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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한국문인협회 로고 아이콘 추경희

시인·한국문인협회 이사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6월 6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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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빗질을 하는 주말 오후, 나는 집중하기 위해 어두운 공간을 찾아서 영화 한 편을 본다. 세 번째 보는 영화 <동주> 다. 볼 때마다 생각의 깊이가 더해져서 지루하지 않다. 영화가 끝나고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나는 창문을 열고 푸른 하늘을 본다. 하늘빛이 너무 곱다.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안고 윤동주 선생님을 뵈러간다.

추경희_ 선생님의 시「별 헤는 밤」은 늘 제 마음에 남아 있어요. 어디서든 접할 수 있었거든요. 라디오 방송뿐만 아니라, 공부라면 도망치던 오빠 책상 벽에도 붙어있었고, 제가 컴퓨터 워드 연습할 때도 예문으로 주어졌어요. 시의 의미를 알기도 전에 문장으로 익힌 시가 바로 「별 헤는 밤」이었어요. 그래서 시가 나중에는 눈에서 마음으로 쉽게 들어왔어요. 오늘 선생님의 시편 중에서 제가 좋아했던 시를 선정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윤동주_ 그럼,「별 헤는 밤」에 대한 배경설명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시를 쓸 당시는 어머니는 북간도에 계시고 나는 일본에 있다 보니 고향과 어머니는 그리움 그 자체였습니다. 어머니께 드리고 싶은 말들을 편안하게 웅얼거리듯 혼잣말처럼 쓴 글입니다. 마음에서 전해지는 소리라 편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추경희_ 제가 시를 짓기 시작하면서 시「별 헤는 밤」이 가슴에서 오래 기억되는 이유를 알았어요. 그것은 멋진 시어의 선택보다 시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추억을 이끌어 오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또 하나 어머니를 통해 시 속에서는 고향의 풍경, 친구들과 이웃의 안부, 비둘기 등 동물에 대한 사랑, 그리고 좋아하는 시인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윤동주_ 그렇습니다. 별 하나에 사랑, 쓸쓸함, 동경, 시 그리고 어머니, 거기에는 그리움과 걱정, 현실의 답답함과 위축된 자존심 등 별처럼 많은 사연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독자들은 각자의 생각과 상황에 따라 각자의 마음속에 다른 모양으로「별 헤는 밤」이 저장되었을 겁니다.

추경희_ 선생님의 시「서시」중에‘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의 행은 읽을 때마다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어요. 답답함과 간절함이 섞여 있어서 많은 생각과 여운을 남겨요. 선생님의 생애가 이 글 한 줄에 머물러 있는 듯 느껴져요.

윤동주_ 시는 보는 이마다 감동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를 통해 전해지는 메시지는 비슷합니다. 그 이유는 시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서시」는 1941년도 작품입니다. 시대적 상황이 말해주듯 하늘, 바람, 별을 통해 현실의 한계성과 좌절, 괴로움과 사랑이 표현되었고 내 의지가 허물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망을‘주어진 길’로 대신했습니다.

추경희_ 선생님의 단호함은‘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고 표출되었는데 저는 시를 읽고 난 후 감동은‘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에서 큰 울림이 있었어요.

윤동주_ 음,「서시」는 아득한 어둠이 세상 밖 풍경인 시대를 살면서 시라도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사랑을 말하고, 어떻게 희망이라는 마음을 시에 담았겠습니까? 괴로움과 곤함을 시로 승화시키며 희망이라는 별을 위해 노래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시인의 의지는 그냥 스쳐지나가야만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때는.추경희_ 선생님의「자화상」은 낯설면서도 가을날 푸른 하늘이 우물속에 가두어져 있다는 안타까움이 오랜 시간 가슴에 남았어요. 작품 속에 남아 있는 허탈함 때문인 것 같아요.

윤동주_ 저는 광활한 대지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울창한 숲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마음껏 외칠 수 있는 언덕이라면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사나이는‘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 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에서 알 수 있듯이 홀로 가서 찾아간 곳이 발걸음이 뜸한 우물, 너무 서글픕니다. 우물 속에는‘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쳐지고 파란 바람이 불고 있는 가을’인데 말입니다.

우물 속 풍경을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적인 일입니까?

추경희_ 선생님의「자화상」에는 한 사나이가 살고 있어요. 외면할 수도 없고, 미워할 수도 없는 사나이,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그 사나이는 시 속에서 스스로 그리운 사나이로 남네요.

윤동주_ 맞습니다. 그 사나이는 삶의 자존감입니다.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가지만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지듯’사나이는 삶의 무게이고 현실이고 내면에 있는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추경희_ 시 속에서 사나이는 가을이 담고 있는 풍요로움의 대비로 명암이 선명하게 느껴져 더욱 안쓰러워요.

윤동주_ 이미 사나이는 추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지난 시절의 그리움과 조국에 대한 희망찬 미래의 간절함이 우물 속에서 불고 있는 파란 바람이라면 추억으로 남게 될 현재 사나이는 암울함을 의미합니다.

추경희_ 선생님 시「참회록」은「자화상」과 느낌이 비슷해요. 「자화상」에서는 가두어진 우물이 있고, 「참회록」에서는 거울이 있어요, 그리고 사나이와 얼굴은 우물과 거울 속에서 낮달처럼 비추어져요. 사나이와 얼굴은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모두 홀로 있는 외로움에 대한 존재로 표현되고 있어요. 두 작품에 등장하는 우물과 거울은 무엇을 대변하고 있나요.

윤동주_「자화상」은 하늘, 달, 구름, 바람이 우물에서 유영하는 모습을 통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들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사나이를 추억이라는 매개체로 연결했다면, 「참회록」에서는 희미한 모습의 얼굴, 즉 부끄러운 모습을 거울이란 매개체를 통해 욕된 이름으로 역사에 남지 않기를 바라는 절실함을 표현했습니다. 거울 앞에서는 누구든 대신해서 설 수 없는 일입니다.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추경희_「자화상」에서 사나이가 추억의 그리움이라면, 「참회록」의 얼굴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윤동주_「참회록」의 얼굴은 당시의 참담함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았더라면 하는 후회와 죽음도 내 뜻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현실적 무력한 부끄러움 남기지 말자는 의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라고 화자는 말을 합니다.

추경희_「참회록」은 선생님께서 24세에 썼어요. 저희 세대는 진정한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시를 쓸 때의 심정을 단편적으로 표현한 부분은 어디인가요.

윤동주_ 음, 아마‘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입니다. 거울을 얼마나 오랜 시간 다듬지 못했으면 역사 속에 푸른 이끼가 생겼을까요?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영화 <동주>한 편이 준 사유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평소 사랑하는 시를 깊이 있게 마음에 담으면 감동은 배가 된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윤동주 선생님의 삶을 조금은 피동적으로 느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선생님을 만난 후 선생님의 작품에는 현실을 뛰어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매 순간 숨 쉬고 있었고 자연의 도식에서 오는 잔잔한 감성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배웠다. 신록이 아름다운 날, 오늘 나는 윤동주 선생님과의 가상인터뷰에서 느낀 감동을 글 한 줄에 담을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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