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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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 세배 한 번, 둥그런 나이테 하나. 부모, 어른에게 바치는 세배는, 세뱃테를 그린다. 나무줄기에 생기는 나이테처럼 세뱃테는 사람의 가슴에 생기는 동심원이다. 주고받는 세배와 딸려 오는 세뱃돈은 머리부터 가슴에 이르러서는 선을 둥그렇게 그리고 멈춘다. 세뱃테라 이름짓는다. 거기엔 사랑과 애정, 꿈, 세 가지가 담긴다. 그 셋의 크기와 무게는 세월이 흐르면서 누구에게나 변해간다.
세배는 태아가 임산부 뱃속에 있을 때 양손과 발을 가지런히 한데 모은 모습과 닮았다. 세배에는 어머니 뱃속에서의 그 형상을 영원히 동경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두 손을 공손히 모아 무릎 꿇고서, 새해의 복을 주고받으려는 듯, 세배하는 이의 마음은 경건하다. 새해의 희망과 축복을 서로 나누며 세배하는 이의 몸은 겸손하다. 서로에게 사랑과 행복이 듬뿍 깃들기를 소망하며, 세배하는 이의 눈빛은 간절하다. 세배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자 가족 친지 모두가 하나로 되는 그 몸짓은 진실하다. 세배를 마친 후엔 따뜻한 덕담이 오고 가고 거기서 새로운 격려와 칭찬을 나누니 그들의 마음은 넉넉하다. 세배는 새해 새 인연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니, 그 시간은 다음 해에도 계속되고 이어질 것이다.
가족 사랑과 어른 공경의 마음이 세뱃테의 면(面)을 이룬다면, 그에 주어지는 세뱃돈은 선(線)이다. 세뱃테의 좁고 넓었던 면, 가늘고 굵게 그어졌던 그 선은 해마다 달랐다.
1980년대 중반 직장에서다. 과장이었던 나, 임원 댁에 세배하러 가면 그분은 20여 명의 직원들에게 빳빳한 지폐를 ‘소원 성취 이루세요’라고 쓴 쪽지와 함께 봉투에 넣어 주었다. 그때 생긴 둥그런 원형의 테두리 하나는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고 있다.
가톨릭 교회의 봉사자 시절엔 이런 일도 있었다. 주임신부는 30여 명 단체장, 사목회 간부들과 세배 상견례를 나누고 신년 일정이 담긴 다이어리와 천 원짜리 신권을 세뱃돈으로 주었다. 그 세배 때 받은 ‘작은 돈’은 지금도 갖고 있으니 ‘거룩한’ 테를 새긴 게 분명하다. 돌아가신 부모님은 내가 학창 시절엔 세배를 받고 나서 매년 똑같이 “공부 열심히 해라” 한 뒤 세뱃돈을 주셨다. 그땐 몰랐지만, 부모님이 주신 덕담 속엔 내 미래에 관한 염려를 담아내신 거 같다. 난 부모님의 ‘그 염려’를 귀에 담아 알게 모르게 가슴에 둥그렇게 테를 새겼을 거라고 믿는다.
이제 나도 세뱃돈을 주는 나이가 됐다. 올해 벌어진 일이다. 다섯 살 손녀는 봉투 속을 들여다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두 개뿐이네”라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세 살 갓 넘긴 손자는 “여성처럼 엉덩이를 땅에 대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더니 오른손을 이마에 재빠르게 갖다 대면서 “뚱성”(충성! 발음을 하지 못했다) 하고 거수경례를 하는 게 아닌가. 가족들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2025년 설날, 잊지 못할 세뱃테를 남긴 셈이다.
1960년대 중후반이다. 친척 중에 내가 어릴 적 큰 세뱃돈을 주고 갔던 셋째 아저씨는 변호사였는데 돌아가시고 나서, 내게 사촌 형이 되는 그분의 아들도 해마다 내 부모에게 세배하러 왔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분의 발걸음도 멈추며 그 의식은 끊겼다. 친지들 소문에 그분 처남이 가구 공장을 하는데 은행 빚보증을 섰고 처남 사업이 부도가 나서 재산이 모두 차압되는 바람에, 성남시 어느 곳에서 지하 월세로 산다는 소식이었다.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했는지 그 다음엔 연락조차 안 된다. 그분 집안엔 세뱃테가 희미하게나, 아니면 둥그런 원의 반쯤이라도 새겨지려나. 모양이 둥근 게 아니라 찌그러져 있거나 그 동심원이 아예 멈추었을지도 모른다. 그 가문의 세뱃테는 고난과 절망의 무늬로만 가득했겠지만, 지금은 다시 원형의 본래 모습을 찾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분은 지금은 80세쯤 되었다. 세배하러 오는 이 없는 독거노인이 된 건 아닌지. 구정 설날이 되면 그 아저씨와 그분 아들이 내 가슴에 새겨준 세뱃테가 떠오른다.
내 세뱃테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앞으로 얼마나 더 세배를 받을 수 있을까에 궁금증이 일었다. 세뱃테를 한없이 만들 수는 없겠지. 언젠가 그 동심원 그리기도 멈추겠지라고 생각하니, 마음은 저 멀리 앞서갔다.
성철 스님은 ‘자기 자신을 만나려면 부처님께 삼천 배를 하라’고 했다. 어머님 뱃속에서 이 세상으로 나와서, 대략 예순다섯 번은 넘게 세배하는 동안, 내 부모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지낸 거 같다. 그분들은 모두 이 세상에 안 계시다. 지금 살아 계신다면 내 나이 숫자 칠십 번이라도 절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