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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을 둘러보면서

한국문인협회 로고 안환우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4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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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인 오일장이 서는 날, 둘러보러 갔었다. 너른 인도지만 노점상들이 다 차지하여 농산물 및 수산물과 각종 생활용품을 진열해 놓은 데다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북적북적해 통행로가 더욱 좁아져 다니기가 불편하기 짝이 없고 왁자지껄하였으나 전혀 싫증이 나지 않고 장날의 묘미로 다가왔다.
장날은 생생한 삶의 에너지가 항상 넘치고 단순히 사고파는 거래의 의미보다 서로의 만남과 소통 공간을 제공하는 데도 한몫을 톡톡히 한다. 말단 공직에서 은퇴한 지도 어언 십여 년, 현직에 있을 때는 오일장에 대해 가끔 찾은 기억은 있으나 별다른 의미를 못 느꼈던 것 같다.
요즈음은 하는 일이라곤 건강을 챙기는 일이 우선시되어 움직여야 산다는 신념을 가지고 매일 오천 보 정도 걷는 것을 목표로 삼고 가급적 실천하려 하나, 그것도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는다. 걷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나의 취미와 비슷하게 되어 유일한 낙이다.
특히 오일장은 내 집에서 도보로 약 15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자주 가는 편이다. 그날도 어차피 걷기 운동과 각종 물가 시세도 알아보고 필요한 것 있으면 살 겸 노점 하나하나 무엇이 있는지 샅샅이 훑어 다녔다. 그날따라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다. 그 한파의 기세가 대단한데도 시골에서 온 듯한 연로한 할머니들이 그 한파를 견디면서 노상에 농산물 몇 종류를 갖다 놓고 사가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정말 안쓰러웠다. 가지고 온 농산물 양이 많지 않아 다 팔아봐야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생계 유지 위해 나온 것은 아닐 것이고 심심함과 무료함도 달래며 푼돈도 챙길 겸 장날을 찾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겨울만 되면 발바닥에 각질이 생겨 집 안에서 덧신 양말을 항상 신고 있는데, 너무 낡아 하나 살려고 노점을 지나던 중 마침 내가 찾던 것이 보여 상인인 팔십 대 할머니에게 얼마냐고 물으니 삼천 원이라고 하여 오천 원짜리를 내주고 거스름돈 이천 원을 받고 물건을 집어 들고 서너 발짝 옮기던 중 갑자기 큰소리로 다급하게 불렀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뒤돌아보니 왜 물건값 안 주고 그냥 가면 어떡하냐고 면박을 주었다. 조금 전에 오천 원짜리 주었더니 거스름돈 이천 원 내주지 않았냐고 반박하자 한참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더니 받은 기억이 난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그 연세가 되면 깜빡깜빡할 때가 있는 것이 보통 있는 일로 이해가 간다.
그보다 훨씬 적은 나도 몇 년 전에 어느 약국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날 우중이어서 우산을 지니고 있었는데 필요한 것을 구입한 후 밖으로 나와 우산이 보이지 않아 거기에 놓아둔 것으로 착각하여 다시 들어가 혹시 내 우산 두고 간 것 못 보았냐고 하자 “손에 들고 있네요.” 하였다. 내가 들고 있는 것도 까먹어 민망하고 창피하여 부리나케 나온 기억이 생각난다.
5분여 걸었을 때쯤, 그때 두 할머니가 노점에 앉아서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한 할머니 왈 “요새 뭐 들은 것도, 뭐 놔둔 것도 금방 잊어버린다. 와 이러노?” 하니, 한 할머니 왈 “나도 그렇데이.” 하고 답한다. 젊은이도 건망증이 있는 것을 더러 보았는데 연로한 사람들이야 모든 신체 기능이 약해져 흔히 있는 현상으로 여겨진다.
다시 5분여 정도 걷다 보니 한 아줌마가 밤을 팔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밤을 많이 주워 사 먹지 않았으나, 올해는 낙상사고로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밤을 줍지 못하여 부득이 사 먹어야 할 처지이다. 만 원어치만 달라고 하여 값을 치르던 중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내가 사는 것을 보고 자기도 달라고 하면서 수중에 현금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상인에게 계좌이체도 되느냐고 묻자 된다고 하니 계좌를 알아 그 자리에서 폰으로 입금하였다면서 확인 요청을 하였다. 상인 아줌마가 10,000원만 입금하면 되는데 왜 50만 원을 입금했느냐고 반문하자 그 아줌마가 말하기를 그럴 리가 없는데 연신 고개를 젓더니 확인해 보고는 놀란 표정으로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나머지 돈을 받아 총총히 사라졌다. 아마도 순간 숫자를 착각하여 그러한 실수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어림짐작된다.
집으로 오던 중 오늘 오일장을 둘러보면서 느낀 것을 상기해 본다. 재래시장인 노점상인들은 연로한 분들이 많아 물건값을 받고도 일시적 기억 장애가 생겨 안 받았다고 우기면 목격자도 없으면 낭패를 당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착각은 자유지만 자칫하면 큰 실수로 이어진다는 것을 현장에서 직간접적으로 체험해 보니 무슨 일이라도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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