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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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국수가 먹고 싶었다. 양평으로 드라이브 겸 길을 나섰다. 며칠 동안 퍼부은 장마로 한강 물빛은 누런 흙탕물이었다. 파란 강물로 싱그럽던 양평의 풍경이 흐린 하늘과 흙탕물로 먹먹한 색이다. 인생이 시시각각 변화하듯 풍경도 날씨와 계절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세미원 부근을 지날 때 연꽃 군락지에는 연꽃이 절정 시기가 아니어서 몇 송이씩 피어 있고 강물에 휩쓸려온 쓰레기들이 밀려와 고고한 연꽃에 흠집을 내고 있었다. 가끔 가는 메밀국숫집에 도착해서 냉메밀과 메밀만두를 시켜서 먹었다.
나들이 길에는 낯선 계곡이나 안 가봤던 길을 일부러 가보는 것을 즐긴다. 불안함 사이로 풍경을 만나는 느낌이 신선하고 덤으로 재밌는 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수입리 계곡으로 가는 길에 강물과는 다르게 맑고 깊은 물이 콸콸 흘러내린다. 당장이라도 물에 들어가 발이라도 담그고 싶어진다. 계곡물에서는 더위를 피해 온 사람들이 튜브를 타고 물놀이를 즐기고 물장난을 하고 물고기도 잡는 모습이 한가롭고 여름의 풍경이 더 깊어진다.
차 한잔 하려고 계곡을 따라가며 살펴보니 정원 카페라는 간판이 보였다. 한참을 가다 보니 큰 주차장이 나왔다. 카페의 규모를 가늠케 한다. 주차하고 카페에 들어가려는데 입장료로 9천 원을 받는다.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물었더니 입장권에는 찻값이 포함된다고 했다. 카페에 들어서니 잘생긴 반송들이 기품 있고 목백일홍이 만개해 비 갠 하늘에 구름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군데군데 장미꽃과 야생화들이 아기자기하게 정원을 수놓는다. 정원은 물가에 자리했다. 물가를 바라보게끔 야외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해서 나리꽃을 바로 옆에 두고 앉아 유화 한 장처럼 차 한 잔을 할 수도 있고 정자를 독차지하고 쉬어도 된다. 정자 이름은 ‘無心亭’, 너른 정원을 둘러보았다. 물가에 의자를 여러 개 배치해 놓아서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쉬는 이들도 있다. 물가 산자락에는 비가 많이 와서 자연 폭포수가 시원하게 떨어졌다. 나중 주인한테 물어봤더니 인공 폭포를 설치해서 펌프로 물을 끌어 올린다고 했다. 어쨌든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가슴속까지 시원하고 풍경에 몰입하게 된다.
남편은 오미자차 나는 자몽차를 주문해서 빈 정자에 앉았다. 정자 기둥 꼭대기에 선풍기를 설치해놔서 시원하다. 눈을 돌리면 마치 무릉도원에 온 듯 폭포수가 흐르고 계곡물이 흐르고 정자가 있고 소나무와 여름꽃들이 하모니를 이루며 편안하고 멋지다. 편하게 차 한잔을 하는 시간이 좋다. 차 한 잔 하려고 들른 정원 카페가 큰 만족감을 주었다. 요즘에는 카페가 다양한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스타벅스 카페는 시골에 오픈을 해도 유명세 때문인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고 들었다. 책을 보면서 차를 마실 수 있는 북 카페, 식물의 좋은 기운을 받으며 마시는 식물원 카페, 카페에서 그림 전시도 하는 갤러리 카페, 반면에 양평 강가에 즐비한 카페들이 불경기와 공급이 넘쳐서인지 지나다 보니 카페가 빵집으로 바뀌고 카페가 옷 가게로 변한 집들도 보인다.
현대인들은 다양한 욕구가 있다. 차 한 잔을 마셔도 유명한 바리스타가 커피 맛의 특징과 유래를 들려주며 정성을 다해서 차 한 잔에 만 원을 훌쩍 넘어도 애호가들은 찾아간다. 반려견이 식구처럼 된 세태에 반려견과 함께 갈 수 있는 카페도 인기다. 여주에 어느 카페는 사막 분위기를 내는 ‘바하리야(Bahariya)’라는 감성 카페도 있다. 이젠 사람들이 차 한 잔만 마시는 게 아니다. 차와 문화를 즐기며 함께 마신다. 호텔 고층 라운지에서 마시는 애프터눈티는 몇 만 원씩 해도 예약을 해야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정도다. 각자의 기호에 맞게 차를 즐기는 형태가 다양해졌다.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식탁에 앉아 믹스커피 한 잔에 행복해지기도 한다.
정원을 품은 카페 ‘정품카’ 사장님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카페 상호 뒤에는 숫자 529라는 숫자가 있었다. 사장님 생일인지 의미 있는 숫자인지 물었더니 카페의 번지수란다. 용인의 고기리에 있는 한 카페 상호는 1829이다. 주인장 부부의 생일을 나란히 썼다고 들었다. 신선했다. 입지 조건이 좋은 정원 카페는 주인이 20여 년 살다가 카페로 운영한지는 7년 됐다고 했다. 살던 집에 좋은 정원수를 더 심고 구석구석에 정자와 의자를 배치하고 장미 넝쿨을 올리고 조각품을 배치하고 쉼과 재미를 주려고 다각도로 변신한 것이다. 우연히 새로운 계곡 길을 가다가 만난 정원 카페는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줬고 잠깐 머무른 시간이 멋진 풍광과 함께 깊은 휴식을 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나는 모험이랄까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혼자 배낭을 메고 책 한 권 커피 한 병 들고 훌쩍 기차에 오를 때가 있다. 스치는 풍경을 보고 차 한잔하다 책 몇 페이지를 읽다 눈 감고 가다 멍 때리며 달리는 기분이 좋다. 시내에서 약속이 있을 때도 미리 나갈 때면 일부러 건물들 사이사이 길을 걸어본다. 낯선 상점과 만나고 최근 유행하는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길을 이탈하거나 잃어야 만나는 것들이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 바삐 움직이고 변화해야 새롭고 선보이는 문화도 즐길 수 있다. 정원을 품은 카페 정자에 앉아서 쉬는 동안 ‘변화’와 ‘융합’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한참을 머물다 갔다.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