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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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깍 울어대는 까치의 반가운 울음소리에 눈을 뜨니 몸도 가볍고, 마음도 상쾌한 느낌이 든다. 오늘은 고향 인근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즐거운 날이다. 동생과 요양원에 도착하니 미리 나와 계신 어머니가 반갑게 손을 마주 잡는다.
“아유, 우리 큰아들 영호 왔네!” 하시며 어린아이처럼 몹시 반가워하신다.
“어머니, 얼굴이 지난번보다 더 환해지시고 뽀야지셨어요? 요양원 선생님들이 잘해주시고 맛있는 것 많이 주신 것 같아요. 무엇이든지 늘 즐기고 맛있게 먹으니까, 혈색이 좋아진 것 같아요.”
“이게 누구냐? 우리 막내아들 영천이도 왔네! 반갑다!” 하시며 동생을 꼭 안고 계시는 어머니의 포근한 모습 속에 흘러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지나간다.
“어머니, 오늘은 식당보다 집에 가서 오붓하게 동생과 가족 식사 하시죠? 집사람이 어머니 드실 것 많이 싸줘서 한 보따리 가져왔어요.”
“그래 좋지! 오랜만에 집에 가서 아들들하고 가족 파티하며 맛있게 먹자꾸나. 아이 좋아라. 얼씨구 좋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는 어머니! 고향 마을에 도착하니 수십 년을 만고풍상을 견디며 든든하게 돈이울 마을을 지켜온 정2품 소나무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가는 길에 건너던 실개천이 보인다. 비가 오면 실개천에서 동네 아이들과 물고기 잡으며 수영하던 기억이 하나둘 물안개처럼 떠오른다.
근처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밭농사를 지으시며 무 배추 참외 수박 콩 감자를 심어 자식들을 공부시킨 텃밭이 보인다. 지금은 마을회관과 노인정으로 마을에 기부되어 일부만 흔적이 추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다.
어린 시절 5남매가 어머니와 생활하던 고향 집은 너무나 아늑하고 포근하다.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의 감과 자두가 환호성을 지르고 여기저기 활짝 피어난 장다리꽃이 반갑게 맞이한다. 불고기와 밑반찬으로 어머니와 식사를 하고 잠시 흘러간 추억의 언덕을 넘어 가본다.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돌아올 수 없는 세월. 그만큼 스며있는 인생 여울목의 그림자는 한올 한올 늘어만 가고 있었다.
자식들과 대화하며 방에 누워 TV를 보시며 즐거워하시는 어머니! 오랜만에 고향 집에 오시니 여유 있고 편안하신 모양이다. 어머니는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하시며 흥겨워하신다. 요양원에 가시기 전에는 가수들이 부른 녹음 테이프를 즐겨 들으시고 따라 부르시곤 했다.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최숙자의 <처녀 농군>, 송대관의 <해 뜰 날>, 나훈아의 <청춘을 돌려다오> 노래가 나오니 손뼉 치고 따라 부르시며 매우 흥겨워하신다. 요양원에서도 항상 노래하시며 생활하시니 더 평온하고 정정해지신 것 같다.
TV를 돌리다 보니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가요무대> 재방송이 나온다. 작년 5월 어머니 생신을 맞이하여 고향 인근 왕갈비 식당에서 가족들이 모여 어머니의 95회 생신 축하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5남매의 기쁜 마음을 전했다. 그래도 아쉬움의 여운이 남아 노래를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KBS <가요무대>에 남진의 노래 <어머니>를 신청하였는데 다행히 신청곡이 사연과 함께 방송되어 나왔다. 김동건 아나운서의 구성진 멘트가 사연과 함께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오늘은 평생 자식들 위해 고생하신 어머니의 95회 생신입니다.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5남매가 모였습니다. 하해 같은 은혜에 감사드리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마음에 사무친 사랑 노래 한 곡 올립니다.”
요양원에서 가수 정미애가 부른 <어머니> 노래를 수없이 들으며 자식들 이름을 하나하나 외쳐 부르셨다는 어머니의 안쓰러운 모습이 물안개 되어 떠오른다. 어쩔 수 없는 아쉬운 사회의 장벽 속에서 어머니와 떨어져 생활해야 하는 나 자신이 때로는 한없이 죄송하고 죄책감이 느껴졌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항상 부족한 생활이었지만 행복하고 즐거웠다. 철부지 어린 시절이고 자연이 오염되지 않고 배고픔은 있었지만, 가족 간에 우애 있고 이웃 간에 정겹고 사랑이 넘쳐나던 흘러간 시절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지금은 부족한 것이 거의 없지만 서로 대립과 반목 속에 갈등과 인정이 메말라가는 혼탁한 사회에 살고 있다.
만남의 아쉬움과 헤어짐 속에 요양원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 점점 가까워져 온다. 차마 어머니에게 가야 할 시간이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머니는 갈 생각을 안 하시고 TV 보시며 누워만 계시니 말이다.
“어머니! 이제 편한 어머니 집으로 가셔야지요?”
“영호야! 내가 어디를 가냐? 여기가 내 집인데. 수십 년을 너희들 5남매를 사랑하며 옹기종기 키우고 즐겁게 살던 내 집인데.”
“네 맞아요. 어머니! 그렇지만 여기 계시면 혼자서 생활하기 너무 힘드시니 요양원 가셔서 친구들 요양사 선생님들하고 편히 계셔야지요.”
“나는 안 간다! 못 가! 너희들하고 같이 살고 싶어요! 난 여기가 내 집이라 좋아요.”
“그래도 요양원에서 요양사분들하고 편히 계시고 친구분들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며 사셔야죠? 틈나면 노래도 부르시고요. 제가 가수들 녹음 테이프 사다 드릴게요. 친구분들하고 함께 노래 부르시며 즐기세요, 어머니! 며칠 있다 맛있는 것 사드리러 동생하고 또 올게요.”
평생을 자식들과 같이 생활하던 마음에 안식처가 아닌가. 어찌 정든 내 집을 떠나고 싶으실까? 그것이 인간 세상의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아닐까? 힘들어도 내가 살던 곳이 좋은 것이 우리 인간사가 아닐까.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서는 내 마음은 어찌나 찐하고 피곤하고 힘들었는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올해로 96세가 되시는 우리 어머니! 100세까지 만수무강하시길 기원해 본다. 요양원에서도 월요일이면 <가요무대>를 즐겨 보시는 어머니를 위해 사연 곡을 종종 신청하여 어머니가 자식의 사연을 들으시고 함께 즐기며 따라 부르실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또 기회가 되면 어머니의 소원대로 KBS <가요무대>에 모시고 가서 좋아하는 가수가 부르는 신청곡을 방청석에서 함께 들으며 박수치고 어머니와 함께 오붓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하루 빨리 그날이 오길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도 기원해 본다.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시며 박수치고 즐거워하시는 인자하신 모습이 오래오래 5남매 가족과 내 가슴에 간직되길 두 손 모아 기원한다. 또 다른 만남을 기원하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오늘도 하염없이 옮겨본다. 그리고 천지신명께 간곡하게 기원 드린다.
어머니, 만수무강하세요! 불효자는 항상 감사합니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