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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길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6월 6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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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마당에는 햇수로 40여 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네 그루 서 있다. 창고 건물과 집을 지으면서 심어진 나무라서 춘풍추우 오랜 세월 함께하여 정이 든 나무다.

은행나무가 신비한 것은 굵고 곧게 뻗어 올라가는 세찬 줄기 때문만은 아니요, 이른 봄 버들가지 개나리 등 한참 봄 잔치가 거의 끝날 무렵, 겨우 깊은 겨울잠의 눈을 비비는 은행나무의 초연함이 장하기도 하다.

은행나무의 특징은 잎새다. 그 두껍고 짙푸른 잎새는 여름 내 우리의 마음에 시원함을 줄뿐만 아니라 지저분한 벌레가 덤비지 못하므로 드리워진 그늘도 깨끗하다.

나무에는 하나의 미학이 있다. 가지와 가지에서 피어난 잎사귀들이 아름다운 균형을 이룬다. 완전한 조화의 미다. 나이테가 깊은 아름드리나무는 그 그늘도 마당을 넓게 차지한다.

휴가철을 맞아 자손들이 모이는 날이면 우리 가족은 은행나무 시원한 그늘에 자리를 깔고 참외나 찐 옥수수를 간식으로 한더위를 식히기도 한다.

우리가 운영하던 정부양곡 사업이 한 시절 잘 만나 번창하던 시기에는 은행나무도 청년기를 맞이해서 가지와 잎새가 무성하게 어울려 울울창창하던 모습이 장관을 이루었었지.

나뭇잎이 늦게 왔으니 늦게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도 들지만, 가을이 오면 저절로 낙엽이 되는 것은 자기의 직분이 이미 끝나고 가야 할 때가 왔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의젓하게 노오란 수의에 싸인 몸이 소생이라도 하듯,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우뚝하고 성성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은행나무는 자웅이주(雌雄異株)이므로 암수 나무가 먼빛으로라도 마주 보아야 열매가 열린다.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면 은행 열매가 익는다.

열매에 다량 함유된‘징코플라본’성분은 혈전 생성을 막고 혈관을 튼튼하게 보호하여 원활한 혈액순환을 도울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각종 혈관질환을 예방하는 좋은 영양식으로 꼽힌다.

『동의보감』에 적힌 은행알 효능은 폐 속 탁한 기운을 맑게 만들어 천식과 기침이 멎도록 한다고 한다. 은행에 풍부한 비타민 A와 무기질, 글로불린 등의 성분은 기관지 증진과 염증 억제에 긍정적으로 밝혀졌다.

올겨울에 나는 감기가 심하여 기침이 자주 나고 가래가 계속되었다. 병원 처방한 약을 먹어도 가래는 멎진 않고 목소리까지 변하여 심히 고통스러웠다. 약효가 좋다는 은행 생각이 나서 하루에 정량을 지키며 먹었더니 며칠 안 가서 가슴을 답답하게 하던 가래가 서서히 가라앉고 감기도 나았다. 신비하게도 은행 효험을 보았다.

그러나 무조건 몸에 이로운 것만은 아니고 섭취 때 주의할 점은 은행 속에는 각종 영양 성분 외에도 독성물질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과다섭취 시 복통, 구토, 어지럼증, 호흡곤란 등 유발할 수 있으니 하루 권장량 성인 10알 이하, 어린이 두세 알 잘 익혀서 먹는다면 이만한 영양 별미가 없는 듯하다.

나는 추운 겨울이 되면 밖의 출입도 어렵고 해서 매일 은행을 까면서 지난 가을을 추억한다. 춘하추동 사계절의 신비로운 변화, 구름이 흘러가고 바람이 부는 수십 년 세월을 함께한 청정하던 은행나무도 이제는 윤기 흐르던 나무껍질도 추레하고 가지도 앙상하니 고목이 되었다.

늘 푸른 은행나무처럼 넓은 이 대지를 지키며 온갖 풍상도 꿋꿋이 이겨내던 당당하던 그이도 세월 따라 허리가 굽은 구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다.

넓은 앞마당 가득 쌓인 노란 은행잎을 방석 삼아, 허리에 힘이 빠진 궁둥이 털퍼덕 주저앉아서 등 굽은 노인 둘이 함께 떨어진 은행알을 줍는다. 아 무상한 세월이여….

겨울철 과일이 귀할 때 은행 한 바가지씩 선물하면 지인들 모두 좋아한다. 소복이 눈 쌓인 겨울 인심이 훈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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