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5월 6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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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와 상관없이 작가가 “글을 쓴다”라고 할 때의 동사 ‘쓴다’에는 여러 의미가 포함될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일까.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환경에 대해, 또 살아내야 하는 각자의 삶과 현실에 대해 말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 의미가 아닐까.
사자후처럼 직설적 산문으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에서처럼 나름의 이미지를 만들어 에둘러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외 다른 문학 장르를 통해 작가의 세계관이나 사상, 정서가 언어적 표현의 옷을 입고 진솔하고 아름답게 독자의 가슴에 전달될 때 독자는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반드시 우리가 바라는 문학적 성과가 아니라 교양적 측면이나 미적 충동, 혹은 새로운 발견의 기쁨 형태로 사람마다 전혀 다르게 작용한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글 쓰는 사람은 얼마나 공부하고 고민하고 성찰하며 쓰고 있는가에 대해 자주 질문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얼마나 충분히 승화시켜 작품에 담을 것인가, 많은 생각들을 얼마나 잘 간추려서 좋은 작품으로 잉태할 것인가, 우리를 에워싼 여러 환경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쓸 것인가에 대해 오랜 시간 자문하고 퇴고하며 다져야 한다.
영상 매체나 음향 매체 등 다른 인접 예술의 발전으로 문학의 영역이 더욱 좁아 가는 것을 우리는 체감하고 있다. 우리가 초심으로 돌아가 생각해야 할 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되어 준다. 수만 번의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오르는 어느 뮤지컬 가수처럼, 나쁜 컨디션으로 좋은 무대를 선사할 수 없었다고 리콜 초청장을 약속한 어느 연극배우처럼, 날짜가 정해지지 않은 연주를 위해 매일 건반을 두드리는 피아니스트처럼 좋은 작품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갖는 것이야말로 초심으로 돌아가는 길인 동시에 창작의 삶을 유지하는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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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어린이의 달이라서 문득 동심을 떠올리게 된다. 문학에서 동심은 중요한 요소다. 깨끗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새롭게 보게 하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게 하고, 스스로를 반성하게 한다.
비 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 가락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보듯 힘줄만이 서누나
—김상옥, 「봉선화」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어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이준관, 「구부러진 길」
당신이 사라진 주홍빛 바다에서 갈매기 떼 울음이 파도와 함께 밀려가선 오지 않는다. 막 비추기 시작한 등대의 약한 불빛이 훑듯이 나를 지워버리고 파도 소리는 점점 밤의 전부가 됐다. 밤이 분명한데도 밤은 어디론가 가버렸고 파도만이 남았다. 밤은 그렇게 파도만을 남겼다.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내내 파도 위로 가끔 별똥별이 떨어졌다. 바스락거리던 조개들의 죽음이 잠시 빛났고 이내 파도에 묻혔다 소식은 없었다. 밤에 생긴 상처는 오래 사라지지 않는다. 도망치지 못했다 거진.
—허연, 「밤에 생긴 상처」
인간이 원초적인 질문을 가졌다면, 그 질문이 생긴 때는 어머니로부터 처음 말을 배울 때가 아닐까. 그 시기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사물들은 무척이나 경이롭고 궁금한 대상일 것이다. 그때의 어린아이의 끊임없는 질문은 진정한 내면의 욕구에서 비롯된 절실한 질문이고 아름다운 질문이다.
작가는 존재의 질문에 대한 욕구가 마르지 않아야 한다. 또 그 질문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어서 동심을 환기할 것이다. 그래서 사물을 노래하는 시인들의 시에서의 질문은 순수하고 진지하고 아름답고 거짓이 없을 것이다.
인용한 세 편의 시는 동심이 배면에 깔린 아름다운 서정시다. 여운이 길고 섬세하고 애절한 심상 풍경을 그려 독자의 가슴을 파도치게 한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늘 세상과 현실과 삶에 대해 질문하는 책무를 어느 정도는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