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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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나보다 먼저 퇴직을 하고 선친으로부터 받아 고향의 형님께 맡겨 두었던 얼마 안 되는 농토를 직접 일군 지 3년이 되었다. 봄이면 비룟값, 거름값, 모종값, 종자값이라며 수월찮게 가져갔고, 과실수 묘목값도 해마다 많이 들어갔다. 날마다 무엇을 하는지 나의 출근 시간에 맞추어 남편도 부지런히 시골 밭으로 출근을 했고, 내가 퇴근할 시간에 맞추어 농사일을 정리하고 돌아왔다.
남편은 근무지가 바뀌었을 뿐인데 가을걷이를 하고 연말 정산을 해 보면 수입은 영 신통치 않았다. 그래도 워낙에 즐겁게 출퇴근을 했고 나 역시 일에 바빠 남편의 농사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풋고추 몇 개 따와도 신기했고 참깨 몇 되 수확에도 기쁨이 넘쳤었다. 속이 차지 않은 김장용 배추를 가져왔을 때도 “이렇게 푸릇푸릇한 게 햇빛을 많이 받아 비타민이 많고 맛이 좋아”라는 말에 ‘그런가 보다’라며 감사하게 받았다.
그런데 먼저 퇴직하고 부부가 함께 귀농한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문이 생겼다. 농지 면적을 비교해 보았을 때 남편의 농사 결과물은 턱없이 적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따지니 농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친환경 농사는 금방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과일도 몇 년은 있어야 열매를 맺으니 기다려보라고 했다.
그러던 차에 나도 퇴직을 하게 되어 밭일에 필요한 농기구 보관도 할 수 있고 일을 하다가 쉴 수도 있는 작은 농막을 지었다. 농막이 생긴 덕분에 시간 맞추어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를 가지게 된 나는 남편과 함께 밭에 가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남편은 농사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남편의 소일거리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농사일을 시작했으니 『농사직설』과 같은 농사 관련 책을 읽어 보기도 하고 이웃 어른들의 이야기도 들어가며 미리 거름을 넣어 농사지을 수 있도록 준비를 착착 해 나갔다. 3년이 지나면서 농사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남편과 함께 미리 뿌려 둔 두엄이 흙과 잘 섞이도록 갈아엎고는 풀과의 전쟁을 막기 위해 물 빠짐이 좋도록 잡초 방지용 검은색 부직포를 깔았다. 오이, 호박, 가지, 땅콩은 모종으로 심고 참깨는 씨앗을 두세 알씩 넣고 부드러운 모래로 살짝 덮었다. 씨앗이 싹트고 모종이 뿌리내리도록 수분과 온도만 맞으면 올 농사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봄 가뭄이 심해 땅콩 모종은 타들어 갔고 씨앗으로 뿌린 참깨는 한 주가 지나도 발아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매일 땅콩 모종에 물을 주듯이 참깨 씨앗을 뿌린 곳으로부터 멀찌기 물을 뿌려주기 시작했다. 2주가 지나서야 겨우 하나 둘 참깨 순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젠 걱정 없다 싶었는데 참깨 순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고라니와 노린재가 또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농약을 치지 않으니 낮에는 노린재가 참깨 새순 모가지를 댕강댕강 꺾어 버리고 밤에는 고라니가 텃밭을 휘젓고 다녀 난리가 났다. 어린 깨순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낮에는 손으로 일일이 노린재 벌레를 잡아야 했고 밤으로는 눈을 부릅뜨고 고라니가 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야 했다. 가뭄이 해갈되고 잡초를 뽑아주어 농작물이 잘 자라기에 한숨 돌리나 싶었더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땅콩 추수를 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검은색 잡초 방지 부직포가 깔려 있는 밭고랑에 땅콩 껍데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너구리가 땅속으로 구멍을 파고 다니면서 미리 여문 땅콩을 캐 먹은 것이었다. 땅콩을 수확하려면 한 달은 더 있어야 하는데 난감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너구리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땅콩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간구했다. 한밤중에도 인기척을 내기 위해 녹음기를 크게 틀어 놓는 것이었다. 녹음기는 4시간이 지나면 충전을 다시 해야 해서 남편이 농막에 기거하며 막대기로 땅을 치기도 하고 깡통에 돌멩이를 넣어 흔들며 너구리를 쫓기도 했다. 하지만 너구리는 보란 듯이 미리 익은 땅콩만 골라 먹고 여기저기 땅콩 껍질을 흩어 놓았다. 나는 동물 잡는 틀을 놓던지, 너구리 잡는 약을 뿌리라고 남편을 종용했고, 이웃들도 땅콩 맛을 알아버린 너구리를 막을 수 없다고 덜 여문 땅콩을 미리 수확하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도 남편은 그 누구의 충고조차 듣지 않고 라디오를 크게 틀거나 땅을 탕탕 치며 소리를 내는 자신의 방법을 고수했다. 남편의 땅콩 사수 작전 덕분에 너구리한테 완전히 땅콩을 내주지는 않아 1등품은 아니더라도 우리 식구 먹을 만큼의 땅콩은 캘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농약을 치지 않고 키운 참깨를 떨고 땅콩을 캐면서 노력 봉사 투입 대비에 따른 산출은 적었지만,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농사에 재미를 붙인 남편은 여름 농사를 마무리하고 깻대를 찐 자리에 김장용 배추 모종을 심고 무씨를 뿌렸다. 나는 배추 모종 포기마다 열심히 물을 주었다. 나는 배추 속이 차기도 전에 자신만만하게 미리 김장용 배추를 나누어줄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해 두었고 유기농 김장 거리를 나눌 기쁨에 남편은 손으로 배추벌레를 잡으면서 매일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가을에도 가뭄이 든다는 것을 몰랐었다. 가을 가뭄에 배추가 자라지 못했을 때 내 마음은 여름 가뭄 때보다 더 타들어 갔다. ‘배추 나누어 준다고 말이나 하지 말걸’이라고 자책하며 배추밭에 물 퍼 나르느라 고생한 생각을 하면 배추 한 포기도 남 주기 아까웠다. 그래도 배추가 크지도 작지도 않고 적당하게 잘 자라 약속했던 것보다 더 많이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밭둑에 심었던 서리태콩은 결국 콩 꼬투리조차 바짝 말라 소출이 없어 소여물로 이웃에 주기로 하고 농사의 달인이라 콩이면 콩, 배추면 배추 수확이 좋은 이웃에게 검은콩 몇 되 구매했다. 서울 사는 시누이에게 우리가 농사지은 거라고 하면서 돈 주고 산 콩을 보냈더니 ‘우리 오빠랑 언니 농사도 잘 짓네. 잘 먹을게요’라고 문자가 왔다. 그 문자를 보면서 한바탕 웃고 나니 봄부터 가을걷이할 때까지 힘들었던 모든 것이 싹 사라졌다.
먹고살 만한 우리가 목숨 걸고 먹이를 찾는 고라니, 너구리에게 너무 야박하게 하면 안 된다며 너스레를 떠는 남편의 우직함으로 여름 내내 농약 걱정 없는 신선한 밥상을 차리고, 햇땅콩을 삶아 먹으며, 유기농 참기름 냄새를 식탁에 올릴 수 있었다. 우리 손으로 가꾼 먹거리를 손주들과 지인들에게 나눌 수 있음이 큰 행복이어서 남편과 나는 얼마 전에 겪었던 가뭄과 잡초와의 전쟁도 잊어버리고 나눔의 기쁨에 취해 봄도 되기 전에 농기구를 정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