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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년 글쓰기! 지금은 컴퓨터 앞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은집

소설가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6월 6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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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에겐 나이를 묻는 게 실례라지만 남자들은 나이가 벼슬이라고 나이 자랑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간혹 나에게도 가끔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하는 질문을 해 올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웃으면서 대꾸한다.
“아, 요즘은 백세 시대라서 저도 좀 나이가 많네요. 그러니까 123살이거든요! 하하!”
“예에? 123살이나 되신다고요? 에이, 무슨 농담을 그리 하십니까?” 
하지만 나는 그럴수록 더욱 진지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아, 호적상 나이가 아니라 나의 글쓰기 나이지요. 우선 소설가로서 나이! 1971년에 창작집 『머리가 없는 사람』으로 등단했으니까 어느덧 문단 나이가 55살이고요! 또한 제가 방송작가이자 유명 작사가인 양인자 선생의 추천으로 1979년에 지금의 JTBC 전신인 동양라디오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방송작가로 글을 써서 23년간 방송 원고 13만여 매를 쓴 방송작가 나이 23살과, 역시 우연한 기회에 내가 가르친 용산고 제자가 가요제에 출전한다고 노래 가사를 써 달라고 해서 1981년에 시작한 작사가 활동을 45년째 하면서 82 MBC 대학가요제 금상곡 <윷놀이>, 그 후 동 가요제의 은상곡 <신입생> 동상곡 <풍년굿>으로 이어지면서 방송작가를 하던 중에 나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이선희 가수의 <아! 옛날이여> 앨범에 <사랑의 약속>을 작사했고, 요즘 트롯계 최고의 레전드 가수로 뜨고 있는 김용임 가수의 데뷔곡 <연변 아가씨>를 작사해 주다가 보니 70여 곡이나 되어 노래방에도 4곡이 수록된 작사가로서 나이 45살로 벌써 수십 년째 매달 작사 저작료가 나와서 문단의 선후배님들에게 술을 사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소설가 55살+방송작가 23살+작사가 45살=123살이 아닌가? 그러니까 나의 창작의 산실은 장르에 따라 그때그때 다를 수밖에 없다.
우선 1971년 창작집 『머리가 없는 사람』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문학적 창작의 산실은 신혼시절의 단칸방 시절과 아이가 생긴 젊었던 때에는 고교 국어 교사로 근무했기 때문에 학교 도서관에서 주로 창작 활동을 했던 것이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도서관에서 작품을 쓰다 보면 제자들에게 눈치가 보여서인지 집필에 집중이 잘되었다. 그러나 방송작가는 분초를 다투는 시간 싸움이었기에 야간고교 근무를 하던 시절이어서 아예 방송국에 출근하여 방송국 도서관이 창작의 산실이 되었다. 주로 매일 프로와 주간 프로 또는 특집 프로 등 하루에 집필 원고량이 70∼80매였는데 용케 방송 원고를 초스피드로 써냈던 것이다. 심지어 어느 가수가 출연할 때에는 3분 30초 정도의 노래가 방송되는 사이에 5매 내외의 콩트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쓰기도 했으니 지금 돌아보면 거짓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주로 사랑 타령이 주제가 되는 작사가로서의 노랫말은 분위기를 타기 때문에 술집에서 혼자 독술을 마시다가 노랫말을 쓰기도 했고 한밤에 길을 걷다가 작사가 떠올라서 전봇대 아래에서 수첩에 끄적거려 추후에 완성시키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낭만적인 창작 경험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가장 긴 55년 동안 문단생활에서의 창작의 산실은 현재 바로 내 서재의 컴퓨터 앞이라고 하겠다. 내가 컴퓨터를 처음 배운 계기는 1990년대 중반에 교육개혁 박람회에 서울교육청 요원으로 차출되었을 때 배우게 되었는데, 그 후로는 컴퓨터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항상 컴퓨터가 있는 나의 서재가 창작의 산실이 되었으니, 어느덧 30년쯤 되는 셈이다. 그런데 나는 방송작가로 습관된 탓인지 창작의 시간이 벼락치기라서 보통 100매 정도의 단편을 이틀이면 탈고하는데 길어도 3일이면 완성된다. 그래서 다른 작가들에게 이를 자랑하면 “빨리 쓰는 게 작가냐”며 공적이 되기도 한다. 또한 나는 방송작가를 할 때 몇 년씩 한 프로그램을 집필한 탓인지 장기 연재에도 강하다고 하겠다. 현재 한국문학신문에 연재 중인 10매짜리 콩트 「부부 찬가」는 14년간 630회를 넘기고 아직도 연재 중에 있다.
결국 내 창작의 산실은 문학이나 방송이나 작사에 따라 그때그때 달랐으나, 지금은 나의 서재에 있는 컴퓨터로 종착점을 맞은 셈이다. 따라서 나는 현재 내 서재의 컴퓨터 앞에서 어느 종류의 글이든 집필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된다고 하겠다.

 

[이은집 ]
충남 청양 출생.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1년 창작집 『머리가 없는 사람』으로 문단 데뷔. 저서 『학창 보고서』 『스타 탄생』 『통일 가족 통일 남북』 등 38권 출간. 충청문학상, 헤세문학상, 여수해양문학상, 무궁화문학상 등 16개 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국제펜 한국본부 이사, 한국소설가협회 상임이사 역임. 계간지 『문예빛 단』 회장. 서울에서 6개 고교 국어 교사 30년 근무. 방송 작가와 작사가로도 활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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