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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사진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영래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여름호 2025년 6월 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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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들른 오라버니 댁…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 코끝이 싸하다.
“아유, 이게 무슨 냄새지?”
얼굴을 찌푸리며 앞을 보니 평상에 오라버니가 오도카니 앉아 있다. 
“언니는요?”
오라버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 큰방을 가리킨다.
“언니 좋아하는 거 가져왔어요.”
곶감이 든 쇼핑백을 들고 방문 열다 깜짝 놀라 주춤한다. 소복한 올케 언니가 제사상을 차려 놓고 아이들과 그 앞에서 촛불과 향을 피우고 있다. 영정사진은 전남편의 얼굴이 생전에 그래 왔듯이 어두워 보인다.
얼른 쇼핑백을 놓고 방문을 닫은 그녀는 다짜고짜 오라버니에게 왜 그렇게 사느냐고 타박한다. 오라버니는 쓴웃음을 지은 채 시선을 피한다. 무기력한 모습에 맥이 탁 풀린다.
오라버니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속이 터질 지경이다. 멀쩡히 살고 있던 집을 팔고 재혼녀가 사는 종갓집으로 들어가다니…. 지금 오라버니의 삶이 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엄 교수는 한 달에 두 번 수도권 소재 여학교를 방문하여 특강 겸 ○○학과 학생 모집을 홍보하고 있다. 풍길대학 **부장 직책을 맡고는 있지만 사립대학이다 보니 일종의 마케팅도 겸해야 했다.
수도권엔 언니, 오라버니, 남동생이 살고 있으며, 여학교 방문 그리고 요양원 탐방을 마치면 식당 운영하는 언니 집에도 다녀온다. 요양원 방문 때 지참은 곶감이 필수다. 곶감은 어린아이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이가 없는 노인들도 좋아하는 간식거리다. 오늘은 한 요양원에서 남은 곶감을 들고 오라버니가 어찌 사는지 방문했다가 간담이 서늘한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후남편을 곁에 두고 전남편 제사 지내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돌아서는 그녀의 발걸음이 매우 무겁다.
풍길리 주택 앞에 차를 세워 놓고 안으로 들어섰다. 장시간 운전했더니 몸이 무겁고 고개가 뻣뻣하다. 한 번 핸들 잡으면 종착지까지 무정차 질주… 귀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난다. 집 안이 너무나 조용하다. 현관에 있어야 할 아롱이가 보이지 않는다. 형부가 아롱이와 산책하러 하천에 나간 것 같다. 하천은 자전거 도로도 있고 산책로도 있다. 한 바퀴 돌고 오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바람이 불면서 느티나무잎이 미끄러지듯 마당가로 쓸려 간다. 낙엽 스치는 소리가 스산하게 들린다. 그 옆 소각장 굴뚝은 곧 연기라도 뿜어낼 듯 우뚝 서 있다.
언니가 챙겨 준 김치, 깍두기, 파김치 등 밑반찬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었다. 바리바리 싸 준 반찬이 한 짐이다. 물론 엄 교수의 몫은 따로 있다. 그 좋아한다는 물김치가 큰 플라스틱 통에 가득 담겨 있다.
하천 근처 주택은 그녀가 풍길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물색하던 중 매입한 농가다. 텃밭이 700평이나 딸려 있다. 퇴직하게 되면 요양원을 설립할 요량으로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매입해 뒀다. 쉽지 않은 주택 매입 결정이었다. 돈이 모자라 3억이나 은행 대출 내서 보탰다. 형부에게 잠시 관리해 달라 부탁했더니 지금은 아예 살림살이를 일부 들여와 거주하고 있다.
굳게 닫힌 방문을 열자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형부가 사용하는 방이다. 방에 들어와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지 싶다.
“아유, 맹씨! 우리 언니 고생 좀 안 시키고 사시지, 왜 이러고 사나∼ 왜 이러고 사나∼.”
방에 들어서며 콧노래 부르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맹씨’라고 부른 건 형부의 이름 ‘맹공’이라는 이름 첫 자에서 따온 호칭이다. 면전에선 형부라고 부르지만 없는 데서는 ‘맹씨’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이때 들려오는 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귀청을 때렸다.
“그래도 우리 아들은 착혀! 그래도 우리 아들은 착혀! 그래도 우리 아들은 착혀!”
연거푸 세 번이나 나이 많은 할머니의 목소리에 놀라 앞을 보니 책상에 큰 사진이 든 액자가 놓여 있다. 고집깨나 있어 보이는 할머니의 얼굴은 유리 끼운 액자에서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가만 보니 형부의 모친 사진이다. 지난번 돌아가시자 조문 가서 뵙던 그 영정사진…. 장례 치른 지 두어 달은 지났을까? 그녀는 사진이 안사돈, 즉 형부의 모친이라는 걸 알고 등짝이 오싹했다.
형부의 모친은 얼마 전 49재를 지냈었다. 그때 사용했던 영정사진이 틀림없다. 조문 갔을 때 실제 모습과는 훨씬 달라 보인다고 했더니 20여 년 전 경로당에서 찍은 거라는 말을 형부에게서 들었다. 오래된 사진이지만 모친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액자를 늘 곁에 두고 계셔서 장례식 때 모셨노라고 했다.
환청 아닌 실제 음성처럼 영정사진에서 흘러나오자 얼른 돈 봉투를 책상에 놓고 도망치듯 그 방을 나오고 말았다. 봉투에는 집 관리비와 약간의 용돈이 들어 있는데 매달 내놓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형부가 영정사진을 집에 가져온 사연이 참 기막히다. 49재를 마치고 영정사진 처리 문제로 형제간에 어색한 분위기였다. 장남이 가져가는 게 옳지만 교회 목사라는 이유로 동생들더러 알아서 하라 했더니, 둘째 형도 마다하고 여동생은 또 여동생대로 출가외인이라는 이유로 영정사진을 가져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형부가 가져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정사진 기피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유품 정리할 때 문갑 서랍 안에서 통장 한 묶음이 나왔다. 먼저 보려고 옥신각신하며 통장을 들춰 본 4남매는 머쓱한 채 돌아섰다. 유산 상속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빈 통장과 영정사진으로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던 형제간은 그 뒤론 별 내왕도 하지 않았다. 공직자였던 아버지가 해외 출장 중에 여객기 추락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혹시 그때 나온 보상금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을까? 사업자금이 모자라 손을 내밀었던 형부는 ‘너희들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무슨 돈이 있느냐’라는 노기 띤 어머니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예부터 영정사진은 49재 지내고 나면 태워 버리고 집 안에 들여놓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일부 가정은 영정사진을 집 안에 들여놓고 제사 때마다 내놓기도 한다.
대학 숙소로 돌아온 그녀는 컴퓨터 앞에 앉아 출장 복명서를 작성했다. 학과 수업이 없는 날 출장을 다녀와 워드 작업이 끝나면 성취감이랄까? 안도감이랄까? 답답했던 마음은 한결 홀가분해진다.
“우리 아롱이도 천국 가야지?”
형부의 반려견 애착은 누구도 못 말린다. “뽀뽀” 하고 입을 삐쭉 내밀면 아롱이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 살짝 입맞춤한다. 이건 참 목불인견이다. 개를 침대에 재우기도 하고 일요일이면 교회에 데리고 가서 같이 예배를 보기도 한다. 풍길리로 전입하자마자 개와 함께 교회에 갔는데, 처음엔 담임목사가 펄쩍 뛰며 안 된다 했다. 그러면 본인도 교회에 나오지 않겠다고 하자 한 사람의 신도가 아쉬운 판에 겨우 교인들의 동의를 얻어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젠 찬송가를 부를 때 개도 합창을 하는 등 교회의 한 신도가 되었다. 이걸로 끝난 게 아니다. 반려견이 있는 다른 신도들도 목줄에 십자가를 달고 오는 바람에 풍길교회 예배당엔 사람 반, 개 반 가득 차게 되었다. 목사님은 사람만 천국 가려 하지 말고 반려견도 같이 천국 가자고 하며, 일정 기간 교회에 나오면 세례도 주었다. 따라서 이 교회 최초로 세례를 받은 아롱이는 교인들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자리가 부족한 교회에서는 1부 예배와 2부 예배로 나누어 반려견을 분산 동석하게 하고, 반려견 관리에 따른 예산을 증액하고 있다. 부족한 예산은 특별 헌금으로 충당했다. 종교계는 연일 찬반론으로 시끄럽다. 물론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절벽으로 교회가 문 닫게 생겼으니 반려견도 그 자리를 메꾸며 천국 가야 한다는 말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반려견이 상전이다’ 이런 말이 돌고 있다. 집안에 반려견 사진을 걸어 놓고 제사까지 지내는 가정이 늘고 있으니 지나친 말은 아닌 것 같다. 바야흐로 반려견 새 시대가 활짝 열린 것만은 틀림없다.
언니는 수도권 시내에서 월세로 식당을 그날그날 운영하고 있다. 보조할 사람을 따로 두기엔 영세한 식당이라 혼자서 꾸려 나가야만 했다. 언니가 힘들게 일하는 데는 형부의 역할도 컸다. 형부는 개인 사업 하다 망해 먹고 일정한 직업이 없다 보니 언니가 식당일을 하게 되었다. 언니가 식솔 책임을 지고 있는 셈이다. 곁에서 거들어 주면 좀 나을 텐데 풍길리로 온 뒤론 나 몰라라 하고 있다. 하도 답답해서 집을 공인중개소에 내놓으려고까지 했다. 집이 없으면 언니가 있는 식당에 돌아갈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문제는 주택 관리다. 풍수에 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굳이 이런 곳에 집을 구하지 않았을 터이다. 마당이며 텃밭 심지어 집 안이 습하고 눅눅하다. 수맥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면 살을 에는 삭풍으로 밖에 나오기가 겁이 난다. 여름엔 사나운 모기나 온갖 벌레가 불빛에 모여들고 쥐도 있다. 심지어 마루 밑에 뱀이 똬리를 틀 때도 있다. 언젠가 신발 속에서 개구리가 튀어나와 기겁한 일도 있었다.
주변 상황은 더욱 큰 악재다. 담장 밖에는 컨테이너 여러 개가 있는데 그곳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생활하고 있다. 근처에 인력사무소가 있고 허접한 물건을 생산해 내는 공장도 있다. 집 주변에 펜스 설치했으나 높이가 낮아서 범죄에 노출되기 십상이고 시내와 조금 떨어져 있는 변두리라 치안이 불안한 구조다.
마당 주변에 있는 낙엽이나 쓰레기를 쓸어 모아 소각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이외에 손댈 곳이 하도 많다 보니 이제는 아예 자리 깔고 드러누웠다. 언니 혼자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도와줄 생각은 아예 없다. 불한당 같은 외노자 천지인데 그곳에 처제 혼자 집을 지키게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한편으론 그 이유가 참으로 고맙긴 하지만, 손이 부르트도록 일하는 언니 생각만 하면 몹시 화가 난다.
어느 날 풍길교회 목사 사모님이 그녀에게 차담을 요청해 와 사택 거실에서 마주 앉았다. 이 자리에서 사모님은 본드 박 목사를 소개해 주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 교수가 매주 교회에 나와서 찬양대를 지휘하거나 때로는 봉사활동도 앞장서서 하는 등 목사 사모로서 품격은 아주 훌륭하다는 것이다. 여기다 대학교수이고 부장 직위까지 있으니 금상첨화라며, 한번 만나 볼 것을 권했다. 엄 교수가 싱글인 게 너무너무 안타깝다는 말도 첨언했다.
본드 박은 신앙심이 아주 두터운데다 현재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참신교 본부 담임목사라는 것을 강조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본부인과 사별한 지 7년 되었고 나이도 60대 중반이지만, 아직도 국제 무대에서 선교사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선교활동 차 입국했는데 남양주 참신교회 목사의 도움으로 미국에 갈 때까지 국내에 머물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신교회는 미국 참신교 산하 지부 교회로 남양주시내 상가 건물 5층에 있는 작은 개척교회다. 이 교회를 설립할 때 본드 박 목사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지부 목사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참신교 본부 유학을 마치고 갓 목사 안수받은 이력이 있다. 따라서 본드 박 목사 곁에서 늘 비서처럼 따라붙으며 시중을 들고 있다. 나이는 엄 교수와 비슷하지만 근엄한 목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라 진실성은 없어 보였다.
본드 박 목사가 세계적인 선교 목사로 이름 나 있고 재산도 천문학적이라는 말에 솔깃했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그녀에게는 결혼이 먼 나라의 말처럼 들렸다. 돌싱인 오라버니가 몇 년 전 재혼했고, 언니도 이혼 후 식당을 전전하다가 현 남편과 재혼했다. 더구나 목사라는 남동생도 베트남 여자와 재혼했다. 베트남 여자와 연이 닿은 것은 전도하러 다문화 가정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다.
이렇게 복잡한 가정사에 발목이 잡혀 여태껏 독신으로 살고 있다. 그렇다고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본인도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오라버니처럼 언니처럼 아님, 동생처럼 이혼이라는 딱지가 붙을지도 모르기에 망설이며 지금껏 미뤄 왔을 뿐이다.
본드 박 목사라고? 세계에서 몇째 안 가는 저명한 목사에 천문학적 재산 소유자? 일단 궁금했다. 총각은 아니지만 그 정도의 품격을 갖춘 목사라면 구미가 당길 만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혼기를 놓친 지금 결혼이라니 좀 쑥스럽지만 말이다.
‘늘그막에 호강 한 번 해 봐?’
그렇다고 본드 박 목사를 일부러 찾아가서 만난 게 아니었다. 매달 두 번씩 수도권 여학교와 요양원 출장이 있는 날 남는 시간에 만나게 된 것이다.
“야, 너 요새 뭔 일 있냐?”
본드 박 목사를 만난 이후로 표정이 달라진 엄 교수에게 언니가 말했다. 엄 교수는 아직 언니에게 본드 박 목사를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지 않고 있었다. 좀 더 교제해 보고 그때 가서 확정되면 알려 주려고 했던 것인데 언니가 눈치챈 것 같다. 더 이상 감출 필요가 없다 생각되어 핸드폰을 꺼냈다.
본드 박 목사를 정면에서 찍은 사진은 셀카로 찍은 듯 얼굴 윤곽이 또렷하다. 약간 매부리코에다 얍삽한 눈매와 얇은 입술 그리고 얼굴 피부는 귤껍질처럼 오돌토돌한데 어두운 색을 띠고 있다. 언니는 화들짝 놀라며 “오매! 얼굴에 독기로 가득 차 있고, 집요한 게 꼭 사기꾼 상이네! 이래서 관상은 과학이라 한다니까!”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하지만 엄 교수는 “사기꾼 상이라니! 그런 모욕적인 말을 하지 말라”며 화를 냈다. 그러자 언니는 더욱 언성을 높이며 “요즘 tv도 안 보느냐”며 ‘BMS 목사가 성폭행한 여성이 1만 명은 넘었을 거라’는 한 방송 매체의 보도 기사를 알려 주었다. 그녀는 어떻게 그런 사이비 목사와 견주느냐며 언니야말로 가짜 뉴스에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라고 받아쳤다.
“너 참 헛똑똑이다. 난, 식당 하면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두루 치른 경력자야. 내 말 허투루 듣지 말고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니 잘 새겨들어라”라고 언니는 아주 강하게 충고해 주었다.
그 후 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부 목사와 본드 박 목사, 엄 교수 셋이 남양주 시내 모 식당에서 만났다. 아 그런데! 목사 측에서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결혼하자고 서둔다.
이날은 목사 복장이 특이하다. 대한제국 군복처럼 생긴 상의에 왼쪽 가슴에는 십자가와 배지가 북한군 훈장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다. 참신교 목사만 입는 제복인 듯싶다. 이 자리에서 본드 박 목사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체류 마지막 달인 12월 한국에서 약식으로 혼례를 올리고, 내년 봄 미국에서 정식 결혼식을 하자. 본인의 하객은 1천여 명은 참석할 건데 그쪽에서는 하객이 얼마나 오겠냐”라고 물어본다.
엄 교수는 머뭇거리다 “가진 게 빚뿐이라 그거 해결하지 않고는 안 되겠다”라고 했다.
‘빚이라니? 아무리 지방대 교수라지만 빚이 얼마나 되기에?’라는 눈빛이다. 그러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대체 얼마나 되냐고 물어왔다. 그걸 해결해 주면 결혼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어 보였다.
엄 교수는 주저하지 않고 집 살 때 은행 대출 3억 있고 여기다 결혼해서 직장을 그만둘 때 잃게 되는 비용 즉 퇴직금과 연금 등 10억 이상인데 그걸 두고 어찌 결혼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몸이 달아오른 본드 박 목사는 무조건 그거 다 해결해 주겠다고 하며 미국에 본인 명의 저택이 있고 돈도 아주 많다고 강조했다. 돈이 많다고? 우선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덥석 물 수는 없었다.
별 반응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 본드 박 목사는 다음 선교활동으로 독일 갔다 와서 결혼 일정을 잡아 보자고 하며 한발 뒤로 물렸다. 그런데 마침 TV에서 트럼프 관련 뉴스가 나오자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트럼프와도 잘 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 선거 때 지원 연설도 해 줬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트럼프 일로 미국에 먼저 갔다 와야겠다며 즉석에서 계획을 번복했다.
여기에 더하여 “나의 말을 거역한 자 지금까지 100명이나 죽었다. 하 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본드 박을 따르지 않는 자는 반드시 그리 될지어다”라고 목소리를 한껏 깔며 강조했다. 은근히 겁주는 거였다. 그러나 엄 교수는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절대로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며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하나님은 자애로우신 분이시다. 독생자 예수님을 통하여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전할 정도로 인간을 사랑하신다. 만약 인간을 그렇게 벌한다면 그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일 거라고 아주 세게 받아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어찌 인간에게 혹독하게 벌을 주시겠는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고 조목조목 따지듯 말하자 노련한 본드 박 목사는 놀라 말문이 막힌다.
그런데 이때 핸드폰에서 신호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자는 ‘맹 씨’다. 숨 넘어가는 목소리로 아롱이 참변 소식을 알려 왔다. 아롱이와 산책하고 오던 길에 방금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목줄을 놓쳐 지나던 차에 치였다며 울먹이는 형부의 말에 멍때린 듯 앞을 바라보았다.
“거 봐요. 내 말을 거역하면 반드시 ‘그리 될지어다’라고 분명히 말했지요?”
목사의 말을 귓등으로 쳐내고 급히 풍길리로 달려갔다. 아롱이는 형부가 10년 전부터 기르던 검은 털을 가진 대형견이다. 산책을 하던 중 차도 건너에 같은 종의 암컷이 지나는 걸 보더니 기를 쓰며 뛰어갔는데 지나던 트럭에 치였다는 것이다.
장례 절차를 밟아 화장한 아롱이는 반려견 납골당에 안치하고 사진은 액자에 넣어 모친 영정사진 곁에 놨다. 우선 집 안에 뒀다가 49재 지낸 후 납골당에 갖다 놓을 예정이다.
엄 교수는 아롱이 장례를 치른 후 수도권에 왔다가 참신교회 기도실에서 본드 박 목사와 단둘이 마주 앉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본드 박 목사는 엄 교수에게 위로하는 차원에서 아롱이가 천국 가도록 특별 기도를 해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엄 교수는 그보다 먼저 사과부터 하라고 했다. 사과라니? 무슨 사과?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자 지난번 아롱이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목사님이 했던 말씀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며 재차 사과를 요구했다. 그제야 무슨 뜻인지 알았는지 정중하게 무릎을 꿇었다. 당황하며 그런 사과가 아니라고 말하려는데 두 손 모아 파리 앞발 비비듯 빌었다. 문득 언니의 전남편이 떠올랐다. 여자는 사흘에 한 번씩 매질해야 한다며 언니에게 엽기적인 폭행을 가했다. 참다 못한 언니가 자꾸 그러면 이혼하겠다고 하니까 무릎 꿇고 빌었다. 그래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반성문을 쓰고 사흘을 금식까지 했다. 결국 지속적인 가정폭력에 견디지 못하고 이혼하고 말았지만, 아무리 봐도 싸이코 기질이 있는 목사였다.
영어로 주기도문을 외우기에 나는 영어를 모르니 한국말로 하자고 하자 화를 벌컥 내며 교수가 영어도 모르냐고 면박하기도 했다. 어느 땐 방언으로 주기도문 할 때도 있는데 아랍인들이 종교 행사 때 괴성을 지르는 소리와도 같았다.
언니의 줄기찬 반대도 반대지만 본드 박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문이 가며 불신이 쌓이자 진짜 사이비 목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본드 박의 나쁜 버릇을 고치거나 절교할 방법을 찾는다. 고민하고 있던 터에 언니가 이런 일에는 ‘모 아니면 도’라며 한 가지 방법을 알려 준다. 안수기도할 때 본드 박의 머리를 잡고 “야! 네가 목사냐? 네가 목사면 나는 천사야!” 이렇게 하면 기겁하며 나가떨어질 거라고 한다. 여기다 보너스로 귀싸대기를 한 대 올려붙여 주면 더욱 큰 효과가 있을 거라고도 했다.
안수기도 받는 날이 다가오자 한참 고민했다. 하나님의 종인 목사님 머리를 잡고 흔들다니 그래도 괜찮은 걸까?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망설이다 언니 말대로 하기로 했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어 소주 반 병 마시고 나머지는 옷깃에 묻혀 술 냄새가 풀풀 나도록 했다. 코끝은 일부러 빨간 루주를 살짝 칠했다. 여기다 이따금 딸꾹질하니 영락없이 알코올 중독자처럼 보였다.
기도실에 들어가기 전 목양실에서 지부 목사와 본드 박 목사가 로마 황제가 마시던 차라며 내어놓았다.
‘황제 차?’
어쩐지 좀 떨떠름했다. 음료수에 마약을 타 먹여 못된 짓을 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하고 있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차 맛이 별로였다.
어둡고 침침한 기도실에서 마주 앉은 본드 박 목사는 성경책을 펴놓고 왼손으로 엄 교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어깨를 내려치면서 큰 소리로 “거듭날지어다!”로 시작하며 안수기도를 진행했다. 한 번 때릴 때마다 술 냄새가 확 풍겨 나왔다. 술 냄새에 더욱 과격해지는 목사였다. 이번엔 머리를 딱! 소리 나게 때렸다. 눈앞에서 전기 스파크가 나듯 퍼런 불빛이 번쩍 튀었다.
자칫하면 쓰러지겠구나, 생각한 엄 교수는 본드 박 목사의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그리고 “야, 네가 목사냐? 네가 목사면 나는 천사야! 수호천사라고!” 하며 있는 힘을 다해 두상을 흔들었다.
“오, 주여! 어린 양을 살펴주옵소서!”
밖에 있던 지부 목사는 기도실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고 뛰어들었다.
며칠 후 학교 수업 중에 본드 박 목사가 구리 한양대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남양주시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 하는데 그곳에서 설교하다가 갑자기 급성 맹장염으로 쓰러져 긴급 수술받고 지금은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구리 한양대병원으로 달려갔다. 지난번 일로 큰 부담을 안고 있는 데다 긴급 수술받고 입원해 있다는데 외면할 수는 없었다. 창백한 얼굴을 본 엄 교수는 안수기도할 때 본인이 했던 행동이 과했다는 생각이 들어 울컥한 마음을 겨우 삼켰다.
면회엔 엄 교수만 온 게 아니었다. 참신교회 신도들도 왔는데 그중 한 젊은 여신도는 목사 손을 양손으로 꼭 잡더니 퇴원하시면 완전히 나을 때까지 회복식을 해 드리겠다며 울먹였다. 한정식 및 국제요리사 자격증이 있고 로얄호텔 요리사로 십수 년 근무한 경력이 있단다. 남편과 아이들도 있지만 가사는 내버려두고 오로지 신앙심을 앞세워 목사를 신 모시듯 하는 신도였다.
본드 박 목사는 체류 기간 얼마를 남겨두고 미국에 가서 트럼프를 만나 10억 마련해서 다시 온다며 출국을 서둘렀다. 약속을 꼭 지킬 테니 한눈팔지 말라는 당부까지 했다. 안수기도에서 벌어진 엄 교수의 돌발 행동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듯 공항까지 배웅해 달라고 해서 동석했다. 지부 목사 전용 승용차 BMW 타고 교인들과 같이 배웅하러 공항으로 향했다. 어느 집사는 석별의 아쉬움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공항 대기석에는 각자 차량으로 배웅 나온 신도가 10여 명쯤 되었다. 그런데 한 젊은 여신도는 엄 교수가 사모님이 된다는 말에 부러워한다. 그리고 깍듯이 예우해 준다. 자기들끼리 그런 얘기가 돌았나 보다. 다음 기회에 미국 가면 거기서 좋은 사람 중매해 달라는 말도 한다. 그러면서 본드 박 목사에 밀착하며 캐리어를 대신 끌어주는 등 시중을 들었다. 마침 재채기하며 콧물이 나오자 지니고 있던 손수건으로 얼른 닦아준다. 아슬아슬하게 드러난 코딱지를 손톱으로 깔쪽깔쪽 떼어 내고 어깨 비듬도 세심하게 털어주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본 엄 교수는 ‘어휴, 닭살! 소오름’ 하는 표정을 지었다.
본드 박 목사를 보내놓고 여러 날이 지나자 어느 정도 안정감을 찾게 된 엄 교수는 영자신문 ‘더 크리스천’을 펴 보았다. 지면 한 부분에서 조지아주 한인회 한 언론사의 글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해외 선교 활동을 마친 본드 박 목사가 귀국하자마자 대형 산불로 집이 전소되는 불운한 일을 당했다. 사람이 타 죽지 않은 것만 해도 천운이다’는 기사에 아찔했다. 어쩐지 출국 후 전화가 없었는데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다니…. 동정심이 격하게 일다가 다음 글에 그만 실망하고 말았다.
‘한인회에서는 긴급히 모금 운동을 벌여 본드 박 목사에게 2천 달러를 전해 줬다. 온라인 모금 사이트인 ‘컴펀드미’에 본드 박 목사가 1만 달러 목표 금액으로 계좌를 오픈했는데, 이날 오후까지 3천 달러가 모금됐다.’
엄 교수는 눈을 비비고 다시 읽어 보았다. 영문 독해력은 어느 정도 기본은 있지만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 1만 달러라니? 우리나라 돈으로 1,400만 원 정도 아닌가? 재산이 천문학적이라는데 겨우 1만 달러 목표로 컴펀드미에? 더구나 사기꾼들이 거짓 후원 사례를 올려서 후원금을 사취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는 불순한 기부 사이트라는데 말이다.
잠시 주춤했던 폭풍 통화가 이루어졌다. 일단 엄 교수는 본드 박 목사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본드 박 목사는 엄 교수를 위해 1천만 원을 통장에 넣어 놨는데 방학 때 미국에 와서 찾아 쓰라고 한다. 전국을 돌며 관광시켜 주겠다고도 했다. 앵벌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컴펀드미에 모금한 돈으로? 주택이 전소되어 오갈 데 없을 텐데 어디서 거주하고 있는 걸까? 아무래도 석연찮다. 돈으로 환심을 사려는 그 목적이 무엇일까? 그러나 목사가 정말 엄 교수를 믿는다면 직접 계좌로 송금해 주면 될 걸 굳이 미국에 와서 찾아 쓰라는 건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몇 시간씩 목사와 통화하는 바람에 얼굴이 쏙 빠졌다. 한국과 미국은 밤낮이 다르기 때문인데 어디까지나 수면 부족이다. 초저녁에 통화를 하게 되면 새벽까지다. 거의 뜬눈으로 날샌다. 주로 하는 얘기는 돈이다. 넘어올 듯 말 듯하니까 어찌나 찐득거리며 말을 이어 가는지 좀처럼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가 없다.
“얼굴이 왜 그래? 너 무슨 일 있었니?”
오늘도 여학교 방문 홍보 일정을 마치고 식당에 들렀더니 언니가 대뜸 하는 말이다.
“그 사기꾼 때문이구먼. 그만 잊어버려!”
언니는 아마 본드 박 때문에 고민해서 그러는 거라 지레짐작을 했던 것 같다.
“아휴, 나 요즘 힘들어 죽겠어. 장마당 장사꾼도 아니고.”
엄 교수는 여학교 방문에 염증이 난 듯 얼굴을 심하게 찌푸렸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니? 참고 해내야지.”
혹시 다른 마음을 먹고 학교 때려치울까 봐 하는 말이었다.
언니는 이번에도 형부에게 줄 음식을 챙겼다. 아이스박스를 주며 어제 도축한 한우 고기도 있는데 내려가자마자 형부에게 전해 주라고 신신당부했다. 형부는 한우 생고기를 좋아하는데 앉은자리에서 한두 근 정도는 소금에 찍어 먹을 만큼 식욕이 왕성하다.
“이그, 그놈에 지극정성! 못 말려, 못 말려.”
언니에게 아무 도움도 안 되는 형부가 몹시 밉다. 빈둥빈둥 놀며 피둥피둥 맹꽁이처럼 살만 찌는 식충이…. 언니 골 빼먹는 인간이 아니고 무엇인가? 싸이코 같은 전남편과 뭐가 다르냐며 투덜댔다.
“그래도 네 형부는 근본이 착해요. 무엇보다 든든하거든?”
엄 교수는 어이없다는 듯 입을 다닥다닥 벌리다 닫다 하더니 아이스박스를 트렁크에 싣고 시동을 걸었다.
한참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핸드폰에서 신호음이 요란하다. 본드 박 목사에게서 온 거다. 고속 주행 중에 전화를 받을 수 없어 휴게소 나올 때까지 달렸다. 휴게소까지 10여 분인데 신호는 계속 이어졌다. 얼마나 끈질긴지 받을 때까지 걸려 온다. 갓길에 세워 놓고 전화를 받을 수도 없었다. 한번 통화하게 되면 보통 1시간은 기본이니까.
이번엔 127억으로 유혹한다. 어디서 그 돈이 들어오기로 했다고 한다. 그 돈으로 금광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요즘 시대에도 금광을 하나? 목사답지 않게 무슨 재물 욕심이 그리 많은지 종잡을 수 없다.
‘127억?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분명 허풍이 다분히 있는 목사다. 이젠 마음을 다잡고 정리해야겠다. 그런데 이어서 하는 말이 더욱 기가 차다. 문제는 초기 자금 10억이 있어야 한다며, 5억은 준비했는데 5억이 모자란단다. 결혼 전제 조건으로 10억 얘기했을 때 당장 해결해 줄 것처럼 하더니 이제 와 도대체 무슨 소린지 당최 모르겠다.
‘5억이라니? 돈이 아주 많다며?’
비로소 감을 잡은 엄 교수가 다음과 같은 말로 단칼에 잘라 버렸다.
“아유, 목사님 마음속엔 예수님이 없네요. 머릿속에 우동사리만 가득 찼어요. 제발 회개하시고 거듭나세요! 오, 할렐루야! 아멘!”
이렇게 쏘아붙인 후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본드 박 목사와는 완전히 결별하겠다는 핵 버튼을 눌러 버린 것이다.
‘이젠 평정심을 갖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자!’
비로소 제정신으로 돌아온 엄 교수는 천천히 차를 몰았다. 집 안엔 형부는 보이지 않고 어디선가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두리번거리며 방문을 열자 침대 위에서 고양이가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아니, 웬 고양이지? 문이 다 닫혀 있는데 어디로 들어왔을까?’
이상하다 생각하며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고 벽에 걸려 있는 파리채로 고양이를 밖으로 내보내려고 휘둘렀다. 그러나 고양이는 방 안을 맴돌 뿐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다. 내쫓으려는 엄 교수와 나가지 않으려는 고양이와의 한판 싸움이 벌어졌다.
“나가! 나가!”
야옹 야옹. 이때 고양이가 파리채를 피하며 책상 위로 뛰어오르다가 모셔놓은 영정사진과 부딪쳤다. 액자가 내동댕이치듯 방바닥에 떨어졌다. 충격으로 영정 리본과 고정핀이 빠지고 사진판과 유리가 분리되었다.
“아유, 이를 어째! 큰일 났네!”
천만다행히 유리는 깨지지 않았다. 분리된 액자를 조립하는데 영정 사진 안에 무언가 들어 있다.
“뭐지?”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공간을 가득 채운 스펀지 안에 막도장과 통장이 있다. 떨리는 손으로 통장을 펴보았다. S은행 통장이다. 예금주는 ‘양△△’이고 예금액은 1에 동그라미가 9개다. 그러면 모두 얼마야? 막도장 이름은 한글로 새겨져 있는데 역시 같은 이름이다.
“어머나!”
짝 벌어진 입이 닫히질 않는다.
야옹 야옹. 고양이는 여전히 밖으로 나가지 않고 엄 교수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내왔다. 그러고 보면 형부가 반려견 아롱이에 집착하다 사고로 곁을 떠나자 반려묘를 들여놓은 것 같다. 밖으로 내쫓아도 나가지 않는 걸 보면 길고양이는 아닌 듯싶고…. 그러잖아도 농가라 쥐가 많은 데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예금주는 누구일까? 혹시 언니 모르게 차명계좌로 만든 비밀통장?’
영정사진 액자를 원래대로 해놓고 일단 숙소로 돌아왔다.
‘언니는 알고 있을까?’
도저히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 예금주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해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언니에게 전화했다.
“양△△를 아냐고? 응. 형부 모친이야. 돌아가신 우리 시모라고. 그런데 뭣 땜시 그런데야?”
“아냐 아냐,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얼른 전화를 끊으려는데 언니의 말이 비수처럼 귓가에 꽂혔다. 
“참, 오늘이구먼! 영정사진 태운다는 날이!”
고인의 유품 정리할 때 빈 통장만 잔뜩 있었다는 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급히 형부에게 전화했지만 받지를 않는다. 지금쯤 영정사진 액자를 들고 소각장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허둥지둥 주차장으로 달려 나와 시동 걸며 그 사이에 별일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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