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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나무에 살구꽃

한국문인협회 로고 정정연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4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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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따듯하여 옥상에 올라갔다. 옥상은 남편의 텃밭이다. 꽃과 야채를 기르기도 하지만 나무로 상자를 짜서 대추나무, 사과나무도 심어 놓았다.
“여보, 이리 와 봐요, 복숭아나무에 살구꽃이 피었어요.” 남편의 상기된 목소리다. 옥상에는 먹고 버린 복숭아씨에서 싹이 나서 자라는 개복숭아나무가 있다. 열매는 달리지 않지만 봄이면 화사한 꽃을 보여 주었다. 남편은 그 나무에 살구나무를 2년 전 접붙여 놓았다.
올봄은 연분홍 살구꽃과 복사꽃이 함께 피어서 더 화사하다. 한 나무에 두 가지 과일이 달리려나, 기대가 크다. 복숭아 닮은 크고 빛깔 좋은 살구가 달렸으면 좋겠다.
꽃이 질 무렵 옥상에 올라갔다. 꽃이 피었던 가지에 초록색 살구가 조롱조롱 제법 많이 달렸다. 원목 개복숭아나무 가지에는 복숭아가 조그마하게 서너 개 달려 있다. 낙과가 될지도 모른다.
마당가에 있는 모과나무에 사과나무를 접붙인다기에 가보았다. 원목인 모과나무 가지를 면도칼로 조심스레 깊이 깎아 내고 사과나무 가지를 꼭 맞게 잘라 붙이고 테이프를 감아 놓는다. 위쪽 자른 부분도 수분이 증발하지 않도록 감아 놓는다. 또 다른 가지에 배나무도 붙여 놓았다. 다종나무다. 종이나 속이 같은 과끼리는 접목이 잘 된다. 지난해 봄에 접붙여 놓은 것은 잎눈이 나오고 있나 살핀다. 겨울에 냉장고 채소실에 나뭇가지를 랩으로 싸서 보관하더니 접수였다. 그렇게 해서 접을 붙이면 성공률이 높단다.
어릴 때 고향집 고욤나무에 감나무를 접붙여서 크고 맛있는 감을 많이 먹었다. 며칠 전에는 시골길을 가다 대추나무 접붙여 놓는 것을 보았다. 같은 종인데 사과대추를 얻기 위해서다. 접붙이는 것은 우량종을 만들기 위한 인위적인 결혼이다. 며칠 전 초등학교 저학년인 손자가 서로 다른 나무를 합칠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는데 확실한 답을 얻었다.
동물도 합칠 수 있는 동물이 있다. 노새는 암말과 수나귀 사이에 태어났다. 그 반대로 수말과 암나귀 사이에 난 것은 버새라고 한다. 버새는 몸도 작고 약해서 찾는 사람이 없다. 머리 모양과 귀는 당나귀를 닮고 갈기는 말을 닮은 노새는 말보다 인내심이 강하고 힘이 세다. 수명도 길고 지능도 당나귀보다 높다. 말보다는 작아서 타기에도 적당하고 짐을 나르기에도 좋다.
히말라야 트레킹할 때 차가 다니지 못하는 산악 마을 돌계단 길을 소금을 싣고 거침없이 가던 노새가 생각난다.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을 넘을 때도 말이 아니라 노새를 타고 넘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노새에다 곡식을 싣고 물물교환하러 먼 곳으로 장을 가던 사람들이 많았다. 잡종인 노새는 후세는 없지만 사람과 오랜 세월 같이 살아온 고마운 존재이다.
사람도 어쩌면 같은 이치인지도 모른다. 남편과 결혼하여 딸 셋을 낳아 길렀다. 큰딸은 아빠를 많이 닮고 성격도 비슷한 점이 많다.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고 가만히 있지 않고 부산스럽다. 그것이 좋은 점이기도 하다. 어느 때는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을 의식하고 아빠를 많이 닮았다고 하면 “나 닮아서 뭐 안 좋은 것 있어? 지나가는 남자를 닮았으면 큰일 나지.” 해서 웃었다.
둘째는 나를 많이 닮아 끈기가 없고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야무지지 못하다. 몸도 약하게 태어났다. 그래도 잔정은 있다. 셋째는 두 사람의 좋은 점을 고루 닮아서 내가 좋아한다. 그 애는 속이 깊고 성실하다.
모두 건강하고 지혜롭게 태어나길 바라지만 버새나 작은 복숭아처럼 약하고 부족한 자식도 있다. 우리는 둘째 딸이 그렇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간다. 딸 셋은 배우자를 잘 만났다. 부족한 점은 서로 잘 보완해 주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산다.
막내딸이 아기를 낳았다. 먼 나라에서 손자 사진이 도착했다. 누구를 닮았을까 살핀다. 얼굴형과 이마는 사위를 닮고, 눈과 입 주변은 딸을 많이 닮았다. 둘이 모두 키가 크고 선하니 성품은 두 사람 모두 닮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건강하게 잘 자라 주기를 염원한다.

남편이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 모과나무와 사과나무를 접목시켰으니 새콤달콤 맛있는 우량종 과일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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