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4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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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함성이 들불처럼 번지던 1979년
그해 늦은 가을 우리는 평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대통령의 국가장을 치른 지 꼭 일주일 뒤였다
혼돈의 시대에도 세월은 쉼없이 흘렀고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
짧은 햇살이 비켜 가는 겨울 뜨락에 긴 그림자 둘이
마주 보고 서 있었다
키오스크에 주민증을 얹으니 지하철 승차권이 나왔다
무궁화 열차도 할인이 되고 지하철도 무료다
자갈치시장에 와서 꼼장어 한 접시에 소주 한 병을 곁들여도
오만 원이면 족하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질척이는 어시장에서 우리는
어깨를 움츠린 채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찬바람 탓인지 눈시울이 살짝 젖었다
산촌의 가을 햇살이 쪽마루에 내려앉은 날
신혼방의 흑백 티비는 신이 났다.
“참 예쁘게 해놓고 사네, 이 좋은 냄새는 또 어디서 나는 거지?”
이웃들은 모두 부러워하곤 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서로를 인정했으며
젊음을 믿고 삶의 희망을 노래했다
40년을 훌쩍 넘겨 같이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듯, 소고기뭇국을 끓일 때 나는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붉은 국물이 좋은데 아내는 맑은 소고기뭇국을 자주 끓인다
아내가 “맛있지?” 하고 물으면 나는 아직도 남편 식성을 모르냐고 되묻는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핀잔이 되돌아온다
반백년을 함께 살아도 자기밖에 모르는 부부라는 난해한 관계
모르던 사람끼리 만나 서로를 알아가다가
세월이 흘러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면
언젠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당신은 누구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어둔 채 서 있고
나는 책상 서랍을 열어두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서로의 기억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적막 속에 잔잔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