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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값 줄이기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지연(서초)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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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날, 학교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아이가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었다. 저만치서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더 흘렀을까. 시계를 볼 여유조차 없이 차창 밖만 쳐다보고 있는데 어느새 밖이 어둑해졌다. 이제는 저 멀리 있는 사람 모습을 분간할 수 없을까 봐 걱정됐다. 운전석에 앉아서 눈동자를 와이퍼처럼 왼쪽 사이드미러에서 오른쪽 사이드미러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드디어 저기 골목 초입에 아이가 보인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온다. 문을 열고 차에 들어선 아이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언제부터 세운 결심인지 모르지만 꽤 단단해진 결심을 내민다.

“아무래도 내년에 수능을 한번 더 봐야 할 것 같아요.”

“많이 못 봤어?”

“마지막 시간에 너무 정신이 없는 데다가 머리가 멍해져서….”

“그래. 일단 안전벨트하고.”

그리고는 나도 마음의 각오를 채웠다.

작은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몸이 아파서 병원에 수십 차례 다녀야 했을 때, 수능에서 예상치 못한 점수를 받았을 때, 그 점수를 보고 낙담해 있는 아이를 바라볼 때, 아이 앞에서는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하며 의연한 척했지만 나 혼자 있을 때는 허공에다 대고 원망도 했었다. 가슴이 답답하다가 허전하다가 답답하다가 허전했다.

햇살 좋은 어느 날, 책장 앞에 서서 읽을 책을 고르다가 집어든 책은 몇 년 전 읽은 고 박완서 작가님 책이었다. 그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내 아들 떠난 날은 온 국민이 웃지 못하는 날로 지정해야 한다”라는 문장. 자신의 이미지가 손상되든 말든 아랑곳 않고 가장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문장이라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아마 나 같으면 욕먹을까 봐 좀 더 순화했을 것이다.

그 당시 고 박완서 작가님이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 마음을 추스르는 데 가장 도움이 된 말은 어느 수녀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하며 낙담하는 고 박완서 작가님에게 그 수녀님은, “왜 선생님께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세요? 누구에게나 모든 일은 일어날 수 있어요.”

이 글을 읽은 지는 꽤 되었지만 전에는 마음에 스쳐 지나갔던 글귀가 아이가 재수하는 동안 내 마음에 자리 잡고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믿고 싶지 않을 만큼 속상한 일이 생길 때, “왜 나한테 이런 일이”라고 누군가를 원망하며 현실을 부정하곤 했다. 마치 반갑지 않은 택배를 집 안에 들인 사람처럼. 물끄러미 그 택배 상자 위 내 이름을 바라볼수록 마음은 더 버거워질 뿐이었다. 그 분노로 어지러운 마음을 가장 잘 ‘처리’하는 방법은 택배 포장을 풀어서 집 안에 들여놓고 자리를 지정해 주는 것. 이제 이 택배는 반갑지 않은 선물이 아니라 내 것이란 것을 인정하는 것. 그렇게 집 안 한 자리를 차지한 택배 속 물건은 더 이상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

내게 필요한 자세는 모든 게 다 잘될 거야 라는 낙관주의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고 내게 찾아온 내 몫의 일들을 받아들이는 긍정주의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전에는 낙관적으로 상황을 보려고 애썼지만 이제부터 낙관적이기보다 긍정적이기를 삶의 지향점으로 삼았다. 낙관적은 ‘앞으로의 일 따위가 잘 되어갈 것으로 여기는 것’인 반면, 긍정적은 애초에 모든 게 꼭 잘 될 거라는 희망적인 ‘방향성’이 없다. 모든 방향을 향해 다 열린 자세이다. 그저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일 뿐.

혹시나 해서 철학 사전을 찾아봤는데 내 생각과 비슷한 뜻풀이가 있다. ‘긍정적이란 사물에 대해 그 존재 방식을 그대로 승인하는 것’, 결국 현실을 잘 파악하고 그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이 긍정적인 것이라고 한다.

작은아이의 첫 입시 기간 나는 과연 긍정적으로 살아왔을까, 되짚어 보니 현실 도피 겸 낙관적으로 희망 회로나 돌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정말 잘될 거야 라고 믿기보다는 이 괴로운 생각들을 피하고 싶어서 낙관적인 척할 뿐이었다. 겉으로는 나를 속일 수 있었지만 내 마음을 속일 수는 없었다. 어둑해진 채 잠을 설치곤 했으니까. 한 해가 지나고 아이가 재수를 하면서야 긍정적이 될 수 있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다 받아들일 준비를 하니 무겁던 마음이 비로소 가벼워졌다.

‘안 좋은’ 상황은 ‘안 좋은’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게 ‘긍정’이고, ‘안 좋은’ 상황을 ‘좋은 걸’로 미화하는 것은 어쩌면 현실 ‘부정’일 수도 있다. 긍정이 아닌 부정. 어쩔 수 없이 밀려온 고통은 쉽지 않지만 받아들이려고 한다. 고통으로 받는 고통만큼이나 고통에 저항하면서 받는 저항감의 타격도 큰 법이니까.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이기. ‘와이 미?’가 아니라 ‘와이 낫 미?’라는 태도로 받아들이기. 갈대가 바람에 휘어지며 잠시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듯 저항하지 않았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고통이 곧 삶일 수도 있다고 되뇌었다. 어쩌면 삶의 이상적 자세는 파도가 멈추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파도를 타는 방법을 익히는 과정인 건지도 모르니까. 서핑까지 할 수 있는 날은 요원해 보이지만 파도만 보면 피하려 드는 어른이 되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지내다 보니 어느새 일 년이 지나갔다.

일 년 뒤 다시 학교 근처 주차장, 수능시험을 보고 나오는 아이가 저만치서 달려온다.

차 문을 열고 앉기도 전에 큰소리로 말한다.

“엄마, 이번에는 실력만큼은 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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