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6월 6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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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알카비 그는 아랍에미리트 왕족이라 했다. SS병원 19층 특실에 간병인 자격으로 찾아갔다. 간호사실에서 잠시 기다려줄 것을 당부했다. 무슬림 기도 시간에는 방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린 후 통역사로 보이는 예쁜 여성과 함께 병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일반 병실과는 달리 넓고 쾌적했으며 조망도 좋았다. 통역인으로부터 소개 받은 사람은 환자의 셋째부인의 큰아들이다. 나중에 스물여섯 살인 그의 동생으로부터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서른한 살 된 가장이었다.
기존의 간병인이 짐을 정리하고 병실을 나서는 순간 나는 간병인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 환자의 상태와 간병에 필요한 정보를 통역인과 담당 간호사로부터 전해 들었다. 특히 특별한 신분이기에 간병에 만전을 기해줄 것과 코란이 녹음된 기도문을 끊임없이 들려줄 것을 상기시켰다.
환자의 상태는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접촉에 각별히 유의해야만 한다고 했다. 환자의 상태는 꼼짝할 수도 없으며 의사 표시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혈관을 통해 영양제를 공급하고 목에 구멍을 뚫은 후 기도를 통해 가래를 빼내기 위해 밤낮으로 석션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게다가 매일같이 운동치료를 위해 지하에 있는 치료실까지 이동을 해야만 했다.
전극을 이용한 전기치료와 기립기에 몸을 고정시키거나 전동자전거에 앉히고 발목과 손을 고정시켜 근육을 증진시키는 등 물리치료사들의 헌신적인 마사지 등등,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치료 도중에도 가래가 끓어오르기 때문에 석션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특히 80이 넘은 고령인데다 몸무게가 80kg가 넘어 이동을 하거나 몸을 뒤척이는데도 장난이 아니었다. 대소변도 자력으로 볼 수 없기에 요로에 카테터를 삽입하여 방광을 누르며 소변을 배출시킨다. 그리고 자세를 자주 바꾸어 주지 않으면 욕창이 생기기 때문에 주위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욕창이 생기는 부위는 다양하다. 엉덩이는 기본이고 귀, 발꿈치, 팔꿈치 등 가릴 것 없이 예상치 못한 부분까지 발생한다.
또한 전염성이 강한 환자이기에 병원 측의 권유로 일반 병원을 방문해 자비로 예방접종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간호원뿐만 아니라 운송원도 마스크는 물론 비닐 앞치마와 장갑을 철저히 착용한다. 자식들은 매일같이 따로 또 같이 방문하여 영상통화로 아부다비에 있는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아버지인 알카비에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알아듣는지는 알 수 없지만 늘 그렇게 한다. 그리고는 몇 시간쯤 머물다가 가지만 나머지 시간은 한남동 무슬림사원에 자주 간다고 했다.
어느새 몇 개월이 지나는 동안 작은아들과는 웬만큼 소통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들은 영어권이기에 짧은 단어로 손짓발짓 섞어 가며 때로는 그가 번역기를 통해 서툰 한국어로 표현을 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박근혜 대통령 방문 시에 함께 촬영한 알카비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어느 자그마한 간호사를 보고는 자기가 좋아하는 타입이라고 하며 한국 여성들이 예쁘다는 등, 아담한 몸매와 작은 눈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치료비는 전액 국가에서 부담하며 보호자 2인까지 호텔비며 체재비용까지 책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랑하듯 자신들의 농장이라며 핸드폰에 저장된 양들인지 염소인지 보여주기도 하며 자랑스러워한다. 척박한 조건에서 그만한 것이라면 당신네 나라에서는 대단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개인 소유는 아니더라도 인위적인 것이 아닌 자연의 산과 들이 짙푸른 색으로 계절에 따라서 색채를 바뀌니 얼마나 좋으냐고 했더니 인정한다고 했다.
병원 19층과 20층은 대부분 특실로 배치되어 있다. 우리 옆 입원실 간병인의 말에 의하면 3년째 돌보고 있다고 했다. 그곳은 최상급 VIP룸이었다. 병원 관계 회사 사장이었다고 한다. 커피 한 잔을 타 주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이것저것 자신이 알고 있는 새로운 정보를 말해주었다. 며칠 전 갑자기 쓰러지진 S그룹 회장님께서 타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한 후 위층으로 옮겨 왔단다. 그 근처에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다기에 더욱 궁금해졌다. 다음 날 우리 담당 운송원으로부터 전해들은 얘기로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며칠 전 뉴스를 통해 알려진 사실이지만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되어 관상동맥을 막고 있던 혈전을 제거한 후 다음 날 이곳으로 옮겨져 심장혈관 확장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건강에는 왕도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저체온 수술 요법을 실시한 후 동면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생체리듬은 유지되지만 사실상 회복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시간을 벌기 위한 방편으로 몇 년이 될지 획기적인 의술이 개발된다면 어쩌면 다음 세대에나 깨어날 수도 있으리라는 구구한 얘기들이 오고갔다. 워낙 궁금해서 나는 다음 날 짬을 내서 위층으로 가보려 했으나 계단은 물론 승강기마다 통제가 심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때가 2014년 5월쯤으로 병원 주위에는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특히나 특실에 입원해 있던 아랍인 환자와 그의 가족들은 휴양지에 온 것처럼 양지 바른 곳에 나와 앉아 여유롭게 즐기고 있는 분위기였다. 검은 히잡 사이로 평화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는 알카비의 아들에게서 배운 서툰 아랍말로 인사를 건넸다. “샬람 말리콤! ”그러자 의아한 듯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이내 친절한 표정으로 “말리콤 샬람! ” 하며 웃으며 응답해 주었다. 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정확한 발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말리콤’이 아니라 ‘알라이쿰’이었지만 그들은 친절히 응대해 주었던 것이다. 이곳은 특실이기에 병실료도 비싸지만 기저귀라든지 필요한 모든 물품들이 공급되며 치약 칫솔 등, 버블샴푸며 신문까지 공급이 된다. 그리고는 간호조무사가 정기적으로 또는 호출 벨을 누르면 언제든지 달려와 도움을 준다. 목욕을 시킬 때는 침대 위에서 닦아 내기도 하지만 가끔씩 휠체어에 앉혀 욕실에서 시원하게 씻긴다. 제일 위험하고 어려운 과정이다. 몸을 지탱할 수 없기에 아들들을 불러 도움을 요청하지만 우리와 달리 소극적이다.
이렇듯이 난이도가 높은 환자와 씨름하는 사이에 작별의 시간이 되었다. 더 이상의 진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료진의 판단으로 본국으로 가는 것이다. 출국하기 전날 해질녘에 알카비를 어루만지며 석별의 정을 나누기 위해 발음도 명확하지 않은 영어로 “당신은 내일 아부다비로 갑니다. 굿바이 알카비 아일라뷰” 하며 뒤돌아서서 병실 문을 향해 걸어가는데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조무사 아주머니께서 “아저씨”하며 부르는 것이었다. 웬일인가 싶어서 뒤돌아보았더니, “알카비 씨가 울고 있어요.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알카비 곁으로 돌아온 후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