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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도 손을 든다

한국문인협회 로고 윤정희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겨울호 2024년 12월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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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서 버스가 달려오면 내 앞에 멈춰 설 때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계속해서 손을 들고 있다. 하차 승객이 없으면 그냥 지나칠 것 같은지 레짐작 때문이다.
난, 버스를 즐겨 탄다. 낯선 사람들 얼굴도 보고, 각양각색의 생활상도 볼 수 있어 대중교통 이용을 선호한다. 5일마다 찾아오는 장날의 골목길을 비집고 다니면서 시골 아낙들의 제철 먹거리들을 흥정, 구입해서 담아오는 즐거움도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 때문이다. 때론, 빈 자리가 없어 힘들어 할 때 선뜻 자리를 내주는 학생들도 있고, 친절한 새댁들도 있어 고마울 때가 많다.
오래 전 운전을 배우겠다고 학원에 수강 신청을 하고,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연습 운전대에 앉았다. 1차 시험엔 합격하고 실기를 배우는데 어쩐 일인지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자꾸 엇나가기만 했다. 기계가 내 생각을 잘 들어주지 않았다. 애마의 기분까지는 들지 않더래도 최소한 자기의 일부분처럼 움직여 주어야 할 터인데 기술 습득이 되지 않고 왠지 불안감이 스치기만 한다.
차는 문명의 이기이면서 잘못하면 흉기가 되기도 한다.
“1초에 얼마나 멀리 달리는 줄 아십니까?”
예리한 학원 강사의 충고에 정신이 번쩍 들어 더 이상 연습을 그만뒀다. 그 이후론 첨단 기계와 친해지지 않아 고심할 때가 많다. 쉬울 듯싶어 도전해보면 잘 되지 않으니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어린 아이들도 자유자재로 두들겨 신기술을 이용하는데 왜 나는 버벅거리는가? 때론 창피하기도 해서 대놓고 남에게 말하기도 어렵다. 나를 은연중 얽어 매고 있는 끄나풀이 언젠가 풀어질 날이 있을런지 모르겠다.
내 집 가족들은 거의 다 자가 운전을 하고 있다. 음주운전을 하지 말고, 과속을 조심하라고 항상 당부한다. 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택시 이용도 잘 안 한다. 어지간한 거리는 운동도 될겸 걸어서 잘 다닌다.
몇십 년 전, 뿌연 흙먼지를 흩날리며 신작로 길을 신나게 달리던 우리나라 초창기의 버스는 인기가 대단했다. 차장도 관심의 대상이었는데, 그땐 젊은 남자가 조수 겸 차장이었다. 인물도 좋았으며 밤 늦은 퇴근 시간 때면 아가씨들의 데이트 신청이 많았다. 심지어, 여학생들도 차장 누구누구는 어떻다느니 화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통학하는 학생들도 많았는데 주말이 되면 버스는 항상 만원이었다.
“버스가 무슨 힘으로 움직이는가?”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는데, 차장의 “오라잇, 스톱” 소리를 듣고 운전기사가 핸들을 움직인다는 말이 나돌 만큼 인기 있었다. 입추의 여지없이 만원일 때 낯익은 승객들은 가끔씩 그냥 태워주는 인정도 있었는데 차비는 항상 현금이었다. 허리에 차고 있는 자크 달린 작은 가방은 항상 배가 불룩했다. 그땐 중간에서 손만 들면 태워주기도 했다. 아주 시골에선 도로 사정상 일반버스 노선이 생기지 않았다.
한동안 남자 차장 인기가 좋았는데 차츰 승객을 짐짝 취급한다느니 우락부락 불친절하다는 불평이 생기면서 나긋나긋한 아가씨 차장이 등장했다.
안내양들은 얇은 빵모자를 비스듬이 눌러쓰고 한동안 친절했다. 예쁜 아가씨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들도 직업의식이 투철해지면서 억세져 갔다. 콩나물 시루같이 만원일 땐 버스 문짝을 쾅쾅 두드리면서 안으로 밀어 운신의 폭을 좁힐 때도 많았는데, 막차가 될 땐 하는 수 없이 수긍해야만 했다. 버스 안내양의 직업적인 애환도 많았다. 하루종일 사람들에 시달리고 노동에 시달리니 오후가 되면 파김치가 됐다. 종점에서 내리면 벌컥 벌컥 맹물을 들이켜는 아가씨도 많았다.
드문드문 택시가 생기고 조금씩 시외버스가 생겨나면서 일반 버스 운용에도 변화가 생겼다. 더구나 사납금에 차이가 난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직업의 한계성에 잡음이 생기면서 차장제도가 없어졌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버스 문도 2개가 생기고 토큰제도가 생겼다. 나도 한동안 토큰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것도 세상 발전에 편승해서인지 전자카드로 대체됐다. 난 어쩐 일인지 재빨리 편승하지 못하고 계속 현금 승차를 하게 됐다. 한두 번 습관이 되고보니 고쳐지지 않았다. 나뿐이 아니라 현금 내고 거스름돈 받는 사람도 더러 있었으니 편한 습관대로 한동안 이어갔다. 때론 동전을 주르르 넣기도 했다. 민망할 때도 있었지만 신경쓸 것 없이 그대로 했는데 한 번은 장날 양손에 가득 들고 갈 물량을 감안, 미리 지폐 속에 500원 동전을 꼬깃꼬깃 감싸서 요금통 속에 넣고 아무 생각없이 앉았는데 운전기사의 혼잣말 소리가 들려왔다. 무임승차를 했다는 투였다. 거의 만원버스였으니 투박하여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를 보고하는 말인 듯싶어 “분명 차비 넣었습니다” 하곤 잠잠해 앉았는데 찜찜했다. 무임승차 의심을 받는 게 아닌가? 양말 속 뒤집듯 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나 외에 몇 사람이 현금을 냈는데 쨍그렁 소리가 그나마 들렸는데 유독 나만 분명한 소리를 듣지 못한 듯싶었다.
집 가까운 정류소에 내리면서 약간 큰소릴 한마디 했다.
“분명히 차비 냈습니다!”
한마디하고 내리니 기분도 상쾌하고 후련했다. 집에 오면서 생각하니 반복되는 격무에 시달리는 운전기사를 꼬집듯 되풀이한 나의 짧은 소견이 아니었나 싶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전자카드가 내 손에 들어왔다. 단말기에 대어보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낭랑한 목소리가 들릴 땐, 이렇게 편리한 것을 왜 묵살하고만 지냈을까 싶다.
이곳 창원에선 몇 달 동안 공사를 하더니 ‘BRT. 간선 급행버스 체계’가 들어왔다. 도로 중앙을 가로지르는 버스전용 차선인데 처음엔 낯설고 불편했다. 주차 건물이 도로 중앙에 설치됐는데 마치 ‘도시 속의 섬’처럼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뭔가 숨 쉴 사이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하고 잘못하다간 버스와 도로 사이 틈새가 넓을 때가 있는데 삐긋 잘못 헛디뎠다간 추락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얼마 동안은 고소공포증까지 생겼지만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 어떤 분들은 말하길, 서울 등 대도시에선 벌써부터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만남과 기다림의 버스정류장’의 긴 의자가 아직 그대로 있는 것이 눈에 뛴다. 택시 승강장도 겸하고,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쉼터로 남겨 두었으면 좋겠다.
다른 지역에선 없어진 지 오래됐다는 우체통, 공중전화 부스도 곳곳에 남아 있어 얼마나 정겨운지 모르겠다. 오래된 것이 쓸모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도 마음밭을 살찌우는 삶의 자양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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