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4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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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정의 달이자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의 일이다. 정부와 의사협회 간의 대립이 계속되는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변종 팬데믹에 감염된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쉬면 녹슨다(If I rest, I rust)는 삶의 철학을 갖고 시간이 돈이라는 마음 자세로 노후를 지내는 와중에 뜻밖에 장애가 생겼다.
대머리 수준의 머리를 감다가 우측 귀에 물 한 방울이 들어간 것을 무심결에 깜빡 잊고 지나친 것이 화근이었다. 수년 전에도 앓았던 외이도염이 생겼다. 전철 창동역 인근 J의원을 찾았다. 의사가 외이도염이라는 진단과 함께 두 번에 걸쳐 내원하여 처방전에 명시된 6일분 약을 사서 먹었다. 재진을 마친 의사가 내원 여부에 대한 말이 없어 간호사에게 내원 여부를 의사에게 물어봐 달랬더니 오시라고 한단다.
의원에 가지 말았어야 될 3회차 진료가 큰 화근이 될 줄이야! 환부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통증을 느끼면서 아! 아! 하고 소리를 낼 정도였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과 함께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의원을 나서면서 귀가 약간 멍한 상태임을 느꼈다. 의사 처방전에 따라 약을 사서 복용함과 동시에 의사가 처방해 준 점이액을 환부에 투여해야 했다. 귀가 멍했다.
4회차 진료를 위해 J의원에 내원했다. 아니나 다를까. 모니터를 통해 문제의 귀를 바라보곤 충격을 받았다. 고막이 면봉 모양처럼 제법 크고 둥글게 뚫린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어찌 이런 일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의사에게 “저게 뭐냐”고 하자 그때서야 의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막에 구멍이 뚫렸다”고 했다. 의사는 또 “나이가 많아 농(진물)이 많이 나오면 고막이 뚫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번 처방해 준 물약을 사용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더니 “물약 대신 알약으로 바꿔주겠다”고 했지만 거짓이었다. 물약 등 약 두 가지를 처방전에서 빼고 항생제 약 한 가지를 다른 항생제로 바꾸는 꼼수를 부렸을 뿐이다.
의사가 정색을 하며 물약을 쓰지 말라는 이유가 궁금해서 깨알 크기로 쓰인 물약 사용설명서를 확대경을 이용해 자세히 읽어보니 ‘고막 천공이 있는 외이염 환자에 대한 안전성·유효성은 확립되지 않아… 주의하여 투여한다’고 쓰여 있다. 고막이 천공된 상태에서 쓰면 안 되는 물약인 거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의사가 보인 행태다. 3회차 진료 후부터 환부에서 분비물이 흘러내려 베갯잇을 적시며 밤잠을 설치는 불편함을 감내하는 가운데 4, 5회차 진료 시 의사에게 한마디 했다. “머리 감다가 귀에 물 한 방울 들어가 여기서 계속 치료를 받았는데 호전되기는커녕 악화되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귀 치료를 여기서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이 된다”고 했더니 의사는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인상을 쓰며 소견서를 써 달라면 해주겠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천연덕스럽고 파렴치한 태도를 보인다.
마지막 6회차 진료실을 찾았다. 의사에게 “오늘은 처치를 안 하고 약만 처방받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더니 의사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귀 안에(분비물) 딱지가 붙어 있어 떼어내야겠다고 한다. 그러라고 했다. 이어서 의사는 “치료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 같다”는 말만 남기고 진료를 끝낸 다음, 간호사를 부르더니 필자의 청력을 측정하라고 한다. 내 평생 처음으로 청력을 측정하게 되었다. 간호사가 측정한 청력 측정 결과지를 보여주면서 “노환으로 귀 청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의사 자신이 저지른 의료사고가 아닌 양 황당한 궤변으로 상황을 얼버무리는 치밀함을 보인다.
그뿐인가. 의사가 발행해 준 처방전과 진료 차트를 비교해 보았다. 초진 및 재진 시 외이도염이라 진단해 놓고 3차 진료 처방전과 차트에는 급성 고막염, 알레르기 비염, 급성 위염, 만성 화농성 중이염, 급성 후두 기관염 등을 기재했다. 외이도염을 제외한 5가지 병명의 경우 일생에 단 한 번도 치료받은 적도, 약을 사 먹어 본 적이 없는 병명들을 기재해 놓는 등으로 ‘종합병원’ 취급했다. 분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의료사고의 경우 ‘의사와 싸워 봐야 이기는 환자 없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됨은 물론, 이는 사실상 관습법화된 것이 오늘의 의료 현실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의사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비록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될지언정 ‘혼이 깃든 계란은 바위를 깨트릴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의사에게 과감히 도전해 보기로 했다.
문 정부 시절, 중환자의 수술 등으로 인한 유명 연예인의 사망 등 의료사고가 자주 발생함에 따라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면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가운데 의사협회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료법을 개정해 수술실에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반드시 설치·운영하도록 했다. 또한 의료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중재 등에 관한 법률(의료분쟁조정법)이 지난해 1월부터 시행과 동시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설립·운영되고 있다.
정의가 결코 강자의 이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기에 필자는 의사에게 도전 중이다.
“테스 형, 의성(醫聖) 히포크라테스 형! 의사가 요즘 왜 이래? 왜 이러는 거야?”
한편 필자는 8개월째 치료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