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4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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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어르신의 쨍쨍한 호통 소리가 골목길에 들렸고, 어린아이들은 위엄 있는 호통 소리에 꼼짝없이 따랐다. 아이들은 어르신의 호통 소리에 복종했었고, 때로는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었다. 아이들은 어르신의 권위에, 아이들 자신의 행위의 잘잘못을 떠나 어르신의 말씀에 순종했다.
그 시절에는 어르신의 말씀 한마디에 지역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고 치안이 확보되었다. 때로는 어르신도 오버할 때가 있었다. 거나하게 취해 골목길이 비좁도록 휘청거려도 모두는 어르신을 최고의 예의로 모셨다. 길을 가다가도 어르신이 앞에 다가오면 편안히 지나가시도록 한쪽으로 얌전히 길을 비켜드렸다. 버스를 탔을 때도 어르신이 앞에 서 있으면 자동으로 일어서서 양보했었고, 어르신은 지극히 당연하게 당당하게 자리에 앉았다.
강산이 변했다. 토담으로 만들어진 옛 골목길은 없어지고, 잘 정비된 길가나 어린아이가 놀 만한 공원에는 어린아이들보다 어르신이 많이 눈에 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목욕탕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손잡고 찾았던 목욕탕에는 아이들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빠르게, 아주 빠르게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지금은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에는 어른들의 경험에 의해 젊은 세대가 그 경험을 이어 받아 세상을 살아갔으나, 이제는 그러한 경험의 노하우를 젊은 세대는 디지털 세계에서 짧은 시간에 손쉽게 습득한다. 어르신의 한평생 차곡히 쌓아온 경험이 어르신의 머리에서 입으로 나오기 전에 젊은 세대들은 디지털 검색에서 쉽게 취득한다. 그리하여 어르신의 입에서 나오기 전 필요한 정보가 모두에게 공유된다.
‘노인 한 사람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라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지금의 시대에는 사회 곳곳에 이동하는 도서관이 즐비하다. 지식의 보고를 간직한 도서관이 이렇게 많아졌으나, 이 도서관을 찾는 이 없고 발길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어르신들의 호통 소리가 끊어진 지 오래되었고, 또한 아이들 울음소리가 끊어진 지도 오래되었다. 공원 벤치, 아이들 노는 소리 대신에 숨 죽인 어르신이 정좌해 있다. 이제 인구 5명 중 1명이 어르신으로, 어르신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지금의 어르신이 된 사람들의 일부는 전후 세대 베이비붐을 타고 태어난 세대이다. 농경 시대에 삼시 세끼 배불리 먹기 힘든 그 시절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여 오늘의 발전된 경제에 이바지한 세대이다. 그뿐인가, 어르신의 말씀에는 이유 없이 순종하여 어르신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한 마지막 세대이다.
어르신 과거는 몸을 아끼지 아니하고 열심히 살았으나 디지털 시대에 떠밀려 가까이 있는 음식점에 주문하려 해도 디지털 기기 조작 미숙에 뒷전에 서 있을 뿐이고, 지하철에는 어르신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별도 마련되어 그 외의 자리에는 젊은 사람들의 양보는 기대할 수 없다.
신문지상에도 반갑지 않은 소식이 게재된다. 60∼70대 어르신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기사, 나이 든 경비원을 젊은 입주자가 폭행했다는 기사. 참으로 우울한 어르신 세계의 한 단면이 보여진다. 고령의 노인 출입을 제한하는 ‘노실버존’과 ‘노시니어존’이라는 용어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출생률이 낮은 지금의 현실에 더 증가하지 않는 출생률로 이어져, 젊은 세대가 어르신의 경제적 부담까지 이어진다면, 어쩌면 ‘고령자 습격 사건’의 영화가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지난날 노인들의 호통 소리는커녕, 옛 시절의 경로사상은 박물관에 가서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제부터는 어르신도 한 발 앞서 가보자.
어르신 누구나 한평생 살아온 일생은 한 편의 감동 있는 드라마로 남을 수 있다. 오랜 기간에 축적해 온 인생 도서관을 젊은이가 이용하는 도서관으로 정비해 보자. 내 인생을 너무 주장하지 말고, 서로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고, 각자의 개성 차이를 인정하여 귀담아 들어주자. 내 인생의 드라마가 최고라고 주장하지 말고, 세상사 백인백색의 시대임을 인정하자. 내 것만 옳은 것으로 주장하는 꼰대 근성을 놓아버리자.
누군가가 친절을 베풀어 온다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자. 표정 없이 굳어진 맛없는 얼굴로 먼산을 보는 초점 없는 인생을 만들지 말고, 이웃 젊은이에게 호통이 아닌 친절을 베풀자. 디지털 시대에는 어르신의 머릿속은 정보화 감각이 비어 있다. 배워야 한다. 젊은이에게 배워야 한다.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전, 먼저 친절을 베풀자. 어르신의 아름다운 모습도 보인다. 이른 아침 초등학교 앞에 안전완장을 차고 어린이들의 등교에 교통안전을 지켜주는 어르신들의 모습도 아름답다. 가난한 어린 시절 겪어 온 배고픔을 알기에 한평생 모은 전 재산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한 80대 어르신도 있었다. 혹시 매년 연말이면 나타나는 얼굴 없는 천사는 어르신이 아닐까?
노인 인구가 많을수록 건강보험 지출이 많아 나랏돈 씀씀이가 커질 것이니, 건강한 어르신이 되어 국가 건전 재정에도 이바지하자. 세월의 알찬 경험의 지혜를 전하고, 나눔 실천에 앞장서는 어르신의 품위로 뉴 시니어 시대를 가꾸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