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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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쓴다는 것은/ 순간의 시간을 정지시켜/ 하얀 백지에 못 박아 두고/ 멈춰진 시간에 붙들린/ 삶의 조각들에/ 내 기억을 영원히 새겨두는 것
어쩌면 살을 발라내는 발골과 같아/ 한 점 한 점 떼어낸 살점이/ 내 삶이요 기억들이기에/ 한 권의 시집을 엮어낸 모습은/ 알몸의 뼈만 남은 형상이다
모든 것을 비워낸 처절함에/ 한참 동안 죽은 듯 쓰러져 있다가/ 차츰 새살이 돋아 앙상한 몸을 가려주고/ 비었던 두개골에 하나둘씩/ 새로운 기억과 시간이 채워지면/ 허기진 몸 다시 일으켜 무뎌진 칼을 간다.
최승옥 시집 『꿈꾸는 모래시계』 서시 중 하나인 「모래시계」에는 "거꾸로 뒤집혀야/다시 시간을 만들며/새 삶을 살 수 있는 운명이기에"라며 모래시계를 다시 흐르게 하듯 시인도 오랜만에 시집을 내며 새롭게 활발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랜만에 시집을 내는 만큼 그동안 충분히 응축된 단단한 작품들이 실려 있는 이 시집의 일독을 독자에게 권한다.
김민정(시조시인·수필가·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