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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이세요?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동민(수필)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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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싱어송라이터 C의 인터넷 개인방송을 듣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 개인방송을 하는 피아노 콘텐츠 창작자 S의 영향이었다. 나는 유튜브로 음악을 즐겨 듣는데,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S가 유명 애니메이션 <강철의 연금술사>의 주제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영상을 접했다. 원곡보다도 곡의 애절한 정서를 더 잘 녹여낸 S의 연주에 매혹되다시피 한 나는, 자연스럽게 S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S와 C는 각각 피아노 반주와 노래를 맡는 듀오 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보니, 내가 S와 더불어 C의 팬이 되는 일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듯도 싶다.

C는 성량이 크고 발성이 좋은 데다 개성 강한 음색도 매력적이고, 본인이 작사·작곡한 노래의 노랫말과 가락도 다양한 감성을 진솔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나는 그런 C의 노래와 뮤직비디오에 매료되어 갔고, 음악을 즐겨 듣는 나는 매력적인 노래와 더불어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C의 인터넷 개인방송도 S의 방송과 더불어 즐겨 듣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다음 연구실 머무를 때, 음악과 이야기가 오가는 방송은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어느 해 9월 초순이었다. 그날 저녁에 C의 개인 방송을 틀었더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어느 시청자가 채팅창에 채팅 글을 남겼다. ‘개강을 해서 힘들어요.’ 글이 올라오자마자 다른 시청자들도 대학 시절 개강했을 때의 이야기를 또 다른 채팅으로 쏟아낸다. 방학 때 마음껏 늦잠을 자다가 개강을 하니 수업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야 해서 힘들었다는 이야기, 조별 과제를 하는 게 힘들었다는 이야기 등…. C도 그런 채팅 글에 박자를 맞추어 가며 본인 대학 시절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무렵 나는 대학의 전임 교수이기는 했지만, 비정년 트랙 교원이라 해서 승진 기회, 급여 등 대부분의 처우가 전임 교원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하고 단지 서류상으로만 전임 교원인 신분이었다. 노동권을 우습게 알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처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직결된 문제였는데, 이때 나는 학교와 전공 분야에서 확실한 실적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처우 문제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빠져 있었다. 개강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가 오가자, 나는 푸념하듯 댓글을 남겼다. ‘교수도 힘들어요….’ 다분히 힘든 마음에 푸념을 가득 담아 쓴 이런 채팅에 누가 눈길을 주거나 관심을 기울이리라고는 당연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방송을 진행하던 C가 채팅창 위로 올라오는 여러 글을 보더니, 내가 남긴 푸념 글에 주목한다.

“교수도 힘들다…, 아니, 교수님이세요?”

깜짝 놀란 듯 큰 소리로 외치는 C의 목소리에, 나는 태어나서 가장 강한 수준의 민망함을 느꼈다.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 없이 푸념하듯 남긴 글인데, 순식간에 내 신분이 그대로 드러나 버렸으니 민망함을 금할 수 없었다. 방송을 퇴장할까 싶다가 그러면 내 꼴만 더 이상해질 듯해서 그러지도 못했고, C는 본인이 가진 대학 교수 이미지가 있는데 앞으로 날 어떻게 대할지 모르겠다며 농담조로 이야기한다. 나를, 정확히는 뜻하지도 않게 밝혀진 내 직업을 주제로 한 대화가 이십 분 가까이 이어진 그날로부터 달포쯤 지나, 나는 C의 콘서트에 참석할 수 있었다.

초겨울의 꽤 추운 날이었고 원래 다른 일정이 있었는데, 콘서트 당일 마침 일정이 바뀐 덕분에 운 좋게 참석할 수 있었다. C의 노래를 직접 들으니 스피커를 통해 듣는 노래보다 훨씬 감흥이 컸고, 피아노 반주를 해준 S를 비롯한 여러 동료 음악인과의 연대와 동료애도 보기가 좋았다. 콘서트가 끝난 뒤 포스터에 C의 사인까지 받았지만, 내색을 안 한 건지는 몰라도 C가 나를 딱히 알아보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여름, 나는 꿈에도 그리던 국립대학교로의 이직에 성공했다. 국립대학교에 부임하기 두세 달 전에 쓴 저서, 그리고 부임 직후에 나온 또 다른 저서를 사인까지 해서 C에게 보내 주었고, 한번은 C가 방송 중 보내준 책을 잘 받았다는 인사를 짤막하게 한 적도 있었다. 그해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할 즈음 C는 내가 참석한 학술대회 날 저녁에 콘서트를 가졌고, 학술대회를 마치자마자 정장 차림 그대로 간 콘서트장에서 C는 나를 알아보며 보내준 책을 고맙게 잘 읽었다는 짤막한 감사 인사까지 짧게 해주며 포스터에 ‘교수님’이라는 호칭까지 적어준 사인을 해주었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지난 늦가을에 열린 콘서트에서도, 사인을 해 달라는 내 요청을 받은 C는 공연 기념품에 ‘교수넴’이라는 문구를 곁들인 사인으로 화답했다.

언젠가 서너 시간 동안 혼자서 운전대를 잡고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음악을 들을까 하다가, 마침 C가 인터넷 방송을 하길래 자동차에 스마트폰을 연결해 운전 내내 C의 노래와 방송을 들었다. 노래와 이야기가 이어지니, 네 시간 가까이 운전하는데도 피로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운전 중 들른 휴게소에서, 휴대전화를 들어 방송 화면을 보니, C의 작업실 선반 너머로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 보인다. 어렴풋하기는 하지만, 내가 사인해 보내 준 저서들이었다. 어찌 보면 작게 여길 수도 있을 ‘팬심’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 감사하며, 음악과 예술에 대한 열정이 계속해서 화려하게 꽃피고 좋은 결실을 보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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