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6월 6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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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학령보다 두 살 아래인 6살에 입학했다. 6·25 전쟁 중이었고 학기가 시작되고 한참 지난 뒤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해방 이후부터 진주사범학교에 교사로 근무하셨던 어머니께서 진주사범 부속 국민학교에 나를 입학시키실 때는 출퇴근 때 학교에 데리고 다니다가 그 이듬해 유급을 시킬 생각이셨다.
1학년이 끝나고 유급 신청을 하러 어머니와 함께 학교에 가서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을 만나 뵈었는데 너무 어려서 고무줄 같은 놀이에 어울리지를 못하다 보니 공부는 열심히 했던지“공부를 아주 잘 했네요”하시니까 어머니는 농담하시는 줄 알고 “네. 그럴 줄 알고 유급시키러 왔다”고대답하셨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공부 잘하네요. 친구들보다 2년 일찍 대학을 졸업하면 시집가기 전에 석사학위는 따겠군요”하셨다. 어머니의 선행학습 계획은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석사 학위라는 소중한 꿈 하나가 생긴 어린 소녀는 집 안 가득한 책들을 그날부터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참혹한 전쟁의 한가운데서 석사학위의 포부를 갖게 해 주신 선생님들의 격려로 마음 설레었던 소녀는 1971년 2월에 약학 석사학위를 받고 이후 1976년 3월 전임교수가 되고, 1980년 동문 1호 박사가 되어 여동생과 두 딸과 후배들과 제자들을 교수와 과학자의 길로 이끌었다.
“어렵지 않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일단 석사까지는 하자”라는 말을 참 많이하고다녔다.
“이 나이에 무슨 총동창회장이냐”며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성화에 밀려 회장을 맡게 된 후 약학대학 부산 동문회에 참석한 날 제자이자 후배이기도 한 동문이 자리에서 일어나“부산까지 오셔서 감사하다”는환영의 인사를 하며“학창 시절에 기라성 같은 남자 교수님들과 어깨를 겨루고 있는 어린 선배 교수가 자랑스러웠고 나도 노력하면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 주셨다”고 하면서 인사를 하는데, ‘소중한 것은 시간을 넘어 이어진다’는 나의 신념에 격려가 되어 울컥했다.
석사학위 취득의 꿈에 이끌려 덜컥 진급을 했지만 그때는 두 살보다 훨씬 나이 많은 아이들도 있었고 놀이나 운동시간은 도무지 버겁고 힘에 부쳐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즐거웠던 기억은 별로 없다.
중학교 때 저녁 무렵 가족들과 함께 있는데 행복하다는 생각과 아름다운 글귀들이 자꾸 떠올라 메모를 해 두었다가 가방 속에 가지고 다녔다. 마침 국어 시간에 시를 써 보라고 시간을 주시고 발표를 시키셨다. 갑자기 시를 쓰려니 며칠 전에는 술술 나오던 생각들이 웬일인지 자꾸 꼬이기만 해서 가방 속에 넣어 둔 메모를 꺼내서 읽었다. 네가 써둔 시였니? 하시면서 잘 썼다고 칭찬해 주셨는데 선생님은 내가 지니고 다니던 좋아하는 작가의 시를 읽는 줄 아셨던 모양이다.
그날 국어선생님의 칭찬이 나를 자신감으로 설레게 했다. 그리고 문학과 예술에 대한 기대와 애착을 갖게 했다. 해마다 진주의 문학 소년 소녀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전국 규모의 개천예술제도 문학과 예술에 대한 친근감을 깊게 했다.
개천예술제 사생대회에서 입상한 내 그림이 교무실 옆 현관 복도에 걸려 있던 일도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날그날 일에 쫓겨 마음 잡고 시를 써 볼 생각도 못하고 오늘까지 왔다.
약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후에도 늘 문학에 대한 허기가 있어서 원고 청탁이 오면 거절하지 않았고 나의 글이 실린 책을 소중하게 보관했다. 오래된 책으로 1962년 진주여자고등학교 교지『새누리』22권도 있다. 여고 시절 진주 YMCA 고등부 동아리인 진주여고 High-Y 회원 활동을 했었는데 진주 YMCA의 후원을 받아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로 진주고 High-Y 회원들과 봉사활동을 갔던 계몽일기가 실린 책이다.
그 이후로 1988년 발간된 도서출판 우석의 대학교수 100인 에세이 『나와 영혼의 팡세』와 1991∼2년의 『샘터』 등에서 원고 청탁을 종종 받았다.
2011년 8월, 40년이 넘는 근속을 마치고 정년 퇴임할 때 제자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정년퇴임 기념문집과 출판기념식을 선물로 받았다. 학 장이나 학생처장과 같은 보직을 하다 보면 격려사나 축사 등을 쓸 기회가 적지 않았고 학회장이나 동창회장직도 행사가 많고 사업이 다채로워서 말과 글로서 마음을 표현할 기회가 많았다. 그때마다 즐겁게 마음을 다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 참 감사하다.
입학 후 “너는 너한테 꼭 맞는 대학교를 찾아간 것 같아. 그런 확신이 선다. 다음에 내가 한 말이 생각이 날 거야. 잘해 낼 거야”라며 격려하셨던 고3 담임선생님을 지금 옆에 모실 수만 있다면 선생님 무슨 영감이라도 있으셨냐고 여쭤보고 싶다.
“비싼 하숙비 내지 말고 우리 집에 있는 빈방에서 다니라”고 권유하셨던 대학신문 주간교수님들의 따뜻한 마음. “네가 원하는 회사에 꼭 취직을 시켜주시겠다”고 하시던 학과장님께 문과 쪽으로 학사 편입하고 싶은데 어머니가 약학 석사 과정 마치고 가라고 하셨다고 말씀드리자 바로 책상 위의 독일어책을 주시고 독문화 학원도 소개시켜 주셨던 일. 많은 분들의 칭찬과 격려 속에서 자라며 귀한 새싹들도 키우며 살면서 경험한 칭찬과 사랑은 결국 우리를 이룬다고 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