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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님 미안합니다

한국문인협회 로고 아이콘 고재덕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6월 6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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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신바람 났던 유년 시절의 추억이 생각난다. 한겨울에 삭풍이 매섭게 불고, 흰 눈으로 세상을 덮으면 인가에 참새, 꿩, 노루 등이 찾아든다. 우리들은 참새 잡기에 빠진다. 참새 잡기란 먹는 재미보다는 호기심으로 머리를 써서 잡으므로 상당히 슬기로워 오졌다. 헛칸 바닥에 벼 이삭을 몇 주먹 뿌려 놓고 발채를 덮은 후 이 발채를 막대기로 받치고, 막대기를 새끼로 묶어 방으로 연결한다. 문구멍에서 망을 보다가 발채 안에 참새가 들어가면 잽싸게 새끼를 당기는 사냥 방법이다.

참새와 인간과 두뇌 싸움이지만 참새가 감히 인간의 두뇌에 따라갈 수 없으므로 우리들은 신났다. 처음에는 발채를 사용했으나 발채는 참새가 들어가는 공간이 좁아 이것 대신 면적이 큰 평상으로 바꿨다.

참새가 두마리 들어갔다. 한 마리만 더 들어가면 줄을 당기겠다며 가슴을 콩당콩당 조이며, 기회를 노렸다. 갑자기 고드럼이 와장창 떨어지는 바람에 참새 두 마리마저 날아갔다. 그 다음에는 세 마리 들어갔다.

한 마리만 더 들어가라. 마음을 조이며, 문구멍을 응시했다. 응시하는 동안 정신을 집중하므로 추위를 잊을수 있으나 황소바람에 눈알이 시렸다. 할머니가 대문에 들어서면서“ 재덕아, 점심 먹어라”외친 탓으로 참새들이 모두 또 날아갔다. 참새 사냥은 계속 된다. 이번에는 참새가 네 마리나 들어갔다. 눈 속에 벼이삭은 웬 떡이냐며 참새들이 신나게 가족 파티를 연 것 같았으며, 기회는 이때다 싶어 새끼줄을 힘껏 당겼다. 평상이 덮어지는 순간 나는 동생과 함께 방에서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이 맨발로 헛간까지 달렸다. 평상 위를 질근질근 밟았다. 참새 네마리가 압사당했다. 평상을 밟았기 때문에 못이 빠져 못쓰게 되어 할아버지한테 야단 맞았다. 그날 수확은 참새 열두 마리였으며, 어머니는 참새의 배를 따서 숯불에 구워주셨다. 참새 고기는 메추리 고기와 같이 쫄깃쫄깃하고 담백하므로 참새 한점과 쇠고기 백점과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유년 시절에는 인간이 동물을 지배해야 한다는데는 아무런 거리낌 없었으므로 죄의식도 없고 그저 참새 잡는 데 흥미로웠으나 요즘에는 동물보호법규가 제정되었으므로 동물을 잡는 것은 낭만이 아니라 범죄 행위이다. 오늘날 인간은 동물과 동반자 개념이 되었으니 당시 잡았던 참새들에게는 미안했다. 겨울에 먹을 단백질을 구한다는 핑계로 우크라이나 피난민처럼 내 집에 피신 온 참새들을 쌀을 주며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참새를 잡았으니 나는 인간이 아니고 도살자였으므로 참새들에게 미안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로 생계를 유지하는 어느 정육점 주인은 매월 초사흘날 소와 돼지에게 감사하는 제사를 지낸다.

참새 잡기는 소꿉장난에 불과하나 뭐니뭐니 해도 겨울 사냥으로는 기러기 사냥이 일품이다. 못을 망치로 두두려서 납짝하게 만든 후 숟돌에 갈아서 창끝처럼 뽀쭉하게 만든다. 이 못으로 콩에 구멍을 파서 그 구멍에 싸이나(청산가리 KCN)을 넣은 후 양초로 밀봉한다. 저녁때 논에 뿌리면 아침에 기러기떼가 몰려와서 콩잔치가 벌어진다. 오후 다섯시 경이면 약발이 나타나서 기러기가 논바닥에 주정뱅이처럼 널브러진다. 광덕이의 싸이나를 먹고 진통하다가 영철이 논에 와서 죽었으니 기러기가 누구 싸이나를 먹고 죽었는지 알 수 없다. 광덕이와 영철이는 서로 자기가 뿌린 콩을 먹고 죽었으니 자기 것이라고 싸움판이 벌어진다. 이때 이장이 선고한다.

“영철이가 두 마리 잡았든 광덕이가 두 마리 잡았든 각각 한 마리씩 나눠 가져라.”

싸이나는 독극물이기 때문에 기러기를 줍는 즉시 배를 따서 내장은 모두 버려야한다. 기러기는 크기가 거위만해서 한 마리로 오륙 명 식구가 포식할 수 있다. 마을 청년들은 겨울에 가마니 짜기를 포기하고 기러기 사냥에 바쁘다.

어느 신부가 아프리카에 하느님 말씀을 전도하러 갔다. 포교용으로 낚싯대를 오십 개 정도 갖고 가서 원주민들에게 낚시 사용법을 설명한 후 나눠줬다. 그런데 한 원주민이 신부에게 항의했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정정당당하게 잡아야지 낚시 바늘에 미끼를 먹을 것처럼 끼는 것은 물고기를 속이는 것이므로 하느님의 뜻에 어긋납니다.”

신부는 감동을 받고 낚시대를 즉시 회수했다. 당시 내가 콩에다 싸이나를 넣은 것은 곰곰히 생각하면 낚시 바늘과 같이 기러기를 속였음을 이제야 알았다. 시베리아에서 온 진객에게 사약을 먹었으니 다소 잔인해 보였으리라. 이제 북녘땅의 소식을 누가 전해주나?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기러기님, 인간이 인간답지 못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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