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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상곤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6월 6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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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날 여수로 내려갔다. 자식들로부터 금년 설에는 여수 호텔을 잡아 놓았으니 여수에서 설을 쇠자는 것이다. 자식들한테 이기는 부모가 있겠는가! 침묵을 지키다 결국 며칠 전에야‘그러마’하고 답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여수냐고 그랬더니 큰아들 회사에서 직원 복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호텔이 여수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인 설을 여수의 한 호텔에서 지낸다는 것이 우리들의 세대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민 집안에서 명절 제사를 없앤 실정이고 보니 뭐라 말을 하지도 못할 일이었다.

작년 설날, 명절 제사를 지내는 장손이 명절제사를 없애자고 넌지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누구보다도 보수적이고 유교사상에 젖어 있는 장조카가 그런 말을 꺼낼 때는 바 늘 가는데 실 가듯이 이미 자기 처로부터 무던히 압력을 받아 꺼낸 말일 것이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마누라 말을 듣게 된다는 것을 잘 아는 나로서는 내가 명절 제사를 지낼 처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상제사를 가져갈 수도 없는 처지일 뿐 아니라 요사이는 명절제사를 지내지 않는 세대가 많다고 하니 가타부타할 처지가 아니었다.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답을 한 것이 나의 결정이었고 결국 명절제사를 없애는 것으로 결정이 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아는 자식들이 종갓집에 가서 음식을 하고 심부름을 하는 불편한 관습을 벗어난 것에 보상이라도 받는 듯이 올해는 여수 호텔에서 설을 쇤다는 것이다. 실제는 호텔에 모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곳으로 오라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그렇다면 세배는 생략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을 쇠지 않으면 세배도 없는 것이 당연한데 그것은 아무런 답이 없었다. 설은 쇠지 않더라도 세뱃돈은 받겠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귀여운 손자들에게 세뱃돈 주는 재미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그것마저 없다면 아예 설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에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아무튼 여수는 부산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이지만 서울 가족들하고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을 뿐만 아니라 이왕 여수까지 내려간다면 엑스포 이후에 몰라보게 발전했다는 여수의 모습도 볼 겸 오전 일찍 출발하여 점심시간에 도착했다. 자식들이 핸드폰으로 맛집을 고르는 것 같아서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고 이곳의 특산물인 새조개집을 고르라 했지만 새조개 식당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식들이 핸드폰으로 고른 맛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맛집에 잔뜩 기대를 했던 때문인가 음식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맛집이라는 것이 때론 엉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한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식사를 마치고 여수 관광에 나섰다. 오동도와 향일암은 어촌의 전설을 취재하기 위하여 여려 번 와 봤던 곳이니까 제외하고 가 보지 않았던 여수 예술랜드로 가보기로 했다. 예술랜드의 입장료는 일인당 15,000원이었다. 뭐가 있다고 이렇게 비싼 입장료를 받을까 하는 생각에 일일이 돌아봤다. 그러나 그렇게 받을 만한 곳은 없었다. 몇 가지의 놀이기구와 포토존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조각들이었다. 차라리 카페에서 영롱한 여수바다를 내려다보며 굴전마을의 부표와 올망졸망한 섬들의 아름다움이 더 좋았다. 그러나 그런 정적인 시간 속에서는 그믐날의 섭섭함과 서운함이 돌아왔다.

적어도 그믐날이면 객지에 있던 가족들이 하나둘 속속 제주나 선물 상자를 들고 설빔을 입은 손자들을 앞세우고 대문을 들어서는 모습들이 선했던 것이다.

집에서는 우물과 부엌, 변소 등에 참기름 종기에 심지를 심어 불을 밝혀 온 집 안이 환했던 생각. 조왕신이 하늘의 옥황상제에게 지난 한 해 동안 집 안에서 일어난 일을 고하고 그 명을 받아 내려오는 것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믐밤에는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샌다고 하여 잠을 자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궁금한 것은, 우리 고향에서는 그믐에 그믐제사와 뒷날 초하루에 떡국제사 이렇게 두 번 제사를 지냈는데 왜 객지에서는 초하루 제사만 지내는 것인가.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은 있지만 정확한 원인을 알 수가 없다. 특히 남해안 지역(남해, 삼천포, 통영 등) 갯가 사람들만 그런 것을 보면 일부 민속학자들의 설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설에 위하면 갯가에 사는 사람들은 천민들로 관에서 제를 지낼 때 관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함으로 제를 지낼 시간이 없어 관에 가기 전에 그믐에 조상에 제를 지내고 관에서 제사가 끝나면 세배를 마친 후 집에 돌아와 간단하게 떡국으로 조상에 정월 초하루를 알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맞는 학설이라면 궁금증이 또 있다. 그럼 갯가 사람들은 전부 천민이었단 말일까? 이 천민이란 말은 어디서 나왔는가를 알아봤더니 조선 세조 때 만든 경국대전에서 양반을 지배계급으로 하고 평민 천민으로 국민을 구분했던 것이 그대로 내려왔다는 설이다. 그 자료가 정확한 것일까.

좌우간 카페에서 이런 생각들을 쫓아내듯이 일어나 어둠이 깔리는 이순신 광장과 낭만포차 그리고 방파제의 하멜등대 그 옆의 하멜전시관과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미니 풍차 등의 아름다운 여수의 밤바다를 돌아보며 숙소로 돌아왔다.

설날 세배는 호텔 침대를 사이에 두고 교인들 문상하는 식으로 난생 처음 서서 세배를 하고 서서 받았다. 그래도 미리 준비해간 세뱃돈은 모두 줬으니 내 할 짓은 한 것이다.

덕담도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식들을 내보내고 호텔의 창문을 통해 여수의 아름다운 바다를 보면서 옛날 설날을 회상해 본다. 참 쓸쓸했다. 설은 원래 조상숭배와 효 사상에 기반을 두고 먼저 가신 조상과 살아 있는 자손이 함께 즐기는 시성기간인 것일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너무 많이 변하고 있다. 과연 명절제사를 생략하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명절만 되면 공항이 북적인다고 하니 앞으로 이런 현상은 점점 더 많아질 것 같은 추세다. 세상은 이렇게 변해 가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 고유의 풍습인 설 명절을 지키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서글퍼지는 자신을 생각하며 쓸쓸한 설날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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