는지, 딸은 눈물범벅이 되어 맹이를 안았다. 조금 후 딸은 머리를 치켜들더니 비명을 질렀다.
“안돼! 맹아, 정신 차려 봐. 누나가 왔잖아? 흑흑흑, 안∼돼. 오빠, 맹이 죽었나 봐. 어떻게 해. 흑흑흑.”
2024년 11월 15일 오전 7시 40분 맹이는 18년 동안 우리에게 행복한 추억을 선물하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정신을 차린 남매는 회사에 월차를 내고 사전에 검색해 둔 집과 가까운 동물 장례식장에 문의를 했다. 마침 오후 3시에 자리가 있어 바로 예약을 했다. 장례식장에서 준비해 오라는 맹이의 물건들을 챙겼다. 분양받아 올 때부터 지금까지의 사진들을 전송하고 아들의 차를 타고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화장장은 산속이라 공기도 상쾌한 게 넓고 깨끗했다.
장례사와 상담을 하는데 엄마는 못 들어오게 하고 남매와 사위가 들어갔다. 기다리는 동안 1층부터 4층까지 장례식장 내부를 구경하는데 화려한 안치실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동물 납골당에 안치한 반려동물은 다양했다. 강아지부터 고양이·고슴도치·토끼·이구아나·햄스터 등등 엄마가 상상도 못 한 반려동물들이 즐비하게 안치되어 있었다. ‘우리 애들도 저렇게 안치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내심 걱정이 되었다. ‘세상에 죽어서도 사람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고 있구나’ 넋두리를 하고 있는데 엄마를 찾는 소리에 아래로 내려왔다.
“엄마, 맹이 염하는데 볼 거야? 우리 다 들어갈 건데.”
“그래, 같이 들어가자.”
장례사는 염을 하는데 예를 갖추더니 정숙하고도 엄숙하게 조심스럽게 오일을 발라 털을 깨끗하게 닦았다. 그리고 털을 빗질해 주고 발톱도 정리해 주었다. 입과 코 또 생식기를 소독 솜으로 닦고 새하얀 솜을 넣었다. 그리고 맹이 털을 조금씩 자르라며 가위와 비닐봉투를 주었다. 아들과 딸은 조심스레 맹이 털을 잘라 작은 비닐봉투에 넣었다. 수위를 입히고 앙증맞은 관에 넣어 자리를 옮겨 화덕에 들어가기 전 다시 한 번 유족들과 인사를 하는 시간을 주었다. 그 후 화덕을 비추는 대형 유리는 커튼으로 가렸다. 아들과 딸은 “안 돼!” 하며 소리쳤다. 엄마는 유족 대기실에 안치된 맹이 영정사진 앞에서 ‘맹아, 어제 산책 못 시켜줘서 미안해. 추워서 그랬는데 이렇게 가다니…’ 하고 애환의 눈물을 흘리는 동안 모니터에서 맹이의 어린 시절부터 오늘까지의 사진이 펼쳐졌다. 남매와 사위는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며 지난 추억을 나누고 있었다.
두 시간 후 맹이는 한 줌의 재가 되어 향나무 항아리에 넣어 보자기로 싸서 아들의 품에 인계되었다. 산에 뿌리고 가자는 엄마의 말에 아들은 자신의 집에 가져가 충분히 애도한 후에 뿌리겠단다.
2월이 지나도 맹이를 뿌리겠다는 말은 없었다. 그런 어느 날 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 어제 수현이랑 맹이 묻어 주고 왔어요.”
“묻다니? 아무 데나 뿌려도 될 텐데?”
“어떻게 아무 데나 뿌려요. 제 땅에 묻어요.”
“아니, 니가 땅이 어디 있다고?”
“우리 회사 직원이 자기 야산을 소개해 가서 보니 야산이 아니고 밭이더라고요. 여기서도 가까운 송산면이에요. 남향인데 바다도 보이고 정말 좋아요. 다음에 엄마 같이 가 봐요.”
아들은 얼마나 만족했는지 싱글벙글 아주 신이 났다.
“미친놈, 드디어 우리 아들이 미쳤구나, 미쳤어!”
“엄마, 또 왜 그래요? 맹이는 우리 가족이잖아요.”
“야 이놈아! 아빠는? 아빠는 남이야!”
“겨우 7평이에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폰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그래, 내 아들은 미쳤어 미친 거야’ 중얼거리며 베란다로 나왔다. 달리는 자동차를 바라보다가 창문을 활짝 열자 매서운 바람이 가슴을 후련하게 치고 들어왔다. 순간 알 수 없는 다발적인 감정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래, 때론 울음이 약보다 더 좋은 약이 될 때가 있지. 울자, 속이 후련하게 울자.’
엄마 눈에서는 서러움의 눈물인지 행복의 눈물인지 멈춤 기능이 상실된 지 이미 오래였다,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