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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에서 하이퍼모더니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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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7월 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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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평 활동은 이상(李箱), 김춘수, 김수영 이런 시인들의 작품과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비평 활동 이전에 시 쓰는 일이 먼저였던 나에게 일찍이(고교 시절) 충격으로 다가왔던 엘리엇의 장시「황무지」, 사르뜨르의 소설「구토」, 이상의 시와 소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장편소설「의사 지바고」등이 문학에의 불을 지폈다.

중학교 시절 시골까지 밀려 든 소월 시집과 바이런·하이네의 시집, 톨스토이의 장편「부활」이나, 한국의 통속소설 등도 교과서 밖의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해석이나 평설이 없이도 이해가 된다고 생각되는 작품에는 가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전통적 서정이나 현실주의적 경향의 작품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 편이었다. 모더니즘이나 실존주의의 형이상학적 작품, 이른 바 재미없고 난해한 경향의 작품들에 매혹되는 성향이 강했다.

먼저 김춘수의 관념적 상징시와 무의미 시의 해석과 비평에 집중하였다.「김춘수 시의 현상학적 상징 미학」을 비롯하여「존재의 인식과 초월」「무의미 시의 응전 논리」「존재와 유토피아, 그 쓸쓸함의 거리」등은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쓴‘김춘수론’들이다. 이 중「존재와 유토피아, 그 쓸쓸함의 거리」는 1993년 2월 월간『시문학』의 대담 요청을 받아, 김춘수 시인이 서울 명일동에 사실 때 찾아뵙고 대담한 뒤, 『시문학』3월호에 대담문과 함께 발표한 김춘수 시론이다.

평론 등단 초기에, 김춘수와 쌍벽을 이룬 김수영의 시를 논평할 요량으로 쓴 글이「시는 칼인가 -민중시비판론서설」이었다. 그리고 해석상의 논란이 컸던 김수영의 시「풀」을 주제로 그간의 통설을 뒤엎는 「‘풀’의 구조와 시적 논리」를 발표하였고, 이 글은 그 뒤 박사학위 논문 「김수영 시 연구」에 포함되었다. 이「김수영 시 연구」는 비평집을 낼 때「도발적 상상력과 늘푼수의 미학」으로 개제(改題)하여, 김수영 시세계의 특성을 함축적으로 드러내 보여주었다.

이상론(李箱論)인「역설(逆說)의 논리와 미학」이후, 「민족성 비판과 문학」「시적 창조정신과 전통의식」「탈관념 시의 캐릭터 기호학」「멀티미디어 시대의 문학과 그 역할」「마이너스 현실의 메아리(김춘론)」 「도전과 응전의 해체적 상상력」「철학과 문학, 동서사상의 접점」「비유적 표현과 논리의 수반」「휴대전화 엄지족의 의사 소통법과 나랏말글」 「한국 문단의 통속화와 이념적 분파 넘어서기」「반복형 언술구조의 병적 징후들」「하이퍼모더니즘의 시대는 오는가」「모더니즘에서 하이퍼모더니즘까지 -모더니즘과『시문학』50년」,「민족 운동과 한용운, 그 노래의 힘」「한국 수필문학의 현재성과 발전 방향」「기후 변화와 환경 재앙 시대의 시적 대응」「율격과 시의 구조」등을 발표하여 왔다. 「율격과 시의 구조」는 2021년 한국문인협회의 전반기 한국문학인상 수상의 근거가 되었다. 앞의 평문들과 아울러 이용악 시의 리얼리즘적 전진과 친일 시, 월북 이후의 훼절 양상을 3부작으로 쓰고, 문덕수 함동선 김규화 성기조 김종희 안수환 고형렬 민윤기 임애월 시인 등등의 작품론을 발표하였다.

1917년 윤동주 시인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민윤기 시인이 기획한 윤동주론을 연재하기로 하고‘윤동주의 재발견’을 월간『시se』 (현,『월간시인』의전신)에 1월호부터 1년 가까이 발표하였다. 그 연재는 다음 해에『윤동주의 마음을 읽다』(스타북스)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월간 시문학사가 제정한‘시문학상’제37회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평론집으로 시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일이었다. 수상소감에서 말한 아래의 대목은 나의 문학관(文學觀), 나의 문학정신이 압축되어 있는 셈이다.

시문학상 시상 이래 처음으로 평론집(『윤동주의 마음을 읽다』)을 수상작으로 선정해 주신 시문학사와 심사위원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시와 평론을 심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시문학상은 문덕수 선생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어트가 말했듯이, 비평은 호흡과 같은 것으로, 언어의 취사선택, 첨삭과 수정, 구조의 조정, 리듬의 검토 등시 창작의 대부분은 비평적 활동입니다. 그러므로 시와 비평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권력에 아첨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시는 궁극적으로 절명시(絶命詩)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구의 한 지성은, 작가는 언어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인간적 책임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시는 전인격적 모험이요 투신이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신념입니다. 시 따로 인격 따로일 때, 이른바 친일시가 나오고 친정권적 시가 나오는 법입니다. 시 곧 인격, 인격 곧 시라는 시정신을 세우지 않고서는 시의 올바른 자리를 마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시로 표현되는 시정신은 시대의 자동경보기요, 진실을 위한 최후의 항체(抗體)로서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적잖은 이들이 친일의 굴절된 삶을 보여준 일제 강점 하에서 이육사, 한용운 등과 함께 윤동주는 늘 일제와 맞서 길항(拮抗)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때로 고뇌하며 서성거리기는 하였지만, 겨레의 독립자존에 대한 곧고 굳은 정신을 한 번도 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윤동주를 텍스트로 하여 이른바 순수시의 저항논리를 펼쳐 온 것입니다. 작두날 위에서 무서운 균형을 잡는 무당의 집중 같은 시정신은 무엇이 옳고 그른 지를 온몸으로 증거하는 가치관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정신의 날카로운 중용을 견지하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가장 큰 저항일 것입니다. 우리의 선비정신은 목에 칼을 받으면서도 자신〔정신〕을 지킨 저항논리의 한 전형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한 1년을 쉬고 나자 잡지계의 전설 민윤기 시인은 또다시‘재평가 시인론’연재를 제안해 왔다. 논의를 거쳐, 주목받지 못하여 묻혀 지거나 잊혀져 가는 시인, 혹은 편견과 왜곡으로 그릇 평가되거나 저평가된 시인들을 찾아서 재조명하기로 하였다. 2020년 1월호에 윤곤강론「어둠 속에서 타오른 저항의 불꽃」을 시작으로, 구자운 박인환 노천명 김관식 천상병 고석규 박석수 이세룡 김대규 김영태 신동문 마광수 등 열세 명의 시인 재평가론을 2년 가까운 기간에 걸쳐 연재하였다. 때로는 한 사람의 시인론을 1부와 2부로 나누어 발표한 까닭에 13개월이 훨씬 넘어갔던 것이다. 이 연재물은 곧바로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약간의 보완을 거쳐 내겠다는 나의 계획에 밀려 출간이 미뤄지고 있다.

이들 외에도 임홍재, 김만옥 등 재평가해야 할 시인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한편, 2004년부터‘문학과 도예’에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여, 전통 장작가마와 신개념의 무시유(無施釉) 장작 통가마 도예작가들을 탐방하고 그 작업 현장을 수없이 찾아 작업 과정을 체험하며, 문학과 도예의 접목에 관한 품평과 비평의 글을 써 왔다. 「신(神)의몫과요변(窯變)」「매혹의 자연유 수레질 찻그릇」「한 자유인의 문학적 상상력과 흙으로 빚은시」「우주적 상상력과 무위의 도자예술」「문학과 도예의 만남」「한국 도예의 전통과 도전」, 특집 대담「문학과 도예」(『시문학』이슈의 숲길)외 다수의 문학도예론을 문학지와 도예잡지에 발표하였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도자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일명 도자기 전쟁으로 일컬어지는 임짐왜란으로 조선의 명품 도자기 대부분이 일본에 약탈, 반출되고, 빼어난 도공들은 거의 일본으로 끌려가고 말았던 것이다. 일본은 그 조선도공들을 우대하여 도자기 대국으로 성장, 네덜란드와 연결 고리를 짓고 이른바 세라믹 로드를 개척하여 부강의 길을 걸었다. 인공위성에 필수적인 부품 세라믹을 개발한 것도 일본이다. 고려·조선의 명품 도자기 8할은 지금도 일본에 있다. 그 중 우리는‘막사발’(그건 잘못된 이름이다)이라며 예사롭지도 않게 여겼던 찻사발을 대거 반출해 간 일본은 70여 점의 명품 다완 가운데 석 점을 국보로 정하여 대덕사 깊고 깊은 금고에 보관하고 있다.

‘기자에몬 이도 다완’으로 불리는 이 찻사발은 비파(枇杷)색을 띠고 있는데, 그 형태와 질감, 굽으로 흘러내린 매화피가 어수룩하기 그지없다. 그 어수룩한 늘푼수의 미학은, 깔끔을 떠는 일본인들이 결코 넘볼 수 없는 경지인 것이다. 일본은 조선의 찻사발을 국보로 정해 놓고, 성(城)과도 바꿀 수 없는 천하의 명물로 숭배하고 있다. 일본은 남의 것을 가지고 가서 저러는데, 도대체 조선은 제작 기법을 글로 남기지도 않고, 거의 도공의 대가 끊어지다시피 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나로 하여금 도자예술에 몰입하게 하였다.

문경을 중심으로 도자기 명장이 전통의 명맥을 이어가고, 새로운 개념의 장작가마 도자예술을 개척하며 세계적 위상을 높이고 있는 작가들이 일천 년의 한국도자사(韓國陶瓷史)를 가로지르고 있어 다행이다.

문학과 도예는 언어와 흙이라는 매체가 다를 뿐, 구상과 제작 과정, 심지어 인간〔작가〕의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거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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