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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정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상구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6월 6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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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친구가 사용했던 번호여서 반갑게 받았는데 뜻밖에도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아침 남편이 생을 마감했다는 다급한 톤의 목소리에 무척 황당해져 버렸다. 그 무렵 주말에 그가 입원한 B대 병원에 가보기로 하였는데 어처구니없이 그렇게 떠나버렸다니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학창 시절 무전여행이랍시고 군용텐트를 지고 여기저기에 돌아다니면서 많은 추억거릴 만들어 놓았던 유별난 우리 3명은 청장년기, 노년기에 접어들기에 무섭게 뭐가 그리 바쁜지 그가 먼저 또 줄행랑을 놔버렸다.

그는 세상을 항상 자신만만하게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부인의 사업 일로 어쩔 수 없이 혼자 지내면서도 본인이 느끼고 있을 불편함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고 꾸준하게 자기 길을 걸어갔다.

우리가 같이 뒹굴던 사춘기 시절은 시대적 아픔과 정신적 공황이 조금은 독특하였다. 성숙하지 못한 객기의 사회적 반항심과 한편으로 편협된 생각이 점철된 심적 빈곤으로 인해 스스로 방황하게 만들어 버렸고, 한 친구는 이를 핑계로 일찌감치 뉴욕으로 도피성 가족 이민을 떠났다. 그리고 미국에서 얼마 동안 짤막한 근황을 엽서로 보내며 안부를 묻고 했지만, 중년기 이후로는 갑자기 소식이 두절되었다. 그가 우리하고 얽혀진 당시의 치졸한 기억을 지워버렸는지 아니면 먼저 딴 세상을 기웃거렸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여기 남겨진 우리 둘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의 단절을 나눠 가지며 각자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는 사업을 한답시고 동남아 등지에서 여기저기 거주하다 만년에 귀국한 뒤 오랫동안 불교에 심취하여 불교 국제 포교사의 자격을 얻었고, 더러는 외국으로 교육과 이런저런 포교 활동도 다니거나 심신을 위해 강원도 지역에서 단신으로 생활하던 중이었다.

평소에 연락이 뜸하던 그가 모처럼 이곳까지 얼굴 보러오겠다고 해놓고 차일피일 미루다 갑자기 몸이 아파 부산으로 이주했고 한번 다녀가라는 전갈이 왔다. 그에 부랴부랴 찾은 그를 본 모습은 한마디로 충격 자체였다. 그렇게 튼튼하고 당당했던 풍채가 병색이 완연하고 무엇보다 얼굴과 몸 상태가 예전과는 너무 달라져 있었다. 불과 몇 개월 동안 지병과 뒤늦게 코로나에 걸려 시달린 채 빨리 회복하지 못한 것이 그렇게 되어 버렸다고 하였다.

그는 수개월 전 대장암 진단을 받았지만 수술과 항암 치료를 하지 않고 귀향한 채 집에서 요양만 하고 있으며, 그의 부인도 따로 하던 일은 접어 버리고 친구 간호에만 집중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항암 치료와 수술을 왜 거부하느냐는 나의 책망과 볼멘소리에 대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빙긋이 웃기만 하였다. 그렇지만 단호한 그의 표정과 쉬고 싶다는 모습을 통해 스스로 생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담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으로 짐작됐다.

그는 젊은 시절, 큰아이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위암 치료를 하였는데 그때 항암 치료에 대해 많은 자료와 지식을 축적하고 열심히 간호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사망하였다. 당시의 항암 치료에 대한 부작용과 고통을 지켜본 입장에서 자신도 치료를 통해 점점 일그러져 가는 인간본능의 처절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그 나름의 신념이 작동하지 않았나 미루어 짐작할 일이었다. 또한 죽음은 모든 생명체가 겪어야 하는 필연적 과정임으로 그동안 당당하며 거침없고 미련 없이 살아온 인생이기에 이제는 본인 스스로 주변을 번거롭지 않게 하며 편안하게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다는 평소 생각의 결정이었다는 것을 내게 넌지시 알려주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의료기술은 훨씬 발전하였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미리 가능성을 버리고 소중한 생명을 쉽게 마감하겠다는 것에 대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힘주어 어필하였지만 그의 단호한 표정은 묵묵부답이었다. 어쩌면 그의 인생관과 성정을 보아서는 가족은 물론 친구도 더 이상 치료를 강요한다는 것은 아무런 실현성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는 그간 보관해 왔던 내가 좋아할 만한 몇 가지 책들과 소중한 물건들을 건네주고는 나의 손을 꼭 잡고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 동안 흐느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해주고 싶은 위로의 말은 그래도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가져 보자며 기적을 기대하자고 어깨를 토닥거리며 계면쩍은 말 외에는 다른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몸은 그렇게 중병이지만 특별하게 통증은 없었기에 사고력과 판단력도 아주 건강하였고 상대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데도 불편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래 전 일들을 회상하며, 청년기 미국으로 떠난 뒤 소식 없는 또 한 친구에 대해 원망과 푸념을 늘어놓고 간간이 웃음을 주고받고 하였지만 다만 본인의 최후에 임하는 생각에는 변함없는 듯 매사 단호한 어조로 이어가며 스스로 당당함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날 이후 매주 주말에 내자와 같이 그를 찾아 부산으로 내려가서 얼굴을 보곤 했는데 점점 기운이 빠지는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수시로 병원의 입원 치료도 받고 하지만 근본적인 차도는 있을 수 없고 불편한 부분에 대한 완화되는 처치 외에는 방도는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도 혼자서 어느 정도 걸을 수 있고 정확한 의사 표현도 주고받지만 다만 식사에 대한 어려움 때문에 몸은 점점 더 쇠약해지는 상황이었다.

한번은 그와 함께 침대에서 어깨를 마주 대며 사진을 찍어보았는데 가늘어진 가슴과 키가 줄어들어 있음에도 웃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맑은 눈동자 속에 잠겨 있는 연민의 정 때문에 다음 날 사진을 혼자서 보고 무척이나 가슴 먹먹한 서글픔이 밀려오기도 하였다.

그는 인간의 숙명은 언젠가 이별하는 섭리이기에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지만 너무 섭섭해하지 말고 각자가 주어진 일정치 않은 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살아가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본인은 이렇게 아프지 않고 우선 편안하게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하면서 얼른 돌아가라고 재촉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다음 주 병원에 입원 진료를 받기에 그때 다시 보자고 하면서 힘든 몸을 이끌고 현관까지 걸어 나와 우릴 배웅했다. 그러면서 손을 잡고 다시 한번 훌쩍거리는 것이었다. 그날은 친구 집을 나오면서 몹시도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것이 그와의 이승에서 마지막 작별 인사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죽음은 결국에는 삶의 본질적인 존재이며, 언젠가는 우리의 삶에 찾아올 존재인 것은 불변의 진실이고 이를 피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 인간에게 소중한 삶의 가치를 절실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그의 마지막 스스로에 의한 결정이 정녕 최선이었는지 지금도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공황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삶의 끈을 놓을 때 당당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결코 인간의 격조를 잃지 않았던 그 친구에게는 마냥 숙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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