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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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오도독오도독, 톡톡.
농장 안은 닭들의 밥 먹는 소리로 가득하다.
“꼬순아, 왜 밥을 안 먹어?”
며칠 전부터 친구 꼬순이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것이 걱정되어 내가 물었다.
“밥맛이 없어….”
“그래도 먹어야지, 그래야 알을 낳을 거 아냐!”
나와 꼬순이는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인공 부화장으로 옮겨져 산란닭으로 개량되었다. 그 뒤 발육실에서 몇 달을 보내고 함께 이곳 농장으로 팔려 왔다. 햇빛도 들지 않는 좁은 닭장 안에서 알을 낳으며 1년을 지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꼬순이가 밥을 잘 먹지 못하고 깃털이 빠지더니 알을 낳지 못했다.
한낮이 지나자 농장 관리인이 나타났다. 닭들이 꼬꼬댁거리며 술렁댔다. 몸을 떨며 뒷걸음질치는 꼬순이를 관리인이 거칠게 붙잡았다. 꼬꼬댁 꼬꼬—. 꼬순이는 발버둥을 치며 울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는 늙거나 병들어 알을 낳지 못하면 모두 꼬순이처럼 어딘가로 끌려갔다. 나는 단짝이던 꼬순이 생각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우울하고 입맛도 잃었다. 며칠 사이 털이 빠져 꽁지털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내가 자랑스러워하던 붉은색 벼슬도 색이 옅어지고 힘없이 축 처졌다.
며칠 후, 농장 주인이 관리인과 함께 찾아왔다.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관리인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녀석이 요즘 알을 낳지 않습니다.”
“그래?”
농장 주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도계장(고기를 얻기 위해 닭을 잡아 죽이는 곳)으로 보내던지 팔아버려요. 먹이만 축내며 손해를 볼 순 없지.”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도 꼬순이처럼 어딘가로 끌려가는 건가?’
불안한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이야. 그동안 매일 꼬박꼬박 알을 낳아줬는데, 알을 못 낳은 지 며칠이나 됐다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이대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어!’
다음날, 나는 다른 닭들보다 일찍 일어났다. 먹기 싫은 사료지만 더 많이 먹었다. 비록 몸이 약해졌지만 아직은 알을 낳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주어도 알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절망에 빠졌다.
그날 오후 관리인이 낯선 남자와 함께 농장으로 찾아왔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마는 걸까?’
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관리인이 남자에게 말했다.
“잘 골라보세요!”
남자는 닭들을 이리저리 찬찬히 살펴보며 점점 내 앞으로 다가왔다.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낯선 남자와 내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요동을 쳤다. 다행히 남자는 다른 닭에게 관심을 보이며 내 앞을 그대로 지나 그중 몸집이 큰 다섯 마리의 닭을 골랐다. 관리인은 가지고 온 이동용 닭장 안으로 남자가 고른 닭을 집어넣었다. 닭들의 울음소리로 농장 안은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관리인과 남자가 농장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휴∼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이었다. 남자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왜 그러시오?”
관리인이 물었다. 남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다시 되돌아왔다. 그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켰다.
“이 닭도 사겠어요.”
나는 놀라서 거의 쓰러질 뻔했다. 다행히 관리인이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아, 그놈은 알을 못 낳아요. 폐계라구요.”
그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괜찮아요.”
“그것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닭을 사겠다니….”
관리인은 머리를 긁적이며 닭장의 문을 열고 내 날개를 움켜잡았다. 꼬꼬댁. 꼬꼬—. 나는 관리인의 손등을 마구 쪼았다.
“아얏! 이놈의 닭이 은혜도 모르고 사람을 물어?”
그의 손등에서 피가 흘렀다.
“쳇! 은혜라고? 그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알을 낳아주었는데, 이젠 쓸모없다고 팔아버리는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지! 꼬꼬꼬—.”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알도 못 낳는 놈이 아직 힘은 팔팔하구먼.”
나는 다섯 마리 닭들과 함께 비좁은 이동용 닭장에 갇힌 채 낯선 남자의 차에 실려 한참을 달렸다. 얼마 후, 차가 멈추었다. 그는 우리를 싣고 온 닭장을 차 밖으로 내려놓고 문을 활짝 열어주며 말했다.
“자, 이제 나와도 좋아.”
처음으로 느껴보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흙냄새와 신선한 풀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넓은 텃밭이 있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정말 나가도 되는 거야? 꼬꼬꼬.”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만 껌뻑거렸다.
“밖은 위험할지도 몰라. 꼬꼬꼬.”
그때 무리 중 하나가 용기 있게 닭장 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그러자 나머지 닭들도 후다닥 뒤를 따랐다. 나도 따라 나가고 싶었지만, 꼼짝할 수가 없었다. 볼품없는 모습으로 혼자 남아 구석에서 떨고 있는 나에게 남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겁내지 않아도 돼. 이제 이곳이 너의 집이야.”
“집이라고? 꼬꼬꼬.”
“너도 우리 가족이 된 거야. 그러니 겁먹지 말고 나와보렴.”
‘가족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병들어 알도 낳지 못하는 나에게 왜 이렇게 친절한 걸까? 혹시, 살을 찌워 잡아먹으려는 것은 아닐까?’
이런 슬픈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귀여운 꼬마아이가 아장아장 내게로 걸어왔다.
“아빠, 꼬꼬닭이야?”
아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래. 아빠가 닭을 사 왔어.”
“으응, 근데 이 꼬꼬닭은 왜 이렇게 못생겼어?”
“좁은 닭장 안에서 매일 알만 낳고 살아서 그래.”
남자는 아이에게 자상하게 말해 주었다.
“그랬구나, 가엾어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엾지? 그래서 데리고 왔단다.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오래오래 잘 살게 해주려고….”
눈물이 핑 돌았다. 태어나서 나를 이렇게 생각해준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이는 내게 다가와 무릎을 굽히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리야.”
아리란 이름이 아주 마음에 쏙 들었다. 내게도 이름이 생겼다. 나는 두둥실 구름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닭장 밖으로 나왔다. 아이의 무릎에 몸을 기대고 머리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