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마음의 소리

한국문인협회 로고 아이콘 정영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6월 664호

조회수32

좋아요0

“비켜, 내가 할 거야! ”

교실 벽에 우두커니 서 있던 나에게 우리 반 주먹 대장 호철이가 달려들었습니다. 왜 평소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다가 꼭 이때만 되면 괴롭히려 드는지 모를 일입니다.

오늘도 나는 호철이 손에 다리를 붙들려 화장실로 끌려왔습니다. 맞습니다. 나는 남들과는 다릅니다. 누구나 가진 다리조차 한 개밖에 없어 남들처럼 똑바로 걷지도 못하는 외다리입니다. 호철이 손에 하나밖에 없는 다리를 붙들려 머리가 복도 시멘트 바닥에 질질 끌리는 것이 범죄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악랄한 고문과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모습조차 익숙해졌는지 주변 친구들은 아예 내게서 관심조차 거두었습니다.

호철이 손에만 의지하여 의도치 않게 공중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내 눈에 반쯤 차 있는 양동이의 물이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잠시, 잘 익은 벼 이삭처럼 아래로 쏠려있던 내 머리칼은 금세 양동이 안으로 쑤셔 넣어졌습니다.

“어푸∼ 그만해! 그만하라고 제발! ”

내 목소리조차 물에 잠겨 들리지 않는지 호철이의 행동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육체적인 고통보다 나를 더 비참하게 하는 것은 친구들이 함부로 내뱉는 조롱과 비웃음입니다.

“으, 물 색깔 시커멓게 되는 것 좀 봐.”

“윽, 더러워.”

나도 내가 외다리인 것도 알고 있고, 잘 씻지 않아 더럽고 냄새난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다는 것입니까. 외다리인 것이 내 잘못인가요, 양팔마저 없어 씻을 수 없는 현실이 왜 다 내 탓이어야만 합니까.

그때 5반 선생님께서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나는 현장을 목격한 선생님의 도움을 갈구하는 눈빛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이 녀석들아, 살살 해라. 물 튄다.”

녀석들은 “네.”라는 힘찬 대답과 함께 힘을 더 주어 나를 짓눌렀습니다.

‘그래, 선생님까지 나를 무시하는… 나는….’

“이호철! 앞으로 나와.”

내 등에 기대 졸던 호철이가 결국 선생님께 걸리고야 말았습니다.

“같이 나와야지.”

결국 오늘도 등을 빌려준 죄밖에 없는 나까지 교실 앞으로 끌려 나왔습니다. 호철이가 뒤로 숨겨서 쥐고 있던 주먹 때문에 웃지 못하던 친구들이 내가 엉겁결에 끌려 나오다 책이며 필통을 떨어뜨리자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습니다.

“하하하! ”

나 때문에 자신까지 도매금으로 웃음거리가 된 것에 화가 났는지 호철이는 신경질적으로 나를 잡아끌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나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소연이의 모습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소연이 너마저.’

말뚝 박기를 할 때도 나는 항상 맨 끝에 가서 엎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면 호철이는 꼭 나를 짓밟으며 앞 친구의 등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소연이를 기다렸습니다. 아니 그 고통을 소연이 생각으로 참고 버텼습니다.

“야, 너희들! 또 뭐 하는 거야? ”

“됐다, 그만하자. 간섭쟁이 납셨다.”

소연이는 우리 반 여자 회장입니다. 남자 회장은 호철이 눈에 들기 위해 함께 어울리기 바빴지만 소연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휴, 실내화 신고 밟아서 발자국까지 났잖아.”

소연이는 손수 내 등을 털어주었습니다. 나는 소연이의 손길에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린 채로 등을 맡겼습니다.

학기 초 어느 날, 호철이는 내 등을 도화지 삼아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호철이의 짝이 다름 아닌 소연이입니다. 소연이를 살짝 돌아봤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호철이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호철이에게 집게손가락을 위아래로 흔들며 지우라는 시늉을 했습니다.

“쳇! ”

호철이는 순순히 내 등을 문질렀습니다. 난 그렇게 소연이를 짝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난 호철이와 함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소연이와 눈을 마주치기가 겁났습니다. 소연이가 아까 날 보며 킥킥거리던 그 눈 그대로 나를 보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호철아, 좀 빌릴게.”

남자 회장이 호철이의 눈치를 보며 나를 가리켰습니다. 호철이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마음대로 해.”

회장은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내 등을 밟고 올라섰습니다.

‘하필 미술 작품을 지금 붙일 게 뭐람.’

나는 소연이 쪽으로 엉덩이를 내밀고 있는 것이 창피해서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러자 회장이 삐끗거리다 내 등에서 떨어졌습니다.

“악! ”

회장은 냉큼 일어서더니 나에게 발길질을 해댔습니다.

콰당! 난 회장보다 더 처참하게 널브러졌습니다.

“괜찮아? ”

소연이의 목소리였습니다. 내게 차오르던 분노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내가 괜찮다고 말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괜찮아.”

회장의 목소리였습니다. 놀랍게도 소연이는 그런 회장을, 아니 회장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에이, 재수 없어.”

이어서 들린 회장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그때서야 소연이가 내게로 눈을 돌렸습니다. 이미 풀린 내 다리를 바라보며 넌 정말 재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 내가 이러면 안 되지. 감히 소연이를 짝사랑하다니. 난 한낱….’

똑똑! 생활부장 선생님께서 1반 교실을 방문하셨습니다.

“이 반에 혹시 이호철이라는 학생이 있나요? ”

“네, 있습니다만.”

생활부장 선생님의 손에는 두 개의 쪽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학교폭력 신고함인‘마음의 소리’에서 꺼낸 따끈따끈한 종이였습니다. 생활부장 선생님께서는 넌지시 두 장의 종이를 1반 선생님께 건네셨습니다.

“허∼.”

생활부장 선생님께서 눈을 감고 있는 동안 간간이 들려오는 것은 1반 선생님의 어이없어 하는 감탄사뿐이었습니다.

“신고자, 신고자는 어디 있습니까? ”

“신고자 이름이 뒷장에 있기는 합니다만….”

1반 선생님의 입에서는 또다시 허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런데 의문의 신고자 이름을 생각하며 다시 읽어보니 문제가 풀리는 것도 같았습니다.

“이거 혹시 누가 장난한 거 아닐까요? 끔찍한 이야기지만 동화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어쨌든 학교폭력 신고함에 들어온 신고지라 조사는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제게 맡기고 가십시오. 저희 반에 언제 이런 문제가 있는 거 보셨습니까? ”

“그럼 뭔가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 꼭 알려주십시오.”

다음 날 아침, 선생님께서는 호철이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어제 받은 쪽지를 내밀었습니다. 호철이는 쪽지를 읽으며 얼굴이 벌게졌습니다. 자신이 한 행동은 맞았지만 치사하게 마치 친구들을 괴롭힌 것처럼 써놓은 것이 억울했습니다.

“너 요새 일인 일역도 잘 하고 해서 선생님이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그렇지 않은가 봐.”

“이건 친구들이 장난으로 쓴 거잖아요.”

“그러니까 친구들이 그렇게 보지 않도록 더 잘해야지. 알겠어? ”

교실로 돌아온 호철이는 친구들을 쓱 한번 훑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으휴∼”하며 자리로 돌아와 앉았습니다. 그날부터 호철이는 친구들을 좀더 조심스럽게 대했습니다. 하지만 쪽지의 신고자로 적혀 있던 이들만은 예외였습니다. 오히려 일인 일역을 하면서 더 힘주어, 거칠게 그것들을 다루었습니다. 마치 실제 그 물건들이 신고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어쨌든 그 모습이 선생님과 친구들 눈에는 그저 더 열심인 것처럼만 보였습니다.

물론‘대걸레’와‘ 책 상 ’은 곧 부러지고 망가져서 제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하여 새로운, 조만간 같은 운명에 처할 물건들이 채워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에게 관심을 두는 친구들이나 선생님은 없었습니다.

마침, 살짝 열린 창문 틈새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책상 귀퉁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두 장의 쪽지는 아주 잠시 행복한 꿈을 꾸었다가 이내 쓰레기통 안으로 불시착했습니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