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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한국문인협회 로고 아이콘 박종윤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6월 6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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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이 흩날리는 어느 날이었다. 시내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도로 가장자리 자투리땅에 붕어빵집을 발견했다. 추운 계절이라 리어카에 비닐포장을 뒤집어 쓴 빵집이었다. 어느새 발걸음이 그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6,70대로 보이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여 주인이었다. “사장님, 비린내 안 나는 붕어 사러 왔습니다”하고 너스레를 떨며 들어섰다. “얼마치를 드릴까요? ”하고 미소로 맞이한다. 막 주문하려는데 여성 두 팀이 들어섰다. “먼저 이 분들에게 파세요”하고 뒤로 물러섰다.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다 포장마차에 ‘붕어빵 체인점 모집’이라는 광고문을 발견했다. 체인점은 큰 사업체나 음식점에서 분점을 모집할 때 쓰는 용어로 알고 있었다. 이런 길가 리어카 빵집에 어울리지 않는 과대광고라고 생각되었다.

손님이 돌아간 후에 안으로 들어서며“나도 이런 빵집을 하고 싶으니 방법 좀 알려 주세요”하고 말을 건네자, 대뜸 빵가게를 낼 장소가 있느냐고 물었다. 여기처럼 길가에 하면 되지 않느냐고 대수롭지 않은 듯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여기 사람들은 인심이 좋아 구청에 신고자가 없어 쫓겨나지 않고 장사하지, 대부분은 신고가 들어가 직원이 나와 못하게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름에는 팥이 쉽게 상하고, 겨울에는 잘 얼어 빵 굽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한다. 빵 기계는 영등포 주물점(鑄物店)에서 맞추면 되지만 결심이 서지 않고는 힘들다고 차분히 상담해 주었다. 이 분의 이야기를 듣고서, 쉬운 일은 없구나 하는 생각에 호기심이 사라졌다.

요즘도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나오다가, 길가에 이런 빵집이 나오면 으레 사서 하나씩 나누어 먹곤 한다. 모두들 신사체면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만족하게 먹으며 길거리를 누빈다. 학창 시절에 맛있게 먹었던 향수의 빵이다. 이때만큼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순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며칠 전, 티브이에서 네팔 나라 어느 촌 학교의 점심시간을 방영한 일이 있었다. 어느 목사님이 학교를 방문하여 둘러보다가 학생들이 종이에 갈색가루를 받아서 먹는 광경을 목격하고 “무슨 가루냐고 물었다.” 볶은 보리 가루에 황설탕 섞어 이것을 종이에 받아서 먹는다고 답했다. 옆에서는 종이를 쭉쭉 찢어서 그릇 대신 사용하도록 만드는 모습도 보였다. 문득 나라살림이 어려웠던 어린 시절이 되살아났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미국에서 원조해준 분말우유를 따뜻한 물에 타거나, 옥수수 가루로 죽을 쒀서 점심시간에 주었다. 네팔 학생들을 보니 그 시절 배고팠던 기억이 떠오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중고 시절에는 양은 도시락에 김치, 멸치조림을 반찬으로 보리밥을 싸가지고 가서 먹었다. 이것마저 어려워, 점심시간만 되면 살며시 운동장 귀퉁이로 피신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학교 정문 앞에는 풀빵장수가 있었다. 하교 시간에 빵 굽는 구수한 냄새는 가던 길을 멈추게 하고 군침을 흘리게 했다. 여럿이 함께 교문을 나서다가 여유가 있는 친구가 사서 하나씩 나누어 주면 참 별미였다. 조금씩 베어 먹으며 서로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던 학창 시절의 모습이 가끔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훌쩍 커버린 지금은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생존을 위해 먹었던 보리밥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가끔 먹고 싶어 찾아 나서야 어렵사리 찾을 수 있다. 여러 반찬에 된장을 넣어 비빈 보리밥을 먹을 때는 눈이 스르르 감기며 회상에 잠기는 시간이다. 어떤 친구는 예전에 너무 많이 먹어 질려서 이제는 싫다고 하는 친구도 간혹 있다. 그런 친구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어려웠던 시절의 연민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길가를 지나가면 맛있는 빵집이 즐비하다. 그런 빵집은 관심 밖이다. 그런데 가끔 붕어빵집을 만나게 되면 어김없이 들어가 세 마리 한 봉투를 사서 흐뭇이 먹는다. “굳이 이 빵을 선호하느냐? ”고 묻는다면, 어머님이 해 주신 음식이 제일 짱이라고 답하는 이치와 같다고 하겠다. 오랫동안 해주신 음식을 먹어 길들어져 그 맛을 못 잊는 것처럼, 배고픈 시절 오랫동안 우정을 나누며 먹었던 추억의 빵이기에 그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하겠다.

오늘 아내가 외출했다 돌아오면서 배시시 웃으며 붕어빵 봉투를 내놓는다. ‘아내도 향수가 서린 빵일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줄을 알아서 사 온 걸까’생각하다가 미소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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