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겨울호 2024년 12월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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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팔레트에 물감을 짜니 물감이 바짝 말라서 튜브에서 나오질 않는다. 오래 전 한국화를 그릴 때 하얀 화선지 위에 여백을 적절히 살리면서 농담을 맞추어 색을 입혔던 소나무, 자작나무, 연꽃 등. 코로나 이후 문화센터에서 셔틀버스도 운행이 중지되었고, 나이가 회원 중 제일 많은 70대가 되고 보니 자신감이 떨어지고 스스로 자꾸만 위축된다. 없으면 허전하고, 있어도 별 존재감 없는 나의 닉네임 ‘여백’처럼 내 인생도 어느새 점점 갓길로 밀려나고 있다.
수묵담채화, 도예 등 한땀 한땀 마음을 담고 손으로 빚어내던 나만의 예술 작업들은 서서히 종지부를 찍고, 지금은 모집 인원이 많아 결석을 해도 누가 누군지 모르니 출결석이 자유롭고 정신적인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고 한결 편하게 할 수 있는 치매예방웃음교실, 건강체조, 가요교실 등으로 내 수강 종목들도 바뀌었다. 정신적 충족감은 별로 없고 그저 늙어가는 심신을 위한 간단한 스트레칭 정도로 만족하고 있는 셈이다.
마음은 물레를 돌려가며 두 손으로 토닥토닥 정성스럽게 도자 항아리를 빚어보고 싶고, 물감 찍은 붓으로 척척 소나무 등걸을 실감 나게 그려보고 싶지만 이젠 몸도 따라주질 않으니 힘든 것은 기피하려고 꾀를 부리는 것 같다. 그때가 좋았다. 젊을 때가 좋은 것을 그때는 몰랐다.
문학회 모임도 마찬가지다. 내 1호 독자였던 남편과 친정어머니의 열반으로 좋아하고 응원해주던 독자가 사라지고 나니 가슴이 허허롭다. 교내 백일장에서 받은 장원 상장을 내밀 때마다 그렇게나 기뻐하시던 부모님, 문단에 등단하고 문학지에 내 글이 실릴 때마다 돋보기를 끼고 열심히 읽어보시며 그렇게 흐뭇해하시던 어머니는, 당신이 왜정 시절 소학교만 나오셔서 배우지 못한 보상 심리를 나를 통해 조금이라도 달래셨는지 모른다.
별로 표현이 없는 경상도 출신 무뚝뚝한 남편도 나의 문학 활동을 많이 응원해주고 은연중 자랑스러운 눈치를 보였다. 그러나 이제 내가 사랑했던 1, 2호 독자들은 먼 길 떠나고 내 문학은 많이 외로워졌다. 좋아하시던 연간지를 설레는 맘으로 들고 갔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좋아하며 내 글을 읽으셨던 97세 어머니는 정신도 흐려지고 눈도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아 돋보기로도 잔글씨를 읽을 수 없게 되시니, 책을 도로 집으로 갖고 오는 내 마음은 너무나 슬펐고 끝내 어머니는 내 곁을 떠나 먼 길 가셨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는 얼마 전 요양원에 입소했고, 서로 오가던 지인들도 두 사람이나 60대에 먼 길 떠나갔다. 세월 따라 바람처럼 떠나가 버린 사람들, 나만 홀로 오두마니 남은 것 같다. 말라버린 그림물감처럼 그 곱던 추억들과 촉촉하던 감성들은 내 얼굴의 주름과 함께 메말라 가는, 해질 무렵의 늘그막 풍경 속에 오늘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