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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신혜영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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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이었다. 처음엔 긴가민가해서 한참 서성거렸다. 대문도 예전의 그 대문이 아니었다. 소박한 철문에 아주 낮은 담 대신 웅장하고 견고한 높은 대문에 내 키의 반 이상이나 높은 그런 담이었다. 아무리 내가 까치발을 들어도 안쪽을 보기에는 턱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철문 사이로 실눈을 뜨고 들여다보았다. 예전엔 문만 열면 바로 보이던 대청마루가 있던 안채와 사랑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새로 지어진 시멘트 건물만 한 채 덩그러니 보일 뿐이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웬일인지 사람 사는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적요가 앙금처럼 깔려 있었다. 마치 빈집 같았다. 그렇게 따뜻하고 온화했던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대로이길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변해 있을 줄은 몰랐다. 딱 47년 만이다.

이 집은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집이다. 그때 나는 20대 중반이었고 그 당시 아버지는 영월 지역 교육공무원으로 일하고 계셨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이 마당이 크고 일본식으로 지어진 기역자 모양의 관사에서 살았다.

관사는 큰 중심도로에서 그릇가게와 미장원 사이로 난 골목길 안에 있었다. 골목길로 접어들어 한 스무 발자국 정도 걷다 보면 바로 오른쪽 철 대문 집이 그때 관사였다. 지금은 이미 입구 오른편 도롯가에 있던 그릇가게도 없어지고, 왼편 미장원은 농협 연쇄점으로 바뀐 지 오래다.

내가 처음 그 관사를 찾아갔을 때는 이제 막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다른 곳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나는 영월에서 생활하기 위해 여름방학에 맞춰 이곳으로 왔다. 아버지는 그해 초 발령을 받고 어머니와 먼저 그 집에서 살고 계셨다.

처음 그 집 앞에 섰을 때 철대문은 열려 있었고 커다란 마당에는 햇살이 가득했다. 마당 한쪽으로 반질반질 윤이 나는 장독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앞 수돗가에는 모양 없이 불쑥 서 있는 수도 앞으로 물받이로 만들어 놓은 네모난 시멘트 웅덩이 속으로 볕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문가 오른쪽으로 떨어져 조그맣게 지어진 판잣집은 말을 안 해도 화장실임이 분명했다. 수돗가, 화장실 주변, 시멘트 담 밑으로는 온갖 화초가 심어져 온통 집 안은 꽃투성이였다. 지금도 눈에 선한 건 입구만 조금 내놓고 발 디딜 틈 없이 땅바닥 가득 깔린 듯 다닥다닥 알록달록 피어있던 키 작은 채송화였다.

관사는 대문을 향해 기역자 집이었다. 기역자 앞부분에 건넛방, 그리고 뒷문이 달린 대청마루를 중간으로 해서 안방이 있고 안방 아래로 부엌, 그리고 기역자 끝으로 사랑채를 가진 그런 집이었다.

나는 그 관사에서 읍내 하나밖에 없는 여자 중학교에서 새로운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고 일 년 후 약혼을 하고, 그해 가을에 결혼했다.

관사 뒤뜰에는 살구나무에 노오란 살구가 나무를 노랗게 보이게 할 정도로 유난히 많이 달렸다. 약혼을 한 후 남편은 퇴근하면 곧장 우리 집으로 달려왔고, 우리는 살구를 따러 간다며 뒤뜰에 돌아가 살구를 따다 말고 살구나무 아래서 입 맞추곤 했다.

여름 내내 관사는 엄마가 심어 놓은 온갖 꽃으로 화려했다. 특히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건 아침이면 피어나던 푸른 나팔꽃이다. 어머니는 사랑채와 화장실 앞으로 줄을 지어 나팔꽃을 심으시더니 나팔꽃이 줄기를 내밀기 시작하자 처마 끝에 줄을 매어 나팔꽃의 길을 마련해 주셨다. 여름이 되자 사랑채 앞으로 화장실 앞으로 줄 따라 오른 나팔꽃이 문 양옆으로 드리워져 마치 초록빛 커튼 같았다.

그 푸른 커튼 사이로 아침마다 시리도록 푸르게 피어나던 나팔꽃들…. 오죽하면 나는 그 나팔꽃이 너무 아름다워 배경이 화장실임에도 그 앞에서 활짝 웃고 사진을 찍었을까?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어느 훌륭한 화원에서 찍은 사진보다 몇 배는 아름답다. 누가 나팔꽃 커튼 뒤가 화장실인 줄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른 아침 사랑채에 걸터앉아 바라보던 나팔꽃은 아직도 파랗게 내 마음에 피어 있다. 내 결혼은 그해 가을 수돗가 주변에 국화꽃이 만발할 때였다.

그렇게 아름답던 그 집을 결혼 후 나는 떠났다. 작은 방 한 칸을 얻어 살림을 났다. 다음 해 나는 큰아이를 낳았고, 엄마의 도움을 받으며 그 관사 사랑채에서 몸조리했다.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면 바로 코앞에 나팔꽃이 얼굴을 내밀곤 했다.

그해 여름은 방에서도 뜰에서도 아기와 나팔꽃이 동시에 피어나듯 환히 웃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무진장 행복했다. 나의 생애 중 가장 푸르고 가장 싱싱하게 행복하던 시절이 그때가 아닌가 싶다. 마치 아침에 막 피어난 나팔꽃처럼….

정신없이 살다 이제야 그때가 그리워 찾아간 옛집, 그러나 이제는 아무것도 예전의 추억을 찾을 수 없다. 그 많던 꽃자리엔 빈 바람만 뒹굴고 있었고, 화장실 자리에도 키 큰 나무 한 그루만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세월이 흘러 싱싱한 내 모습이 사라졌듯이 옛 관사의 모습은 이제 어디든 찾아볼 수 없었다. 그곳에서 몸조리했던 아기는 어느새 45살의 중년이 되었다.

가을 하늘보다 더 푸르고 시린 나팔꽃이 여름 아침마다 줄줄이 피어나고, 마당에 온갖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던 집, 세월은 정말 많이 흘렀지만, 꼭 한번 돌아가고 싶은 집이 바로 그 집이다. 집 앞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 머물다 다시 실눈을 뜨고 철문 사이로 집 안을 살폈다.

대문 안으로 채송화가 가득한 넓디넓은 꽃밭의 바다가 펼쳐지고, 대청마루에 어머니가 단정히 앉아 높고 낮은 높낮이로 다듬이질하고 계신다. 사랑채 문 앞에는 줄줄이 나팔꽃이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는데, 젊은 남녀가 손을 잡고 뒤뜰로 마치 나비처럼 나풀나풀 걸어가고 있다. 살구 따러 가는지 입 맞추러 가는지 그들의 머리 위로는 하늘이 나팔꽃처럼 파랗게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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