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17
0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 속 여자를 천천히 바라본다. 시간과 기억, 나와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다. 파운데이션을 가볍게 눌러본다. 부드럽게 퍼지는 크림은 주름진 피부 위를 매끄럽게 덮으며, 어둠 속에서 비어 있던 색을 채운다. 화장대 앞에 앉은 모습은 언제나 조금 특별한 미감을 자극한다. 육체에 수용되기 위해 기다리는 색채의 제단, 화장대는 제의를 연상시킨다. 화장의 기원에는 신들과 자연을 포함한 타인에 대한 경의와 연대와 매혹의 욕망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욕망의 근원에는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서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독특한 미의식을 경배하며 즐기던 다채로운 감각과 전통이 얽혀 있다.
내가 처음 화장대를 가져본 것은 이십 대 중반에 막 접어든 때였다. 소소한 화장품이 한두 가지씩 생겨나면서 방 귀퉁이에 몇 장의 붉은 벽돌을 받침 삼아 쌓은 후 베니어판과 레이스 달린 탁상보를 덮어 만들었던 작은 화장대가 생각난다. 그 위에 작은 분통과 스킨로션, 립글로스, 빗, 머리핀들이 놓여 있었다. 화장대 위에 놓여 있는 그것들은 바라보는 이의 시선을 아련하게 순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젊거나 늙은 엄마의 화장대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이 얼마간의 다사로움과 물기를 머금기 십상인 것처럼. 화장대 위의 사물들은 현실성과 비현실성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화장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어느 화보에서 투탕카멘왕의 황금 마스크를 보았을 때였다. 뜻밖에도 나는 그 마스크에서 충격적이라고 할 만한 어떤 미감, 다소 비극적인 육체성을 느꼈던 것 같다. 마스크 저편에 가리어진 죽은 자의 얼굴에 대한 궁금증 같은 것이었을까. 열여덟에 죽은 젊은 왕의 얼굴은 아름다운 황금 마스크 저편에서 기이한 육체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던 듯하다.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 얼굴에 대한 상상은 더욱 매혹적인 것이었다.
파라오의 저주니, 피라미드의 진실이니 하는 등의 미스터리에 예민한 사춘기의 영향도 있었을 테지만, 무엇보다 그 황금 마스크는 아름다웠고 특히나 나를 끌어당긴 것은 눈이었다. 특이한 형태로 휘면서 길게 그려진 눈썹과 눈꺼풀의 곡선. 굵고 선명한 검푸른 선으로 그려진 강렬하면서도 이상하게 슬픈 눈이었다.
어떤 순간의 그림자 같은 유년의 기억들이 있다. 맥락이 없기 일쑤이면서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그것들은 순간의 시간 속에 기억의 주체와 함께 성장한다. 고등학교 시절 황금 마스크에서 기이한 육체성과 죽음의 미감을 느꼈다면, 그 느낌의 아득한 저편에는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서러운 기억 하나가 삐걱거리며 자가발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곱 살, 거대한 당주나무가 있는 아산의 용화마을에서였다. 가난한 서울살이에 힘겨워하던 부모님은 방학만 되면 우리 3남매를 시골에 데려다 놓았다. 동네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우리는 하루 종일 할머니 주변만 맴돌았다. 모처럼 일찍 깨어난 어느 아침, 할머니는 작은 경대를 열어놓고 머리 손질을 하고 계셨다. 대접의 물을 발라가며 참빗으로 길고 성긴 머리채를 빗어 내리고 쪽을 지어 은비녀를 꽂으셨다. 할머니의 아침 단장은 느리고 느긋했다. 경대 서랍 속의 작고 납작한 도자기 합을 열어 머릿기름을 조금 찍어 손바닥에 싹싹 문지른 후 가르맛길 양편으로 정성스레 바르셨다. 할머니의 화장대인 그 낡은 경대는 거울을 접어 닫으면 네모난 상자처럼 보였다. 경대에는 납작한 서랍이 달려 있었는데 서랍 속에는 참빗과 가르마 타개, 기름함,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접어두는 기름먹인 한지가 나란히 들어 있었다.
단장을 마친 할머니와 함께 간 윗우물은 주로 식수를 길어오던 곳이었다. 우물이 깊어 아이들은 두레박질하지 못하도록 금지된 곳이다.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두레박질을 한 뒤, 작은 항아리에 물을 채웠다. 흥건한 물기를 손바닥으로 훔친 할머니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천천히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셨다. 마을을 지나 한적한 산길로 들어서자 앞서가던 할머니가 뒤돌아보며 손을 내밀었다. 어디를 가는 거냐고 나는 묻지 않았다. 도착한 곳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낡은 성황당이었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정화수를 떠서 성황당에 올려놓고 치성을 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주문 같은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 소리, 나는 서울에 있는 부모님을 떠올리며 슬픈 마음으로 할머니와 성황당을 바라보곤 했다.
어느 순간 할머니의 머릿기름 냄새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언젠가 여수 여행길에 동백기름을 산 적이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냄새가 아니었다. 그저 기억에만 남아버린 할머니의 머릿기름 냄새. 냄새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냄새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순간에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오래된 기억을 되살린다. 기억을 담고, 그 기억은 냄새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냄새가 기억을 담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감각 중 가장 직접적으로 감정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냄새는 단순한 자극을 넘어서, 깊은 기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이러한 경험의 순간은 미감으로 전환되며, 각자의 세계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든다.
미감(美感), 미감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복잡한 무의식의 통로를 지나는 세계다. 천 그루의 나무가 있으면 천 가지 이상의 미감이, 만 명의 사람이 있으면 만 가지의 이상의 미감이 존재한다. 각자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이면에 어떤 감정과 기억들이 얽혀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나만의 것, 나만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다른 이와 같은 감정을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감은 각기 다른 경험의 소산이다. 냄새는 오롯이 나만의 기억을 담는다.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한다. 나는 이 순간마다 어린 시절의 할머니를 떠올린다. 경대 앞에서 시간을 거느리며 느릿하게 단장하시던 모습, 그리고 길고 성긴 머리칼에 바르던 머릿기름 냄새. 그 냄새는 성황당을 향해 걷던 아침의 기억과 함께 나의 삶에 오래도록 스며들어 있다. 오래된 기억은 그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