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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를 위한 교양강의

한국문인협회 로고 정철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6월 6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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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나의 모교 강릉제일고 역사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이를테면 역사관 큐레이터로 봉사하는 일이다.

새로 부임해 오신 교장선생님께서 부임한 지 1주일 되던 날 내게 부탁의 말씀이 있다며 면담을 요청해 왔다. 만나보니 축구선수들에 관한 이야기다. 축구선수들의 모교애(母校愛)가 도무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신임 교장선생님은 예전에 우리모교에 교사로 재직했었던 분이다. 아마도 그때와 비교해 하는 말씀인 것 같았다. 그래도 부임 1주일 만에 긴급요청이라니…

모교는 금년에 개교 86주년을 맞는 전통 명문고답게 대법원장을 비롯한 기라성 같은 인재들을 배출한 요람이며, 특히 축구명문고로도 이름 난 학교다. 2002월드컵 4강신화의 주역 이을룡, 설기현 선수를 비롯하여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를 길러냈다. 이을룡, 설기현 두 선수는 그 월드컵 때 결정적인 순간에 모두 골을 넣어 국민들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 국가대표 선수들 간에 일어난 불협화음은 국민들 마음을 무척 속상하게 만들었다. 주장선수의 지시에 따르지 않아 팀워크에 손상을 입힌, 이른바 언론들이 연일 보도하던 '탁구 3인방’ 이야기다. 그 사건으로 주장선수는 손가락을 다쳤으며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젊은 팀원의 주장선수에 대한 하극상이다. 신임 교장선생님도 축구선수들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던 모양이다. 본인이 직접 가르치시기보다 나의 경험이야기를 더 기대하신 것 같다.

내 자신 모교를 졸업한 이후, 교단교사로 세 번에 걸쳐 모두 15년간 모교에 봉직했고, 『강릉제일고등학교 80년사』를 집필하였으며, 또 역사관 사료수집과 설립에 앞장서 역사관 개관을 마무리하고 명예관장에 추대되어 7년째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모교 교문을 드나든 지 25년 되었다. 그러니 할 이야기도 많고 축구선수들에게는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 게 사실이다.

교장선생님, 주무부장교사, 감독, 코치가 임석한 가운데 축구부원 40여 명이 모인 마이크 앞에 섰다. 교직원이나 재학생들은, 장학재단과 축구진흥재단을 설립하여 재학생 후배들을 후원하고 있는 모교 동문들의 모교애와 후배사랑 마음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축구부 학생들의 경청 태도가 진지하다.

나는 미리 구상해간 대로 몇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공손한 예의범절을 가져야 한다. 부모님, 선생님, 감독님, 코치님, 선배님, 그리고 주장선수의 지시 등 모든 사안에 불손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둘째,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올바른 가르침에 감사하고 축구부를 지원하는 선배, 재단, 교직원과 그 가족, 기타 사회단체나 개인에게 늘 감사하고 열심히 기량을 연마하여 경기 성적으로 보답한다.

셋째, 축구뿐만 아니라 학업에도 열중해야 한다. 글로벌 시대인 오늘날 세계무대에 우뚝 서려면 영어회화는 기본이다. 또 대학 진학 시 예를 들어 특기자로 사범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라면 졸업 후 교단에 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은가. 능력 없이 어찌 교단에 서나. 어디 사범 대학뿐인가. 축구선수를 그만두었을 때를 대비하라.

넷째, 국가대표 선수는 개인의 영광보다 조국의 영광이 먼저이고, 학교 대표 선수는 자신보다 모교의 영광이 우선임을 절대 잊지 말라. 모교 교가 마지막 소절은‘지식의 열매를 맺어주는 우리 모교, 우리 모교에 영광 드리자’이다. 우리 동문들은 이 소절을 제창할 때마다 가슴 뭉클함을 느낀다.

다섯째, 학급 급우들과도 친숙하게 지내라. 될 수 있는 대로 급우들을 비롯한 학우들과 친교시간을 많이 가져라. 자칫 교우가 축구부원에 한정돼서는 안 된다.

여섯째, 졸업 후 고향에 올 때는 모교 축구부에 들러 후배들을 격려하는 일도 잊지 말라. 그것이 선후배 간의 끈끈한 정이다.

이렇게 선수들에게 강조하고 다독이며 모교애에 관한 여러 가지 경험담 이야기로 1시간여 강의하고 질문시간을 가진 후, 감독·코치님께도 선수들의 인성교육에 힘써 주실 것을 당부했다.

강의가 끝나고 역사관으로 안내하여 모교의 역사 사료와 선배님들의 발자취를 상세히 설명했다.

모교에 1억 원 이상을 기부한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와‘ 위교헌신(爲校獻身)’동문들의 명패를 전시한 명예의 전당, 모교를 빛낸 자랑스러운 동문들 부스, 대통령금배·청룡기 트로피 등 각종대회 우승 트로피, 한일교환경기·한중교환경기 기념 펜던트 등, 축구부 선배들이 이루어 놓은 업적과 활동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오늘 강의가 반드시 필요했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동계올림픽 유치 염원을 IOC에 전달하기 위해 서울-강릉 간 600리 길을, 서울을 출발하여 강릉을 향해 7박 8일간 연인원 1천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도보 행군을 하고 200여 명이 완주한 일간지 보도기사 등을 전시한 자료전 시장 앞에선 주먹을 불끈 쥐는 학생도 보였다. 2018동계올림픽 때 설원 경기는 평창에서, 빙상경기는 강릉에서 개최되었다. 동문들의 염원도 보탬이 되었으리라. 이 전무후무할 선배님들의 역사적 대장정에 어찌 주먹이 불끈 쥐어지지 않겠는가. 우리도 저 투지를 본받아야겠다는 다짐의 주먹이었으리라.

이제부터는 해마다 신입생에 대해선 이런 강의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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